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유명 가수들 태반은 음치다

음치치료사 이병원이 말하는 한국가요계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입력2004-11-16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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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에서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는 건 큰 스트레스다. 노래의 외길을 걸어 중졸 학력으로 교수가 된 ‘이병원음치클리닉’원장 이병원씨는 “음치는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십수 년 사이 노래방이 전국에 퍼지면서 ‘가요열창 시대’의 도도한 물결이 이 ‘풍진세상’을 휩쓸고 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나름의 이유를 대며 한 곡조 뽑는 풍조가 오늘의 현실이 된 것이다. 노래가 생활문화로 자리잡을 만큼 가깝고 친숙한 세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연시 송년파티가 아니더라도 이젠 서너 명만 모였다 하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는 시대가 됐다. 모임마다 노래 한 곡조쯤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국민에게 일반화한 시점이다. 한때는 서너 명이 모이면 섰다판이요, 고스톱판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노래 메들리를 뽑는다.

    이 때문에 음치들에겐 수난의 세상이기도 하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면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노래를 못하면 못난이 취급을 받아온 지 오래다. 파티석상에서, 친목 모임에서, 심지어 엄숙한 종친회 모임이나 시골 상가에서도 나훈아나 조용필의 노래 한 곡은 불러야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게 우리네 정서가 됐고 문화현상이 되었다.

    ‘가요열창 시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주눅이 들어 모임을 피하기도 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래방을 찾아 음정과 박자를 교정하느라 대학입시 수험생보다 더한 훈련을 받고 노력을 기울이는 풍조도 생겨나고 있다.



    서수남, 구지윤, 현미, 이수정 등 노래 전도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노래 교사들 중에 이병원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기존 서수남 구지윤의 노래 교수기법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인 노래교습 콘텐츠를 개발해 음치를 교정하는 주인공이다. 이씨는 누구나 쉽게 음치를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음치는 분명 ‘질병’이지만 ‘난치병’은 아닙니다. 99.9%가 상상음치기 때문에 본인이 자신감만 갖는다면 얼마든지 치유가 가능합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단숨에 완치할 수도 있지요.”

    그는 현재 이병원팝아카데미 내에 음치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분당 삼성플라자, 현대백화점 천호점, 애경백화점 구로점, 롯데백화점 강남점 잠실점, 중앙공무원교육원 등에 출강하고 있다. 그밖에 MBC KBS SBS 등에서 가요교실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션연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노래강사로 활동중인 사람은 1800~2000명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이 음담패설 위주의 강의와 노래방기계에 맞춰 무조건 따라부르는 옛 서당식 강습에 머물고 있다.

    이에 비해 이씨의 강의는 가히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씨의 음치교정 교수법은 대학강단에까지 이어져 그는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에 개설된 음치클리닉 가요지도자과정 주임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는 노래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해당 노래의 리듬구조,멜로디의 전개과정, 호흡, 음량을 이해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노래의 성격을 이해하고 노래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대중가요가 지니는 사회적 현실적 의미와 필요성을 이해시키며 현실에서 부딪치는 스트레스를 줄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대중가요는 우리들에게 ‘흥’과 ‘쉼’을 줄 뿐아니라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까닭입니다.”

    이씨는 가요강사 중에 노래방기계를 주로 사용하고 율동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강사는 노래선생을 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가창을 위한 ‘모션’과 ‘액션’이 가끔 필요하지만 율동은 노래를 이미 잘하는 사람들이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기 위해, 혹은 회사의 단체 합창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지 노래를 가르치는 데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래 지도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와이담 이야기’가 대부분인 일부 강좌는 노래교실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가요강사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런 스타일의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는 노래를 모독하는 태도라고 비판한다.

    최종학력 중졸의 ‘교수’

    서울 강남구 대치3동 수호빌딩 2층에 자리잡은 이병원음치클리닉. 사무실은 아담한 개인병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올해 나이 39세. 최종학력 중졸. 그런 그가 지금은 세종대 뿐 아니라 다섯 군데 노래교실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인터뷰는 그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여러 번으로 나눠 진행했다. 장시간의 인터뷰에 응할 수 없는 그의 사정을 고려한 탓이다.

