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 대선 최대 화두 大해부

새누리 “공정거래 확립” vs 민주 “재벌 개혁”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입력2012-08-22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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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요구한 제헌헌법의 정신
    • 공정거래 원칙 세운 전두환 정부
    • 6공화국 헌법 119조에 경제민주화 명문화
    • 2007년 ‘줄푸세’가 2012년 증세·규제 강화로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 대선 최대 화두 大해부

    자유주의시장경제의 대원칙과 경제민주화가 함께 규정돼 있는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다.”

    “경제민주화 못 하면 집권해도 성공 못한다.”

    전자는 유종일 민주통합당(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 후자는 김종인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는 두 정당의 경제정책통이 이처럼 똑같은 생각을 갖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유력 정당과 후보들이 하나같이 경제 분야 핵심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하면서 요즘 장안의 화제어는 단연 경제민주화다. 정치권을 넘어 학계, 재계까지 참여해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쓰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같은 말의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 조윤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여러 학자가 시장자유주의부터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경제체제를 설명하는 말로 ‘경제민주화’를 사용해왔다”며 “경제학을 40년 공부했는데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고 했다. 정당과 대선 후보는 자신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게 조 교수의 생각이다.

    같은 이름의 정책을 놓고 경쟁 중인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경제민주화’를 들여다보자.



    “시장경제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경제세력의 불공정거래를 엄단하여 공정한 경쟁 풍토를 조성한다.”

    새누리당이 지난 2월 발표한 ‘국민과의 약속(강령)’ 중 일부다.

    “우리는 당면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정한 시장경제의 확립이 필요하며,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조세정의를 실현하며, 부동산 투기 등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근절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현한다.”

    이번엔 민주당 강령 1조의 일부다.

    같은 이름, 다른 설명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 대선 최대 화두 大해부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지만 새누리당은 ‘시장 경제의 효율 극대화’와 ‘정부의 역할과 기능 강화’를, 민주통합당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와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각각 강조한다. 새누리당은 불공정한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공정거래를 확립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고 본다. 민주당은 이와 더불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통한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까지 요구한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인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라고 했다. 반면 박근혜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8월 8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야당의 경제민주화를 ‘부자·대기업 끌어내리기’라고 비판하며 “대기업의 긍정적인 부분은 최대한으로 살리고 부정적인 부분은 최소화하는 것”을 바른 경제민주화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대기업 때리기 vs 성형 경제민주화

    이러한 의견 차이는 각 당의 정책에 반영된다. 새누리당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이나 영세상인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과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금산분리 강화(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재벌 범죄에 대한 사면 제한(사면법 개정안) 등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법안’ 9개를 당론으로 발의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전·현직 의원 48명이 만든 연구조직 ‘경제민주화실천모임(실천모임)’에서 재벌 개혁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긴 하다. △재벌 총수의 경제범죄 처벌 강화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차단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 이미 발표한 3개 법안의 기조는 민주통합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유력주자인 박 의원이 실천모임의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를 다 끊으려면 기업이 굉장히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실익이 없다.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면 된다”고 반박하는 등 내부에서도 힘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박근혜 의원 경선 캠프 정책메시지본부장인 안종범 의원과 정책위원인 강석훈 의원은 ‘실천모임’에 가입했음에도 지금까지 이 모임의 이름으로 나온 법안에 한 번도 공동발의자로 참여하지 않았다. 남경필 의원 등이 이끄는 ‘실천모임’ 주류는 금산분리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 발의도 추진했지만, ‘관련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주류의 반발에 밀려 표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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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진행된 제9차 헌법 개정 때 신설됐다. 개헌을 알리는 벽보를 보는 시민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런 갈등이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어차피 대선 후보는 박근혜 의원으로 결정되고, 그럼 경제 정책도 박 의원의 소신을 따라가게 돼 있다. ‘실천모임’은 그때까지 경제민주화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개혁 정당 이미지를 만드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4·11총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을 때 박 의원의 측근인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종인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 공개 격론을 벌이면서,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정책 선두주자 이미지를 얻은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7월 말 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참여연대와 함께 여론조사기관 ‘우리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9%가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가장 잘할 것”이란 응답은 28.7%에 그쳤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7월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만들고 관련 정책을 꾸준히 준비해왔는데, 새누리당처럼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지 못해 상대적으로 여론의 관심 밖에 놓여 있다”고 답답해했다.

    민주당은 정책으로 승부를 건다는 입장이다. 통합진보당·시민단체 등과 연계한 범야권 태스크 포스도 만들었다. 현역 의원 33명에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등이 가세한 ‘경제민주화포럼(포럼)’이다. 민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 22개 시민사회단체는 포럼과 공동으로 정책 공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더불어 유종일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진정성이 없는 ‘성형 경제민주화’”라고 비판하는 등 선명성 경쟁에도 나서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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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통하는 김종인 공동선대본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지난 대선에서 ‘줄푸세’를 공약했던 박 의원은 이번에는 ‘경제민주화’를 대표 공약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정말 ‘진짜 경제민주화’ ‘거짓 경제민주화’가 있는 것일까.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용어는 헌법 제119조 2항에서 나왔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 조항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대원칙을 천명한 제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와 함께 우리나라 경제헌법의 근간을 이룬다.

