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발효과학 속 문화인류학

  •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입력2010-12-22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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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에게 음주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장 좋은 교육법은 술 빚기 실습이다. 술은 몸으로 들어가기에 몸으로 익혀야 한다. 그렇게 발효과학을 이해하다 보면 술의 본체도 이해하게 된다. 더욱이 우리 할머니들이 우리 농산물로 부엌에서 담가낸 귀한 음식이 술이라는 것을 알리면 청소년들의 술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2010년 10월 대학생들이 전주관광음식축제 체험장에서 직접 빚은 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음주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른다.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아버지로부터 조금씩 전해 들었던 것도 같다. 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는다, 어른과 마주 보고 마시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마셔야 한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마시는 술은 음복주라고 해서 부담없이 마셔도 된다…. 그 정도가 음주교육의 전부였다.

    대학에 들어가 신입생 환영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도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그 무렵 술은 관계 때문에 마시는 것이지, 맛 때문에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 후로 더러 삶이 고달플 때, 취하지 않고서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어려울 때 술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렇게 내 몸의 일부가 됐을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재료가 무엇인지, 하물며 막걸리와 소주의 도수가 몇 도인지조차 모르면서 그 오랜 세월 술을 마셨다.

    술을 조금 알게 된 지금에 이르자 젊은 날에 진작 술에 대해 좀 배워뒀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술로 몸을 망가뜨린 사람이라면 그런 후회가 더 깊을 것이다. 성교육이나 금연교육은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그에 견주어 술교육은 약물중독 차원에서 약간 언급될 뿐이다. 술이 무엇인지, 술을 어떻게 마셔야 되는지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현장에선 ‘학생들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처지도 아닌데 괜히 학교가 나서서 술 얘기를 하면 호기심만 자극할 뿐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금주교육이라 해도 ‘금주교육에 공을 들이다간 자칫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그렇다고 신발에까지 술을 부어 마신다는 대학생들을 위해 대학에서 음주 관련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다. ‘성인들인데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그런 것까지 학교에서 가르칠 형편이 못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국가 차원의 음주문화교육



    술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물질이다. 술을 잘 못 마시면 직장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술자리에 한 번도 안 나가고서 사람과 사람끼리의 관계를 술술 풀어내기는 어렵다. 술에 바치는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 손실을 따져보면 엄청나다. 그런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국인의 대다수는 한두 시간짜리 음주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고작해야 주류회사의 일방적인 광고에만 노출돼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음주교육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현행 법률로는 만 19세가 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8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대학교 1학년이 된 해의 생일이 지난 뒤에 술을 마실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면 1회당 1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고, 식품위생법상 미성년자에게 술을 제공하면 2개월 영업정지, 3번 위반하면 영업취소처분을 받는다. 그러니 미성년자에게는 금주교육이, 만 19세가 넘은 성년에겐 음주교육이 적절할 것이다.

    음주교육은 술맛을 보면서 하는 게 효율적이다. 옛날에는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음주교육이 있었다. ‘향음주례(鄕飮酒禮)’다. 중국에선 주나라 때부터, 우리는 고려시대에 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이 집현전에 지시해 1474년 성종 5년에 완성된 ‘국조오례의’에 편재되면서 일반화했다. 음력 10월에 고을의 유지와 유생들이 향교나 서원에 모여 주연을 함께 즐기던 의례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 예절 바르게 술을 권하고, 어른을 존중하고 덕망 있는 인물을 높이며 예법과 겸양의 풍속을 북돋게 했다.

    근·현대에 이르러 예법을 전달하는 음주교육은 사라졌다. 주세(酒稅)가 생기고 밀주·음주 단속이 강화되면서 대신 금주교육이나 절주교육이 생겨났다. 현재 공익 차원에서 시행되는 음주교육은 주로 알코올 중독의 폐해를 알리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변화의 싹이 돋았다.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마련된 것. 이 법률 제18조는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제17조에 따라 설립된 단체는 건전하고 품위 있는 술 문화 조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는 ‘건전한 술문화교육단’을 꾸려 2010년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전국 10개 지역에서 음주문화교육을 실시했다. 국가 차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금주교육이 아니라 음주문화교육을 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아닐까.

