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反이회창 연합 전선이 뜬다”

  • 천영식

    입력2005-05-04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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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이 2001년으로 접어들면서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당 의원 3인의 자민련 이적으로 빚어진 정치판의 소용돌이는 DJP공조 복원-안기부 선거자금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유입사건 수사-잇따른 개헌론 제기-YS(김영삼 전대통령), JP(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정치전면 복귀-민주당 장재식 의원 추가 이적 등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는 국민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지만 빠른 변화와 충격적인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 혼을 빼놓는 느낌이다. 신년벽두부터 불어닥친 이러한 정치권의 급박한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정계개편이란 큰 그림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권이 힘의 열세를 느끼는 한 끊임없이 정계개편 욕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아예 달라진 여권의 초강경 자세가 틀림없이 정계개편을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는 이와 관련 “상식을 벗어난 의원 꿔주기와 DJP공조복원은 단순히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며 정계개편 가능성을 경계했다.

    문희상의 ‘토네이도 이론’



    여권내 정계개편론을 자세히 알기 위해선 대표적 정계개편론자인 문희상 민주당 의원의 소신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문의원은 지난 98년 현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임시절 실제로 정계개편을 시도하려다 좌절당한 경험이 있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은 ‘반이회창세력’의 전면결집을 지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DJ와 YS의 화해를 통해 JP와 한묶음으로 엮어내는 3김연대가 정계개편의 기본 목표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의 상도동계와 대타협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 정치권을 완전히 뒤바꾸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씨 등 전직대통령과 김윤환 민국당대표, 박철언씨 등 각계 세력을 모두 결집해 동서화합과 정권재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거창한 플랜이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은 ‘토네이도(Tornado) 이론’이라 불린다. 여름철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처럼 거대한 폭풍이 형성되면 주변의 흐름을 다 빨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폭풍에 휘말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대규모 정계개편은 정권초기 집권당의 힘이 강력할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레임덕을 걱정하는 현상황에서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의원은 이같은 구상이 김중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종찬 전의원 등의 ‘낚시론’에 밀려 좌초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중권 대표 등은 대규모 새판짜기 형태의 정계개편론이 위험한 만큼 낚시하듯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한 명씩 영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실제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됐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이 책상 서랍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보다 덜 충격적인 김중권 대표의 정계개편방안이 채택된 셈이다.

    그렇지만 문의원과 같은 주장을 펴는 여권내 인사들이 아직 다수 존재하고 여전히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제기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중권체제는 두 가지 노림수를 안고 출범했는데, 첫째는 정국안정이요 두번째는 외연확장이었다”며 “전자는 자민련 원내교섭단체 구성으로 현실화됐고 두 번째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 제기되는 정계개편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 문의원이 제기하는 방식보다는 폭이 축소된 형태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정계개편론은 정치권의 전면쇄신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대권쟁취를 위한 세력확보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정계개편이든 2002년 대선 체제를 겨냥해 짜맞춰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권이 추진하는 정계개편방안은 지역연합론과 민주연합론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동서연합을 주창하는 흐름과, 호남, 충청권 연합을 기본으로 영남권 일부를 묶어내자는 부분 지역연합론으로 나뉜다. 또 영남권 일부를 묶어내는 데도 PK를 선택할지 TK를 선택할지 여부를 두고 팽팽한 의견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연합론’ 대 ‘민주연합론’

    이같은 복잡한 구상은 구체적인 인물을 대입할 경우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여권이 정계개편의 기본 동력을 DJP공조로 잡은 이상,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길은 3김연합이다. DJ가 YS까지를 껴안아 3김이 공동으로 추천하는 대통령후보를 내는 방식이고 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하는 경우다.

    이 구상은 지역연합과 민주연합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플랜으로 각광받고 있다.

