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오케스트라 세상,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입력2010-02-02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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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맘 먹고 간 클래식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있는가? 10명이건 100명이건 완벽한 하모니를 완성하는 데 열중하지만, 실상 오케스트라도 사람 집단이고, 사람이 모인 이상 말도 많고 갈등도 불거진다.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오케스트라를 내밀하게 들여다보자.
    오케스트라 세상,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혹시 클래식 공연장에 갔을 때 오케스트라 단원이 총 몇 명인지 세어본 적 있는가? 아마도 일일이 세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걸 세고 있었다는 건 한편으로 음악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난, 세어본 적이 있다. 그날 연주가 너무 재미없었다. 음악을 전공한 나로서도 졸린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세어보았는데 참 많았다. 오케스트라 단원생활도 오래 했지만 ‘우리의’ 숫자를 세어볼 일이 없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자, 그럼 몇 명일까?

    물론 공연에 따라, 연주하는 곡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0명만 넘어도 앙상블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로 부르기도 하니까. 또 많게는 200명, 300명이 동시에 연주하기도 한다.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500명을 동원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작곡가다. 사람들이 그 규모에 놀라면, “사실 450명만 있어도 가능합니다”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로 우주를 표현하려고 했던 구스타프 말러는 ‘천인교향곡’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천인… 하늘의 사람이 아니라 1000명을 가리킨다. 진짜로 1000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합창단을 포함해 약 800명의 음악가가 필요하다. 이 곡은 그래서 자주 연주되지 못한다. 공연에 필요한 그들의 연주 수당을 상상해보라.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규모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형태의 평균을 내보면 100명 정도다. 100명이라,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중극장 규모의 무대를 꽉 채우는 숫자다. 합창단처럼 사람만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니까. 연주자와 그들의 악기 100대, 앉아서 연주하기 위한 의자 100개. 서서 연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더블베이시스트도 사실 높은 의자에 앉는다. 악보를 놓기 위한 보면대도 있어야 한다. 현악기 주자들은 둘이서 한 악보를 보니까 100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50개 이상은 필요한 셈이다. 거기에 지휘자가 올라갈 단상은 가로와 세로 각 1.5m는 되고, 지휘자용 보면대는 특대형이다. 피아노나 하프는 악기 자체가 크고, 팀파니 같은 타악기도 자리를 꽤 차지한다. 튜바 같은 금관악기는 사람이 들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워 보일 정도다. 번쩍거리는 광택도 눈부시다.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화려하고 규모가 크다.

    군대 이상의 위계질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연주하기에 단점도 있다. 일단 인기가 없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종종 관객보다 무대 위 연주자의 수가 더 많은 상황이 연출된다. 홍보가 잘 안 돼 관객이 몇 명밖에 오지 않는다면 참으로 민망할 것이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프로인 만큼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민망해하는 쪽은 오히려 관객이다. 연주가 끝나고 100명이 넘는 사람이 일어나서 그보다 적은 수의 관객에게 인사한다고 상상해보자. 누가 더 민망하겠는가?



    오케스트라 규모에 따라 연주회를 치르는 비용도 커지기 때문에 공연기획자나 관현악단 운영자의 부담 또한 커진다. 현악사중주 같은 실내악 공연이나 독주회의 경우 공연 제작에 드는 비용이 제한돼 있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은 한없이 불어난다. 일단 연주자 수에 따라 총 개런티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단체가 단원에게 월급이나 수당을 박하게 준다. 제작비를 아끼려고 하면 연주자 개런티부터 줄이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그뿐인가?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는 소극장에서 공연할 수 없다. 최소한 그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가려면 중극장 이상의 규모여야 하며 대관료는 매우 비싸진다. 무대가 커지면 객석의 수는 몇 배로 늘어난다. 좌석 수가 많으면 관객도 많이 와야 한다. 표 수익은 둘째치고, 객석이 텅텅 비면 연주자들도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그 많은 좌석을 채우려면 공연단체의 높은 지명도 외에 ‘홍보’라는 것이 필요하다. 홍보전단과 포스터가 더 많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라디오나 TV 방송광고도 필요하다. 결국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니 오케스트라 운영은 결국 중소기업이나 그 이상 규모의 사업인 셈이며 위험부담도 커진다. 물론 성공적으로 치러내면 수익도 그만큼 크다. 당연한 시장의 법칙이다.

    결국 하나의 기업인 오케스트라는 내부적으로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물론 일반 기업처럼 대리나 과장, 부장 같은 직급은 없다. 그러나 위계질서는 분명히 존재하고, 오랜 전통으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각기 맡은 악기가 있고 그에 따라 역할이 구분된다. 이것은 일반 직장의 부서나 다름없다. 10~ 16명으로 구성되는 제1바이올린, 그들보다 조금 적은 수의 제2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 첼로…. 이런 식으로 무리가 지어지고, 우리는 이를 ‘파트’라고 부른다. 각 파트에는 수석이라고 불리는 파트장이 있다. 그 옆에는 부수석도 있다. 각 파트 구성원은 무대 앞쪽부터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앉는다. 연주 실력이나 경력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앞자리로 이동한다는 것은 곧 승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맨 앞까지 승진해 부수석이나 수석이 되면 연주수당도 올라간다. 회사나 군대 이상의 철저한 위계질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음악은 아름답고 감정적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사회는 매우 엄격하다.

