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명의 도용당해 엉터리 평가에 동원된 학부모들 동료끼리 높은 점수 주고받은 교사들

  • 김지은│신동아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0-12-22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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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차 시범운영 끝에 2010년 전면 실시된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첫해부터 여기저기서 불미스러운 잡음을 내고 있다. 교사들 스스로 악용하고 있는 교원평가 시스템.
    • 그런데 제도의 허점을 보면 교사들의 도덕불감증만 탓할 게 아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2010년 7월13일 광화문 시민광장에서 시위하는 전교조와 시민단체들.

    2010년 9월6일, 서울 노원구의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특수학급 담임을 맡고 있는 K교사는 자신의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평가에 참여한 학부모 14명 전원이 K교사에게 모든 항목에 최하점수를 준 것이다.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특수학급 학생수를 모두 합해봐야 고작 30명이다. 그나마 특수학급 학생의 특성상 학생에게는 평가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학부모 30명만이 담당 교사를 평가할 수 있다. 일반 학급에 비해 특수학급의 교원능력개발평가 학부모 참여도도 한참 떨어질뿐더러 그나마 대부분은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에게만 한정적으로 점수를 준다.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 교사를 평가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K교사의 경우 그녀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수를 훨씬 넘긴 학부모 14명이 평가에 참여했다. 더욱이 모두 그녀를 최악의 교사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대목은 학부모 평가가 아니었다. 특수학급 학생의 특성상 학생에게는 평가권한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학생 3명이 자신을 평가한 것이다. 물론 그 학생 3명의 평가 점수는 학부모들의 평가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우수했다.

    학부모 전원이 최하점을 준 것도 충격이었지만 평가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특수학급의 학생들이 자신을 평가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K교사는 평가담당 교사를 찾아가 전산 오류를 문의했다. 그런데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자신을 평가한 3명의 학생은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이 아닌 다른 일반 학급의 학생들에게 권한이 잘못 부여되어 오류가 발생한 것이지만 14명의 학부모는 모두 특수학급 학생 부모가 맞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여가 저조한 특수학급의 학부모 평가에 14명이나 참여한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K교사는 자신의 수업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긴 했어도 학부모들과 특별한 마찰이 없었고, 특수학급의 특성상 학생지도를 위해 학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던 그녀로선 정말 뜻밖의 결과였다. 심지어 학교에서 공정한 학생지도와 성실한 수업태도로 모범 교사임을 인정받아 올해는 표창까지 받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학부모들

    사건이 터진 것은 며칠 후였다. K교사의 문의로 자신이 학생들에게 평가 권한을 잘못 부여한 사실을 알게 된 평가담당 교사는 혹시라도 학부모 14명의 전산 처리에도 오류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워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 또 다른 동료교사 P씨가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교원능력개발평가 참여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평가 참여율이 너무 저조해 문자나 전화 등으로 학부모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사례가 많았던 터라 그녀도 반신반의하면서 독려 차원의 전화를 돌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30명의 학부모 중 단 2명이 평가에 참여했고 그나마 모든 교사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담당하는 담임교사에게만 평가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평가에 참여한 학부모는 없는데 평가 점수는 매겨졌고, 평가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된 학부모의 절반 모두가 최하점수를 주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을 알게 된 교사들은 서로의 평가 결과를 공개하면서 점차 평가 결과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K교사 외에, K교사와 평소 친분이 있던 대부분의 교사가 학부모 평가에서 14명 전원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것이다. K교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일반학급 교사인지라 14명 외에도 평가에 참여한 학부모가 있어 그나마 평균 최하점은 면했다는 사실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의심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평소 K교사를 시기했던 같은 특수학급 교사 L씨가 명의를 도용해 학부모 대신 평가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증일 뿐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교사가 학부모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요구하는 허술한 개인정보 내역에 답이 있다. 학부모가 교원능력개발평가에 참여하려면 학생의 반, 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7개, 학부모 이름만 있으면 된다. 해당 학생의 담당 교사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다. 사건이 발생한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의 경우 특수학급이 한 학년에 한 반씩밖에 없어 학생 파악이 수월하고, 다른 특수학급 교사가 동료 특수학급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생들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건이 커지면서 학교 측에서는 동료 교사들끼리의 감정싸움으로 보고 해당 교사들을 불러 ‘화해’를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K교사는 억울했다.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최하점수를 받은 기록이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명백한 명의도용을 학교 측에서 그냥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료교사인 L은 자신이 한 일이 절대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다. K교사는 억울해도 참으라는 학교 측의 회유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학부모 명의도용은 공무원법 위반

    몇날며칠을 실의에 빠져 보내던 K교사에게 ‘정신 차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학생들이었다. 교사의 감정과 컨디션 등에 그 어떤 아이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특수학급 학생들의 특징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K교사의 상태 때문에 학생들이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덮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저 개인이 억울하고 말면 되지요. 언젠가는 잊힐 일이고 묻어두면 대외적으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란 걸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이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라, 무언가 잘못된 일이 발생했을 때 모른 척 피해라, 이건 제가 학생들에게 단 한번도 가르친 적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에서 늘 약자로 살아야 합니다. 눈치보고, 피하고, 도망가면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속으로 눈물을 쏟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엄한 모습을 보였던 제가 겨우 이런 일로 도망간다면 교단에 설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명백한 학부모 명의 도용이고, 이를 모른 척한다면 교사의 명예와 양심마저 저버리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죠.”