    YS는 DJ를 향해 온갖 독설을 내뿜고 있지만 대선후보와 관련해서는 “영남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말로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YS의 영향력이 통할 수 있는 후보라면 지원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YS는 이회창 총재보다 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 등 여권후보들에게 한결 친숙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1월1일 YS가 이인제 최고위원으로부터 큰절을 받고 흐뭇해하는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됐다. 이총재에 대해서는 무차별 비난을 퍼붓는 모습과 대비됐다.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은 대체로 YS휘하에서 정치에 입문했고 YS와 정치적 동질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YS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이와 관련, 누차 기자들에게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정략적 차원의 개편이 아니라 구국을 위한 차원에서 명분이 주어진다면 3김연합도 신중히 검토될 수 있다”며 신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다만 YS가 설령 이같은 정계개편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내부에 YS를 따라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김덕룡, 박관용, 강삼재 의원 등 민주계로 통칭되는 의원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독자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YS의 협력은 상징적인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흐름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JP의 역할이다. JP는 지난 1월8일 김대중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이후 ‘임기 말까지 공조’를 합의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공조시한과 관련해서는 일절 언급한 적이 없는데 이례적으로 시한을 밝힌 것이다. 이는 현정권 내내 공조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합당도 염두해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JP는 최근 부쩍 정치에 대한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JP는 1월9일 기자들과 만나 “나이 70인 나에게 지는 해라는 지적도 맞는 얘기”라며 “그래도 황혼으로 지면서 서쪽 하늘을 한번 벌겋게 물들여봤으면 하는 과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 말이다. JP는 총재를 맡고 있지 않을 뿐 사실상 정치전면에 나서 자민련을 이끌고 있고 각종 정치적 발언에 어려움이 없다.

    DJ와 찰떡공조를 맺은 JP는 YS와의 관계개선에도 적극적이다. JP는 1월5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김영삼 전대통령을 한번 만나뵙고 싶은데 아직 기회가 없다”며 회동추진의사를 밝혔다.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이 1월2일 신년인사차 YS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YS는 “김명예총재에게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몇 번씩 당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회동을 위한 여건은 충분히 무르익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JP가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 DJ와 YS를 화해시키고 반이회창연대를 구축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게를 더해가고 있다.

    3김연대는 이회창 총재의 대세론이 퍼지면 퍼질수록 응집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기본적으로 반이회창 성향을 띠고 있는 이들이 생존을 위한 실리로 3김연합을 선택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1월10일자 문화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3김씨는 16대 대선에서도 여전히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분석돼 주목된다. 16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호남에서 압도적인 영향력(68.9%)을 갖고 있고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종필 명예총재는 영남과 충청에서 각각 40.7%, 43.6%의 응답자로부터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조사됐다.

    3김연대가 가시화되면 대통령 후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장관 외에 이한동 총리, 김중권 대표 등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고 제3의 후보 출현도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이인제 최고위원측은 상당히 반기고 있다. 이최고위원은 1월1일 YS를 찾아가 큰절로써 최고의 예의를 표한데 이어 곧바로 JP와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최고위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난 4·13총선에서 JP를 ‘지는 해’라고 묘사한 것에 대해 “이겨야 하는 전장에서 어쩔수없는 발언”이라며 “하지만 해는 다시 떠오른다”고 JP를 추켜세웠다.

    이최고위원측에서는 3김 연합후보가 가시화될 경우 이최고위원 낙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3김과의 관계개선에 부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최고위원의 측근은 “지난 4·13총선 직전 이최고위원이 청와대를 찾아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민련과 합당을 하고 JP에게 총재 자리를 줘야 한다”고 두 차례나 건의했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당시에는 민주당 단독으로 과반수를 확보한다는 총선전략에 따라 김대통령이 오히려 자민련과의 합당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항간의 추정과는 달리 이최고위원과 JP 사이에는 아무런 앙금이 없다는 게 양측 측근들의 주장이다. 이최고위원은 3김연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폭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3김 간의 주도권 다툼

