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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에 얽힌 국제정치의 진실

마음을 얻는 외교, 그 잔혹한 두 얼굴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아바타’에 얽힌 국제정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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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얼굴, 비정한 속살

“아바타 프로그램은 애들 장난이지만, 기회를 만들어준 건 고마운 일이지. 진정한 해병이라면 현장에 침투해 적 기지에 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이봐 설리, 협조를 강요하다가 안되면 세게 갈기는 거야. 나는 네가 그들의 신뢰를 얻어 내부에서 정보를 캐내오길 원해. 그들 중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필요한 사항을 내게 갖다주는 거지. 그럴 수 있겠나?” - 기지 사령관 마일즈 쿼리치 대령이 주인공 제이크 설리를 회유하는 말.

영화가 단순히 미국의 공공외교 정책을 모사하는 데 그쳤다면, 핵심적인 갈등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공공외교가 표방하는 선하고 평화로운 얼굴의 내면에 국제정치의 차갑고 비정한 현실이 숨어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판도라 행성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는 자원 채취를 위해 이곳에 온 다국적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황폐화된 지구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에너지원 ‘언옵태니움’의 채굴이 그들의 목표다. 다국적기업의 현지책임자는 아바타 프로그램 역시 원주민들을 이주하도록 설득하는 ‘외교적 해결방안’의 하나로 기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모토는 ‘그들의 마음을 얻어 경제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속내를 둘러싼 껍데기에 불과하다(물론 이는 이라크전과 석유산업의 상관관계를 꼬집는 캐머런 감독의 의도적인 풍자다).

미국의 공공외교가 모두 이런 의도로 기획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공공외교정책 역시 미국의 국익에 복무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생소한 문화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어진 정보들은 고스란히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바타를 입고 나비족과 친분을 쌓아가는 주인공 설리를 통해 군사작전에 필요한 내부정보를 얻어내고자 하는 쿼리치 대령의 속내는, 언제든 상대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정보수집 활동으로 바뀔 수 있는 공공외교의 이면을 폭로한다.



‘이해’와 ‘정보전(情報戰)’의 이 아이러니한 상관관계는, 서구 사회에서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교과서로 자리매김한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실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對)일본 심리전을 위해 만들어진 정보당국 보고서였다는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CIA 한국지부에서 일하며 박정희 정부 당시의 핵개발 계획을 처음으로 워싱턴에 보고한 장본인이자, 2000년대 들어서는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으로서 한미동맹 조정의 민감한 이슈를 요리했던 리처드 롤리스는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공공외교적 수단을 거쳐 탄생한 ‘한국을 잘 아는 미국 측 인사’의 전문성이 외교전쟁에서 유감없이 활용된 것이다.

쿼리치 대령의 무력침공 작전이 임박하자, 주인공 설리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 나비족이 자신을 반역자 혹은 외부인으로 비난하게 될 것이라고 괴로워한다. 참사를 막기 위해 ‘중재자’를 자임한 그의 시도는 나비족과 사령부 모두에게서 배신으로 낙인찍힌다. 영화에서는 빠졌지만 감독이 직접 쓴 오리지널 대본에는 어거스틴 박사 역시 같은 종류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이 만든 학교가 쿼리치 대령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여주인공 네이티리의 언니가 피살된 사건을 회상하면서 “여기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고, 우리는 다가올 일을 막을 수 없다”고 고통스러워하는 대목이다.

20여 년간 미 국무부의 언론문화담당관으로 일했던 존 브라운 조지타운대 겸임교수는 최근의 칼럼에서 ‘아바타’ 주인공들의 괴로움에 공감을 표한다. 판도라 행성에서 설리의 처지는 냉전 종식 직후 공공외교를 수행하기 위해 동유럽에 투입됐던 자신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회고다. 겉으로는 공공외교 종사자지만 군사적으로는 심리전 요원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스파이일 수밖에 없었던 자의 괴로움이다. 주재국 사람들의 신뢰를 배반하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나는 좋은 편에 서 있다’고 위안하려 했지만, 과연 자기가 진짜로 ‘좋은 편’이었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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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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