    아이들에게 술을 가르치자!

    2010년 12월7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건전한 술 문화 교육. 한 학생이 술 취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는 안경을 쓰고 책을 집으려 하고 있다(왼쪽).

    이 아이들을 어찌할꼬!

    건전한 술문화교육단의 단장은 중앙대 정헌배 교수가 맡았다. 또한 음주예방교육을 담당해온 한국주류연구원,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가 동참했고, 한경대 우리술연구소 이종기 소장,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 정철 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이문주 박사, 디아지오코리아 전 대표인 김정식 교수, 인터솔류션 김갑식 대표 등 술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필자는 막걸리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교육단에 참여했다. 참여자들끼리 의견을 모아 ‘아름다운 삶, 책임 있는 음주문화’라는 소책자를 만들었고, 농수산물유통공사와 전국 시도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음주교육을 하게 됐다.

    강연을 하러 찾아간 곳은 인천의 부평고와 대구시교육청. 2시간 강의의 첫 시간은 ‘우리 술과 우리 문화’, 둘째 시간은 ‘나를 지키는 책임 있는 음주’가 주제였다. 첫 시간은 필자가, 두 번째 시간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나장원 연구원이 진행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필자로서는 처음이었다. 성인이 아닌 학생들이라 술을 마시며 교육을 할 수도 없었다. 학생들 또한 무슨 교육을 받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강좌가 아니다 보니 강의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다.

    머리를 짜낸 끝에 강사들은 최대한 그 학교의 실정에 맞는 강의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필자가 부평고에서 주목한 것은 축구부로 유명한 이 학교가 국가대표 A매치 출전 선수 최다 배출 고교라는 점이었다.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이근호, 조용형, 김정우, 김형일, 김영철, 박용호 선수 등이 모두 부평고 출신이다.

    그래서 축구 얘기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앞서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대한민국 대표 막걸리 16강’ 선발대회를 치렀다는 얘기를 했다. 미국 맥주회사 버드와이저는 월드컵 공식 스폰서 회사이고, 일본 술 회사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홍보활동을 폈다면서 월드컵과 술의 관계를 들려줬다. 우리 막걸리는 아직 공식후원사가 될 만큼 성장하지 않았지만, 조기 축구나 등산 뒤에 갈증 해소를 위해 마시기 좋은 ‘음료’라고도 했다. 이 대목까지는 학생들이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런데 축구와 술의 함수관계 이야기를 지나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술을 왜 마시는지, 술을 마실 때 왜 예절이 필요한지 따위를 얘기하는 대목에 이르자 학생들은 절반 이상 책상에 엎드리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달성고 학생 500명가량이 모인 대구시교육청에서의 강연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동원 예비군들처럼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듯했다. 이교도 앞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설교하는 하는 것 같았고, 포로들을 모아놓고 승전국의 위대함을 외치는 것과 같았다.

    필자는 기업 임원, 고위공직자, 양조기술을 배우려는 사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강연을 해왔다. 강의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고교생 음주교육은 이것과 차원이 다르다. 강의를 듣겠다는 의욕이 전혀 없거나 이미 주량에서 진도가 꽤 많이 나가 있는 ‘어린 고수’들이 대상이다.

    연전에 개그맨 J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주교육을 하려고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다. 그가 음주교육을 한다면 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도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을 것이다. 학생들과 그 사이에는 이미 라포(Rapport·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 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가 된다)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민속학자가 현지조사를 할 때에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도 라포 형성이다. 상대가 내 질문에 잘 대답해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한 뒤라야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를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