    1962년 제3공화국 헌법 때 생긴 1항과 달리 2항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헌법 개정 과정에서 신설된 것을 이유로, 이 조문에 당시 사회를 휩쓸던 민주화 열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 당시부터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했으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한 제84조처럼, 현재의 시장경제질서가 아닌 계획주의적인 경제질서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조항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헌법이 제정되기 전, 제헌의원들이 제헌헌법안을 처음으로 독회(讀會)한 1948년 6월 23일 국회 본회의 회의록을 보자. 헌법 초안을 잡은 유진오 헌법기초위원은 의원들에게 “제84조는 경제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본원칙을 게양한 것”이라며 “사회정의라는 것은 대단히 막연한 것 같지만…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정의다.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의 국민이 주리고 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그 한도에서 경제상의 자유는 마땅히 제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헌법은 균등 경제의 원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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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정당發 경제민주화

    이러한 사회국가적 경제질서에 대한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국한 나라 헌법에서 널리 드러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은 제151조에 “경제생활의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의 원칙에 합치해야 한다. 이 한계 내에서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보장된다”는 조항을 뒀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정부가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개인의 경제적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제헌 이후 우리 헌법의 경제 조항은 개헌과정에서 여러 차례 변화를 겪지만, ‘사회정의의 실현’ 등을 위해 경제의 자유를 ‘규제와 조정’할 수 있다는 취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 제헌헌법의 ‘사회정의’가 ‘경제민주화’로 바뀐 것뿐이다.

    해외 헌법의 자유주의시장경제 제한 규정

    미국 수정헌법 제5조는 ‘누구든지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20세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법체계에서 재산권은 생명권, 자유권과 같이 천부적인 것이자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달과 그로 인해 야기된 빈부격차로 사회적·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151조 “경제질서는 모든 개인에게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의의 기본적인 원칙에 상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규정 이후 국가가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개인의 경제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이탈리아 헌법 제41조 제1항은 “경제적인 사적 창의는 자유이다. 그것은 사회적인 이익에 반하거나 또는 안전, 자유, 인간의 존엄에 해를 주는 방법으로 발전시켜서는 아니 된다”, 제 2항은 “공적 및 사적인 경제활동이 사회적인 목적을 지향하고 그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계획과 감독에 대하여 법률로써 규정한다”고 돼 있다. 스페인 헌법 제 40조에는 “공권력은 경제안정정책의 틀 내에서 사회적·경제적인 진보와 소득의 인적·지역적 균등 배분을 위한 조건을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독일헌법 제14조 제2항은 “재산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 행사는 동시에 공공복리에 봉사하여야 한다”이다.

    (자료 :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 ‘헌법 경제조항의 국제 비교’)


    헌법 제119조 2항의 신설 과정에는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86년 6월 10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재계 관심 끈 경제의 민주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민정·신민·국민당 등 3당 대표들은 국회 연설에서 ‘정치의 민주화’ 못지않게 ‘경제적 민주화의 해결’을 제창, 경제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돼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따르면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계층 간 위화감이 조성됐으며 절대 빈곤이 아닌 상대 빈곤 등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그늘진 부분들이 정치권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정치민주화에도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며 “정치적 사회적 분야의 민주화에 못지않게 제기되고 있는 시대적 요청이 바로 경제의 민주화”임을 강조했다.

    사회적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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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서울 마포구 망원월드컵시장에서 경제민주화 구상안을 발표했다.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의 경제 조항은 “제118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항 ‘국가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집중·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산업의 민주화를 위하여 필요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다.

    제1 야당 민주당은 “제115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향상을 기하도록 한다’, 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3항 ‘독과점의 폐단과 경제력 남용에 의한 소득불균형의 시정 및 분배구조의 왜곡을 적절히 규제·조정한다’, 4항 ‘국가는 저소득층의 생활안정과 소득향상 및 복리증진을 위하여 적극적인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내놓았다.

    당시 국회 본회의 회의록에는 채문식 개헌특위 위원장이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개정 헌법의 네 가지 기본원칙 중 하나를 “자유경제체제의 원리를 근간으로 하면서 적정한 소득의 분배, 지역경제의 균형발전, 중소기업과 농·어민 보호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국민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도록 하려는 것”으로 밝히는 대목이다. 개정 헌법의 ‘경제민주화’가 ‘사회정의의 실현’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한 것이다.

    채 위원장은 또 “우리나라 경제질서에 관한 원칙 규정인 제 119조에서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토록 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정(2항)을 보완하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우리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노력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복지의 최대과제라 할 수 있는 최저임금제의 실시를 신설 명문화했다”고도 덧붙였다.

    채 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헌법 개정 당시 제119조 2항은 1항의 보완재로 만들어졌다. 이 조항으로 우리나라는 자유시장경제 국가가 아니라 수정자본주의 원리를 채용한 ‘사회적 시장경제’ 국가의 성격을 갖게 됐다.

