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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국물’에서 ‘JSA 공동정사구역’까지

‘용의 국물’에서 ‘JSA 공동정사구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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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디오 가게에 가면 한쪽 구석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성인 에로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성인 비디오의 특징은 극장용 영화의 제목을 에로틱하게 패러디한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목을 곁눈질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질 수 있다. ‘텔미썸씽’과 똑같은 필체로 인쇄된 ‘털밑썸씽’을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국내 성인용 비디오 영화. 흔히 ‘에로 영화’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16mm 성인 비디오는 B급 문화의 ‘첨병’으로 불린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16mm 필름으로 제작되는 에로 영화의 줄거리는 비슷하다. 스무살을 갓 넘어선 미모의 여배우들이 펼치는 ‘육탄공세’가 90% 이상이다.

이 성인용 비디오들의 제목은 기발하다 못해 기상천외하다는 탄성이 나올 정도다. 일부 제목들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의 경우 소비자들은 광고와 각종 매체의 영화 관련 기사를 통해 줄거리와 작품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다. 최근엔 인터넷 영화동호회가 등장. 흥행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나 에로 비디오는 다르다.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봉쇄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비디오 대여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표지를 장식한 사진과 뒷면에 간략하게 소개된 줄거리를 통해 작품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에로 비디오 제작자들은 제목을 정하기 위해 고심한다. 마치 신문 잡지의 편집자들이 눈에 띄는 제목을 뽑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는 것처럼 에로 비디오 제작자들도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한다.



에로 비디오 제작자들이 말하는 첫째 원칙은 우선 ‘튀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디오를 찾는 이의 눈에 금방 띄면 일단 ‘성공작’이다. 입소문을 탈 정도로 ‘쇼킹’한 제목이면 ‘대박’으로 볼 수 있다.

16mm필름으로 촬영된 에로 비디오가 처음부터 극장가가 아닌 안방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무렵으로 볼 수 있다. 1982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이 첫 테이프를 끊은 뒤 한국 영화는 성인물이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모두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러한 현상은 전두환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영화는 ‘3S(Sports, Sex, Screen)’라는 은밀한 지침 아래 소재가 에로물에만 한정돼 있었다. 요즘 이름있는 중견 배우나 탤런트 가운데 통과의례 격으로 에로 영화에 얼굴을 내비쳤던 이들도 적지 않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한국영화는 전환기를 맞았다. 올림픽을 계기로 저가의 VCR가 보급됐고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도 급증했다. 또 극장용 35mm가 아닌 16mm 필름을 이용하는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선보이면서 저예산 비디오 영화들이 나타났다.

남녀간의 정사장면과 여배우의 노출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소위 ‘에로 비디오 영화’라는 신종 장르가 탄생했다. 그 신호탄이 됐던 작품 중 하나가 ‘산머루’였다. 이 영화는 곽은경이라는 여배우를 등장시켜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뜨거운 장면을 선보였다.

뒤이어 비디오 대여용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영화 제목은 극장용 영화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맞바람’, ‘땅꾼과 부인’ 등 당시의 비디오 영화들은 그다지 노골적이지 않다.



‘유호’와 ‘한 시네마타운’

이 무렵의 에로 영화는 아직 극장용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일부 작품도 있었다. 이두용 감독의 ‘뽕’을 패러디한 ‘뽕 따러 가세’ 같은 작품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언뜻 보면 ‘뽕’으로 보이지만, 구석에 ‘따러가세’란 문구가 보일 듯 말 듯하게 들어 있었다.

80년대의 분위기는 91년까지 이어진다. 검열의 칼날이 예리하던 시대여서 제목은 ‘은근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었다. ‘벽장 속의 유부녀’, ‘빨간 사냥꾼’, ‘덩쿨장미’, ‘야시장’, ‘금지된 정사’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그 가운데 ‘야시장’은 속편과 몇 편의 연작을 내놓아 비디오 성인영화 최초의 시리즈물로 등록됐다.

일부에서는 ‘덩쿨장미’가 마사 쿨리지 감독의 ‘넝쿨장미’를 패러디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 ‘덩쿨장미’가 앞서 나왔기 때문이다.

‘유호프로덕션’과 ‘한 시네마타운’은 90년대 중반 이후 비디오 영화가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호는 ‘야시장’, ‘빨간 선인장’, ‘위험한 여자’를 비롯해 ‘야생마’ 시리즈를 내놓았다. ‘야시장’ 시리즈는 그야말로 매춘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고, ‘금지된 정사’ 시리즈는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정사를 다뤘다.

90년대 초반 ‘정사’라는 제목을 붙인 영화들이 한동안 비디오숍을 장식했다. 당시 성인용 비디오 영화를 즐기는 이들은 거의 청·중년층의 남성이었던 까닭에 유부녀의 외도를 다룬 ‘정사’류의 영화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었다. ‘금지된 정사’, ‘비밀 정사’, ‘B 타임의 정사’ 등이 이 흐름에 가세했던 영화들이다.

줄거리를 암시하는 제목이 주류를 이루던 성인 비디오 시장에 일대 전환점이 찾아왔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는 이 무렵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뒷날 에로영화의 대명사가 됐다. ‘한 시네마타운’이 95년 내놓은 이 영화는 ‘젖소’라는 컨셉트에 걸맞게 가슴이 큰 여배우 진도희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선보였다.

‘젖소 시리즈’로 최고의 에로 스타 자리에 올랐던 진도희. 그는 ‘젖소’ 이미지를 적극 부각시켜 눈길을 끌었다. 진도희는 한 주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제가 젖소잖아요. 그래서 우유 CF를 찍고 싶어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젖소부인’의 열기는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비디오숍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빌려가던 사람들이 아예 드러내놓고 성인물을 찾게 된 것도 이때다.

‘젖소부인 바람났네’는 눈에 띄는 제목 탓에 그 자체가 유행어가 됐다. 그 뒤 한 시네마타운이 ‘부인’류의 제목을 단 영화를 줄줄이 내놓으면서 한국 에로 비디오 시장은 열기를 더해갔다.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한국 영화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더 이상 에로 영화는 무시해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마침내 에로 비디오가 그늘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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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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