    3김연대가 실제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3자 간의 신뢰회복이다. 안기부 선거자금 신한국당 유입수사가 DJ와 YS의 해묵은 감정을 다시 건드렸듯이 이들은 언제든 자존심을 건 감정대립에 빠질 수 있다. 3김 간의 주도권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YS의 행보가 워낙 종잡을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의 하나다. 비록 JP가 중재에 나선다 하더라도 3김이 똑같은 정치적 미래를 공유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3김연대의 최대 역풍은 구시대로의 역행이라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3김 연합설에 대해 “시대가 바뀌었다. 국민이 새것을 갈구하고 있지 않나. 왜 ‘신3김시대’로 복귀하려고 하겠나. 현실성이 없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했다.

    이 같은 3김연대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한 여권의 정계개편론이 이른바 YS가 아닌 영남권 차기주자와의 직접 결합방식이다. 이 중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와 결합하는 방식이 가장 크게 회자되고 있다.

    여권이 박근혜 부총재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권은 박정희기념관 건립비용을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고에서 지원키로 하는 등 상호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영남권주자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이 우선 박부총재를 지목하는 근본 이유이다. TK지역에서 인기가 두터운 박부총재는 여야가 아닌 제3의 후보로 출마하더라도 나름의 폭발성을 지닐 것으로 점쳐지며 이회창 총재의 표를 크게 잠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도 박부총재를 영남권 유력주자로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박부총재 역시 어떤 방식이로든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이 생각할 수 있는 또다른 영남권주자로 정몽준 의원이 거론될 수 있으나 무소속인데다 현대출신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정의원은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영남권 주류인사로 분류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덕룡도 유력한 정계개편 파트너

    강삼재 의원이 PK지역 민주계 일부와 함께 여권과 결합하는 방식도 한때 거론됐으나 안기부 예산유용 수사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체포동의요구서가 발부된 이상 물 건너간 상황으로 분석된다.

    영남후보는 아니지만 민주계 출신으로 나름의 기반을 갖고 있는 김덕룡 의원이 여권과 결합하는 시나리오도 상정되고 있다. 김덕룡 의원이 틈만 나면 이총재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 이총재와의 결별 수순을 밟기 위한 것인지, 대권 당권분리요구를 통해 당권을 거머쥐기 위한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김의원은 여권에게 유력한 정계개편의 파트너로 상정돼 있다.

    이같은 한나라당 일부 세력과의 연대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명분으로 개헌론을 주목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이들은 대체로 개헌론에 찬성하고 있다.

    개헌론은 김중권 대표가 지난해 말 취임직후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봇물터지듯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됐다. 지금까지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을 주장한 정치권 주요인사는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이인제 최고위원, 한나라당 박근혜, 김덕룡 의원,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 등을 꼽을 수 있다. 여야의 주요 정치인이 망라돼 있다.

    이 중 김중권 대표는 개헌론을 차기대선때 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주장, 개헌시기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며 개헌론을 현실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대 대선공약으로 개헌론을 제기하고 이를 깃발로 자연스럽게 의원들이 이합집산하는 정계개편방안을 염두에 둔 발상이라는 분석이다.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결과 4년중임 정부통령제가 여야를 막론하고 전체 의원 60%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점에 착안, 이들의 세 규합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은 김대표의 발언 다음날 4년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김대행은 “내각제가 정 안 되면 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4년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각제를 당론으로 하는 자민련 지도부가 4년중임제 개헌으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이른바 DJP공조 회복의 주요 이면합의내용이 개헌문제일 것이라는 추정마저 낳고 있다. 내각제를 매개로 공동정권이 탄생했듯이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을 매개로 또다시 정권을 탄생시킬 계획을 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회창 총재만이 개헌반대를 외치는 형국이어서 개헌론을 중심으로 반이회창연대가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총재측은 이 때문에 개헌론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절대불가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4·13총선 직전만 해도 이총재도 개헌론 주창자였다. 그러나 이총재는 언론사 신년 인터뷰를 통해 “현재 거론중인 개헌론은 다분히 개헌을 빌미로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거듭 개헌반대입장을 밝혔다.