    이병원은 가수를 지망했으나, 가수가 돼서는 실패를 거듭했다. 가수생활의 실패가 음치클리닉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음반 석 장을 냈어요. 결과는 모두 엉망이었습니다. 뜨지 못한 거죠. 가수로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수생활을 청산하고 노래교습을 시작한 거지요. 하지만 나보다 노래 못하는 가수들이 뜨는 걸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가수라면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까?

    “물론이죠.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 중 절반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가수는 ‘저렇게 노래를 못 부르는데 어떻게 가수가 될 수 있었을까’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런 가수를 직접 거명할 수도 있습니까?

    그는 단박에 트로트 가수로 한창 뜨고 있는 S, 60년대 가수 N, 70년대 가수 K, C, 80년대의 K 등을 들었다. 여기서 이니셜로 이름을 대신하는 것은 그가 실명을 소개하지 말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요즘 이른바 중견가수라는 30, 40대 중에 짜증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미남가수라는 S, 풍만한 여가수 K 등도 노래를 못하는 대표적 가수라고 볼 수 있죠.”

    -요즘 신세대 가수들은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요즘 신인가수 중에 장래를 걸 만한 친구들이 있기는 합니다. 비틀스 나 사이먼과 가펑클 같은 스테디셀러 가수들의 싹을 보는 듯한 신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악화(惡貨)가 더 많죠.”

    -우리 가요계의 척박한 토양에 비추어 비틀스와 같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가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음악 현실이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외국의 음악 트렌드를 실시간으로 도입할 수 있는 등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비해 여건이 대단히 좋아졌습니다. 이런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면 어느 면에선 자기 기만이고 직무유기죠.”

    엉터리 음악교육

    -노래방이 여전히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일부에선 성경만큼 지속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십니까?

    “국민 정서가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한국인들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합니다. 노래는 없고 소음만 있을 뿐이죠.”

    -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귀를 안 열기 때문이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요. 대학마다 음대가 있지만 제대로 된 음대는 없다고 봐요. 서울대 음대도 마찬가지죠. 구조적으로 음치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교육은 늘 엉터리예요. 고음이나 저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4분음표나 숨을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아요. 다만 노래를 부를 때, 박자가 안 맞거나 음정이 맞지 않으면 왜 그러냐고 따지기만 해요. 음악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면 음치가 나올 수 없어요. 성교육만 제대로 하면 석녀가 나올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초·중·고교 음악교육이 엉터리라고 단언한다. 노래를 가르치는 음악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모방만 하려 들고 그것도 맹목적인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

    “가요사업을 패스트푸드점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탕주의의 장사꾼 놀음으로는 도저히 비틀스와 같은 스테디셀러를 생산할 수 없어요. 요즘 우리 대중가요의 생명력은 길어야 3개월입니다. ‘초로 가요’라고 할 정도입니다. ‘반짝 가요’에 머문다는 거죠. 음반의 생명력이 하루살이보다 짧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다고 보십니까?

    “방송 메커니즘 때문이죠. 추잉검처럼 재빨리 단물만 빨아먹고 다른 것을 취하는 것 말이에요. 방송 홍보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가수들이 자신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한 채 방송이 요구하는 표피적 피상적 노래 솜씨만 보이면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외피에만 치중한 나머지 남이 대신 불러준 노래에 립싱크만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거지요. 이러니 가수 중에 음치가 많을 수밖에요.”

    그는 가요 비평가가 부족하고 비평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이클 잭슨에게도 노래선생이 있습니다. 마이클 볼튼이나 셀린 디온 역시 노래선생을 두고 부단히 노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성을 볼 때 음악교사를 별도로 둔다는 게 사치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철저한 프로정신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톱스타는 자신이 왕이고 황제예요. 감히 어느 누구도 얼씬거릴 수가 없습니다. 노래 잘 부른다는 조용필도 단점은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본인도 그러려니와 비평가들도 제대로 지적을 하지 못해요.”

