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댄스 2.0 영상 전격 공개와 할리우드의 반격
AI 시대 저작권 질서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
법원 최종 판결이 AI 시대 창작 생태계 재편
K-콘텐츠 지식재산권 방어할 제도·기술 정비해야

▶ 빌딩 옥상에서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격투를 벌이는 15초짜리 영상의 한 장면. 인공지능(AI) 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으로 만든 이 영상은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다. 로리 로빈슨 감독 X @RuairiRobinson
실제로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시댄스 2.0 생성물들을 보면 그 충격을 실감할 수 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등 주요 프랜차이즈 캐릭터가 총출동한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 ‘미션 임파서블’과 ‘탑건’의 장면까지 거침없이 재현된다. 이들 모두 정식 라이선스 없이 사실상 AI 클립아트처럼 무단 활용되고 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디즈니는 바이트댄스에 저작권 침해 중단 요구서를 발송했다. “‘스타워즈’ ‘마블’ 캐릭터를 마치 무료 퍼블릭 도메인 클립아트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게 핵심 지적이다. 미국영화협회(MPA)는 시댄스 2.0이 “미국 저작권 보호 대상 작품을 단 하루 만에 대규모로 무단 사용했다”며 강력히 비난하고 침해 행위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이어 2월 16일엔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공식 중단 요구서를 발송했다. ‘미션 임파서블’ ‘탑건’의 캐릭터와 장면이 무단으로 재현됐다는 이유였다.
배우·감독 조합이 참여한 휴먼 아티스트리 캠페인 등 창작자 단체들은 “대규모 절도(Mass Theft)”로 규정하며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시각효과 아티스트, 영상편집자, 애니메이터 등 중간 제작 인력들은 생계 위협을 호소하고 있다. AI가 하루 만에 해내는 작업을 인간은 여러 주에 걸쳐 해왔기 때문이다.
기술 경쟁이 곧 규범 경쟁이 되다
시댄스 2.0이 기존 AI 영상 도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세 가지다. 첫째, 텍스트에서 영상·음성·효과음을 동시에 생성하는 오디오-비디오 통합 생성 능력이다. 오픈AI의 소라(Sora), 런웨이(Runway), 피카(Pika) 등 경쟁 모델은 영상 생성에 집중하지만, 시댄스 2.0은 완성된 장면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낸다. 둘째, 카메라 움직임과 피사체 동작의 안정성이다. 셋째, 기존 지식재산권을 프롬프트 몇 줄로 재현하는 능력이다.바이트댄스의 AI 공세는 시댄스 2.0에 그치지 않는다. 영상편집 앱 캡컷(CapCut)은 이미 전 세계 수억 명이 사용하는 도구로, AI 기반 얼굴 합성, 음성 복제 기능이 탑재돼 있다. 틱톡 플랫폼엔 AI 영상편집 기능이 속속 통합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대규모 기술 지원을 등에 업은 바이트댄스는 AI 영상 분야에서 사실상 글로벌 선두 사업자로 도약하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 쇼크가 아니다. AI 시대 저작권 질서를 둘러싼 미중 패권 경쟁의 일부다. 디즈니는 오픈AI와는 정식 라이선싱과 지분 투자를 바탕으로 협력 모델을 구축했지만, 중국 기업에는 연이어 경고장을 보내고 소송을 주고받는 충돌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AI 추론 분야에서 미국 빅테크를 위협한 딥시크(DeepSeek)에 이어 시댄스 2.0은 영상 제작 영역에서 비슷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기술 경쟁이 곧 규범 경쟁이 되는 국면이다.
시댄스 2.0 사태는 이미 진행 중인 미국의 AI 저작권 소송전과 맞물리며 폭발적 파장을 낳고 있다. 2023년 게티이미지는 스태빌리티 AI를 상대로 “1200만 장 이상의 사진을 무단 학습에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수천만 건의 기사를 무단 학습에 활용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음악 분야에선 유니버설뮤직, 워너뮤직, 소니뮤직 등 3대 음반사가 2024년 AI 음악 생성 플랫폼 수노(Suno)와 유디오(Udi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엔 미국 작가·코미디언 그룹이 메타의 라마(LLaMA) AI 모델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EU AI법(AI Act)을 발효시켜 저작권 보호 콘텐츠는 저작권자가 허용한 경우에만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옵트인(Opt-in) 원칙을 채택했다. 그러나 근본적 허점이 있다. 바이트댄스는 중국 기업이다.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직접 집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이나 EU의 법률이 중국 기업에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법적 공백을 가장 영리하게 파고드는 게 바이트댄스의 전략이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다.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무단 수집이 저작권법 위반인가, AI 생성물이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지닌다면 침해인가, AI 생성물 자체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법원의 최종 판결은 AI 시대의 창작 생태계 전체를 재편할 것이다.
K-콘텐츠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시댄스 2.0 베타 서비스가 공개된 직후, 틱톡엔 K-팝 아이돌 딥페이크(Deepfake) 댄스 영상과 K-드라마 장면 재현물이 쏟아졌다. ‘오징어 게임’ 장면을 재현한 쇼트폼이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블랙핑크 딥페이크 콘서트 영상까지 등장했다. 오늘 시댄스가 복제하는 대상이 할리우드라면, 내일은 K-드라마, K-팝 아티스트, K-웹툰이 될 수 있다.K-콘텐츠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세 가지 구조적 특성에 있다. 첫째, 바이럴성이다. 짧은 클립 형태로 전 세계에 유통되는 K-팝과 K-드라마는 AI 학습 크롤러(Crawler)에 가장 취약하다. 넷플릭스에만 K-드라마가 8000편 이상 올라와 있다. 둘째, 캐릭터 경제다. 아이돌의 얼굴과 목소리가 곧 자산인 K-팝 산업은 딥페이크 피해가 직접적 경제 손실로 이어진다. 셋째, 글로벌 팬덤이다. 전 세계에 퍼진 팬덤이 가짜 콘텐츠를 진짜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트댄스의 데이터 활용 구조는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틱톡 이용약관엔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운영 및 개선, 새로운 기술·머신러닝 모델 개발 등 서비스 개선 목적의 사용을 허용하는 폭넓은 라이선스 조항이 포함돼 있다.

