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방송작가 세계의 빛과 그림자

드라마 한 편 8억 받는 ‘특고작가’, 최저 생계 위협받는 ‘날품팔이’ 구성작가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4-09-23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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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연인’ 작가, 사전에 특별고료 받아
    • 드라마 한편으로 수억원 받는 특급작가들
    • 인기작가와 비인기 작가는 천당과 지옥 차이
    • 모 작가와 ‘저녁 밀회’ 가진 탤런트, 출연횟수 늘어
    • 최고 인기작가 김수현, “‘미치겠다’는 말 입에 달고 산다”
    방송작가 세계의 빛과 그림자
    “회당 135만원씩 받아 둘이 반으로 나눴어요.”지난 8월15일 종영된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 작가 김은숙(32)·강은정(30)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받은 원고료를 밝히자 이를 본 일부 네티즌들이 ‘노동력 착취’라며 분개했다. 드라마 작가는 탁 치면 ‘억’ 소리가 날 만큼 고수익을 올리는 직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작가가 ‘고작’ 회당 67만5000원을 받았다니….

    이들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직후 ‘파리의 연인’ 제작사인 ‘캐슬인더스카이’ 이찬규 대표는 한 지인으로부터 “원고료가 왜 그리 적냐. 너무 적게 준 것 아니냐. 사람들이 연판장을 돌려서라도 ‘캐슬인터스카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더라”는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한 지붕 세 가족’ ‘무동이네 집’ ‘신고합니다’ 등의 인기드라마를 집필한 방송작가 출신인 이 대표가 후배작가들에게 이토록 열악한(?) 원고료를 지급한 이유가 뭘까.

    “‘파리의 연인’은 기본 극본료 135만원과 자료비 30만원을 포함해 회당 165만원을 지급했고 그것을 두 사람이 나눠 가졌다. 지난해 우리 회사가 제작한 두 작가의 데뷔작 ‘태양의 남쪽’은 각각 회당 165만원씩 지급했다. ‘태양의 남쪽’보다 ‘파리의 연인’ 원고료가 적게 책정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이 ‘태양의 남쪽’ 이후 SBS와의 계약을 통해 특별원고료(이하 특고료)를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파리의 연인’ 작가 원고료의 ‘숨어 있는 1인치’에 대해 설명하자 지인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파리의 연인’ 원고료에 얽힌 비밀



    방송작가 원고료 지급기준은 매년 한국방송작가협회와 MBC, KBS, SBS 등 방송3사의 드라마 제작 관계자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이 협약에 따르면 주간연속극(60분 기준·미니시리즈 포함)의 경우 회당 원고료는 기본 극본료 120만2220원과 자료비 29만3460원을 포함해 총 149만5680원(세전·2003년 기준). 현재 방송3사는 ‘협약가’보다 조금 높은 회당 170여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김·강 두 작가는 이 기준에 따라 165만원을 받았다.

    자료비를 포함한 기본원고료는 이제 막 방송국 문턱을 밟은 신인작가와 인기작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특별원고료다. 방송작가는 특고료를 받는 ‘특고작가’와 기본원고료를 받는 ‘일반작가’로 나뉜다. 방송작가의 몸값이라 할 수 있는 원고료는 특고료를 얼마나 받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해 ‘태양의 남쪽’ 방영 당시 SBS 이종수 제작위원은 이 드라마의 책임PD에게 “김·강 작가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위원은 “단막극 한 편 내보낸 적 없는 ‘초짜’가 쓴 ‘태양의 남쪽’을 보면서 그들이 남다른 감각을 지닌 필력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SBS에 묶어두기 위해 특별원고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며 무명에 가까웠던 두 작가가 단숨에 특고작가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강 두 작가는 SBS에 40회에 걸쳐 드라마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특고작가 반열에 들어섰다. 특고료는 계약과 동시에 일시불로 선(先)지급되는 것이 방송가의 관례다. 이 위원은 이들에게 얼마의 특고료를 지급했는지에 대해선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신인인데다 이름없는 작가였기 때문에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모래시계’와 ‘대망’의 송지나, ‘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를 쓴 노희경, ‘대장금’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 등 ‘스타작가’들은 거액의 원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학프로덕션의 박창식 제작이사는 방송작가의 원고료에 대해 “이름있는 작가들은 방송사 또는 외주제작사와 보통 50회를 계약한다. 송지나, 김영현 작가 등 인기작가의 경우 300만원씩 50회에 해당하는 특고료 1억5000만원을 선불로 받고 실제 자신이 쓴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점에 회당 기본원고료인 170여만원을 또 받는다. 계약된 50회의 작품이 TV를 통해 방영되고 나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재계약을 한다”면서 “명망 있는 작가는 회당 500만원 가량의 원고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파리의 연인’을 쓴 두 작가의 실제 원고료는 자신들이 받았다고 밝힌 135만원 외에 자료비 30만원과 SBS로부터 받은 특고료인 ‘알파’가 더해져야 한다.