    -조용필도 단점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한국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조용필을 들고 싶습니다. 가창력, 기교, 성량 면에서 그를 따를 가수가 없다고 보는데 그런 그에게도 단점이 있다고 하니 다소 충격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견고한 아성을 쌓은 가수를 시쳇말로 ‘뽀개는’ 것은 아닙니까.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와 못 부르는 가수를 구체적으로 구별해 주었으면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기보다 국민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를 따지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조용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죠. 다음으로 나훈아, 현철, 태진아, 송대관, 주현미 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가수들로는 HOT, SES, 핑클 등이 그런 가수이지요. 젊은 가수들 중에 음악성도 있고, 전문성도 갖고 있는 박정현, 박완규, 김조한 등이 대형가수로 클 재목들입니다.”

    -국민이 애창하는 대중가요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뭐니뭐니해도 ‘남행열차’죠. 그리고 ‘소양강처녀’, ‘허공’, 현철과 주현미의 노래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노래들은 우리 정서에 호소하고 있어요. 흥겨운 듯하면서도 가슴을 적셔주는 우수어린 멜로디들이죠. 특히 40, 50대 이상이 좋아하는 트로트는 20, 30대들도 모임에서 즐겨 부릅니다. 어려운 시절, 처해있는 상황이 답답할 때 이런 단순한 구조의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지금도 느끼고 있고, 또 부르기 편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가요는 사회적 환경, 생활수준과 늘 궤를 같이합니다.”

    -중년 여성들이 노래방을 많이 찾는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일까요.

    “주부들에겐 대체로 독자성이나 독립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노래방에 가면 나만의 특성을 나타내지 않아도 됩니다. 함께 노래부르면서 정서를 공유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만의 개성’을 강조하는 꽃꽂이나 집필, 영어회화 익히기 등을 외면하고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익명문화’에 빠져들어 자신을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뒤늦게 친구들을 만나지만 허망한 생각이 들 뿐이죠. 그래서 노래방이 도입된 초기엔 주부들 차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노래방을 더 자주 간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제 사무실을 찾는 음치들도 처음엔 여성이 70%였으나 지금은 남성이 70%입니다. 노래의 효용성을 따질 때 여성보다 남성이 더 절실한 입장이 아닌가 합니다.”

    무너지는 음악간 경계

    -대중음악의 세계적 트렌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클래식과 팝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팝이 주는 감흥도 클래식에 버금갑니다. 재즈의 음악적 깊이는 성악 이상이라고 봅니다. 현재 서구에선 클래식 전공자 중에서 재즈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즈는 현대의 고전입니다. 학문적 깊이에서 뿐 아니라 음색에서 단연 고전이 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대중가요를 부르면 천박하거나 지적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기 일쑤입니다. 지적 허영심이 만들어낸 관념으로 한마디로 허구지요. 대중가요든 뽕짝이든 왜색가요든 좋은 것은 좋은 겁니다.”

    이씨는 기존 음악계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음악계의 앙팡 테리블이자 반항아를 자처하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그의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그렇다면 이병원은 어떤 사람일까.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갈 결심을 한 그는 정규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학업을 포기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기타를 잘쳤다. 이는 친형 이병형의 영향이 크다. 색소폰 주자 이병형은 ‘라스트 챈스’ 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학교에 가면 10개가 넘는 과목을 마스터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음악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숙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것을 하려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자 당장 먹고살 방편이 막막했다. 그래서 종이가공 공장에 들어가 종이를 나르는 짐발이 노릇을 했다. 음악에 대한 갈증에 목말랐던 그는 그 생활에 곧 염증을 냈다. 종이가공 공장을 그만두고 18세 때 서울 석관동에 기타교실을 차렸다. 보증금 30만원을 주고 빌린 15평짜리 기타연습소가 그의 첫 음악교실인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비틀스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헤이 주드’ ‘오블라디 오블라다’ ‘렛잇비’ ‘예스터데이’ 등의 연주법을 익히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어요. 그때 익힌 기타솜씨가 저의 가장 큰 밑천입니다.”

    그후 그는 이글스와 맨해튼스의 음악에 푹 빠진다. 그때는 연주가로서 인생을 마감하는 게 목표였다.

