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호

“全 전 대통령 올해 3월에도 육사생도 ‘사열’했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2-08-23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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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도 사열한 후 생활관 순시 ‘군기 점검’ 형식 취해
    • 박종선 육사 교장, 부하 장성 이끌고 연희동 사저 예방도
    • 6월에는 ‘초청 자격 없는’ 5공 인사 9명 주빈 대접
    • 육사 “전직 대통령 예우 … 사열권자 아니다”
    “全 전 대통령 올해 3월에도 육사생도 ‘사열’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6월 8일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생도들이 ‘우로 봐’할 때 거수경례로 답하고 있다. 한 행사 참석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JTBC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6월 8일 육군사관학교(교장 박종선·중장) 화랑연병장. 육사 생도들이 분열하면서 ‘우로 봐’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답했다. 여론이 부글거렸다. 내란 수괴가 생도를 사열한 것은 육사를 욕보인 행위라는 비판이 일어 전 전 대통령은 물론 육사가 곤욕을 치렀다.

    정치권도 육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전 전 대통령이 생도 행사에 참여한 것은 부적절했으며 육사도 신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한발 나아가 “육사 교장을 해임하고, 국방부 장관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육사는 일종의 해프닝이었다고 해명했다.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가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발전기금 1000만 원을 출연한 동문이다.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다. 임석상관에 대한 경례가 없었다. 사열권자가 지명된 행사가 아니었다. 분열할 때 대부분의 참석자는 박수로 격려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경례로 답했다. 사열권자가 아닌 만큼 경례했다고 해서 사열로 보면 안 된다. 화랑의식을 참관한 것일 뿐이다. 육사 생도들이 매주 금요일 공개적으로 퍼레이드 행사를 한다. 행사가 있던 당일엔 초청자 160명뿐 아니라 6·25전쟁 영웅인 고(故) 심일 소령 기념상 수상자, 일반시민 등 400여 명이 함께 지켜봤다. 참석자들은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사열한 것이 아니라 참관한 것이다. 특정인을 위해 따로 마련한 사열이 아니다. 또한 전 전 대통령 측만을 별도로 초청한 행사가 아니다.”

    1년간 3차례 육사 방문

    육사의 해명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마디로 오버하고 있다. 단상에 관람자 40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러면 전 전 대통령은 그 400분의 1이다. 전 전 대통령 한 사람만 딱 찍어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라면서 육사의 손을 들어줬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은 같은 방송에 출연해 “육사 교장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해프닝이라면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육사가 전 전 대통령이 온다는 걸 미리 다 알고 의전용 탁자까지 준비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이 생도를 ‘사열하는 듯한’ 모습과 관련한 논란은 육사가 해명을 내놓은 후 사열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지고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육사의 해명과 달리 육사에서는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이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동아 취재 결과 전 전 대통령은 육사를 수시로 방문했다. 육사는 “전 전 대통령이 2006년 4월 육사발전기금 100억 원 달성 기념행사 때도 동문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 문장만 읽으면 6년 만에 육사를 들른 것으로 이해하기 십상이다. 일부 언론도 전 전 대통령이 6년 만에 육사를 찾았다고 보도했다.

    육사골프장에서 골프 즐겨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올해 3월에도 육사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7월 방문 때는 국방부 체력단련장인 태릉골프장에서 오찬 및 골프를 즐긴 뒤 육사에서 만찬을 하고 귀가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박종선 육사 교장이 부하 장성들을 이끌고 전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를 방문해 부부 동반 만찬 행사를 가졌다.

    전 전 대통령은 올해 3월 31일 육사 학교본부 앞에서 생도를 사열하는 형식의 행사에 참석했다. 대표생도가 ‘받들어 총!’을 외쳤고, 전 전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답했다.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했다. ‘임석상관(행사에 참석한 이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자)’을 연상케 하는 자격으로 생도를 사열한 것이다.

    사열의 본래 의미는 군에 대한 지휘권이 있는 사람이 군기 등을 검열하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정확하게는 수례자(참석자 중 서열 등에 따라 경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자) 자격으로 경례를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생도를 사열한 후 생활관(내무반)을 순시했다. 생활관에는 1학년 생도들만 있었다. 오후에는 태릉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만찬은 육사회관에서 이뤄졌다.

