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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기의 골프경영 18

빠름과 느림을 함께 생각하는 눈

  • 윤은기│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경영학 박사 yoonek18@chol.com│

빠름과 느림을 함께 생각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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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유유자적과 망중한이다. 느긋한 재충전을 위해 치는 골프가 ‘빨리빨리’에 휘둘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스피드 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가 시간을 단축해 고객의 여유시간을 창조해주는 것이지, 고객에게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앞뒤 팀의 간격을 7분으로 잡아놓고 그것도 모자라 끼워넣기까지 하는 골프장 문화, 처음부터 유격훈련하듯 몰아세우는 분위기는 이제 고쳐져야 한다.
빠름과 느림을 함께 생각하는 눈
2010년은 한국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6·25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에다 역사적인 G20 정상회의까지 잡혀 있다. 올해 한국이 지향하는 국가적 목표는 세계시민의식과 국격을 높여 글로벌 차원에서 선진국 대우를 받는 것이다. 신흥 졸부국가에서 매력적 선진국가로, 투쟁적 민주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사회로 변화할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하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나라는 골프 강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문화와 품격은 아직 선진국형이 아니다. 따라서 올 한해 우리의 골프문화도 세계 최고수준을 목표로 새롭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외국기업 주재원들이나 외교관들은 우리의 골프장 문화에 흠뻑 빠지곤 한다. 화려한 골프하우스, 코스 및 그린의 섬세한 관리, 다양한 음식과 그늘집 문화 등등. 특히 외국인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한국 골프장 최고의 매력은 숙달된 캐디서비스와 운동 후 즐길 수 있는 목욕탕 문화다. 특히 겨울철에 골프를 친 후 따뜻한 탕에 들어가면 한없이 행복하다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호주 골프장의 수도꼭지만 달린 샤워장과 비교하면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

물론 미국에서도 최고급 골프장에 가면 시설도 좋고 캐디 서비스도 좋다. 그리고 우리나라 골프장도 회원권 가격에 따라 운영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나라 골프장의 수준이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향상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국에서 연습스윙을 두 번 하면



거꾸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골프장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일까. 혹은 우리나라 골퍼들이 외국 골프장과 비교해 한국 골프장에 대해 갖는 첫 번째 불만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빨리빨리 문화’다.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적 특성이 된 이 ‘빨리빨리’가 반드시 부정적인 요인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빨리빨리 문화’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오기 때문이다. 빠른 애프터서비스가 마음에 들어 한국 가전제품을 산다거나, 한국 업체는 다른 나라보다 신제품을 빨리 내놓기 때문에 국제전시회장에서 늘 한국관으로 사람이 몰린다거나, 다국적 기업 CEO들이 임원을 한국에 파견해 한국 기업의 스피드 경영을 벤치마킹하도록 하고 있다는 소식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할까.

미국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한 언론인의 칼럼도 재미있다. 집수리를 하려고 알아보았더니 ‘언제든 원할 때 시작해서 일주일이면 끝내주겠다’는 답을 들었는데, 미국에서라면 석 달 기다려서 3주 동안 수리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컴퓨터가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신고했더니 다음 날 사람을 보낸 것도 미국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빨리빨리’가 순기능으로 작동하면 행복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앞서의 언론인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 시험과목은 두 배로 많고 진도는 네 배쯤 빨라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신호대기 중 조금만 늦게 출발하면 뒤에서 요란한 경적이 울린다. 걷는 것도 빨라야 하고, 식당에서 밥도 빨리 먹어야 한다. 휴대전화도 빨리빨리 바꾸지 않으면 소유자까지 ‘구닥다리’로 몰린다.

이러한 부작용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골프장이다. ‘빨리빨리 치세요’ ‘빨리빨리 이동하세요’ ‘퍼팅 끝난 분은 먼저 다음 홀로 가세요’…. 그늘집에서도 재촉은 이어진다. 빨리 나오라는 캐디의 독촉에 마시던 음료를 싸들고 뛰어나와야 한다. 골프채도 빨리빨리 바꿔야 하고 골프웨어도 빨리빨리 새것으로 사 입어야 한다.

그러나 골프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 바로 유유자적과 망중한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재충전할 수 있는 것이 골프의 매력인데 ‘빨리빨리’에 휘둘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스피드 서비스는 서비스 제공자가 시간을 단축해 고객의 여유시간을 창조해주는 것이지, 고객에게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앞뒤 팀의 간격을 7분으로 잡아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끼워넣기까지 하는 몰염치한 골프장 문화, 처음부터 유격훈련 하듯 몰아세우는 ‘빨리빨리 문화’는 이제 고쳐야 한다.

‘한국 골프장에서는 연습스윙을 두 번 이상 하면 찍힌다.’ 몇 년 전 한국을 떠난 한 외국대사의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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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기│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경영학 박사 yoonek18@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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