‘시댄스 2.0’을 공개한 틱톡 모회사 중국 바이트댄스. 바이트댄스 공식 웹사이트
한편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는 AI가 작곡·작사에 관여한 음악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등록 시 ‘AI 비사용’을 의무적으로 확인·보증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그러나 음악 외에 영상, 캐릭터·이미지 등 다른 영역에 대해선 아직 AI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권리 보호 규정이 상대적으로 미비해 ‘규제 공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K-팝 관련 지식재산권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아이돌의 동의 없이 제작된 음란·비하성 합성 영상은 인격권 침해이자 명예훼손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이 때문에 한류와 K-팝 브랜드 전반의 신뢰성과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콘텐츠 지킬 다섯 가지 안전장치
K-콘텐츠를 지키기 위해선 다섯 가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첫째, K-엔터 AI 컨소시엄의 즉각적 출범이다. KBS, CJ ENM, 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넷마블 등 주요 K-콘텐츠 지식재산권 보유사들이 연합해 바이트댄스 등 AI 기업을 상대로 집단 라이선스 협상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둘째, 콘텐츠 진위 인증의 한국 표준화다. 콘텐츠 출처 및 진위 연합(C2PA)은 암호화된 메타데이터와 디지털 워터마킹을 활용해 콘텐츠의 출처와 편집·변조 이력을 추적하는 글로벌 오픈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은 2026년 시행된 AI 기본법을 통해 생성형 AI 콘텐츠에 대한 워터마킹·표시 의무를 도입했으며, 향후 C2PA와 같은 국제표준과 연계해 K-팝, K-콘텐츠에 적용 가능한 더욱 구체적인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중심이 돼 업계와 함께 제도화 방향과 단계적 확산 로드맵을 논의·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AI 생성물 저작권 무효 명문화다. 한국저작권협회의 AI 생성곡 등록 제한 방침을 참고해 이를 영상·캐릭터·초상 등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입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EU AI법의 옵트인 원칙과 해외 판례를 참고해 한류 스타의 퍼블리시티권(Publicity Right·초상 또는 음성 사용 권리)을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제도 개선이 중요 과제다.
넷째, 글로벌 플랫폼 계약 강화와 자동 탐지 의무화다. 틱톡, 유튜브, 메타 등 글로벌 플랫폼엔 일정 수준의 저작권 보호 시스템과 신고·삭제 절차가 구축돼 있다. 유튜브의 콘텐츠 ID처럼 플랫폼 자체 AI를 활용해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자동 탐지·차단하는 기술은 점차 고도화하고 있다. 향후 K-지식재산권 보유사들은 이들과의 계약에서 K-콘텐츠 전용 탐지 모델 적용, 위반 시 라이선스 제한 또는 취소 등 구체적 의무와 제재를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다섯째, 지식재산권 방어 기술에 대한 투자다. 넷플릭스는 강력한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시스템과 암호화, 키 관리, 단말 보안 등을 결합해 영상 불법 복제·유출을 최소화해 왔다. 이처럼 K-콘텐츠 업계도 워터마크 임베딩, AI 딥페이크 탐지 툴, 불법 유통 모니터링 등 지식재산권 방어 기술에 대한 공동 투자와 기술 내재화를 확대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중심이 돼 AI 저작권 대응 공동기금을 조성하고, 국제 소송에 대응 가능한 전문 법률팀과 기술팀을 함께 운영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이 유효하다.
시댄스 2.0은 AI 저작권 전쟁의 초기 국면을 상징하는 사례 중 하나다. AI의 진화를 막을 순 없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다. 창작자의 권리를 전제로 AI와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을 최대한 빠르게 설계하는 것이다. K-콘텐츠는 글로벌 AI 학습 데이터 수요가 높은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가짜 콘텐츠와 무단 활용으로 가치가 희석되기 전에 지식재산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와 기술을 정비해야 한다. 한류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수십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늦출 여유는 많지 않다.

● 1975년 출생
● 연세대 이과대학 대기과학과 졸업
● MBN, JTBC 미디어 전문기자
● 前 미국 네바다주립대 레이놀즈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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