    “에릭 클랩튼이나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기타 솜씨를 익힌다면 나도 한국에서 대가가 될 거라고 자부했습니다. 특히 저는 서양의 팝을 익히고 한국의 선율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면 서양사람들이 놀라 자빠질 음악적 진폭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교포 출신의 팝가수 잭 리가 있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동양정신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기타교실만으로 그의 음악적 욕구가 충족될 수 없었다. 19세 때 그는 강원도 홍천강의 작은 섬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섬의 폐가를 보수한 뒤 도 닦는 기분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가지고 간 것은 기타 2대와 LP음반 500장, 오선지, 앰프가 전부였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첫 음반

    6개월을 음악공부에 빠져 지내다 상경, 곧바로 그룹사운드 ‘미완성’을 결성한다. 그는 기타리스트였으나 싱어보다도 레퍼토리가 많아 노래도 자주 불렀다. 서울 무대는 역부족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주로 지방의 밤무대를 돌며 공연했다. 밤무대 공연을 통해 번 돈으로 24세 되던 해 첫 음반을 냈다. 하지만 ‘밤이 내린 설악’을 타이틀곡으로 한 이 음반은 대중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팔릴 수가 없었죠. 대중가요는 혼자 한껏 멋을 내는 게 아닙니다. 판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두지만 대중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홀로 마스터베이션을 한 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밤이 내린 설악’을 불러주었다

    단순 묘사로 이루어진 이 곡의 가사는, 듣는 이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곡을 쓰기 위해 설악산을 집 삼아 수개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그런 가사로 노래가 뜨기를 기대한 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들인 노력에 비해선 졸작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노래가 뜬다고 보십니까?

    “우선 메시지가 있어야죠. 시대적 상황과 대중이 공감하는 멜로디, 리듬, 가사를 갖춰야 노래가 뜰 수 있습니다. 음치클리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는 가능한 한 음치클리닉 쪽으로 인터뷰의 방향을 이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슬그머니 자신의 ‘업장’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 때문인 듯했다.

    “국민가요 시대를 맞아서 저는 새로운 직업 장르를 뚫은 개척자입니다. 대학에 음치클리닉 과목을 설치하고 학원을 만들고 지도자 과정을 두어 음치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세계최초일 겁니다.”

    이씨보다 먼저 시작한 1세대 노래교실 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난처한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노래교실이라기보다는 동네사랑방이라고 불러야 옳을 겁니다.”

    그는 나름의 노래교실 콘텐츠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자부한다.

    “음치는 없다”

    “근본적으로 음치는 없습니다. 음악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환경적으로 나온 돌연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어떤 가수보다 노래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노래할 때 미적거리면 음치를 치료할 수 없어요. 내숭을 떠는 사람일수록 노래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자신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면 저도 모르게 음치 중병환자가 되고 말아요.

    반대로 용기를 내 자신있게 밀어붙이면서 리듬, 박자, 음정을 익히면 누구나 ‘명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음치가 불러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노래는 많습니다. 서투르고 위태위태하면서 넘어가는 노래는 기름됫박처럼 매끄러운 노래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맛깔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는 음치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 다섯 곡을 들었다. 노사연의 ‘만남’, 주병선의 ‘칠갑산’, 김수희의 ‘남행열차’와 ‘애모’, 그리고 김태희의 ‘소양강처녀’가 바로 그것. 이 곡들은 따라 부르기 쉽기 때문에 노래에 서투른 사람도 구성지게 부를 수 있다. 노래가 쉬우면 용기도 생겨, 음정이 다소 불안하거나 가사가 엉켜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이런 노래로 연습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게 돼 어느새 음치를 졸업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들 다섯 노래를 매일 열 번씩 열흘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부르면 저절로 노래방 명가수 대열에 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추천한 노래 잘하는 법이다.

    첫째, 의지와 자신감을 갖는다. 노래 부르는 행위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나도 잘 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음악을 많이 들어라.

    셋째, 음악을 듣되 편집해서 듣는 버릇을 기른다.

