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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와 대영제국의 초석 런던城

음습한 성벽에 엉겨붙은 폭군의 광기와 피의 역사

헨리 8세와 대영제국의 초석 런던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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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와 대영제국의 초석 런던城

런던성 안쪽 풍경. 멀리 화이트 타워가 보인다.

높이 27m의 화이트 타워를 가운데 두고 두터운 석축의 성벽이 에워싼 런던성은 사각 구조인데 그리 넓지는 않다. 하지만 곳곳에 제 나름의 기능을 가진 부속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헨리 7세(1447~1509, 재위 1485~1509)가 세상을 떠난 1509년까지 요새 겸 왕궁으로 쓰였다. 성벽은 높고 육중하며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다. 곳곳에 경계를 위한 망루도 서 있다.

동쪽 성벽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런던의 젖줄 템스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 위로 우람한 타워 브리지가 걸려 있는데 큰 배가 지나갈 때면 옛날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가운데가 위로 들린다. 그 아래로 크고 작은 배들이 들고난다. 여름철 관광시즌이면 화이트 타워 앞 잔디밭에선 16세기의 복장을 하고 무기를 손에 든 배우들이 당시의 생활상을 코믹하게 재현한다. 활쏘기와 음악공연도 펼쳐진다. 이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런던성을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성이 이른바 ‘피의 성’으로 바뀌게 된 것은 헨리 8세(1491~1547, 재위 1509~47)가 등극하면서부터다. 그는 왕궁을 런던 시내의 화이트홀(다우닝가 10번지에 위치한 지금의 수상 집무실)로 옮기고 이곳을 무기고 겸 감옥으로 사용했다.

런던성의 변화는 당시(15~16세기) 영국 역사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변방의 섬나라 영국에 절대왕권이 확립되고, 프랑스와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독일) 등 유럽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던 것.

그 첫 주자는 각기 백장미와 흑장미 휘장을 달고 싸운 이른바 장미전쟁(1455~85)이 끝나면서 왕위에 올라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 그는 봉건 가신층을 해산시키고 상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에 따라 신흥 계급의 등장이 촉진됐고 국고(國庫)가 충실해지는 등 국가의 기틀이 다져졌다. 절대왕권이란 이렇듯 정치적 산물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성과였던 것이다.



그 뒤를 이은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단행해 국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앵글리칸 처치(Anglican Church), 즉 성공회를 창시했다. 영국은 비로소 외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국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다져진 왕조의 기반은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1533~ 1603, 재위 1558~1603) 시대에 꽃을 피운다.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란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헨리 8세는 왕위에 오른 뒤 런던성을 떠났지만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런던성에는 오히려 왕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워졌다. 그걸 증명하는 것이 화이트 타워 뒤편에 있는 ‘타워 그린’이다. 이름 그대로 그리 넓지 않은 녹색 잔디마당에는 도끼로 여러 사람의 목을 내리쳤던 스캐폴드(scaffold)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헨리 8세는 재위 중 두 번째 왕비 앤 불린과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자신의 일급 고문관이었던 토머스 모어 등 7명을 그곳에서 참수했다. 이런 몹쓸 전통(?)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처형된 사람들의 이름과 처형일시가 적힌 비석이 서 있다.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헨리 8세는 헨리 7세와 요크 왕가의 첫 번째 왕인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형 아서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이다. 왕위를 이어받을 형이 있었기에 그는 청년시절 스포츠와 사냥, 독서 등을 하며 자유분방하게 자랄 수 있었다. 덕분에 1509년 그가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사람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영국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 것이라며.

그는 왕위에 오르면서 미망인이자 형수인 아라곤 왕국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스페인어로는 카타리나)과 결혼했다. 다섯 살 연상이었던 그녀는 에스파냐 왕국의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 여왕 사이에 태어난 공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규수였다. 콜럼버스를 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하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낸 이가 바로 캐서린의 부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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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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