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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명의 도용당해 엉터리 평가에 동원된 학부모들 동료끼리 높은 점수 주고받은 교사들

  • 김지은│신동아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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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치는 고스톱’ 교원평가제의 허와 실
의심 가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평소 K교사를 시기했던 같은 특수학급 교사 L씨가 명의를 도용해 학부모 대신 평가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심증일 뿐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교사가 학부모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요구하는 허술한 개인정보 내역에 답이 있다. 학부모가 교원능력개발평가에 참여하려면 학생의 반, 번호, 이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7개, 학부모 이름만 있으면 된다. 해당 학생의 담당 교사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이다. 사건이 발생한 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의 경우 특수학급이 한 학년에 한 반씩밖에 없어 학생 파악이 수월하고, 다른 특수학급 교사가 동료 특수학급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생들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사건이 커지면서 학교 측에서는 동료 교사들끼리의 감정싸움으로 보고 해당 교사들을 불러 ‘화해’를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K교사는 억울했다.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도 않은 부분에 대해 최하점수를 받은 기록이 고스란히 남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명백한 명의도용을 학교 측에서 그냥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료교사인 L은 자신이 한 일이 절대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다. K교사는 억울해도 참으라는 학교 측의 회유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학부모 명의도용은 공무원법 위반

몇날며칠을 실의에 빠져 보내던 K교사에게 ‘정신 차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은 학생들이었다. 교사의 감정과 컨디션 등에 그 어떤 아이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특수학급 학생들의 특징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K교사의 상태 때문에 학생들이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덮고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저 개인이 억울하고 말면 되지요. 언젠가는 잊힐 일이고 묻어두면 대외적으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란 걸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이런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라, 무언가 잘못된 일이 발생했을 때 모른 척 피해라, 이건 제가 학생들에게 단 한번도 가르친 적이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회에서 늘 약자로 살아야 합니다. 눈치보고, 피하고, 도망가면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속으로 눈물을 쏟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엄한 모습을 보였던 제가 겨우 이런 일로 도망간다면 교단에 설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명백한 학부모 명의 도용이고, 이를 모른 척한다면 교사의 명예와 양심마저 저버리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죠.”

K교사는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교육청에서도 조사관을 파견해 진상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조사 초기 교육청의 입장은 학부모들의 명의 도용보다는 ‘참여자의 비밀 보장 원칙을 깬’ K교사를 질타하는 쪽이었다. 평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K교사의 자질을 의심한 것이다. 심지어 평소 사이가 좋지 못하던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알리면서 학부모들까지 K교사의 자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경찰로 넘어가게 된 것은 자신의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알게 된 일부 학부모들이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학교 측도 더는 덮고 넘어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0월말, 사건은 서울 노원경찰서 사이버 수사대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교육청 조사를 통해 동료교사들의 심증대로 교사들이 범인으로 지목한 L교사의 컴퓨터에서 범행이 이뤄진 것이 밝혀진 뒤였다. 교원평가 시행 마지막 날인 6월25일 6시 이후부터 1시간20분에 걸쳐 학부모 평가가 일괄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당 교사인 L씨가 범인으로 확증된 상황은 아니다. L교사는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몰래 접속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반박했고 나머지 교사들 역시 각자 자신이 학교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을 받아든 담당 경찰관은 난감했다.

“같은 공무원 처지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로서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수사하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사안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수사가 더 진행돼야 알겠으나, 선생님들 중 한 명의 범행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명백한 공무원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물론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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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신동아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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