    넷째, 자신있게 소리를 낸다. 노래를 못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도 괴상한 소리로 치부하게 된다.

    다섯째,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서 듣는다. 자기 목소리와 친해지려면 소리를 객관화해서 들어보는 것이 좋다.

    여섯째,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소리를 내본다.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노래를 부르면 제 소리가 더욱 잘 들리며 선명하다. 좋은 소리가 나오므로 목소리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일곱째, 곡목 선택을 잘해야 한다. 편하고 쉬운 노래를 선택한다. 한 예로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나 ‘휘파람’도 스스로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르기 편한 노래다.

    이씨는 대화중 스스로를 ‘딴따라’에 비유했다. 이를테면 ‘나 같은 딴따라는 그 물에서 놀아야지’ ‘딴따라 세계란 독특한 마인드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등 거리낌없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필자는 한때 어느 가수가 자신을 딴따라라고 불렀다고 해서 팬과 치고받는 싸움을 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용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했지만 그는 스스럼없이 ‘딴따라’라는 말을 사용했다.

    -‘딴따라’라고 하면 자기비하일 수도 있고, 또 상대방이 사용할 때는 야유의 뉘앙스도 있는데 괜찮습니까?

    “그게 어때서요. 제 직업을 잘 표현하는 걸로 이해하는데요. 자연스럽지 않나요. 아티스트, 연예인 등의 표현보다 딴따라는 최소한 한세기 동안 인구에 회자된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요.”

    이런 일화도 있다. 밤무대에 설 때, 뒷골목 패거리들이 달려들었다. 자주 일어나는 해프닝이어서 이씨는 별로 두렵지 않았다.

    “느그덜이 밴드냐이” 하며 ‘야지’를 놓는 사투리로 접근해 오자 스스럼없이 “그렇지라우, 딴따라지라우”라고 대꾸하면서 그들과 형 동생으로 맺어져 끈끈한 우정을 쌓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영화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온통 조폭 얘기가 퍼지고 있는데 직접 조폭과 부딪히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요즘 조폭이 학교에서, 또는 뒷골목에서 하나의 문화로 얘기되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은 아니죠. 이런 분위기는 빨리 청산돼야 한다고 봐요.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 만나본 조폭, 굳이 조폭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흔히 깡패들은 생각보다 온순하고 착해요. 저는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배고플 때 밥도 얻어먹고, 때로 술도 얻어먹었으니까요. 저는 넉살이 좋아서 그들과 금방 친해지죠.”

    -밤거리, 밤무대, 그리고 연예인이라면 환각제가 연상이 되는데,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노래를 잘하기 위해 속칭 ‘뽕’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마초나 필로폰 같은 환각제에 손을 대본 적이 있습니까?

    “밤무대 시절 때로 손을 댔죠. 확실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환각제가 매력이 있어요. 신들린 사람처럼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소리도 잘 들리고, 신명이 나고, 미칠 지경이 되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좋은지 난처해 했다. 이미 손을 뗀 지도 오래고, 손을 댔던 것도 호기심에서 몇 차례 접근해 보았던 게 고작인데, 이제 확실한 공인이 된 마당에 지나온 얘기들을 새삼스럽게 밝히는 것이 이미지 관리에 좋을지 모르겠다고 주저했다.

    호기심에 손을 댄 환각제

    -지나온 그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용기가 아닐까요. 얄팍한 도덕주의에 매달리는 입장에서도 반성하고 회개한다는 변으로 이해할 것이니까요.

    “이름을 대고 싶지는 않지만 환각제를 커피에 타 마셔보았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20대 때 호기심에 짧게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달라요. 집중력이 배가 되고 스스로 생각해도 음감이 기가 막히게 잘 살아납니다. 울림이 대단하다는 거죠. 그래서 ‘아, 이래서 손을 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환각제를 사용하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10배, 20배의 에너지가 분출되죠. 다시 말하면 그것을 10일을 사용하면 100일분, 또는 200일분의 에너지를 써버리는 셈이죠. 한 달만 사용하면 아마도 1년, 혹은 2년치 에너지를 쓴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어느날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래서 환각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30대라도 노인처럼 보이는구나, 결국에는 폐인이 되어서 비참하게 피를 토하고 가는구나’ 하고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흠뻑 빠져서 헤어나기 어렵게 되기 전에 나오자고 결연히 손을 뗐습니다. 호기심에서 초입에 들어갔기 때문에 쉽게 나올 수 있었지만, 그때를 계기로 피우던 담배도 아예 끊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다면 어떻게 요약하겠습니까?