    주로 단막극을 쓰는 일반작가의 꿈은 특고작가가 되는 것이다. 방송작가의 진짜 원고료는 기본원고료가 아닌 특고료이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로서의 성패 또한 특고작가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강 두 작가는 방송작가 세계에서 신데렐라로 불린다. 두 사람 모두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니다 소설을 쓰겠다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97학번으로 입학했다. 두 사람은 졸업 후 함께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 방송작가로 발을 내디딘 직후 특고작가가 됐다. 단 한 편의 작품으로 특고작가가 됐고, 두 번째 작품으로 ‘대박’을 터뜨렸으니 신데렐라로 불릴 만하다.

    “아니, 이 작가 원고료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MBC 드라마 제작국장은 사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얘기를 들어야 했다. 김수현 작가의 원고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드라마 제작국장은 “1년만 지켜봐달라”고 했고 1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사장도 그의 원고료가 비싸다는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비싼 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제값을 해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고수익’이라는 등식을 세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 김수현씨. 1992년 최고 평균시청률 59.5%를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MBC)를 비롯해 ‘목욕탕집 남자들’(KBS2·1995년), ‘청춘의 덫’(SBS·1978년, 1999년 리메이크), ‘완전한 사랑’(SBS·2003년)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김수현 작가의 원고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SBS 이종수 제작위원은 “김수현씨의 원고료는 거의 천문학적인 액수다. 하지만 거액의 원고료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시장원리를 따져보자. 방송사가 상품가치도 없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에게 큰돈을 주겠느냐. 작가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청률은 방송사가 아닌 시청자에 의해 결정된다. 방송사 입장에서 볼 때 시청률 보증수표인 그가 쓴 작품에 대해 고액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한 방송사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의 경우 주말에 방영되는 주간연속극의 회당 원고료는 1000만원 안팎이며 각종 특집극의 경우 1500만원을 상회한다는 것. 2002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 말까지 84회 방영된 KBS 주말연속극 ‘내 사랑 누굴까’의 경우 8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 방송사 PD는 “특급작가에게 지급되는 원고료는 때로 일할 맛을 잃게 한다”고 허탈해했다. 월급쟁이가 평생 벌어도 손에 쥐기 힘든 거액을 단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한 독립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는 중견 PD는 “배용준의 출세작인 ‘첫사랑’의 작가 조소혜씨가 지난해 MBC 아침 일일드라마 ‘황금마차’를 통해 7억원의 원고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8개월에 걸쳐 200회 방영된 이 작품에서 회당 350만원씩 받았다고 한다”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1만편 중 당선작은 12편

    지난해 방송3사의 드라마 극본 공모에 출품된 작품은 총 1만여편. 한 방송사에 3500여편이 접수된 셈이다. 한 작가가 여러 작품을 동시에 응모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소 수천명의 작가 지망생이 공모에 응한 것이다. 신인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방송 공모를 통해 당선된 사람은 지난해의 경우 MBC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KBS와 SBS가 각각 3명씩을 선발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모에 당선된 이들에게는 ‘작가’라는 이름이 붙는다. 방송3사는 이들에게 6개월 동안 매월 100만원을 지급하고 대신 이들 신인작가들은 1차 수습기간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매월 60분물 단막극 한 편을 제출한다. 작품은 드라마국 PD가 주재하는 ‘품평회’를 통해 평가받는다.

