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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판매왕 4인의 성공스토리

“나는 판다. 고로 존재한다”

  • 김기영 hades@donga.com

“나는 판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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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석이 과장(35·현대자동차 천안서부영업소)은 인터뷰 내내 이 말을 되풀이했다. 처음 한 번은 인사치레려니 했는데, 여러 차례 반복하자 그의 겸손은 꾸민 것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그의 다소곳한 태도를 신뢰하는 고객들이 이 과장과 계약하길 원했고, 그 결과 그는 지난 한해 모두 222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한달 평균 18.5대, 공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계약서를 작성한 셈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이 과장은 현대자동차 전체 판매왕은 아니다. 이 과장 외에도 지난해 현대자동차에는 270여 대를 판 영업사원도 있고 240대 넘게 판 사원도 있다. 판매대수만 보면 이 과장을 능가하는 사원이 3명이나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측에서는 이 과장을 현대자동차의 ‘실질적인’ 판매왕으로 추천했다. 현대자동차측은 “실제 판매대수로는 이 과장이 4위를 기록했지만, 1∼3위를 차지한 사원들의 경우 렌트카 업체 등으로부터 한번에 20∼30대를 계약하는 등 꾸준한 고객관리로 올린 실적으로 볼 수 없으므로 실질적으로 이석이 과장이 판매왕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성공한 세일즈맨이지만 이 과장은 한때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 의기소침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과장의 왼쪽 눈 주변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흉터가 남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학사장교 입대를 앞둔 90년 초, 화물트럭에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했으나 좀체 원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다. 얼굴에, 그것도 눈 주변에 큰 상처가 있다 보니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꺼려했다.



의리의 해병전우회

해군학사장교 교육을 마치고 이 과장은 해병대 장교로 복무한 뒤 93년 제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에 나섰으나 얼굴에 상처가 있는 이 과장을 흔쾌히 채용하겠다는 회사는 없었다. 거듭되는 입사실패로 이 과장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현대자동차에서 합격증이 날아왔다. 이 과장은 “다른 회사는 모두 나를 외면했는데 채용해준 현대자동차가 고마워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알아준 회사에 보답하겠다는 심정으로 처음 영업활동을 시작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거리로 나섰으나 그에게 차를 사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군만마(千軍萬馬)와도 같은 원군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친목회 가운데 최고의 결속력을 자랑하는 해병전우회였다.

“93년 11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는데 그해 연말까지 그레이스와 엘란트라를 각각 1대씩 전부 2대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사준 분이 해병대 중사로 제대한 해병전우회 회원이었습니다.”

사실 연고판매만큼 세일즈맨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이 과장의 경우 해병전우의 도움은 그 후 그의 자동차 세일즈맨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도 당당하게 차를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었다.

본격적인 세일즈맨 생활 첫해인 94년 이 과장은 회사에서 제시한 목표인 72대 판매를 달성했다. 94년 연말 이 과장은 송년회식 자리에서 영업소 직원 모두 앞에 나서서 자신의 새해 포부를 밝혔다. “내년에는 반드시 우리 영업소에서 3등 이내에 드는 실적을 올리겠습니다.” 이 과장의 큰소리를 참석자들은 신입사원의 객기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95년 연말 결산 결과 이 과장은 모두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해 영업소 내 1등 사원이 187대를 팔았는데 이 과장은 128대를 팔아 당당히 3위를 차지한 것이다.

95년의 성공은 그 후 이 과장의 영업활동에 모범이 됐다. 스스로 마음속에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일했다. 예를 들면 96년까지 충남 지역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판 기록이 209대였는데 이 과장은 이 기록을 깨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영업전선을 누비고 다녔다.

“판매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그러나 209대는 좀체 돌파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 과장은 97년부터 99년까지 3년 연속 충남지역 판매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80대에서 190대 사이를 오르내렸을 뿐 200대 고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 과장도 앞서의 대우자동차 박노진 이사처럼 법인 영업보다는 철저히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차를 팔아왔다. 200대 이상 자동차를 팔려면 한꺼번에 수십대를 사주는 법인 고객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세기를 보내고 말았다.

2000년 이 과장은 마침내 200대 고지를 넘어섰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던 ‘200고지’를 넘어선 비결에 대해 그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한 것이 꾸준히 누적돼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매번 차를 팔 때마다 고객이 조금의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그의 성실함이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공식적 멘트’말고 그만의 판매 노하우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거듭 판매왕이 된 비결을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여전히 싱거웠다.

“몇 년간 해봤지만 판매에는 왕도(王道)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이 말 끝에 이 과장은 “영업도 이제는 전문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차를 팔면 이 세상 누구보다 차에 정통하겠다는 각오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영업사원들 가운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의 구조와 판매제도에 대한 지식을 갖췄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최대의 판매무기로 삼고 고객들을 설득해온 까닭에, 이 과장은 지금까지 영업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시기를 “제품 자체의 결함 때문에 고객에게 불신을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 현대자동차의 ‘실질적 판매왕’ 이석이 과장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야무진 꿈 두 가지를 소개했다. “현대자동차 본사에 가면 ‘명예의 전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동안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행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명실상부한 전국 판매왕이 돼 이곳에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습니다.”

첫째 희망을 말할 때 다소 들떠 보이던 이 과장의 목소리가 둘째 꿈을 소개할 때 잦아들었다.

돈보다 목표달성이 먼저

“처음에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 회사에서 정년까지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이름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자동차 제조사 직영 영업소와 영업사원을 없애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자동차 판매시스템이 딜러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평생직장보다는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합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딜러로 나선다면 그 분야에서도 성공하고 싶습니다.”

현대자동차 내에서도 손꼽히는 판매도사인 이 과장의 연봉은 7200만 원 가량. 판매왕치고는 억대 연봉에 못 미치는 것이 오히려 이채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과장은 “지금까지는 돈보다는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재미에 정신 없이 일을 해왔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한없이 겸손하고 수더분한 영업사원 이석이 과장. 그의 성공비결은 상대방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평범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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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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