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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아우슈비츠를 반복해선 안된다”

독일교과서의 역사관

  • 강정수 < 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

“아우슈비츠를 반복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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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교사의 경험담이다.

“교실에 들어서니, 칠판에 나치 문양이 크게 그려져 있더군요.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전 비명을 질렀죠. 그러자 학생들이 제 비명 소리에 열광하듯 환호성을 질러대는 거예요.”

‘외국인이 독일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식의 극우 성향 낙서에 애써 무관심하게 대응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일부 학생들의 극우적인 행동에 공포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베를린 외곽 한 인문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 노령의 강제 수용소 생존자가 수업시간에 초대되었다.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 이 생존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한 달에 몇 번 성관계를 가졌어요? 그런데 가스실 문은 안으로 열리던가요, 밖으로 열리던가요?”



이 질문에 당황한 담당 교사는 수업을 중단시켰다.

물론 교사들이 밝히는 경험담에서 독일 역사교육의 현황을 일반화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재교육 담당관인 로이버씨의 “고통을 묘사하고, 이를 통해 동정을 일으키는 식의 교육방식은 많은 학생들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진단처럼, 지금의 과거사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는 “최근 가장 큰 문제는, 극우파 대응 방법에 대한 교사 교육의 공백이다. 이들이 낭패를 겪은 후 가능하면 극우파 문제를 회피하려 하고 있다”며 교사의 재교육을 확대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베를린 주 교육청도 재교육을 역사 교사에서 단계적으로 전체 교사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출하고 있으며, 과거사 교육을 초등학교부터 조기실시하기 위해 연구진을 구성하여 교과서 편찬 및 교육과정 개편을 위한 연구 작업에 착수했다. 또 다가오는 신학기부터는 베를린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1시간의 ‘톨레랑스’ 시간이 도입된다. 타문화와 외국인의 문제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기억 = 죄의 고백’이란 등식이 쉽게 성립할 수 있었던 전후 1세대는 이미 학교를 떠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전후 2세대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또는 증조부 시대의 나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들 전후 2세대에게 “너는 잊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 죄를 잊지 말아라”는 ‘기억명령’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구서독지역을 살펴보면 쉽게 이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시의 경우 부모가 독일 국적을 갖지 않은 학생 비율이 평균 30%에 이른다. 이들에게 과거사의 책임을 직접 묻는 것은 무리다. 또 독일계 학생들이 동료 외국인계 학생들에게서 듣는 “당시에는 유대인, 지금은 터키인”이라는 식의 비난은 매우 수용하기 힘든 논리적 비약을 담고 있다.

동독지역 새로운 역사교육 필요

이러한 전후 2세대의 다양성과 갈등 양상은 현장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과거, 순수 백인 국가였던 구동독지역, 특히 소도시 지역을 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의 부모가 20%에 육박하는 실업률에 고통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보며 이들은 자라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학급 동료나 친구로 가져본 적이 없다. 도시 전체 외국인 비율이 2∼3%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학교에 터키계 학생이 한 명 전학오면, 학교는 온통 난리가 난다. 교사도 학생들에게, ‘다른 문화’를 설명하기 힘들어한다. 최근 터키로 휴가를 가는 구동독지역 교사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타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방학이 끝나면, 교사는 터키에서 가져온 옷이며 장신구를 교실에 전시하기도 하고, 터키 음식에 대한 경험담도 한창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방편이 “우리는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이 지역 학생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저명한 역사학자 벨른트 바그너씨는 “통일 이후 지난 10년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다”며, 역사학계가 통일 이후 역사교육 통합 작업에 집중한 나머지 새로운 과거사 교육을 정립하는 데 소홀했음을 인정하며 안타까워했다. 구동독에서 나치 역사에 대한 기술은 서독의 그것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반파시즘 역사의 중심에는 히틀러에 대항했던 공산당의 저항이 놓여 있다. 이와 함께 ‘독일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농민국가’ 건설사가 역사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동독 공산당 서기장 울브리히트와 호네커가 이야기했듯이 ‘승리의 역사’가 동독의 전후 1세대 머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이들의 자녀들은 통일 이후 서독에서 직수입된 교과서를 배우며 자라게 된다. 수입된 교과서가 45년의 간격을 메우지 못해 허덕이는 동안, 극우파의 논리는 구동독의 청소년들을 쉽게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일부이지만, 이들이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 “저 깜둥이와 유대인을 죽여버리자. 순결한 우리 조국을 위해” “유대인의 무덤에 오줌을 갈기자”는 가사의 극우주의 록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철저한 과거청산과 역사교육을 자랑하는 독일에서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세대는 또 다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신동아 200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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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 < 베를린자유대 박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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