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사진과 이야기로 배우는 재미있는 지리학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입력2011-10-19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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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과 이야기로 배우는 재미있는 지리학

    ‘41인의 여성지리학자, 세계의 틈새를 보다’<br>한국여성지리학자회 지음, 푸른길, 415쪽, 1만8000원

    가히 ‘여행의 시대’다. 신문이나 TV에 보도된 맛집을 찾는다고 끝없이 이어지는 주말 차량 행렬에 기꺼이 끼어드는 미식 여행가가 어디 한둘인가.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과메기를 먹으러 먼 길을 떠나는 식도락가들이 줄 짓는다. 특히 봄, 가을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여러 축제가 벌어져 이곳을 찾는 행락객 인파로 주말의 전국 고속도로는 북새통을 이룬다.

    국외 여행도 마찬가지다. 20~30대 연령층에서는 추석, 설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해외로 여행하는 것이 이제는 극악무도한 불효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의식구조가 바뀌었다. 대학생은 배낭여행으로 지구촌 곳곳을 누빈다. 상당수 초중고생도 부모와 함께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등을 찾아 현장학습을 한다. 계몽주의 시대에 유럽의 귀족 자제들이 견문을 넓히려 유럽의 주요 도시를 돌던 ‘그랜드 투어’를 방불케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지가 불과 30년이다. 그전에는 ‘놀러 나가는’ 해외여행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이후에도 한동안 여권을 발급받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자유센터에 가서 4시간 동안 반공교육을 받아야 했고 신원조회니 뭐니 하며 까다로운 절차를 견뎌야 했다. 여권을 신청한 지 보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어서 ‘급행료’를 내고 찾는 경우도 있었다. 여권을 빨리 만들어주겠다는 브로커들이 들끓었다.

    1960~70년대에 해외여행은 ‘아득한 로망’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베트남전쟁, 열사(熱砂)에서 중노동을 하는 중동 건설 현장에 가는 근로자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였으니…. 당시 청소년의 우상은 세계일주 여행가 김찬삼(1926~2003) 교수였다. 그는 신문, 잡지에 여행기를 싣고 방송에 나와 여행담을 들려주며 기행문 저서도 여러 권 내 해외여행에 대한 대리 만족을 시켜줬다.

    발로 누빈 세계의 틈새



    김 교수는 지리학자였다. 중고교에서 지리 과목은 산맥 이름, 강 이름, 각국 수도 등을 외우는 암기 과목으로 치부됐다. 해식애, 사취, 사주, 사빈 등 낯선 용어에 골머리를 앓는 학생이 수두룩했다. 교사들의 수업 방식이나 기말고사 출제 유형도 문제점이 많았다. 지리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 하지 않고 단편적인 지식을 외우도록 강요했다. 지리 과목은 지루한 과목이었고 대학에서 지리학과는 비인기 학과였다. 그나마 지리학자 김찬삼 교수가 지리학의 명예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 할까. 요즘도 한국에서는 지리학의 중요성에 비해 일반인의 관심도는 낮은 편이다.

    대중매체에 지리학자가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지리학자 출신이지만 활동 분야는 정치외교 쪽이다. 지리학자들의 분발이 촉구되는 가운데 눈에 띈 책이 ‘41인의 여성지리학자, 세계의 틈새를 보다’였다. 여성지리학자회는 1992년 여성 지리학자들끼리 학문 정보를 나누려 창립됐고 현재 150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란다. 이 책은 회원 41명의 해외 지역 답사기 묶음이다. 컬러 사진과 지도가 많아 눈요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마추어 배낭여행족의 기행문과 달리 지리학 지식을 바탕에 깔았기에 쉽게 읽히면서도 공부가 되는 책이다. 기존 여행 책과 차별화되는 또 다른 점은 덜 알려진 틈새 지역을 주로 소개했다는 것. 김부성 한국여성지리학자회 회장의 머리말을 옮겨보자.

    기존의 여행서들을 살펴보면 지역에 대한 실질적이고 단편적인 지식, 혹은 개인적이고 감상 중심인 여행서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회원들 사이에서 해외 지역에 대한 비교적 상세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으며, 기존의 여행서와는 차별화된 여행서를 출간해 보자는 의견이 제시되곤 하였다. … 우리에게 덜 알려진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하되 서술 양식은 각자의 재량에 따라 하였다. 따라서 매우 학술적인 깊이를 지닌 글도 있고 지역에 대한 소회가 주를 이룬 글도 있다.

    멕시코의 오악사카. 한국인에겐 무척 생소한 곳이다. 멕시코 현지인들은 이곳을 외국인 관광객이 꼭 방문할 곳으로 추천한다.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5~6시간 남쪽으로 달리면 나타나는 고대 도시. 이곳을 탐방한 김숙진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아즈텍 문명을 키운 아즈텍족이 1486년 요새로 건설하였다가 1512년 에스파냐군에 점령된 지역”이라면서 산토 도밍고 성당, 정복자 코르테스의 저택 등을 소개했다. 멕시코에서 원주민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어서 멕시코 고유문화를 구경할 수 있단다. 대표적인 음식은 ‘몰레’인데 매운 고추와 초콜릿을 섞어 만든 소스가 매콤달콤한 맛을 낸다.