    국민 10명 중 8명 “경제민주화 원한다”

    국민 10명 중 8명은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경제력 남용 금지, 재벌 개혁을 골자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2012년 7월 말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9.0%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12.5%에 그쳤다.

    또 국민은 12월 대선에서 투표할 후보를 정할 때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중요하게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6.2%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후보의 생각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답했고, 60.7%는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겠다고 해, 전체의 86.9%가 경제민주화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민주화 문제를 해결할 정당으로는 새누리당을 꼽은 응답자가 28.5%로 민주통합당(22.2%)보다 다소 많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재벌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7.5%로 ‘그렇다’는 응답(23.3%)의 3배에 달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세부 이슈에 대해서는 △출자총액제한제도(찬성 52.3%, 반대 31.9%) △금산분리 정책(유지 67.6%, 폐지 20.0%)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공정경쟁 저해 66.9%, 효율성 증대를 위한 선택 26%)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찬성 76%, 반대 16.2%) 등의 결과가 나왔다. 또 △대기업 골목상권 진출(문제 되지 않는다 17%, 문제 된다 79.3%) △대형마트 규제(의무휴업 늘려야 한다 53.9%, 줄여야 한다 41.1%) △경제범죄 총수의 경영권 제한(찬성 76.3%, 반대 17.2%)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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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이와 같다. “우리 헌법상의 경제질서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헌재 2000. 6. 1, 99 헌마 553)고 한다. “사회국가란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헌재 2002. 12. 18. 2002 헌마 52)고도 했다. 즉 헌법의 경제민주화 정신은 1948년 제헌 때부터 줄곧 이어져온 것으로,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본 원칙인 셈이다.

    이런 헌법의 정신이 실제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정부 시절 공정거래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유신헌법 때부터 제정이 추진됐으나 재계의 반발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되다가 비로소 제정된 이 법에는 출자총액제한제를 비롯한 상호출자금지, 금융자회사에 대한 소유지분 및 의결권 제한 조항 등이 포함됐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시장경제원리의 명확한 작동 △기업의 자유와 창의 존중 △경제활동에 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 최소화 등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헌법학자들은 헌법 제119조 2항이 없었다면 이때 공정거래법의 위헌성을 다투는 소송이 무더기로 제기됐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경제민주화의 요구

    이때 정부가 공정거래법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심화된 빈부격차와 재벌의 폐해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1987년 4월 1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국민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세 명 중 한 명(34.1%)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당면과제 가운데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빈부격차 해소’를 꼽았다. 이때 비로소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서 나와 정부가 시장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군사정권이 끝나고 시민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개혁적인 경제학자 중 상당수가 ‘관치 반대’ ‘금융 자율화’ 등을 요구했다. 정부 역시 규제개혁위원회를 신설해 각종 규제 철폐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힘이 막강해졌고, 1997년 외환위기가 왔을 때는 다시 정부가 나서서 ‘경제민주화’를 사용했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경제의 민주적 관리이며, 민주적이라는 것은 비전제적·비소수지배적·비군사독재적·비독점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본질적으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다시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사회양극화 심화 등 경제의 불균형이 심각해졌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재벌 대상 규제를 잇달아 완화한 것에 대한 반발이 여야의 재벌 개혁 공약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4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상호출자제한 대상 기업을 자산 규모 2조 원에서 5조 원 이상인 경우로 완화해주고, 2009년 3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집단에 속한 자산 2조 원 이상의 계열회사는 순자산의 40%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한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했다. 또 2009년 7월엔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 산업자본이 은행소유지분을 기존의 4%에서 1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한도를 확대하고,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지주회사 설립 요건도 완화했다.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협력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등도 공공연히 반복됐다. 새누리당에서조차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나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지배해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세계 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이 기업 경영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 7월 수출실적은 작년 동기대비 8.8% 감소한 446억 달러로, 감소 폭이 지난 2009년 10월(-8.5%) 이후 가장 컸다. 수출 체감지수 역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상반기 상장기업의 신규설비 투자는 70.5% 급감했다. 수출이 크게 줄면서 이미 불황에 빠진 내수 경기는 하반기 더 깊은 침체의 골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재계 관계자는 “선거철마다 서민 표를 겨냥한 재벌 때리기가 반복됐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경기 침체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국내 정치 문제로 좌초하게 되면 국가 경제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특히 순환출자를 금지하거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실천모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 활동을 크게 방해하는 규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재벌이 먼저 나서서 경제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켜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동안 기업들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 아래서 많은 혜택을 봤다. 계열사와 수익이 크게 늘어난 곳이 많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돌아보고 스스로 변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지적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이 환영했던 경제 공약은 박근혜 의원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와 이명박 대통령의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달성)이었다. 그러나 불과 5년 사이에 여야는 증세와 규제 강화 정책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민주화’라는 단어처럼 여론의 향방에 따라 생물처럼 변화해온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의 용례가 연말 대선 정국에서 어떻게 정리될지 관심이 쏠린다.

    너도 나도 경제민주화 대선 최대 화두 大해부

    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의원(오른쪽 두 번째)과 손학규 상임고문(왼쪽 두 번째)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경제민주화 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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