    K교사는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교육청에서도 조사관을 파견해 진상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조사 초기 교육청의 입장은 학부모들의 명의 도용보다는 ‘참여자의 비밀 보장 원칙을 깬’ K교사를 질타하는 쪽이었다. 평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K교사의 자질을 의심한 것이다. 심지어 평소 사이가 좋지 못하던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알리면서 학부모들까지 K교사의 자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경찰로 넘어가게 된 것은 자신의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알게 된 일부 학부모들이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학교 측도 더는 덮고 넘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0월말, 사건은 서울 노원경찰서 사이버 수사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교육청 조사를 통해 동료교사들의 심증대로 교사들이 범인으로 지목한 L교사의 컴퓨터에서 범행이 이뤄진 것이 밝혀진 뒤였다. 교원평가 시행 마지막 날인 6월25일 6시 이후부터 1시간20분에 걸쳐 학부모 평가가 일괄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당 교사인 L씨가 범인으로 확증된 상황은 아니다. L교사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몰래 접속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반박했고 나머지 교사들 역시 각자 자신이 학교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을 받아든 담당 경찰관은 난감했다.

    “같은 공무원 처지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로서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수사하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사안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수사가 더 진행돼야 알겠으나, 선생님들 중 한 명의 범행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명백한 공무원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물론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2010년 12월7일 박영아 의원이 주최한 교원평가제 토론회.

    이 사건이 주민등록번호 도용에 해당하는지는 검찰 송환 이후에 따져보아야 할 문제라는 것이 경찰의 견해다. 현행법상 주민등록번호 도용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하는 행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재산상의 이익을 위해 부정 사용하는 행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게임 등의 목적으로 사고파는 행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유출하는 행위, 수집 목적 달성 후에도 주민등록번호를 파기하지 않고 보관하는 행위 등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경우 주민등록 번호 13자리를 모두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뒷번호 7자리만 기입하게 되어 있어 기준이 애매한 상황이다.

    “평가 시행 초기이다 보니 평가의 필요성과 목적성을 인지하는 데 치우쳐 절차에 대한 안전장치는 미흡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만큼 공인인증서 등 더욱 철저한 개인 확인 절차가 필요할 것입니다.”

    경찰은 12월 내로 사건이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빠르면 1월, 검찰로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치부되었던 일이 사실은 교사들의 양심을 엄청난 범죄의 늪에 빠뜨리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교원 평가는 짜고 치는 고스톱?

    학교에서 자꾸만 문자가 날아온다. 교원평가제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참여하라고. 반가운 문자도 아닌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대니 왠지 개인 신상이 털린 것 같은 불쾌한 감정마저 스멀스멀 올라왔다.

    (중략)

    교장선생님 얼굴도 모르는 판에 지역사회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맺고 계신지 알 턱이 없고, 선생님들을 어떻게 지원해주는지 교무회의라도 참가하지 않는 이상 어찌 알 수 있을까.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학교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어야 이런 문항에 망설임 없이 체크할 수 있을까!

    그 다음은 담임선생님과 과목별 선생님들에 관한 문항이었는데 학습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등 학부모 입장에서는 전혀 파악하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물론 교원 평가를 대비해 학교에서는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과연 한두 시간 공개수업을 보고 선생님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올라온 한 학부모의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대한 성토의 글이다. 12월7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교원능력개발평가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박영아 의원실의 교육정책토론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11월1일 현재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 참여율은 79.84%, 학부모 참여율은 53.88%, 교사 참여율은 87.38%이다.

    재미있는 것은 교사들의 동료교사 평가 지표다. 일반교사의 평가지표는 교육과정, 교과분석, 전략수립, 수업도입, 교사발문, 교사태도, 상호작용, 자료 활용, 수업진행, 학습정리, 평가내용, 평가결과, 개인문제, 가정연계, 진로특기, 기본생활, 학교생활, 민주시민 등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모든 항목에 대한 동료평가 지표가 5점 만점에 4.09~4.53점을 기록한 것이다. 항목별로 보면 교사들의 동료 평가와 학생들의 교사 평가 간의 격차는 최대 1.85배, 교사들의 동료 평가와 학부모들의 교사 평가는 최대 2.54배까지 차이가 난다.