    멕시코 마야문명의 중심지였던 치첸. 이곳의 쿠쿨칸 신전은 춘분, 추분에 나타나는 거대한 뱀 그림자로 유명하다. 피라미드 계단에 비치는 그림자가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형상이어서 신비감을 고조시킨다. 음향이 잘 울리도록 설계돼 과거에는 부족장의 목소리가 신(神)의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1997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이곳에서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불렀다. 탐방자인 이희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마야문명이 외세침략이 없었는데도 사라진 이유에 대해 “용맹스러운 용사들의 심장을 신에게 바침으로써 수백년 동안 지도자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일 듯”이라 추정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는 ‘이 연대기가 주제로 다루는 특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랑?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다. 알고 보면 알제리 제2의 도시다. 오랑이라는 도시 이름은 베르베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두 마리 사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오랑시청 앞에는 두 마리 사자 동상이 서 있다. 스페인, 오스만터키, 프랑스 등의 지배를 받아 여러 문화 잔재가 얽혀 있는 도시다. 이현주 토지주택공사 연구위원은 “오랑은 알제리의 원유 수출항으로 새로운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도심 곳곳에 현대식 빌딩들을 짓고 주택단지와 휴양지를 개발 중”이라고 최근 상황을 전했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튀니지를 찾은 성효현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는 사막화가 급진전되는 현황을 보고했다. 사막의 지하 2000m 지점에 흐르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쓴다고 한다. 사막의 모래 이동을 막으려 ‘안정화 울타리’라는 시설을 세웠으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해 건설비 낭비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오아시스 취락은 관광지로 활용된다. 버섯바위, 모래사막의 사구(砂丘) 등이 독특한 풍경을 이루므로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촬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

    영화 스타워즈는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도 촬영됐다. 바다가 치솟은 석회암 지대인 이곳에는 화산 폭발 때문에 버섯 모양, 원뿔 모양 등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생겼다. 초기 기독교도는 로마의 종교 탄압을 피해 이곳에 몰려와 살았다. 이들은 6세기 후반에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자 기암괴석에 굴을 파서 교회를 만들거나 지하 수십m를 파 내려가 지하도시를 건설했다. 버섯바위를 파내 주거단지를 만든 괴레메 동굴이 가장 유명하다. 박선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괴레메 동굴 집은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이용되는데 이곳을 둘러본 후 항아리 케밥을 먹고 터키식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가지면 좋다”고 소개했다. 인근 데린구유라는 지하도시는 지하 80m에 자리 잡았는데 우물, 침실, 방앗간, 예배당, 포도주 저장실 등이 있었다고 한다. 3만여 명이 6개월간 버틸 수 있는 규모란다.

    엄격한 가정 분위기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았던 여고생은 답답한 현실과 좁은 세계를 벗어나려고 대학에 진학할 때 지리학과를 선택했다. 역시 기대처럼 답사여행 덕분에 견문을 넓혔다. 이런 개인 체험을 밝힌 이윤호 영락고 교사는 7박8일 일정으로 이란을 답사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루싸리’라는 보자기를 머리에 덮어써야 했다. 불편하고 불쾌했단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화(榮華)가 서린 고대도시 시라즈에서 키루스 대왕의 무덤과 다리우스 대왕 시절의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봤다. 그는 “페르시아는 당시 세계 제국의 중심이자 육상 실크로드와 바닷길이 만나는 요충지여서 동·서양의 문화가 집결되고 풍요가 넘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고 밝혔다.

    인도의 다르질링. 지리학자에게도 생소한 지명이다. 인도 북서부 히말라야 기슭에 있는 휴양도시다. 이곳에 가려고 강창숙 충북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는 기차를 타느라 역에서 10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새벽 4시20분경 기차가 나타났단다. 기차, 버스, 지프 등을 갈아타며 어렵사리 이튿날 새벽 3시경에 다르질링 호텔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 호텔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 총독의 별장이었다. 18세기 말 시킴왕국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양받은 영국은 이곳을 휴양지, 차 재배지로 개발했다. 다르질링에서 생산되는 홍차는 지금도 세계적인 명품이다.

    베트남의 고대 도시 호이안은 400여 년 전에는 파이포라 불리는 국제 무역항이었다. 과거부터 각국 선박이 몰려든 요충지였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남은 베트남 전통가옥은 물론 중국식 사찰, 일본식 다리 등이 다(多)문화를 상징한다. 이 도시를 찾은 이혜은 동국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연세대 로고가 찍힌 버스를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였다. 이 교수는 2007년 방문 때 보았던 활기찬 재래시장이 2009년 방문 때는 환경개선 명목으로 사라졌음을 발견하고는 안타까워했다. 웅장하게 지어지는 호텔 등 현대식 건축물이 고대 도시를 오히려 훼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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