    악기마다 내는 음색이 각기 다르듯, 앙상블에서 연주자들이 맡은 역할이나 연주자들의 성격도 저마다 다르다. 연주자들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연주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연주자들은 분노하지 말기를…. 오케스트라 생활을 하면서 겪은 수많은 사람의 생각이나 말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더블베이시스트가 사오정?

    오케스트라 세상,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는 군대 못지않게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100명 중 30~35명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오죽하면 제1, 제2로 나누었을까. 그중 제1바이올린의 맨 앞자리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대표, 즉 악장이 앉는다. 제1바이올린은 가장 많은 선율을 연주하는 파트답게 자존심이 세다. 경쟁도 치열하고 연주자들의 눈초리도 매섭다. 반면 제2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최전방에 있지 않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때가 많다고 한다. 제2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 가장 오래 산다는 농담도 있다. 반면 가장 일찍 죽는 사람은 오보에 연주자라나? 그 얘기는 잠시 후에.

    비올라는? 비올라는 연주자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무성한 악기다. 바이올린보다 약간 크고 낮은 음을 내는 이 악기 연주자들은 그들의 양쪽에 있는 바이올린과 첼로 주자들의 농담에 자주 오르내린다. 아주 높은 음도, 낮은 음도 아니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는 둥, 연주자들의 성격이 독특하거나 애매하다는 둥…. 하지만 내가 본 비올라 주자들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더 오해를 살지 모르니 그만 해야겠다). 첼로 주자 중엔 어릴 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사람이 별로 없다느니, 그래서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라느니 하는 뒷말이 있는데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 인신공격성 발언에 가깝다. 더블베이스 주자는 말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건 우스갯소리다. 더블베이스 주자는 지휘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휘자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앞에 있는 첼로 주자에게 자주 물어보는 상황을 희화화한 얘기다.

    이제 관악기로 넘어가보자. 오래전부터 현악기 주자와 관악기 주자들은 별로 친하지 않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성적이거나 내성적인데 반해,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학창시절 밴드부나 군악대, 경찰 오케스트라를 거친 경우가 많은 만큼 남성적이고 외향적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이 있다. 현악기 주자인 나는 어릴 때 관악기 연주자들을 무서워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금관악기 연주자들보다 덜 무서웠다.

    예쁜 목관악기들을 보자. 플루트 주자들은 항상 예쁜 음색을 연주하고 오케스트라에서의 역할도 ‘아름다움’에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러 작품에서 그런 역할을 해왔고, 플루트 연주 중에 격렬한 대목은 드물다는 점을 인정하는 플루트 주자도 많다. 그래서 플루트 주자는 ‘공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클래식 연주에서 클라리넷은 재즈음악에서 흔히 접하는 비브라토(떨림)를 거의 구사하지 않는다. 클라리넷 주자 중엔 매우 절제돼 있으며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이가 많은데, 그런 그들이 바람둥이일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보에 주자의 어려움

    앞서 오보에 주자의 명이 가장 짧다고 했는데,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중요한 독주가 많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연습이나 연주를 하기 전부터 조율을 위해 악기를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보에 주자들은 긴장도 먼저 하고, 출근도 먼저 한다. 바순은 어떨까? 목관악기 중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며 크기도 큰 이 악기는 현악기로 말하자면 첼로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악기는 아니다보니 악기의 특이성만큼이나 연주자들의 성격도 독특하다고 한다. 바순을 연주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도 참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 그 친구를 보면 전해오는 얘기가 맞는 것도 같다.

    이제 무서운 금관악기다. 트럼펫이 갑자기 팡파르를 울리면 정말 압도적이다. 그래서 트럼펫 주자들은 그런 긴장에 익숙하다.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조금 더 들어보니, 단지 트럼펫 주자여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트럼펫 주자가 다른 단원들 앞에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트롬본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악기다.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피스톤이 달린 악기다. 사람들 앞에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데 익숙해서인지 트롬본주자들은 성격이 털털하고 좋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트롬본 하는 사람들과 적(敵)이 된 적이 없다(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튜바 주자들은 연습시간에 항상 늦는다는 얘기를 트롬본 주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악기가 커서 그런 건지, 주위에 자주 늦는 분들만 있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 얘기를 듣고 유심히 관찰해보니 튜바 주자들은 지각이 잦았다. 내 선입관 때문일 것이다.