    “(1차) 수습기간이 지나면 방송사는 또다시 옥석을 가린다. 지난해 MBC 당선자 6명 중 2명이 1차 수습기간이 끝난 후 탈락했다. 나머지 4명에게는 6개월의 2차 수습기간이 주어졌다. 이때 받는 급여는 월 120만원 정도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매월 작품을 쓰고 품평회를 통해 평가받는다. 수습기간에 써낸 작품이 괜찮으면 단막극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지난해 MBC 극본공모에 당선된 한 신인작가의 말이다. 그는 또 “방송작가로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공모에 당선된 후 1년 이내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간에 자신의 작품이 TV 전파를 타지 않으면 작가로서 성공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고 덧붙였다.

    각 방송사는 1년의 수습기간을 거친 작가 중 될성부른 일부 작가를 선별해 김·강 작가와 동일한 형태의 계약을 맺는다. 이들 신인작가에게 지급되는 특고료는 회당 수십만원 수준으로 통상 50회를 계약하는 것이 관례다.

    신인작가의 경우 기성작가들과는 달리 특고료 액수보다 특고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50회의 드라마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는 점에 무게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다시 신인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방송작가 세계의 빛과 그림자

    방송작가 중 최고의 원고료를 받는 김수현씨.

    “MBC의 경우 1차 수습 이후 남은 4명 중 2명만이 특고작가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 작가들은 그나마 한달에 100여만원씩 지급되던 거마비조차 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신인작가들은 김수현, 이환경, 노희경, 송지나 같은 특급작가를 꿈꾼다. 하지만 그들처럼 성공하기란 복권에 당첨되기보다 힘든 일이다. 신인작가들은 ‘고시에 합격하면 앞날이라도 보장되지만 고시생 못지않게 공부한 우리는 공모에 당선된 이후 진짜 고생이 시작된다’고 푸념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극본 공모에 당선됐다 해도 인기작가가 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다섯 명의 신인급 작가들이 MBC 드라마국의 한 PD로부터 각각 전화를 받았다. “특집극을 준비하고 있다. O월O에 방영할 예정이다. 촬영은 극본이 나오는 대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일감이 주어지자 작가들은 바빠졌다. 이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시놉시스(드라마 줄거리)를 쓰고 대본작업에 몰두했다. 이들 중 한 작가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선배,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MBC 특집극 하나 쓰고 있어.”

    “어머, MBC 특집극이요? 나도 그거 쓰고 있는데.”

    “드라마 작가? 꿈 깨!”

    두 작가는 한 PD가 여러 명의 작가에게 동시에 작품을 의뢰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특집극의 경우 방송사가 한두 명의 작가에게 시놉시스를 요구해 이들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작가들은 담당PD가 대본까지 요구하자 자신의 작품이 방영되는 것으로 믿고 작업에 열중했다.

    한 중견작가는 이 사건을 두고 “이건 칼자루를 쥐고 있는 방송사의 횡포다. 다섯 명으로부터 대본을 받아서 그중 한 편을 선택하고 나머지 4편은 원고료 한푼 안 주고 끝내겠다는 얘긴데, 이거야말로 노동력 착취가 아니고 뭐냐. 어디 한번 써봐라, 괜찮으면 방송하고 시원찮으면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얘기 아니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신인작가들의 비애를 생생히 보여주는 한 예로 방송계에 회자되고 있다.

    인기작가와 이름없는 작가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이라고 방송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수현, 이환경, 최완규 등 ‘억대’ 대우를 받는 특A급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작가는 기본 생활도 꾸리기 어려운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퇴직금, 기본급도 없는 상황에서 부정기적인 드라마 집필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는 작가는 극히 드물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빌딩에 위치한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는 매년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수백명의 교육생이 모여든다. 대학생, 주부, 한의사, 동화작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작가를 꿈꾼다.

