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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에서 스텔스기까지

미국의 항공산업

  • 계동혁 /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nicekye@gmail.com

라이트 형제에서 스텔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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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때 유럽에 주도권 뺏겨

라이트 형제에서 스텔스기까지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그러나 1920년 설립된 미국 최초의 국제 항공운송 회사인 에어로마린 웨스트 인디스 에어(Aeromarine West Indies Airways)는 적자를 견디지 못해 1923년 파산했다. 전쟁으로 기존 교통망이 파괴돼 여객기가 유일한 대체 교통수단으로 각광받은 유럽과 달리 철도와 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린 미국에서는 민간 항공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부 주관의 우편 비행기 운영에 관한 법률인 켈리 법안이 1925년 미 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 법안이 발효되자 수많은 항공사가 등장해 여객 운송과 항공우편 항로를 놓고 경쟁을 펼쳤다. 그 결과 미국의 항공운송은 빠르게 성장해 유럽과의 격차를 좁혀나갔다. 1930년 미국 항공 우편제도의 혁신을 이룬 워터스 법이 미 의회를 통과하자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등 몇몇 회사가 독점하던 항로가 개방돼 항공운송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항공사 간 통폐합이 일어나 아메리칸 에어라인, TWA(Trans World Airlines), 이스턴 에어라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팬 아메리칸이 미국 5대 항공사로 등장했다.

윌슨 대통령이 펼친 항공산업 육성정책이 1930년대에 접어들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NACA와 미국의 주요 대학들의 항공기 설계/생산 기술이 항공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와 유럽에서 건너온 기술자·과학자 출신 이민자들도 큰 기여를 했다.

1933년 2월 첫 비행에 성공한 보잉의 247과 같은 해 7월 첫 비행에 성공한 더글러스의 DC-1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현대식 여객기였다. 이들의 등장은 미국 항공산업이 다시 유럽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었다. 1935년 12월 첫 비행에 성공한 DC-3는 최대 21명의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DC-3는 항공 역사상 최초로 승객 운임만으로 운항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여객기가 되었다.



DC-3는 민간 여객기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1939년에는 미국 여객기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DC-3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1939년) 직후 C-47(미 해군은 R4D로 명명)이라는 이름의 수송기로 채택돼 큰 활약을 했다. 민간항공 분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용항공기 분야는 발전 속도가 느렸다. 1930년대 유럽 각국은 군비 경쟁으로 다양한 군용기를 만들었으나 미국의 군용항공기 분야는 한발 늦었다.

2차 대전 계기 항공산업 부흥

제2차 세계대전은 오늘날 미국이 세계 항공우주산업을 제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러시아 이민자인 시코르스키 박사가 세운 시코르스키 항공기 제작사는 수상비행기 제작에 경쟁력이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수상비행기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회전익기 개발에 도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시코르스키 사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헬리콥터인 R-4 호버플라이(Hoverfly/Sikorsky S-47)라는 이름의 헬기를 제작해 1942년 1월 첫 비행에 성공하고, 이어 R-6(Sikorsky S-49) 헬기도 제작했다.

제자리 비행이 가능하고 활주로가 없어도 이착륙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미 육군은 시코르스키 사로부터 400여 대의 R-4와 R-6 헬기를 도입해 수색과 인명구조 , 부상병 수송 등의 용도로 활용했다. 헬기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진가가 확인돼 지금은 적 기동부대를 섬멸하는 지상군의 핵심 항공력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 항공산업계가 생산한 전투기와 폭격기, 수송기, 훈련기, 초계기, 헬리콥터의 총 대수는 28만 대였다. 덕분에 연합군은 제공권을 장악해 승리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미국에는 공군이 없었다. 항공부대는 육군과 해군에 속해 있었다. 작전환경과 전투기 운용 개념이 달랐기에 미 육군과 해군은 항공산업계에 자기만을 위한 전투기 제작을 요구했다. 항공기 제작사들은 이에 부응해 P-38, P-39, P-40, P-47, P-51과 F4F, F4U, F6F, F8F 같은 전투기들을 개발해 수천, 수만 대를 육군과 해군에 납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전략 폭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미 항공업체가 B-17, B-29 같은 폭격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만2000대 이상이 생산된 B-17 폭격기는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대한 주간 전략 폭격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3970대가 생산된 B-29 폭격기는 일본에 고고도 폭격을 했다. B-29는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냈다.

종전과 함께 미국의 항공산업계는 평시체제로 전환됐다. 이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 과도하게 확장된 항공산업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구조조정을 한다는 뜻이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Me-262로 명명된 제트전투기를 처음 실전에 투입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물량공세에 밀려 제트전투기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제트전투기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한 미국이 전후 본격적으로 제트전투기를 개발해 미국 항공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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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혁 /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nicek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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