    ‘라포’ 만들기

    부평고에서 축구 얘기를 한 것도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라포가 형성됐는지는 상대의 웃음이나 눈빛 같은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로선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짧은 시간에 라포를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라포가 형성된 연예인이나 방송인에게 음주교육을 맡기면 좋겠지만 이는 1회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라포를 형성하기가 비교적 쉬운 사람은 누굴까. 보건교사, 동문회 선배, 지역 명사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음주교육은 친근한 공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건전한 술문화교육단이 지향한 교육은 술의 유해성을 강조하려는 예방교육이 아니었다. 술의 문화와 역사, 술 제조 방법, 술이 농업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 우리 술의 정체성 등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물어보면 최초의 음주 시기는 중학생 때라는 응답이 많이 나온다. 수학여행 때 과자 밑에 술병을 숨겨오고, 생수통에 소주를 담아서 선생님 몰래 마셨다는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부평고 학생들에게 처음 술을 마신 게 언제였냐고 물어보니 “중학교 1학년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마시는 걸 보고 따라 마셨다” “15살 때 형과 형 친구들하고 마셨다” “중3 생일에 친구가 권해서” “중학교 2학년 때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마셨다는 답이 많이 나왔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음주를 법률로 금하는 나이부터 술에 노출돼 있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이 술에 대해 가진 정보는 편협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이기도 하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술에 대해 가장 궁금한 점을 적어보라고 했다. “밥처럼 먹을 수 있는 술은 없나요?”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방법은?” “술은 왜 이렇게 맛있는가요?” 같은 좀 장난스러운 질문도 있었지만, 술의 제조방법과 기원, 종류, 효능에 대해 궁금하다는 질문이 많았다. “홍조증을 해결할 방법이 없나요?” “술을 10잔 먹으면 구토를 해요. 왜 그러죠?” “술을 많이 마시면 왜 집중력이 떨어지나요?” “술을 마시면 왜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지요?” “왜 개인에 따라 취하는 정도가 다른가요?” 등 과학적인 질문들도 해왔다.

    술 문화에 대해서는 “왜 회식 때 막걸리보다는 소주를 더 마시나요?” “어머니께서 저더러 술 마실 줄 아느냐고 물으시면서 ‘술 마실 줄 모르면 사회 나가서 어쩌려고?’ 하셨는데요, 술 마시는 데도 방법이 있나요? 그냥 마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올바르지 않은 술 문화가 정착된 배경은?” “소주 광고에 왜 여자 연예인이 나오나요?”라고 물었다.

    술을 아끼게 하라

    청소년에게 단지 술 지식을 전달하려 하면 술 강의는 실패로 끝날 공산이 크다. 건전한 술문화교육단을 꾸릴 때 ‘가장 효율적인 음주교육은 술 빚기 체험’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필자도 동의한다. 강당에 몇 백 명을 몰아넣고 음주교육을 한다는 게 자칫 실적 위주의 교육으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음주교육이 이뤄지려면 20~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서너 차례의 반복교육을 해야 한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중학생을 대상으로 5차례의 음주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비록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막걸리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은 술 빚기 실습이다. 사람들은 술이 익어가면서 맛이 변하고 마침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다. 자신이 술을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술을 창조했다는 성취감으로 이어져 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술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충 답이 좁혀진 걸까. 마구 술을 들이붓기 시작하는 만 19세 무렵의 청소년들에게 음주교육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교육은 술 문화에 대한 고상한 정보와 술 빚기 체험을 통해서 이뤄진다면 더욱 효율적인 것이라고. 그리고 강사는 청소년과 친근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이제 수능을 막 치른 고3 학생들에게 술빚기 실습을 하면 어떨까. 술은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몸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게 좋다. 술 빚기는 알코올을 생성하는 발효과학의 하나다. 체험을 통해 발효과학을 이해하다 보면 술의 본체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술은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음식이다. 논에서 거두는 쌀로, 밭에서 나는 밀과 보리로 만드는 기호식품이다. 술은 복잡한 기계가 만드는 전자제품이나 기발한 상품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밥을 짓고 누룩을 섞어 적당한 온도에 일주일쯤 놓아두면 완성되는 발효식품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우리 할머니들이 김치처럼 부엌에서 담그던 귀한 음식이 술이라는 것을 알리면 술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것이다. 술이 인류와 동행해온 의·식·주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술을 보는 청소년들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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