    “저는 ‘부숴진 탱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고장난 탱크’라고도 부르지요. 생각없이 밀어붙이기만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고장난 탱크’처럼 살면서 무수히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런 정신이 오늘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별명 듣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탄탄한 업소 서너 군데를 뛰면서 꽤 짭짤한 수입을 거두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날 어떤 손님이 “당신은 도대체 앵무새냐. 남의 노래만 밤낮없이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게 너를 일으키는 거냐, 아니면 너를 버리는 거냐”고 충고 섞인 핀잔을 했습니다. 그길로 짐을 정리해 보길도로 들어갔습니다. 고장난 탱크를 수리할 기회를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어부사시사의 시상을 떠올린 연못 주위를 산책하면서 처절하게 저를 버렸습니다. 저는 이처럼 충격이 있을 때 재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추진력이랄까 돌파력이 있습니다. 남들은 이를 방랑벽, 혹은 자유인 기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자유롭고 낙천적인 생활도 저의 인생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방종과 낙천은 구분해야 합니다.”

    -음악관에 대해 얘기해 주시죠.

    “좋은 생각을 가져야 좋은 음악을 풀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노래를 가르칠 때 단순히 노래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음악의 사회성을 개발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사회를 반영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자세죠. 소리는 내 마음이고 내 몸인데 이를 통해 자아를 찾아보라는 말도 합니다. 5분짜리 곡 안에 50년의 인생이 녹아있고 묻어있다는 정신을 주입시키려 합니다.”

    그는 지금 이화여대 경제학과 출신의 아내와 단란하게 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내 얘기입니다만, 저는 한때 간염을 앓으면서 방황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망가진 때였지요. 이때 아내가 학원을 차려서 가사를 도왔습니다. 아내는 알게 모르게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레스토랑을 차려서 장사를 해보았지만 통 손님이 들지 않아 가계는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이때도 아내가 주방을 맡아 설거지며 음식장만까지 도맡아 했어요.

    적토마처럼 부단하게 뛰어도 부족한 판에 병을 얻어 경기도 남양주시 덕송리에 누추한 방 한 칸을 얻어 나갔을 때도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었어요. 스스로 지치고 괴롭다면서 멀쩡한 남편을 내팽개치고 도망간 아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제가 집안을 어렵게 하는 동안 아내는 학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수입으로 우리가 일어서는 발판을 마련했죠.

    조그만 상처를 입어도, 또 남편과 사소한 다툼 끝에 훌쩍 짐을 싸고 어디론가 행방을 감춰버리는 요즘 세태에 저는 큰 복을 누리는 셈이죠. 지금은 아기 엄마로 살아가는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많이 배웁니다. 저보다 많이 배웠어도 겸손하고 헌신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제게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와 같은 응원자가 있는 한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며 좌우명을 소개했다.

    “길을 가다 절벽이 보이면 돌아서지 말라. 구멍이 없으면 직접 뚫고 나가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음치클리닉 전문대학을 설립하는 게 꿈입니다. 대학에 지도자과정을 두고, 또 한국적 정서와 결합하는 음악을 꾸준히 개발해 보급하는 학교를 만들고자 합니다. 비틀스와 같은 그룹을 만들어 세계에 심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는 곡을 쓴다. 생각은 많으나 표현이 안돼 곤혹스럽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가다듬고 곧추세운다는 각오로 계속 오선지 앞에 앉다. 그것만이 그가 살아있는 증거며 또 자신의 생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히트하고 안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그저 쓰고 또 버린다.

    이병원은 최근 작곡한 ‘초겨울’(가제)이라는 노래를 나즈막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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