    다 설명한 것 같은데…. 무슨 말씀? 타악기가 있다. 많은 이가 가장 연주하기 쉬운 악기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때 배운 캐스터네츠나 트라이앵글 연주법이 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실제 타악기의 제대로 된 연주법은 초등학교 때 배운 것과 많이 다르다. 팀파니, 심벌즈 같은 악기는 일반인이 소리조차 제대로 못 낸다. 마림바 같은 거대한 실로폰은 채가 안 보일 정도의 현란한 연주력이 요구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악기를 다 연주할 줄 알아야 타악기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 ‘낙하산’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생긴 거대한 조직이 바로 오케스트라다. 조직에서는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관계에선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다른 부서의 견제, 즉 다른 파트의 견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많은 첼로 주자는 자신들 뒤에 서서(실은 높이 앉아서) 연주하는 더블베이스 주자들이 간섭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더블베이스는 첼로와 같은 음을 연주하며 저음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첼로 주자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는 경우가 잦다. 이때 더블베이스의 크기나 연주자들의 높은 자세, 뭐 이런 여러 가지 때문에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 정도야 큰 문제는 아니고 개인의 느낌 차이일 수도 있지만, 더 크고 분명한 갈등도 존재한다.

    같은 파트 내 연주자에 대해서, 혹은 다른 파트의 연주 실력 등에 대해 언급하거나 인신공격을 했다면, 그것도 연습 중에 그랬다면 전 단원이 지켜보는 상황인 만큼 싸움은 곧바로 공식화된다. 결국 누군가는 사직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자주 치닫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음악인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나마 개인과 개인의 다툼은 금방 사그라질 수 있다. 그룹과 그룹의 싸움은 서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분쟁으로 발전해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에도 ‘낙하산’이 있다. 난데없이 외부 연주자가 날아들어 자기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단원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케스트라 역시 직장이라 연봉문제를 놓고 노조가 결성되기도 하고 권력다툼이 빚어지기도 한다. 파산하기도 하고 인수되기도 하고 합병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에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렇다, 오케스트라에는 지휘자가 있다. 무대에서 유일하게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사람. 가장 쉬울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오케스트라가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연습을 주관하는 사람. 그가 바로 지휘자다. 같은 연주자들이 같은 음악을 연주해도, 지휘자가 다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우리 연주자들은 수많은 지휘자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각기 다른 리더십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가려낸다. 연주자가 연주를 완벽하게 못하면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휘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그를 ‘범죄자’라고 부른다. 그만큼 지휘자는 완벽해야 하며 최고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원 전체의 인생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아무 악기도 연주하지 않는 그가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최고의 지휘자일까?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이끌어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게 하는 것? 관객에게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는 것? 그게 답이 될 수도 있다. 단원들을 무섭게 다뤄 긴장하도록 만들고 실수 없는 수준 높은 연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지휘자가 아니라 권력자다. 우리는 그런 권력자를 만난 적이 많다. 그로 인해 대외적으로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방법이 옳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역시 무서운 지휘자 밑에 있어야 연주가 훌륭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지휘자를 만나보지 못했을 때의 생각이다.

    강마에가 좋은 지휘자인 이유

    오케스트라 세상,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 분).

    진정한 지휘자는 우리의 재능과 감정을 모두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우리가 ‘연주하는 기계’의 부속품이 아닌 한, 우리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모두가 자기가 속한 파트 수석 연주자이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창조하는 예술가임을 확인시켜주는 사람. 그것이 리더십을 가진 지휘자다. 오케스트라 연습시간에 어떤 이가 다른 모두와 어긋난 소리를 낼 때, 지휘자가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가? 많은 사람은 지휘자가 윽박지르거나 따끔하게 경고를 줘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긴장감을 높일 거라고 생각한다. 천만에. 내가 만나본 최고의 지휘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옳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지휘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다시 해봅시다.” 그 말을 들은 연주자는 다시는 틀리지 않았다. 지휘자를 위한 연주가 아닌, 자신과 함께 연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는 사람은 틀릴 수가 없다.

    실력이 없는 지휘자는 나쁜 지휘자다. 하지만 더 나쁜 지휘자는 자신이 훌륭한 지휘자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지휘하는 사람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단원들을 위한 위악임을 알기에 우리가 그를 인정하는 것이다. 카리스마와 강압은 혼동되기 쉽다. 사람들이 리더의 순수한 의지에 감동하고 존경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카리스마다. 하지만 리더가 조성하는 공포 때문에 질서가 잡힌다면 그것은 강압이다. 후자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 강압적인 지휘자는 결과적으로완벽한 연주가 되어 단원들이 자신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적들, 즉 단원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지휘자를 위해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은 완벽한 연주에 박수 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경험하지 못한다. 강마에가 만약 진짜 공포로 질서를 잡고 긴장된 하모니를 얻어내 자신의 명성에 흠이 되지 않는 연주회를 하려고 했다면, 해피엔딩은 없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세상,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
    조 윤 범

    1975년 서울 출생

    선화예고, 연세대학교 기악과 졸업

    서울필하모닉 단원 및 다수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역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겸 제1바이올린 주자

    예당아트TV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진행

    ‘조윤범의 파워클래식’(2008)


    최고의 지휘자는 자신의 이름과 명성, 업적을 위해 연주자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최고의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음악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며 그러한 그의 의지를 모든 연주자가 느끼고 더 열심히 재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그 연주를 듣고 관객은 감동하고 연주자들을 지휘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연주자들이 진짜 음악을 연주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데 대해 감사하는 의미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며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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