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02년 말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울 강남구가 골목길에 CCTV를 설치했다. 8개월간의 운영 결과 범죄 발생건수가 40%, 쓰레기 투기건수가 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탁월한 실적으로 인해 주민 85%가 CCTV 확대 설치에 찬성했다.
이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앞 다투어 CCTV를 설치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약 35만 대의 공공 CCTV를 운영 중이다. 민간이 설치한 것까지 합치면 전국에 약 300만 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당초 우려하던 사생활 침해는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이 어마어마한 수의 CCTV는 국민 생활을 24시간 감시한다. 한 사람이 하루 평균 80차례 이상 CCTV에 의해 촬영된다. 9초마다 한 번꼴로 CCTV에 찍히지 않으면 거리를 다닐 수 없는 처지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감시국가가 되고 말았다.
하루 평균 80차례 찍혀
CCTV는 지난 10년 동안 강력범죄 범인 검거에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로 인해 CCTV 설치가 범죄 감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CCTV 설치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듣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특히 이제는 CCTV를 단순히 설치하는 차원을 넘어 CCTV를 통합 운용하는 통합관제센터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정부는 2015년까지 전국 모든 지자체에 통합관제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 전국의 CCTV 화면을 정부와 지자체가 공유하게 되어 활용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와 비례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 침해 우려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빅브러더 출현’을 위한 토양이 마련되는 셈이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이가 크게 늘고 있는데 블랙박스도 CCTV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장치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CCTV의 확대는 거역하기 힘든 대세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CCTV 오·남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단일법 제정은 더디기만 하다. 다만 3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 관련 규정이 포함됐다. CCTV 운영자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처벌조항까지 두고 있으므로 CCTV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공공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CCTV를 설치할 수 없도록 했다. 범죄의 예방, 수사, 시설안전, 화재예방 등의 용도 이외 목적으로는 설치할 수 없도록 했다. 이런 용도라고 하더라도 공청회나 설명회의 개최 등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만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CCTV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반드시 부착하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개인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되지 않도록 CCTV 설치·운영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실제로 개인정보를 분실·도난·유출·변조 또는 훼손당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CCTV 운영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했다.
개인 동영상 유출 제한
이와 같은 벌칙규정은 공공기관의 CCTV설치 운영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가, 빌딩, 아파트 CCTV와 같이 민간의 CCTV에도 모두 적용된다. CCTV 촬영화면을 잘못 관리해 유출되거나 해커에 의해 해킹될 경우 이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은 공공이나 민간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CCTV를 설치·운영하는 사람은 CCTV 관리책임자를 지정해야 하고 영상정보관리대장도 작성해야 한다. 이전엔 운영자가 CCTV 동영상 파일을 임의로 제3자에게 제공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어야 할 장소에서 촬영된 CCTV 동영상이 외부로 유출돼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운영자가 CCTV 동영상을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경우 받는 쪽의 명칭, 제공 목적 등을 관리대장에 기록해두어야만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 운영자에게 개인 영상정보 보호 의무를 강제로 부과하고 있는데 이 법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일까. 행정안전부가 정한 표준개인정보보호지침은 아래의 다섯 가지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1. 개인영상정보의 안전한 처리를 위한 내부 관리계획을 시행할 것.
2. 개인영상정보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접근 권한을 제한할 것.
3. 비밀번호 설정과 같이 개인영상정보를 안전하게 저장·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할 것.
4. 개인영상정보의 생성 일시를 기록하고 누군가 정보를 열람하는 경우 열람자·열람일시·열람목적을 기록해 관리할 것.
5. 개인영상정보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보관시설을 설치할 것.
별생각 없이 CCTV를 설치한 사람이 위와 같은 법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단속에 적발되면 꼼짝없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유출사고라도 발생하면 형사적 처벌까지 받아야 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직 법 시행 초기라서 8월 현재까지는 계도기간에 해당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행정단속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처럼 매우 까다로운 제한으로 인해, ‘무작정 CCTV를 설치하고 보자’는 세태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CCTV를 이미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법적 제한을 준수하지 못할 바엔 철거하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설령 CCTV로 인해 범죄율이 얼마간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정도의 효과를 위해 전 국민의 비밀보장권과 초상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항상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하는 이가 해마다 늘고 있다. 이렇게 감시당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을 감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토론이 안 된 채 우리는 이미 CCTV에 둘러싸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차량용 블랙박스와 같이 성능이 강력해지고 가격이 대폭 내린 CCTV도 등장하고 있다. 이를 설치하려는 사람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CCTV 운영자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책임을 부과한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것은 CCTV 범람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비밀보장권 너무 등한시해
우리 사회에는 비밀보장권과 같은 헌법적 가치를 너무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개인정보보호법만으로 비밀보장권이 충분히 보호된다고 할 수는 없다. 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CCTV를 전국 방방곡곡 골목마다 설치해두도록 하고 국가가 이를 한눈에 들여볼 수 있도록 방임한 국회와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권리 향유권자인 시민 각자가 자기 권리를 못 지킨 책임이 있을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편리함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갈수록 커지면서 사람들은 사생활 노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됐다. 개인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빅 브러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편리함 대신 기본권을 포기하는 사람들 자신”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감시국가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이런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