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br>장영란 지음, 글항아리, 540쪽, 3만2000원
이런 내용이 때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황된 스토리가 수천 년 동안 유지되는 비결은 뭘까. 인간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화는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람의 꿈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명징성(明澄性)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과학자에게 신화, 설화, 전설, 야담, 동화 등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논리적인 플롯을 갖춘 소설마저 ‘소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된다.
삼천갑자 동방삭이 땅바닥을 한 번 구르면 60년을 더 산다는 설화나 구렁이가 아름다운 아가씨로 바뀐다는 전설 따위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합리성을 유독 중시하는 과학자도 자신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면 노아의 방주, 모세의 기적 같은 종교적 사건을 팩트라 믿는다. 그게 신앙이다.
비(非)이성적인 체계를 부정하는 유물론자도 비 오는 밤에 공동묘지에 가면 귀신이 나오는 광경을 연상해 벌벌 떤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이성적인 잣대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신화의 영역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라 불린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란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걸어야 할 ‘내면의 길’에 대한 안내자”라고 갈파한 바 있다.
신화 가운데 그리스 신화가 가장 유명하다. 서양문화의 뿌리여서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화=그리스 신화’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겐 단군 신화나 중국 반고 신화보다 제우스, 헤라, 헤르메스 등 그리스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익숙한 편이다.
철학에서도 그렇다. 제도권 교육에서 배우는 철학은 서양철학이 동양철학보다 중시된다. 서양철학의 원조 격인 그리스 철학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사상을 살피는 데서 서양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다.
현대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
서양의 정신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철학을 알아야 한다. 양쪽 분야를 아우르는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란 신간이 눈길을 끈다. 이 분야 책이라면 대부분이 번역서인데 국내 저자의 오랜 내공이 빚어낸 역작이어서 의미가 크다.
저자인 장영란 박사는 그리스 철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았고 ‘장영란의 그리스신화’‘플라톤의 국가, 정의를 꿈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 등의 저서를 낸 전문가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오늘날에 영혼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는, 정신(mind)이라는 개념이 너무 협소한 까닭에 초기 그리스부터 사용돼왔던 영혼 개념이 지시하는 내용을 모두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영혼은 과연 존재하는가. 육체와 영혼은 다른 것인가. 사람이 숨지면 몸무게가 21g 줄어든다는데 이것이 영혼의 무게인가. 인간 이외에 개나 말도 영혼을 가졌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이에 걸맞게 그럴듯한 설명을 한다. 부정론자는 “영혼이 있다는 주장은 허황된 것”이라 일축한다. 무신론자의 귀에는 귀신 이야기나 지옥, 천당 개념이 모두 지어낸 것으로 들린다. 자연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수 사람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종합적인 지식체계가 막 짜일 무렵인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 영혼이 실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 책은 먼저 그리스 서사시에서 영혼은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설명한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죽는 순간 영혼은 신체를 떠난다고 묘사됐다. 호메로스의 대표작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였을 때 헥토르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데스(지하 세계)의 집으로 갔다고 표현됐다. 영혼은 생전의 모습을 띠지만 만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허상이다. 호메로스 이후의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는 이유는 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라 설파했다. 영혼은 수많은 신체를 돌아다니다가 하데스에서 심판을 통해 처벌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 등 그리스 비극 작가들은 영혼을 인간 감정의 원천으로 보았다. 용기, 격정, 연민, 불안 등의 감정은 영혼에서 비롯된다고 믿은 셈이다.
탈레스, “자석에도 영혼이 있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을 어떻게 볼까. 소크라테스는 “영혼은 죽지 않으며 파괴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운동’개념으로 봤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움직이며 영혼을 갖고 있다. 죽으면 움직이지 못하며 영혼이 떠난 상태라는 것.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는 자석에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했다.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힘은 영혼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요즘 기준으로는 황당하지만 당시로서는 최고 석학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럴듯하게 들렸으리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운명을 필연적인 것으로 봤다.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인간은 죽어서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하데스로 간다고 믿었다. 영혼의 불멸성은 인간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될 수 있다. 처벌 대상인 영혼이라면 영원히 고통을 받는 셈인데 이는 가혹한 운명이다. 그러나 영혼은 과거의 삶을 망각한다. 영혼은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는 윤회를 거듭한다. 그러니 고통이 무한 반복되는 셈이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발견한 수학자 겸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전생(前生)을 모두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도 “내가 스무 번 살면서 겪었던 삶을 모두 기억한다”면서 “거짓말을 하면 신들로부터 추방돼 3만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전생 기억을 중시한 것은 윤회에서 벗어나 신(神)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열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영혼이 신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것은 영혼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영혼을 정화해야 한다.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교양도 쌓아야 한다.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수학과 음악을 집중 수련했다.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게 그날 한 일을 모두 기억하도록 하는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당일 기억뿐 아니라 이전 삶에까지 확대하도록 했다. 이는 델포이 신전에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神託)을 실천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를 높이 평가하는 플라톤은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제자들에게 영혼 정화를 위한 음악과 신체 단련을 위한 체육을 기초과목으로 가르쳤다. 그 다음 과정으로는 산술, 천문학, 기하학 등을 지도했으며 이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도록 했다.
신의 세계 가려 철학 익혀
플라톤은 “인간이 진리를 인식하면 영혼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신이 선물로 제공한 4가지 신적 광기(狂氣) 덕분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이 생겨난다”고 갈파했다. 4가지 광기란 예언적 광기, 종교적 광기, 시적(詩的) 광기, 철학적 광기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진리를 깨달으려면 신적 광기에 사로잡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혼이 다시 날개를 달아 신들의 세계로 날아가려면 수천 년이 걸리므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이끌어주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철학을 공부해야 이 힘이 길러진다.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돌보는 일이 철학이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를 무척 소중히 여겼는데 이것은 일종의 영적(靈的) 훈련이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하려는 목적에서 대화가 진행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의 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철학의 진정한 힘은 삶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철학을 통해 어떻게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철학이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 등을 비판적이고 반성적으로 통찰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철학은 그것을 배우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진리를 인식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이 책은 웬만한 미술서적 못지않게 화려한 컬러 화보를 많이 담았다.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명화들을 제시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높인다. 학술서 비슷한 내용이지만 그림 보는 재미가 만만찮아 난해한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작고한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 선생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 독자에게 그리스 신화 읽는 참 재미를 선사한 선구자였다. 대중용 서적에서 기초를 다진 독자는 장영란 박사의 이 책으로 전문성을 높이면 서양 문화를 훨씬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스 고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려면 그리스 원전을 텍스트로 삼아 최근 번역한 책들을 두루 살펴보면 되겠다.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는 그리스 고전을 40여 권이나 번역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 근엄한 학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플라톤이 쓴 ‘향연’을 보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토론하는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긴 겨울밤, 와인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향연’을 탐독하는 호사를 누리시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