    여권 입장에서 4년중임 정부통령제 개헌의 또 다른 장점은 부통령후보에 대한 선택권이 새롭게 생긴다는 측면이다. 취약지역 출신인사를 부통령후보로 내세울 수 있고 다양한 런닝메이트를 상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대선구도에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론에 대해 이인제 최고위원은 좀더 적극적이다. 이최고위원은 “개헌이 빠를수록 좋고 1년 정도면 개헌이 가능하다”며 조속한 개헌을 촉구했다.

    어쨌든 여권의 개헌론에 야당 일부 인사들까지 호응함으로써 개헌론이 정계개편의 매개제로 작용할 가능성은 커졌다. 여권관계자는 “설사 개헌이 되지 않더라도 개헌론 공방 자체가 정계개편에 촉발제로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정계개편구상과 달리 여권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민주당과 자민련 양당의 합당구상이다. 이는 이른바 ‘DJP+α’구상으로 불린다. 양당 의원에다 민국당과 한국신당 등 군소정당, 한나라당의 경기, 충청권 등 중부지역 일부 의원을 끌어들이는 소(小)정계개편이다. 정계개편론을 너무 거창하게 추진하다보면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많은 만큼 현실가능한 접근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의원이 2차례에 걸쳐 자민련으로 이적하는 사태는 합당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고 있다.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 독자의 길을 가더라도 대선이 임박해서는 결국 대선승리를 위한 합당 외에 길이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현재 진행되는 DJP공조의 강력함이라면 사실상 합당 수준과 별 차이가 없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미 DJ와 JP가 정국을 진두지휘하고 양당 의원들이 같은 배를 탄 셈이다. 자민련으로 이적한 송석찬, 장재식 의원 등은 한결같이 “결국 합당으로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왔다”고 밝혔다.

    여권 내부에서는 합당되면 DJ는 2선으로 후퇴하는 대신 총재를 김종필 명예총재가 맡고 총리를 김용환 한국신당대표가 맡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김대통령이 지난해 4·13총선 당시 합당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2선후퇴를 전제로 한 합당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소정계개편에서 위험스러운 대목은 ‘+α’의 유입여부이다. 호남과 충청이 연합하는 이 정도의 정계개편으로는 한나라당의원들을 움직일 수 없고 합당 시나리오는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충청권에서는 이회창 총재의 지지도도 만만치 않아 한나라당 충청권의원들이 영남권을 공략하지 못하는 민주당으로 무작정 옮겨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계개편의 또 다른 변수 개혁세력

    이 때문에 양당 합당은 어려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데 따른 속도조절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여권이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해 나가면서 한나라당 내부교란작전에 성공, 이탈 세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전격 합당이 선언되리라는 추론이다.

    정계개편의 또 다른 변수로 개혁세력의 움직임을 들 수 있다. 개혁세력을 넓게 해석하면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협력,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경우이고 좁게 해석하면 한나라당 일부 개혁세력이 이탈해 민주당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또 제3의 개혁당이 출현해 독자후보를 내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결합은 DJ, YS의 연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치9단의 ‘야합’형태보다는 밑으로부터의 결합이 명분도 있고 힘도 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이미 민추협 동지회를 결성, 정기적인 회합을 가지는 등 다양한 협력관계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진보적 개혁세력의 연대는 대선을 앞두고 무시 못할 흐름으로 형성되고 있다. 여야의 진보적 소장파 의원들은 현재 개혁입법추진을 명분으로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에서 김민석, 천정배, 이미경, 김성호, 김태홍, 김희선, 송영길, 심재권, 이종걸, 이호웅, 정범구, 정장선, 정철기, 한명숙, 박인상, 김경천, 이재정, 장성민 의원 등이며 한나라당에서는 김홍신, 김영춘, 정병국, 조정무, 오세훈, 안영근, 김원웅, 서상섭 의원, 자민련 정진석 의원 등 2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현재 정치구도의 탈피를 모색하고 있어 대선이 임박할수록 의외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동당 2중대’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용갑 의원과 5·3인천 사태의 주역인 안영근 의원이 같은 당에서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민석 의원이 이끄는 ‘젊은 한국’ 주최의 1월10일 토론회가 주목받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김민석 의원은 “현 대통령 단임제는 군사 독재의 장기집권 저지가 당면과제였던 시대의 산물”이라며 “국정의 책임운영과 안정성을 위해 4년중임제 개헌을 적극 고려해야 할 시점이며 학계에서 더욱 객관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해 개헌론에 가세했다. 김의원은 또 “개헌논의는 권력구조 변경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변화를 적극 반영하는 차원에서도 검토돼야 한다”며 “여야의 개혁세력이 모든 논의에서 상호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김만흠 박사도 “현재 정치세력들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권력구조 개편이 시도된다면 ‘중임허용 정부통령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어떤 식이든 대통령 중심제가 된다면 한국정치의 여러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권력분립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당적이탈이 정계개편 원동력 될 수도

