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관세 10% 부과, 더 강력한 후속 조치 위한 시간 벌기

[심층분석] “美 상호 관세 위헌” 판결…韓 산업계 더 불안해진 이유

  •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입력2026-03-19 1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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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일 ·EU 등 16개 경제주체에 301조 조사 개시

    • 네 겹의 관세 제재, 동시 혹은 연쇄 도발 가능

    • 자동차·철강 압박, 과세 기준 확대로 더 세질 수도

    • 반도체, 당장은 아니어도 세율 확대 가능성 상존

    • 배터리와 통신장비, 비제조업 분야도 안심할 수 없어

    • 수출 다변화, 공급망 재구성, 민관 합동 대응 시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 관세 위법판결을 내리자 즉각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전 세계에 글로벌 관세 10%를 부과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상호 관세 위법판결을 내리자 즉각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전 세계에 글로벌 관세 10%를 부과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뉴시스

    2월 20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상호 관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상 과세권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이 이를 단독으로 행사하는 것은 권한의 한계를 넘는다는 취지였다. 일부에서는 이를 트럼프 관세 드라이브의 결정적 제동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판결 당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무역법 122조를 발동해 전 세계에 글로벌 관세 10%를 부과했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관세 수익은 사실상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제이미스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같은 날 무역법 301조에 따른 불공정 무역 조사 개시를 선언했다. 이어 3월 11일에는 한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추가 관세 부과를 위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USTR은 쿠팡 등 자국 테크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관세는 하나의 전면적 수단에서 여러 개의 정교한 법적 수단으로 분화하고 있고, 그 표적은 더 구체적이고 집요해지고 있다. 한국 산업계가 상호관세 위헌판결 이후 오히려 더 불안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겹의 관세 제재, 동시 혹은 연쇄 도발 가능

    미국의 관세 체계는 단일 법률이 아니라 여러 법률이 층위를 달리해 작동하는 구조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숫자만 바라보다 본질을 놓친다.

    우선, 무역법 122조부터 살펴보자. 이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악화를 이유로 최장 150일간, 최고 15%의 한시적 관세를 전 세계에 일괄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실행 속도가 빠르지만 기간 제한이 명확해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기 전 사실상 가교 구실을 한다. 결국 이 조항을 근거로 한 대체 관세 10%는 IEEPA 관세가 무너진 자리에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꽂아 넣은 ‘임시 쐐기’이며,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후속 조치를 위한 시간 벌기용 방편인 셈이다.

    둘째, 무역확장법 232조(이하 232조)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산업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항이다. 상한도, 기간 제한도 없으며 일단 부과되면 대통령이 단독으로 세율을 조정할 수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50%, 자동차에는 15%가 이미 적용되고 있다. 이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무부의 조사가 선행돼야 하지만, 조사 개시 결정 자체가 산업계에 강한 불확실성 신호를 보내는 효과를 갖는다. 



    셋째, 무역법 301조(이하 301조)는 미국과의 교역에서 불공정하거나 차별적 관행을 취하는 국가를 상대로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상한이 없고, 세계무역기구(WTO) 판정과 무관하게 미국의 독자적 판단으로 발동된다. 조사 대상은 제조업 품목에 한정되지 않는다. 디지털 규제, 플랫폼 정책, 농산물 검역 기준, 약가 정책,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 등 광범위한 영역이 ‘불공정 관행’으로 찍힐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세법 338조는 미국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하는 국가에 최고 50%까지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그리어 USTR 대표가 최근 “특정 상황에서 유용할 수 있다”고 공개 언급하면서 외교적으로 강도 높은 압박 카드로 부상했다. 이 네 가지 법적 수단은 각각의 용도와 속도, 지속성에서 다른 성격을 갖는다. 122조가 단기 전 방위 압박용이라면, 232조는 장기 산업별 재편, 301조는 국가·정책 맞춤형 보복, 338조는 외교적 극한 압박용이다. 지금 한국 산업계가 직면한 것은 이 네 겹의 관세 제재가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작동하는 국면이다.

    자동차·철강 압박, 과세 기준 확대로 더 세질 수도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상호 관세가 위헌판결이 났음에도 한국의 자동차와 철강 산업이 즉각 안도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두 업종은 애초에 상호 관세가 아니라 232조에 근거한 품목 관세의 적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위헌판결과 상관없이 자동차에는 15%, 철강·알루미늄에는 50%의 관세 부과가 그대로 유지된다. 실제로 232조 관세의 타격은 수출 실적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2025년 대미 자동차 수출은 관세 충격으로 감소세를 보였고, 철강의 경우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대미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026년 철강 수출이 2.3%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세율이 아니라 과세 구조의 변화 가능성이다. 현행 방식은 제품에 포함된 철강이나 알루미늄 소재의 가치에만 관세를 적용하지만, 개편안은 완제품 전체 가치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명목 세율이 낮아지더라도 과세 기준이 확대되면 기업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관세 총액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이미 미국 알루미늄 업계는 배터리 부품을 알루미늄 파생상품으로 분류해 50% 관세를 적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의 원가 압박이 연쇄적으로 커질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현지화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8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철강 기업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 전기로 기반 미국 제철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며 현지 생산으로 관세 폭탄을 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화는 완전한 해법이 아니다. 핵심 부품 상당수는 여전히 한국에서 조달해야 하고, 이들 부품에도 관세가 연쇄 적용되면 원가절감 효과가 반감된다. 수출 다변화도 병행되고 있다. 2025년 자동차 수출 실적은 유럽연합(EU)과 독립국가연합(CIS) 등 대체 시장 확대에 힘입어 720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생긴 손실을 다른 시장에서 만회한 것이다.