    평가요소별로 살펴보면 교육과정 평가는 동료 교사 평가가 4.4점, 학생 평가 3.41점, 학부모 평가 2.12점을 기록했다. 교과분석의 경우는 교사 평가 4.46점, 학생 평가 3.56점, 학부모 평가 3.99점이다. 교사발문은 교사 평가가 4.44점, 학생 평가가 3.58점, 학부모 평가는 3.95점이다. 수업진행은 교사 평가 4.45점, 학생 평가 3.34점, 학부모 평가 3.56점이다. 항목별 점수를 전체 평균하면 동료교사 평가는 4.46점으로, 학생 2.78점, 학부모 3.09점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교사들끼리 서로 점수를 잘 주는 이른바 ‘기브 앤 테이크’의 전형적인 사례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서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교사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교원능력평가가 교육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에 대한 인식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교사들의 15.6%만이 교육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대답한 반면 학생은 39.15%, 학부모는 50.51%가 교원능력개발평가가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차피 수업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서로 점수나 잘 주고 보자는 마음인 걸까. 자신은 동료교사 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한 초등학교 교사는 내가 다른 사람의 수업을 일일이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교사마다 다른 수업방식과 교육철학에 함부로 내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취재를 하며 만난 많은 교사가 동료교사 평가에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수업하는 시간에 다른 교사들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죠.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른 교사의 수업 내용을 평가하고 그 질에 점수를 매길 수 있겠습니까.”

    ‘교원능력개발평가 성과와 과제’에 전교조 대표로 참석한 서울 개포중학교 한만중 교사는 전교조가 교원능력개발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동료교사를 평가할 잣대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다른 교사의 수업까지 속속들이 알 수 없어 당연히 친분과 평소의 관계 등을 고려해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생 평가와 학부모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교사들의 수업 내용과 자질을 평가하는 것인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사의 인기투표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학생이 학교에서 지도를 받는 교과목 교사만 해도 열 명이 넘습니다. 학부모들이 담임교사는 둘째치고 담당 교과목 교사까지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자녀들에게 해당 교사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고, 학생들의 판단이 학부모의 판단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말 그대로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항목에 대한 고민은 물론 평가 방법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교사들의 학교장 평가, 학부모들의 학교 평가 등도 올바르게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원평가의 목적은 교육의 질 개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당연히 실수도 있고, 오류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 역시 교원평가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교원평가제도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한가람고등학교는 2007년 교원능력개발평가 선도학교로 선정됐다. 이 학교는 1996년 개교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교원평가제를 시행해왔다. 교원평가제를 학교 운영 원칙으로 정한 이옥식 교장은 교원평가제야말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인 획일화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자율사립고인 한가람고등학교의 경우 전 교사가 교원평가를 통해 임용된다. 정식 임용 전, 초보 교사인 기간제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교사들의 철저한 평가를 받게 된다. 우수한 점수를 받지 못하면 해당 교사는 정식 임용에서 탈락한다.

    “교사들은 교원평가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자신 또한 교원평가를 통해 임용되었기 때문에 교원평가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교단에 서게 된 명분을 부정하는 것이죠. 오히려 교원평가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또 무엇을 잘 했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그것을 학습계획에 반영해 더욱 나은 수업을 준비하는 데 활용합니다.”

    처음에는 일괄적으로 세세한 항목까지 평가하게 했던 문항을 간략한 5단계로 줄이는 대신 교사들에게 평가 항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해당 교사가 이번 학기에 중점적으로 진행한 교육 방법이나 새로 개발한 교습법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교사 스스로도 자신의 교육 방법을 점검할 수 있고 또 자신을 독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과목별 특성도 최대한 고려했다. 실기가 중심인 학과목을 이론 중심의 학과목과 같은 평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과목 특성에 맞게 평가 항목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이라는 것이 이옥식 교장의 주장이다.

    한가람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이 가능한 학교의 운영원칙상 학생들의 교과목 선택은 곧 교사를 선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교사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에 따른 폐해도 없지 않았다. 자칫 교사들이 학생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실제로 일부 학생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고 교사 평가용 OMR카드를 훔쳐 나쁜 점수를 표기해 제출하는 바람에 해당 교사가 난처한 처지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 수보다 많은 OMR카드가 제출된 것을 발견한 학교 측이 진상 파악에 나섰고, 결국 학생들의 도용 사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학교 측은 교사들에게도 학생 평가 거부권을 부여했다. 평소 수업 태도가 나쁘고 교사 평가를 객관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학생에 대해서는 교사가 평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단,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받기 위해 같은 학생에 대해 교사 3인 이상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만 실질적인 교원평가 제외 대상으로 지목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교원평가 제외 대상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져,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상당히 좋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이 교사를 위협하는 사례도 있었다. 수시평가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으면 자신 역시 교사 평가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겠노라 협박한 것이다. 명백한 교권 침해였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학교 측은 해당 학생에게 학교에서 주는 모든 상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물론 어떠한 형식으로도 대외 추천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학생과 교사의 상호 견제 방안을 하나씩 마련한 것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덮으려고만 했다면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교원평가제를 운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교원평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선생님들 역시 교원평가를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수업 내용과 학생 지도 방식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받게 되어 수업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죠.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것이 선생님들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이옥식 교장은 어떤 제도를 시행하면서 따르는 부작용을 염려하거나 그 부작용에만 집중해 그 제도의 본래 목적과 취지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당부한다. 한두 번 해보고 안 되겠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이보다 나은 방법은 없는지 꾸준히 고민하고 성과를 칭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학생들에게 더욱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행된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시행 첫해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더욱 나은 제도적 방법들은 혁신적으로 도입해 교육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교육&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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