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항공우주국(NASA)이 모노 호수 침전물에서 분리했다는 비소 세균 ‘GFAJ-1’.
비소는 본래 생물에게 독이다. 비소는 세포의 에너지 생성 과정에 관여하는 한 효소에 끼워져 효소의 모양을 바꾼다. 즉 자물쇠의 형태를 뒤틀리게 해 열쇠가 못 끼워지게 하는 식이다. 그러면 세포는 에너지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죽을 수 있다.
그런데 비소를 인 대신에 쓸 수 있다니? 인과 비소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하지만 인은 필수 영양소인 반면 비소는 극독이다. 우리가 만드는 물건 중에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한 원소로 재료를 바꿔도 별문제가 없는 것이 많지만 생물의 몸은 그렇지 않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화학 반응 중에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물질들이 서로 정확히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 많다.
자물쇠에 제 짝인 열쇠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열쇠를 꽂으면 열리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아예 맞지 않는 열쇠는 들어가지도 않으니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생체 내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화학적 특성이나 구조가 아예 딴판인 물질은 반응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특성이 아주 비슷한 물질은 잘못 끼워져 빠지지 않는 열쇠처럼 반응 자체를 막아버린다. 인체에 작용하는 수많은 독극물은 바로 이런 열쇠와 같다. 정상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끼워질 자리에 대신 끼워짐으로써 신경 신호의 전달을 차단해 죽음을 가져오는 신경독이 그렇다. 이 원리는 항암제 등 의학에 여러모로 이용된다. 그런데 나사는 비소는 다를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NASA 발표의 ‘위대한 함의’
나사가 발표한 GFAJ-1이라는 세균은 염도가 높은 환경에 사는 호염균의 일종이다. 우리가 아는 보통 환경이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극한생물이다. 극한생물 중에는 비소 농도가 높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종류도 여럿 있다. 하지만 뜨거운 사막이 좋다는 말과 뜨거운 사막을 참을 수 있다는 말이 다르듯이, 비소를 견딜 수 있다는 말과 비소를 이용해 살아간다는 말은 다르다. 울프사이먼은 인을 주지 않고 비소를 주면서 이 세균을 키워보니, 이 세균이 몸의 각종 대사물질에 인 대신 비소를 쓰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핵산을 분리해보니 그 안에 비소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핵산의 원소들을 직접 분석한 것은 아니었다. 방사성을 띤 비소를 넣은 뒤 핵산 같은 물질을 분리해 방사성을 측정하는 방식을 썼다. 분리한 핵산이 방사성을 띠면 비소가 핵산의 구성 성분이 된 것이라는 논리다.
이 발견이 사실이면 지구 생명이 다른 식으로 탄생했을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즉 원시 지구라는 극한 환경에서 생명은 처음에 인이 아니라 비소를 이용했을 수 있다. 나아가 우주의 다른 행성에 인이 아니라 비소를 이용해 살아가는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원리는 인과 비소에만 한정되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흔히 언급되는 규소, 즉 ‘실리콘 생물’이 있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탄소와 규소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예전부터 탄소 대신 규소를 토대로 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를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있어왔다. 탄소는 지구 생명체의 기반이다. 탄소처럼 복잡하고 긴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원소는 규소뿐이다. 탄소 대신에 규소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체내의 탄소 분자 중 일부를 규소로 대체할 수 있는 생명체도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