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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속 희망찾기’ 사회복지사 24시

  • 육성철 sixman@donga.com

‘절망속 희망찾기’ 사회복지사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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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보면 거리 노숙자는 2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심각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서민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잠재적 노숙자’ 수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만성 노숙자가 증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노숙기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복귀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밤 11시.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야간상담 지역으로 갔다. 김씨는 오늘 시청역을 맡았다. 지하도에서 마주친 노숙자들 중에는 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김씨는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했는지를 떠올리며 친근하게 다가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조선족 여성의 얘기부터 술냄새를 물씬 풍기는 험상궂은 청년까지…. 콘크리트 바닥에 판자를 깔고 누운 그들 곁에서 김씨는 꾸준히 쉼터 입소를 권했다.

11시 30분. 공익요원들이 지하철 역사 안쪽에 누워 있는 노숙자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셔터를 내릴 시간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돌아서는 그들에게 “오늘 밤만이라도 따뜻한 방에서 주무시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여기서 죽지 쉼터엔 안 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꾸 귀찮게 굴지 말고 컵라면 값이라도 달라는 사람. 김씨는 그에게 “돈을 드릴 테니 내일 다시 만나서 따뜻한 방으로 가자”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손에 돈을 얹어주고 돌아선다. 김씨의 혼잣말이 들린다. ‘내일 꼭 오셨으면 좋겠는데….’

2시간에 걸친 상담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평가회의까지 끝낸 시간은 새벽 2시. 그는 조금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



―요즘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사람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현장에서 일해보면 차이가 뚜렷해요. 가장 큰 게 사회복지 마인드겠죠. 노숙자 상담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부터 철저하게 클라이언트의 처지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이 달라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활을 도울 수 있는 전략 부분에서 사회복지사는 기본이 돼 있다는 거죠. 실제로 이쪽 일을 하다가 사회복지학을 다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복지와 무관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처우나 근로조건이 결정적인 문제 같습니다.

“그것도 있지만 사회복지사가 일할 수 있는 영역도 중요해요. 노숙자 쉼터의 경우 사회복지사가 잡무를 처리하기도 바쁜 실정입니다. 그래서 의욕이 있어도 버티기 힘들어요. 저는 사회복지사의 영역만 잘 갖추면 열심히 일할 사람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2시 30분. 김씨는 “오늘도 밤을 새워야 할 모양”이라며 서류 정리를 시작한다. 벌써 여러 곳에서 자료 요청이 들어온 탓이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고 답했다. 월급 120만원에 1주일 평균 70시간이 넘는 고단한 생활. 요즘 신세대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김씨의 열정적인 삶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사표를 던지는 공무원들

지난해 10월 경기도 안양시 안양2동사무소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 박정희씨가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아이를 낳고 2개월 뒤에 일을 시작했는데 자신이 위암 환자인 것조차 모르고 과로에 시달렸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국기법)이 제정된 뒤 일선 사회복지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전쟁’을 치렀다. 수급권자를 결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자산조사를 벌였는데, 한 사람당 400~500가구를 맡은 경우가 허다했다. 1가구 평균 1시간만 잡아도 2개월간 500시간을 현장조사에 매달린 셈이다.

행정기관에 소속된 사회복지사들의 격무는 요즘도 여전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만 무려 300여 명이 사표를 제출했고(현 4500명) 앞으로도 더 있을 전망이다. 2배로 늘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벌써부터 ‘3D직종’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형편이다. 정부는 당초 2001년에 700명을 충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최근 일용직 공무원을 사회복지직으로 대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복지계의 반발은 거세다.

1월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신길3동사무소를 찾았다. 박미진씨(34)는 9년차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을 8년이나 계속한 끝에 지난해 서울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 박씨의 공무원 등급은 7급에서 8급으로 낮아졌다. 연봉 1800만원. 그 자신도 사회복지사가 아니고 단순한 월급쟁이였다면, 벌써 그만두었을 거라고 말한다.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지난 1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새로 수급권자를 정하고, 지급액을 재조정하는 과정에 수많은 민원이 쏟아졌다. 기껏 고생하면서 욕은 욕대로 먹어야 했다.

“국기법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저는 기존 생활보호법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해서 IMF 직후엔 보호받을 사람도 아니면서 돈을 받는 경우가 꽤 많았거든요. 그걸 바꾸는 과정에 손해를 보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산이 정해진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박씨는 수급권자의 금융거래 내역을 조회할 수 있게 된 것이 ‘국기법의 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금융거래 내역만으로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173가구를 맡고 있다. 미아리 같은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에 자주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잡무만 처리해도 하루가 다 간다는 것이다. 신규 수급권 신청자가 계속 늘고 있어 그쪽을 조사하기도 시간이 빠듯한데 아침부터 민원이 밀려들면 하루종일 화장실도 못 가고 자리에 붙어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국기법, 장애인, 아동복지, 노인복지, 청소년 업무에 행정잡무와 관공서 심부름까지 모두 처리하는 상황에서 사회복지사에게 질좋은 서비스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것이다.

무리한 업무량은 후유증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박씨는 3개월 이상 제시간에 퇴근을 못했다. 안양시에서 공무원이 과로사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낮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집에 가서 아이들을 잡는 거예요. ‘명색이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사람이 무식한 어머니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후회를 하면서도 일에 치이다 보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사표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오를 때마다 그는 사회복지사로서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머니 없이 자란 초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저에게 ‘어머니 없는 자리를 채워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후원자를 연결시켜 주었는데,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사회복지사만의 보람이라고 할까, 뭐 그런 걸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죠.”

최근 사회복지 공무원들 사이에 최대의 관심사는 신규직원 채용 문제다. 행자부는 공무원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용직을 사회복지직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구상이고, 사회복지계에서는 사회복지 전공자를 채용해야만 복지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핵심에는 이른바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이 있는 셈이다.

“사회복지사는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직업이에요. 그 사람의 문제를 정확히 규명해서 욕구를 파악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잘 모르는 사람은 단순히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상담기술이 필요하고,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시키는 능력, 아동·청소년·장애인·노인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받쳐줘야 합니다.”

또한 박씨는 지속성을 강조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일을 시작하지만 부실한 복지체계 때문에 금방 지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없으면 이 바닥에서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다. 박씨는 뒤늦게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려는 친구를 간곡히 말렸다고 한다. 맨땅에 헤딩하다가 나가떨어지는 동료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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