테이블 앞에 앉은 것은 리금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참사였다.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부장을 겸임하며 남북 간 경제협상에 오랜 경력을 쌓아온 그의 등장은 평양이 이 사안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중순, 남과 북이 탄소배출권 공동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개성에 마련한 2차 비밀접촉 자리였다.
남측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틀을 빌려 대북 전문가들을 통해 탄소배출권 공동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평양에 처음 제안한 것은 2차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2007년 가을. “한국 기업이 북한의 에너지 설비 등을 교체해주고 이를 국제기구를 통해 탄소배출권 형태로 인증받으면 서로 경제적 이익이 될 것”이라는 골자였다.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던 그해 연말 북측이 긍정적인 답신을 보내면서 첫 만남이 이뤄졌고, 논의는 정권교체기를 거쳐 새 정부로 넘어갔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간 비밀접촉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외형상 북한 측에서는 민화협이 책임을 맡는 형식이었지만, 실질적인 당사자는 통일전선부였다. 이어진 막후접촉 자리에는 협상진행 과정에 대한 감독관리와 상부 보고를 위해 국가안전보위부 관계자들도 동석했다.
민주평통의 ‘모자’를 쓴 남측 협상라인은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진척상황을 전했고, 김 장관은 이를 다시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무렵 청와대 안보라인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 무렵 김 장관을 중심으로 북한과 탄소배출권 사업 협력을 타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외교안보수석실에서 이를 전달받아 시기별 2단계 패키지로 분리 접근하는 방안을 만들었다는 것. 통일부 당국자 역시 협상 진행과정을 확인해주면서 “논의 진척에 필요한 자금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퇴임 이후 외부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김 전 장관은 수차례에 걸친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테이블에서 거론됐던 공동협력 사업은 크게 세 갈래였다. 동평양 화력발전소 설비 개보수와 비료공장 설비 교체, 하수쓰레기처리시설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구축이었다. 남한의 기업들이 이들 사업에 투자해 탄소배출량이 줄어들면 그 감소량만큼을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로부터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아, 투자기업이 영미권에서 공장을 지을 때 활용하거나 거래시장에서 판매해 이윤을 남기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사업 가운데 동평양 화력발전소 건에 대해서는 북측이 6자회담 논의내용과의 충돌을 우려해 난색을 표함에 따라, 초점은 비료공장과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로 모아졌다. 학술회의와 기술인력 교육, 실사, 시범사업, 전면사업으로 이어지는 5단계 로드맵도 도출됐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참여해야 하는 사안의 특성상 시행 로드맵의 첫 단계로 2008년 5월말 금강산에서 학술회의를 열어 그간의 논의내용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뤄진 빠른 진척이었다.
한반도의 훈풍
그러나 2008년 4월 이후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하면서 논의는 중단상태에 빠졌다. 예정됐던 학술회의 역시 백지화됐다. 앞서의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이 대통령의 ‘녹색 비전’과 부합하는 어젠다라고 판단해 힘을 실었던 김 장관이 새 정부 대북정책의 색채가 분명해지면서 한발 물러선 것에 가깝다”고 전했다. 통일부의 업무조직이 대폭 축소됐던 정부 출범 초기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이후 노동신문의 ‘이명박 역도’ 비난, 촛불정국,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와 관련한 남북 간 협의의 정체상태는 해소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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