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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MB 살던 가회동 한옥 불법 숙박업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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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인사들 자주 들러요”

8월 1일 기자는 외국 손님 접대가 잦은 지인과 함께 취운정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니 왼쪽에 이 대통령이 살았던 본채가, 오른쪽으로 두 개의 별채가 보였다. 건물 가운데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다. 안방과 대청방, 사랑채, 별당채 4개 객실이 마련돼 있었다. 각 방에는 자개장과 고가구가 한옥의 우아함을 더했고, 벽장 창호문에는 민화를 붙여 포인트를 줬다. 이 대통령이 기거했던 안방에는 그가 쓰던 병풍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벽장이 있다. 그러나 각 방 욕실에는 일본 전통 욕탕인 히노키탕이 설치됐고, 옷장에는 유카타(浴衣) 두 벌이 걸려 있었다. 객실 찻잔 세트에는 일본산 녹차 티백이 놓여 있었다. 객실 미니바에는 각종 수입 맥주와 음료(각 1만 원)가 채워져 있었다. 한국문화 체험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직원은 “사장님이 오랫동안 일본에서 료칸(旅館)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료칸 영업’을 한다”며 “‘왕기’도 받고 료칸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숙박 가격은 ‘용침소(龍寢所)’로 통하는 안방이 1박에 159만5000원, 안방과 이어진 별당채는 132만 원, 독립 공간인 사랑채는 99만 원이었다. 부가세 10%와, 2인 기준으로 석식·조식을 포함한 가격이었다. 1명이 추가되면 30만 원을 더 내야 한다. 다음은 직원과의 일문일답.

▼ 손님이 많나요?



“알음알음 손님이 와요. 8월 22일까지 2주간은 방이 (예약손님으로) 다 차 있으니 이후에 오셔야 해요. 물론 주차장도 있고요.”

▼ 주로 어떤 분들이 오나요?

“한국 손님 중에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죠. 청와대나 감사원, 국세청 분들이 와요. 얼굴이 알려진 분들이어서 조용히 만찬을 즐기죠. 국세청에서는 외국 세무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으면 모시고 와요. 최대 20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요. 어떤 회사는 통째로 빌려서 1박 2일 워크숍을 했어요.”

그는 “헌법재판소 관계자들과 대기업 A사 임원, M대학 이사장도 자주 온다”며 “대학 이사장은 며칠 뒤에 온다고 예약했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면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골목길을 오른다”는 주민들의 말이 떠올랐다.

▼ 식사만 해도 되나요?

“그럼요. 식사만 하면 가격을 좀 올려 받아요. 보통은 요청하는 수준에 맞춰드려요. (1인당) 20만, 30만 원짜리로 해달라면 거기에 맞춰줘요. 숙박하시는 분들은 10가지 정도 한식 요리를, 만찬만 하면 14가지 요리가 나와요. 사장님이 매일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최고 좋은 식재료를 사가지고 와서 요리를 해요. 예술이에요.”

▼ 술은요?

“외국 손님들에게는 막걸리를 권해요. 한국 손님들에겐 (증류소주인) ‘화요’를 주로 내놓고요. (밸런타인) 17년산(위스키)도 있어요.”

▼ 공연도 한다고 했죠?

“여류 명창 수제자들이 와요. 3,4명이 한 팀인데 식사할 때 창도 하고 가야금 연주도 해요. 20대 초중반의 어린 친구들도 있고요. 35만~50만 원 정도 잡으면 돼요.”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대문에는 ‘한옥체험살이’ 간판이 걸렸지만 방에는 일본 유카타(浴衣)가 갖춰져 있다. 유카타를 입고 산책하는 손님.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사와요”

▼ 공연 후 따로 (팁을) 챙겨드려야 하나요?

“영감님들은 따로 팁을 주시더라고요(웃음). 공연하는 어린 친구들한테서 젊은 기를 받아가는가 봐요.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 생기도 있고, 흥도 좋죠.”

직원은 “20대 초중반의 ‘앙증맞은’ 언니들에게 팁을 주면 더 재밌는 공연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화 중간 중간에는 이 대통령 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취운정을 찾아와 이 사장에게 만남을 주선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안방에 이불을 깔아놓은 것도 취운정에 들른 사람이 잠시 누워서 ‘왕기’를 받으라는 의미라고 했다. 일본 손님들은 왕기를 받기 위해 안방에서 얼굴 쪽으로 손바람을 낸다고 했다. 그가 건넨 취운정 팸플릿에는 ‘대통령을 낳은 터’ ‘왕가의 기운이 서린 터’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일종의 ‘MB 마케팅’이었다.

▼ 한옥체험살이 간판이 있던데, 식사와 공연이 가능한가요?

“일반인에게는 장소를 공개하지 않아요. 한옥호텔이고 숙박업이니 간판을 걸어뒀죠. 간판 보고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래도 안 열어요. 예약을 해야 문을 열어줘요.”

▼ 취운정 홈페이지에는 가격을 고지하지 않았던데요?

“가격 (사이트에) 올리면 문의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 왜요. 비싸서요?

“그럼요(웃음). 대통령이 살던 집에서 대통령처럼, 왕처럼 모시니 한번 경험해보세요.”

서울시 지원받아 불법영업?

취운정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 등에 따르면 이 사장은 2001년 1월과 3월에 이웃한 53번지와 119번지 두 채를 약 6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 서울시로부터 지원금 1억 원을 지원받아 수선을 했고, 이후 53, 119번지를 합쳐 31-53번지로 건축물 지번을 변경했다. 2010년 들어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하층(51.82㎡)을 증축해 건축물 사용승인을 받았다. 지하층은 전용조리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사장은 취운정 인근에 또 다른 한옥을 매입해 수리를 준비 중이다. “사람마다 주머니 형편이 다르니까, 1박 숙박비로 20만~40만 원대의 저렴한 한옥 호텔을 운영하기 위해 리모델링 중”이라고 직원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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