    하지만 상당수 수강생은 6개월 동안 드라마 기초작법을 공부한 후 ‘글 꽤나 쓸 줄 안다고, 글 쓰는 것을 즐긴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작가의 길을 포기한다.

    드라마 작가는 학연이나 인맥은 물론, 시쳇말로 든든한 ‘빽’이 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는 오직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PD, 배우 등 주변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발돋움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와 탤런트의 은밀한 만남

    200X년 X월7일. 낮 12시. 한 방송국 로비. 취재원을 기다리고 서 있는 필자 옆에 큰 키에 이목구미가 뚜렷한 미녀 톱 탤런트 A씨가 50대 남자와 서 있었다.

    “작가선생님과 캐스팅 얘기는 다 돼 있어. 오늘 점심은 인사차 마련한 자리고…. 참,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선약은 없는데….”

    “조금 있다 그분 만나서 밥 먹을 때 내가 ‘저녁에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 같이 하자’고 말할 거야. 나올 수 있지? 너한테도 (내가) 시간 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해. 알았지.”

    대화내용으로 미뤄 중년남자는 A씨의 소속사 간부인 듯싶었다. A씨는 중년남자의 ‘주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평범하고 편안한 차림의 작가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 역할은 말이지, O회부터 O회까지 나올 예정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예정보다 더 많이 출연할 수도 있어. 조연치고 꽤 비중이 큰 배역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가가 쓴 작품에 출연하는 A씨의 모습을 TV에서 자주 보게 됐다. 브라운관에 비친 A씨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날 고개를 푹 숙이고 식당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인기작가의 경우 캐스팅에 절대적인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1970년대 문희·윤정희씨 등과 함께 인기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우연정씨. 오른쪽 허벅지에 골수암이 생겨 3년간 투병하다 한쪽 다리를 자른 후 영화 ‘그대 앞에 서리라’(1981년)에서 자신의 투병 경험을 공개했던 우씨는 작가와 여배우와의 관계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974년, MBC ‘밤길’ ‘두만강’에 출연할 즈음의 일이다. 조연급 여성 탤런트 K씨가 PD와 작가에게 냉장고 등 당시로선 고가였던 가전제품을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 정도야 배우가 자신을 캐스팅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전제품만 선물한 게 아니라 작가인지 PD인지 밝히기 곤란하지만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곱게 늙은 K씨는 지금도 TV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실력 있고 인기 있는 톱 탤런트는 늘 캐스팅 1순위로 각광받지만 그렇지 않은 연기자는 작가와 연출자의 낙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연출자 또는 작가와 여배우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 어느 조직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가수 이효리의 드라마 출연 여부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 내년 1월 방송 예정인 SBS 미니시리즈 ‘눈꽃’(극본 박진우, 연출 장용우)과 관련해 김수현 작가가 이효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온 후부터다.

    김수현 작가는 ‘눈꽃’의 원작자일 뿐, 이번에 직접 극본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작자인 김수현 작가가 캐스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집필을 맡은 박진우 작가가 김수현 작가의 제자여서 대본과 관련해 김 작가와 자주 상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효리의 ‘눈꽃’ 출연은 김 작가의 동의 없이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효리양 러브콜??? 그런 적 없고요. 나 아직 기절해 있는 중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작가는 9월8일 전화통화에서 “길게 논할 가치도 없어 단 한줄의 글로 내 생각을 표현했다”고 짧게 답했다. 원작자라고는 해도 그가 캐스팅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혔고, 내심 이효리의 출연을 기대하고 있는 SBS측은 이효리의 캐스팅이 여의치 않을 경우 ‘눈꽃’의 제작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효리의 드라마 출연을 둘러싸고 벌어진 김수현 작가와 SBS의 ‘힘겨루기’는 어떻게 끝날까. 이와 관련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은 ‘양쪽(김 작가와 SBS)의 주장 중 어느 쪽에 공감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응한 8만4728명 중 72.9%(6만1802명·9월10일 현재)가 김 작가의 손을 들어줬고 SBS측에 동의한 사람은 6.1%, 20.9%는 ‘관심 없다’고 답했다.



