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간에서 똥장군을 열흘 남짓에 한번씩 비워 거름으로 쓴다.
아이들 여름방학 때 손님들이 많이 온다. 여름휴가 삼아. 손님 치르다 보면 여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멀리서 일부러 온 얼굴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고.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시골로 데려오고 싶어한다. 도시서 자라는 아이들이 자연을 너무 모른다는 걸 알기에. 바라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만 보내고 싶어하기도 한다. 어른은 돈 벌어야 하니 아이들을 맡아줄 수 없냐고. 시골 외갓집 노릇을 해달라는 이야기인데…….
사실 아이들 손님이 가장 어렵다. 어른 손님은, 우리 먹듯 풋고추에 된장으로 대접해도 달게 드신다. 한데 아이들은 어찌 대접해야 하는지 막막하다. 도시 아이들에게 푸성귀 반찬이 입에 맞기나 하나!
까다로운 아이들 손님
아이들 처지에서 보면 우리 집에 있는 건 힘든 일이다. 텔레비전이 나오나, 컴퓨터를 할 수 있나. 오줌 똥 누는 일부터 힘들고 모두 낯설다. 이게 벼야, 이게 옥수수야. 어른들은 알려주고 싶어하지만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어른들은 이 기회에 ‘체험’을 바란다. 그러니까 농사일을 시켜주었으면 하는 건데 우리 처지에선 겁나는 소리다. 아이들이 뭐를 어떻게 할지. ‘그렇다면 김을 매면 되지요’ 한다. 우리도 한여름 땡볕에서 안 하는 일을, 아이들에게 시키라고? 농사 하면 힘든 거만 떠올릴 텐데….
1996~97년 계절학교를 열어본 적이 있다. 도시 아이들을 맞아 산골 생활을 체험시키는….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어 아이들을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며 온갖 체험을 시켰다. 아이들은 우르르 들판을 쏘다니며 즐거워했고.
그런데 농사 하며 살면 살수록 이런 일에 시들하다. 자기 삶을 떠난 ‘체험’에 시들한 거다. 보는 게 안 보는 것보다야 좋겠지. 하지만 자기 부모가 농사일을 안 하는데. 농사일을 안 해도 밥이 입에 들어오는데. 굳이 ‘체험’하자고 온갖 부산을 떠는 일이 내키지 않는다.
만일 우리 집에 아이들이 온다면 ‘체험’이 아닌 삶을 잔잔히 주고받고 싶다. 자기 손으로 밥 해 먹고. 자기 손으로 빨래하고. 도시는 많은 부분을 나누지만, 자연은 모든 걸 하나로 모아준다. 그렇기에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기본. 자기 목숨을 스스로 부지하는 일. 이걸 스스로 해 보는 거지. 자연은 아이가 끌리는 만큼, 일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만큼 하도록 해주고. 아이에게 아무런 자발성이 없다면 자연 속에 내버려두면 된다. 심심하게. 굳이 체험을 해야 한다면 ‘심심함’을 체험시키는 게 어떨까?
서울서 함께 일하던 후배가 ‘방과후 공부방’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기가 베고 잘 베개를 손바느질로 만들고. 하루 세 끼 자기들이 해 먹어가며. 낮에는 강으로 물놀이 가고. 저녁에는 가마솥 뚜껑에 불 지펴 고기 구워먹고. 논밭 구경 다니고. 유치원 때부터 상추 키우고, 유기농산물 먹으며 자란 아이들이라 잘 지냈다. 하지만 아이들 하나하나와 삶을 주고받지 못했다.
이런저런 경험에서, ‘우르르’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르르 몰려다니면 재미는 있겠지. 하지만 장소가 바뀌었을 뿐,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다 보면 자연에서 지내보려는 본뜻은 사라지기 십상이다.
며칠 전 고2가 된 아들을 이번 여름방학에 보내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생활에 너무 지쳐 있단다. 단 일주일뿐인 고2 여름방학을 우리 집에서 보내도록 해달라는.
생각해본다. 혼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을 징검다리로 산 속에서 며칠 지낸다 마음먹고. 비록 텐트이지만 스스로 집도 짓고. 스스로 밥도 해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어슬렁거리고 싶으면 그러고. 단식을 하며 자기 몸을 돌보듯 복잡한 정신을 비울 수 있다면.
자기 목숨 부지하는 일말고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시간들. 산 속에서 지내며 어려움에 부닥치면 자기 힘으로 풀어보고. 그러다 자기 속에 있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지친 자신을 추스를 수 있다면…. 한번 와서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