    6월 화랑의식 때 사열 논란이 벌어진 것은 육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으나 ‘3월 사열’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전 전 대통령이 ‘경례 받는 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임석상관을 연상케 하는 자격으로 생도를 사열한 후 생활관을 돌며 ‘군기를 점검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全 전 대통령 올해 3월에도 육사생도 ‘사열’했다”

    육사발전기금 행사 진행순서(왼쪽). 만찬장 좌석 배치도.



    “全 전 대통령 올해 3월에도 육사생도 ‘사열’했다”
    전 전 대통령은 내란·반란죄 등으로 1996년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해 12월 국민화합 등의 명분으로 사면 복권됐다.

    6월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 때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비롯한 5공 핵심인사들은 어떻게 참석한 것일까? 육사의 공식 해명은 이렇다.

    “기타의 인사는 전 전 대통령 측에서 화랑의식 참관은 공개적인 것이기에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참석을 희망해 참석하게 됐다.”

    ‘신동아’가 한 참석자가 행사 현장에서 촬영한 좌석 배치도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6월 행사에 ‘자격 없이’ 참석한 5공 인사는 9명이다. 9명 중 육사 출신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고명승 성우회장(전 3군 사령관),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이학봉 전 의원 넷이다. 육사발전기금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발전기금 기탁자 명단을 확인해본 결과 이들은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의 초청 대상이던 500만 원 이상 개인 출연자가 아니다. 이들이 개인 명의로 육사발전기금에 기탁한 돈은 한푼도 없다. 9명은 화랑연병장 공개 행사에만 참석한 것일까?

    전 전 대통령과 이들은 만찬에도 주빈(主賓) 자격으로 참석했다. 화랑연병장에서 이뤄진 기념식은 물론이고 만찬장 좌석 배치도에 이들이 앉을 위치가 지정됐다. 신동아가 입수한 ‘육사발전기금 행사 진행 순서’ 문건에 따르면 육사회관에서 열린 만찬은 오후 5시에 시작해 7시30분에 마무리됐다.

    주객이 전도된 행사

    좌석 배치도에 따르면 헤드테이블의 상석에 전 전 대통령이 앉았다. 박 교장은 전 전 대통령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육사발전기금을 내지 않은 이원홍 전 문화공보부 장관,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고명승 성우회장,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도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헤드테이블 앞 왼쪽 첫 번째 테이블에 오일랑 전 보안사령부 기획조정실장, 이학봉 전 의원, 장세동 전 안기부장, 민정기 전 대통령공보비서관, 서정희 전 대통령민정비서관이 앉았다. 앞서의 문건에 따르면 행사는 VIP인 전 전 대통령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 전 대통령은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축배를 한잔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건강과 소원 성취를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는 7시 30분 ‘VIP 별도 환송 후 도열 악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화랑연병장에서 거행한 기념식의 주요 참석자 중엔 서울고 총동창회에서 온 5명도 있었다. 서울고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재학생 10명 중 4명꼴인 453명이 전쟁터로 달려 나간 학교다. 1965년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에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들을 구하고 숨진 고(故) 강재구 소령의 모교다. 서울고는 2010년 교내에 참전기념비를 세웠다. 육사에 발전기금도 냈다. 서울고 출신 인사들은 5공 인사 10명과 다르게 만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면서 반란의 수괴로 처벌받은 양가(兩價)적 존재다. 대통령 취임식 때 초청받으며 전직 자격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현직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은 실정법상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의 대상이다. 그렇더라도 육사가 발전기금 200억원 달성을 축하하는 행사를 이런 식으로 진행해야 했을까?

    육사 “생도가 경례한 건 의전”

    이와 관련해 육사 측은 “사열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또는 환영 정도의 공식 의전행사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육사 측은 “생도관을 둘러본 것은 순시가 아니라 견학 차원이며, 전 전 대통령뿐 아니라 외부 인사가 생활관을 둘러보는 행사가 1년에 20여 차례 치러진다”고 밝혔다.

    또 육사 관계자는 “육사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것은 전 전 대통령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육사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 만찬 행사 때 발전기금을 내지 않은 인사들이 참석한 것도 전 전 대통령 측의 요청 때문이고 꼬리곰탕을 먹는 정도의 간단한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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