    자기주장과 개성이 뚜렷할 뿐 아니라 방송사 눈치를 보지 않고 쓴소리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에 대해서는 10여년 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따라다니고 있다. 자신을 ‘씹은’ 기자의 이름을 드라마 속에서 돈 떼어먹고 달아난 주인공의 친구 이름으로 등장시켜 앙갚음을 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돌고 돌아 사실인 양 굳어졌고 김 작가를 ‘씹는’ 단골메뉴가 됐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기자들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면서 “나는 나를 씹은 기자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내 드라마에 등장시킨 일도 없을 뿐더러 그런 유치찬란한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짓을 한 작가를 알고 있으며 당한 기자가 누군지도 안다”고 덧붙였다.

    방송작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드라마 작가와 비드라마 작가다. 드라마 작가는 말 그대로 드라마의 대본을 집필하는 사람이고 그외의 모든 프로그램 작가가 비드라마 작가, 즉 구성작가다.

    드라마 작가와 구성작가의 공통점은 4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과 프리랜서 신분으로 고용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작가들 중 일부는 이런 자신들의 처지를 ‘날품팔이’ 노동자에 비교한다.

    구성작가는 자료조사원, 보조작가, 스크립터로 불리는 ‘새끼작가’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대부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방송작가교육원과 방송아카데미 등 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뒤 방송계에 몸을 담는다. 프로그램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 등 모든 과정에 PD와 함께 관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받는 보수는 한달에 100만원 안팎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최근 교양·다큐멘터리 구성작가를 대상으로 임금과 요구사항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작가가 방송사의 다른 직종 종사자보다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년차부터 13년차 정도의 중견 작가들이 한 달에 받는 임금은 약 240만~350만원 정도. 1∼2년차의 경우는 120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액수만 놓고 보면 타 직종과 비교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13시간 이상 근무하고 밤샘작업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성작가는 일년에 두 차례 있는 프로그램 개편철이 다가오면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사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그날로 실업자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중계라든지 중요한 행사가 있어 결방되면 원고를 다 써 놓았다 해도 그날은 공치는 날이다. 방송사에서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준은 ‘방송이 됐느냐’이기 때문에 방송사에 ‘딴지’를 걸어봐야 소용이 없다.”

    KBS 1라디오 시사정보 프로그램에서 6년차 구성작가로 활동한 정아무개 작가의 하소연이다.

    방송작가는 날품팔이 노동자

    아파도 ‘때’를 가려서 아파야 하는 게 방송작가의 현실이다. KBS 1TV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의 차윤희 작가. 1985년 여름 이 프로그램과 인연을 맺은 후 올해로 20년째 구성작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KBS 내에서 ‘동물에 관한 한 그에게 물어보라’고 할 정도로 동물박사가 다 된 그는 출산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 이러저러하게 생긴 동물 이름이 뭐예요?” 담당 PD의 전화였다. 아이템 선정은 물론, 취재와 섭외까지 담당하던 차 작가는 아이를 낳는 순간조차 방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시청자의 가슴을 녹이는 드라마 작가와 구성작가는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방송작가는 극히 드물다.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 사람들은 그가 쉽게 작품을 써내는 줄 알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어휴, 어째. 10월부터 방영 예정인 ‘부모님 전상서’(가제)를 아직 두 편밖에 못 썼어. 남들은 그냥 쓰는 줄 알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원고 쓰는 줄 누가 알까. 그래도 다행인 게 책상 앞에 앉으면 써 져. 만날 ‘뭘 쓰지 뭘 쓰지’ 하고 살아. 미치겠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살고.”

    김수현 작가의 뜻밖의 고백(?)을 들으니 작가의 창작활동에 따르는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나 될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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