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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시나리오

마음껏 들여다보고 죽일 수도 있다

홈네트워크 아파트 살인사건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마음껏 들여다보고 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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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첨단 주거문화의 재앙
  • ● 약간의 편리함 그리고 무방비의 노출
  • ● 건설사들, 홈오토메이션 허점 방치
마음껏 들여다보고 죽일 수도 있다

홈네트워크 PDP시스템. 리모컨 하나로 TV, 냉장고, 세탁기, 가스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함)

최첨단 홈네트워크, 홈오토메이션, 혹은 유비쿼터스로 불리는 기능을 갖춘 아파트는 우리의 대표적 주거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 수년 간 전국에서 신규 분양된 아파트 단지치고 신도시급의 대규모이든, 수십 가구의 소규모이든 홈네트워크 기능을 홍보하지 않은 단지가 거의 없다.

텔레비전의 아파트 광고에도 유명 여배우가 운전을 하면서 자기 아파트 실내의 가스 불을 원격으로 끄거나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실내에서 혹은 실외에서 조명, 냉난방설비, 냉장고, 세탁기, 조리 기구, 커튼, 수도, 텔레비전 등을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일은 점점 더 일상이 되고 있다.

가전기기와 가구들은 인터넷에 의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는 경향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휴대전화가 만능 리모컨이 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이런 점은 현대의 디지털 문명이 주는 편리성으로, 나아가 인간적 가치의 구현으로 잘 포장된다.

“해커에 지령 하달되고…”

그런데 누군가는 최첨단 주거문화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아파트 보안업체의 간부 A씨는 최근 기자에게 ‘홈네트워크 아파트 살인사건’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군의 핵심 요직에 있는 모 장성은 최첨단 홈네트워크 기능을 갖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북한군은 도발에 앞서 그를 제거하기로 한다.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 해커들 중 한 명에게 지령이 하달된다. 이 해커는 중국에서 인터넷망을 타고 국군 장성의 아파트 단지 웹서버로 들어온다. 손쉽게 방화벽을 무력화한 뒤 홈오토메이션 기능을 약간 변형시켜 장성 아파트 부엌의 가스레인지에서 가스가 누출되도록 한다. 장성 가족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해커는 원격으로 커튼을 쳐 실내가 밀폐되도록 한다. 수십 분에서 1시간여가 지나 가스가 충분히 누출된 뒤 해커는 거실의 조명을 켠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나 장성 가족은 모두 사망한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 미심쩍은 정황이 있지만 결국 가스 누출에 의한 사고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한다.”

해커 출신인 A씨는 컴퓨터 보안과 관련된 업무에선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그의 지식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입증됐다. 2010년 10월19일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행정처가 보안컨설팅을 진행해본 결과 인터넷상에서 등기문서의 변조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직접 시연해봤을 때도 무인등기부등본 발급기에서 등기문서 변조가 가능했다. 법원 등기부 인트라넷에 침입해 타인의 정보를 조작할 수 있었다. 재산상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의 국정감사는 A씨의 제보와 조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후 A씨는 기자에게 ‘홈네트워크 아파트 살인사건’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설인지를 실험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시나리오의 각 부분을 하나하나 검증해보기로 했다.

A씨는 “해커는 중국의 PC방 같은 곳에서 한국 아파트단지의 웹서버로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 해커가 중국에서 한국 인터넷망에 자유롭게 접속한다는 점은 국가정보원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바 있다. 국정원은 2009년 7월 “북한이 양성한 해커들 중 일부는 중국에 유학생, 연구원, 노동자 신분으로 나가 한미 주요기관의 전산망을 교란하는 해킹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121소(부)가 1998년 해킹 및 사이버전 전담 기술정찰조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은 2010년 10월28일 “북한이 수백 명에서 최대 1000명 이상의 사이버 해커부대원을 양성해두고 있다”고 했다.

수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PC방은 고정 IP(Internet Protocol·인터넷상의 각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구별되기 위해 가지는 고유한 주소)로 되어 있지만 중국에선 고정으로 IP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고, 한국과 중국 간 수사공조가 잘 안 되는 점이 난점이다. 해커가 국내에서든 중국에서든 아파트 단지의 웹서버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그 다음 관건은 해커가 아파트 단지의 방화벽을 무력화해 웹서버에 침입할 수 있는지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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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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