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나에겐 생생한 과거이지만, 많은 이가 잊었을 만큼 오래된 일이지요. 그런데도 잊지 않고 이처럼 성대한 행사로 우리를 찾아준 것이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 정부와 행사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리틀엔젤스 단원 또래의 손녀 둘이 그런 할아버지를 웃음 띤 얼굴로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2700여 객석이 꽉 찼다. 공연은 세련되고 우아했다. 리틀엔젤스가 부채춤, 북춤, 탈춤, 농악, 가야금 병창에 이어 ‘나는 지금도 호주를 고향이라 부른다’는 합창곡으로 공연을 마무리하자 객석 앞쪽에 앉아 있던 몰러씨는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그칠 줄 몰랐다.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는 백발의 참전용사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 공연을 관람한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은혜를 문화 예술로 갚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리틀엔젤스의 멜버른 공연은 유엔군 한국전 참전 60주년 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 박보희)가 16개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 가운데 하나다. 이튿날인 22일 캔버라 호주 국회의사당 ‘그레이트 홀’에서 열린 2차 공연에는 참전용사 미망인, 호주 정관계 인사 및 외교사절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6·25 당시 호주군인은 1만7000여 명(연인원)이 참전했고 이 가운데 339명이 전사했다.
기념사업회는 이들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2010년 6월6일~12월17일 참전국을 미주(1차), 유럽·아프리카(2차), 아시아·태평양(3차) 지역으로 나눠 의미있는 공연을 펼쳤다. 초기엔 이 행사에 관심이 없던 외교통상부와 국가보훈처도 뉴욕·워싱턴 공연이 큰 호응을 얻자 후원에 나섰다. 리틀엔젤스는 각국 총리나 대통령 등 정부 인사들에게 환대를 받아왔는데, 호주 퀸튼 브라이스 총독도 이들을 관저로 초청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1_ 리틀엔젤스 단원이 호주 캔버라 총독 관저에서 퀸튼 브라이스 총독에게 영웅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2_리틀엔젤스의 부채춤.
3_북춤은 리틀엔젤스의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신영옥, 발레리나 강수진, 국악인 김덕수 등 세계적인 연주인들을 길러낸 리틀엔젤스는 48년간 5000여 회의 세계 공연 기록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중학교 3학년 소녀(남자 1인)가 주축인 리틀엔젤스는 33인 2개 반으로 이뤄져 있다. 조성숙 단장은 “특정 종교를 따지지 않고 전체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재능 있는 학생들을 뽑는다”고 밝혔다.
11월23일 오전 리틀엔젤스가 캔버라 한국전참전용사비 앞에서 꽃을 바칠 때 참전용사 제임스 셸튼씨는 영연방국가에서 전통적으로 전사자들에게 바치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그들은 늙지 않고 자랄 것이다/ 남겨진 우리가 늙어가도/… 태양이 저물 때, 그리고 아침에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셸튼씨는 “전쟁 당시 만난 아이들은 우리를 무척 슬프게 했다. 우리가 추잉껌을 줘도 웃을 줄 몰랐다. 그런데 20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쟁의 상처를 딛고 놀랍도록 나라를 발전시킨 것을 보고 한국민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김진아 단원(14·선화예중 2년)은 “젊음을 우리나라에 바친 외국 할아버지들에게 은혜를 갚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리틀엔젤스는 2011년 6·25 당시 의무지원을 한 6개국(인도·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이탈리아·독일)도 순회 공연할 계획이다.
1_ 공연이 없을 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리틀엔젤스 단원들.
2_ 리틀엔젤스가 호주 캔버라 한국전쟁참전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3_“내 사랑,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당신이 내게 돌아오기를 꿈꿀 거예요. 당신 없는 크리스마스는 생각할 수 없어요.” 한국전에 참전한 어느 병사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쪽지로 호주전쟁기념관 한국관에 전시돼 있다.
4_ 공연이 끝난 뒤 리틀엔젤스 단원들이 6·25 참전용사들에게 영웅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