    이날 참석한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은 한술 더 떠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우리는 봉건적 ‘영주정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주의정치, 보스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차세대 주자들의 ‘정치쿠데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의원은 “차세대 주자들의 쿠데타가 또 다른 보스체제 구축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비전과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정치권 안팎의 세력을 확보, 스스로 지지기반을 구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한국정치의 구조를 이념적 구획으로 다시 짜는 중기적 구상을 실천하는 지도자가 정치개혁의 선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차하면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옹립할 수도 있고 소장파의원끼리 이념에 따라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이날 김만흠 박사의 주장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대통령의 당적이탈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다. 김박사는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대통령 당적이탈이 이뤄진다면 자연스레 여야간에 권력구조개편논의가 이뤄질 수 있고 이는 정계개편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월5일 민주당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하면서 “이회창 총재가 남북문제와 경제위기 극복 등 큰 문제에 대해 협력해준다면 대선에서 공정한 선거관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대통령은 1월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 경우 정계개편은 권력구조나 정치적 이념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대규모 이합집산으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해볼 수 있다. 김대통령이 욕심을 버릴 경우 예상하지 못할 형태의 정계개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를 끝내면 나이 80에 가까운 김대통령이 정치보복을 두려워할 리 없다”며 “김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정계개편이 예측하지 못할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수성여부도 관심거리다. 이총재는 지난해 이한동 총리의 이탈을 목도한데다 김윤환, 이기택씨 등 영남권의 구정치인을 다수 제거하면서 한때 휘청거렸다.

    이총재는 대선승리를 점칠 수 있게 된 지금 포용정책에 적극 나서면서 방어막을 치고 있다. 우선 YS 끌어안기가 급선무다. 이총재는 기회있을 때마다 YS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으며 비록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JP와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사인’을 보내고 있다. 물론 YS와 JP에 대한 이총재의 구애노력이 때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총재가 그 다음으로 구사하는 노력은 김윤환 민국당대표 등 자신이 정리했던 인사들을 감싸는 작업이다. 이총재는 지난해 김윤환 대표를 한 번 만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이 나서서 다각적인 견인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총재는 이수성 전총리와의 면담도 추진중이다.

    박근혜, 김덕룡 의원 등 비주류를 끝까지 껴안고 갈 수 있을지 여부도 주목된다. 이총재는 이들에게도 최대한 유화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또 이부영 부총재, 손학규 의원 등 당내 개혁성향의 그룹에게도 소외감을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는 흔적이 역력하다는 지적이다.

    이총재의 포용정책이 아직은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게 측근들의 주장이다.

    특히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총재 대세론’이 확대되면 여권 조직이 붕괴돼 한나라당으로 흡수되는 역정계개편도 가능할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결국 여당의 정계개편 움직임에 이총재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맞붙은 신년정국의 대립은 16대 대선의 전초전, 그 자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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