    반도체, 당장은 아니어도 세율 확대 가능성 상존 

    반도체에는 현재 232조 품목 관세가 전면 적용된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2025년 한국 반도체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에 힘입어 대미 수출 전체를 견인했고, 역대 최대 실적 1734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오히려 더 긴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때문이다. 지금의 호황이 232조 조사 대상 편입과 함께 언제든 구조적 위협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투자 계획과 공급망 전략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26년 1월 미국 정부는 반도체에 대한 232조 조치를 발표했다. 첨단 연산 칩과 일부 파생 제품에 25%를 적용했지만 미국 내 데이터센터 운영·연구개발 용도에는 면제를 인정해 당장은 대미 수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을 최종 결론으로 보기 어렵다. USTR은 반도체를 포함한 추가 232조 조치에 대한 조사를 가속화할 방침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세율과 적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은 관세율의 수치가 아니라 232조 조사 범위의 확대 여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투자 확대와 현지 생산 강화로 대응하고 있지만, 공급망 전체를 단기간에 재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더구나 AI 반도체 수요가 지속되는 한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경제에도 필수적이라는 점이 협상 여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여지를 협상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배터리와 통신장비, 비제조업 분야도 안심할 수 없어 

    상호관세 위헌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배터리, 통신장비, 전력망, 산업용 화학제품 등 6개 산업을 232조 추가 조사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내용으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이미 미국 현지 생산을 대규모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보도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다. 현지화가 만능은 아니다. 핵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전해질의 공급망이 중국산 원재료와 연결돼 있는 한, 232조 관세가 그 공급망에 적용되면 생산 비용은 오히려 올라간다. 통신장비와 전력망은 232조의 ‘국가안보’ 명분이 가장 쉽게 적용되는 분야다. 한번 부과되면 세율 조정도, 기간 제한도 없다. 기업들은 수년에 걸친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한국에 가장 넓고 불규칙하게 작용할 수 있는 관세 수단은 301조다. 232조가 산업과 품목을 겨냥한다면, 301조는 정책과 관행을 겨냥한다. 그리어 USTR 대표는 판결 당일 301조 조사 개시를 선언하면서 ‘디지털 서비스 차별, 농산물 교역 관행, 해산물, 쌀, 제약 가격 책정, 지식재산권’ 등을 조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미국이 2025년 한국과의 교역에서 564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한국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지 않다.

    농축산물, 디지털 플랫폼, 약가 정책은 미국이 수년째 문제를 제기해 온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과채류 검역 절차를 직접 언급했고, ‘USTR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는 한국의 플랫폼 규제와 망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장벽으로 지목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 투자회사들이 한국 정부의 특정 규제 조치에 대해 301조 조사를 USTR에 직접 청원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301조의 진짜 위험은 조사가 시작되면 범위가 늘어나는 데 있다. 중국의 경우 지식재산권 침해에서 출발한 301조 조치가 수천억 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로 번졌다. 한국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경우, 농산물·디지털·의약품·지식재산권에 걸친 복합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국면에서 한국 기업에 필요한 첫 번째 대응 전략은 수출 시장 다변화다. 2025년 자동차 수출실적이 미국 시장에서 감소함에도 EU와 CIS 확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이 전략의 유효성을 보여준다. 반도체 역시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아세안, 유럽 등 대체 수요처를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 안정성을 높인다. 232조나 301조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출 포트폴리오 자체를 지금부터 재편해 두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어막이다.

    수출 포트폴리오 재편이 가장 근본적인 방어막

      

    공급망 재구성과 원가 구조조정도 병행해야 한다. 232조 관세가 소재·부품 단계까지 연쇄적으로 작용할 경우, 원가 구조 전체가 흔들린다. 중국산 소재 의존도를 낮추고, 관세 부담이 낮은 제3국 또는 미국산 소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환율 변동과 관세 부담을 제품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재무적 시나리오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관세가 부과된 뒤 원가와 가격 전략을 급하게 조정하면 거래처와 쌓은 신뢰가 흔들린다.

    그러나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관세 법적 경로는 USTR의 조사 개시 선언, 상무부의 232조 조사 착수, 의회 청문회 발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전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려면 정부의 통상 외교 채널과 기업의 워싱턴 현지 네트워크가 실시간으로 결합된 민관 공동 정보 수집 체계가 필요하다. 관세가 부과된 뒤 대응하는 것과 조사가 개시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 사이의 간격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정부는 농산물 검역 기준, 플랫폼 규제, 약가 정책이 301조 조사의 명분이 될 수 있는지를 입법·규제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전에 점검하고 방어 논리를 갖춰야 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4%를 수출이 차지하는 구조다. 수출 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재구성, 민관이 함께 움직이는 정보 수집과 대응체계,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 이 국면을 버텨낼 수 있다. 미국 통상법의 작동 원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경제적 전략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산업계에 가장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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