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가 정년을 맞는다는 것은 직장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학자라는 직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년을 학자라는 본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전기로 받아들였다. 학자의 생애는 정년 전이나 후나 이은 자국 없이 계속된다.
나는 동복오(吳)씨 시조 휘녕(諱寧)의 28세손이다. 내가 태어난 해는 1936년이며 올해로 만 65세가 되었다. 나는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법학공부를 했으며 1959년에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창설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고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학문인 행정학을 접하게 되었다. 당초에는 이것이 생애의 직업을 결정하게 될 줄 몰랐다. 더 많은 공부를 향한 계속된 노력이 나를 행정학 교수로 만들었으며 그러한 결말에 대해 나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1966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약 2년 10개월간 피츠버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69년에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 즉시 귀국해 서울대 행정대학원 조교수로 부임했다.
1974년에는 부교수, 1979년에는 교수 발령을 받았다. 1963년부터 조교와 강사로 근무한 것을 통산하면 서울대학교에 재직한 햇수는 올해로 38년이 된다. 기타의 공직생활 경력을 합친 40여 년간의 봉사를 인정하여 정부가 주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추대해 준 것도 내게는 큰 영예다.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 학기도 강의 거른 적 없어
교수 부임 이래 시종일관 맡아온 강의는 행정학의 기초이론, 조직이론, 인사행정론이다. 20여 년 전부터는 행정개혁론 강좌를 개설해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분야들을 오래 전공해 왔으며 그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에 추가해 행정사와 인간관리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나는 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십년간 한 학기도 강의를 거른 일이 없다. 이제 명예교수로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으니 연속적 강의경력은 상당 기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강단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아주 크지 않고서는 그런 경력을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의와 연구, 그리고 저술을 학자의 기본 임무라 생각하고 이러한 본업에 충실하려 노력해 왔다.
나의 지난 생애와 장래의 계획을 토대로 나는 스스로를 학자라 분류하고 있다. 언제인가 이승의 인연이 다하고 저승에 가서 전생의 기록을 심사받게 될 것이다. 저승의 심사관이 무슨 일을 하다 온 사람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학자였습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대답을 한다고 해서 추국(推鞫)을 받거나 문책을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 자신에 관한 분류기호의 분명함은 내게 안도감과 긍지, 그리고 보람을 준다.
연구와 교수를 본업으로 해온 지난 세월은 보람의 세월이었다. 그것은 허무와 낭비의 세월이 아니었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와 교수에서 멀리 이탈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으며, 제자들에 대한 애착도 감추지 않았다.
세상의 허다한 잡사에 간여하지 않은 대신 제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결혼식 주례도 양적으로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성심껏 했다. 학생들 수학여행에도 자주 따라다녔다. 제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반기고 고마워했다.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하는 것을 즐겼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내가 ‘술친구’라 부르는 제자들이 많다. 그들은 모임의 이름까지 정하고 흔히 집단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정년퇴임을 전후한 각종 기념행사에서 내 고적함을 덜어주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직장생활의 제도에 관련해서는 줄곧 교수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교수에 대한 규제는 학문생활을 교란할 뿐이라는 내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좋은 여건과 자율이 주어지면 바른 교수들은 연구와 교수에 헌신한다. 그러지 않은 나쁜 교수들 때문에 외재적 통제를 강화한다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헛수고다. 어설픈 규제로 나쁜 교수들의 일탈적 행동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오히려 품격손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진지한 학문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근래 대학개혁은 ‘좋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나쁜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일반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화시대의 불신관리 메커니즘을 앞다퉈 도입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포스트 모더니티의 사회를 전망하면서 낡은 산업화시대의 도구에 매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학문적 성취도는 59점
지난 학자생활을 돌이켜보면서 내 자신의 학문적 성취도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문은 과거의 회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래의 설계를 위한 것이다. 만족스러운 학문적 성취도를 100점이라 하고 커트라인을 60점이라 한다면 나의 성취도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나의 학문적 성취도가 59점 정도라고 자평한다. 이러한 주관적 평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59점 정도의 성취도를 믿고 싶다. 이러한 자평은 나를 설레게 하고 나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앞으로 1점만 보태면 커트라인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나는 65세에 교수생활의 정년을 맞이했다. 학자에게 정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령정년은 규정된 연령까지만 근무하고 퇴직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규정된 연령까지는 직장생활을 보장하는 신분보장제도이기도 한 것이다.
조직사회의 변화추세에 비추어볼 때 그러한 보장적 정년제도는 점차 적실성을 잃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년까지의 긴 근무를 보장하는 제도를 지탱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들은 실적기준이 아닌 연령기준에 따라 근무를 중단시키는 것도 반대하게 될 것이다.
여하간 나는 교수의 보장적 연령정년이 있는 세상에서 장기간 교수직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탈없이 정년에 이르기까지 교수생활을 하고 퇴직하게 되었다. 직업분야마다 정년제도의 양태와 그 영향은 다양하다. 교수의 정년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나는 교수의 정년에 대해 내 자신의 관점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교수의 정년은 직장에 관한 것이지 직업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분야의 정년과 다르다. 교수가 정년을 맞는다는 것은 직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라는 직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년을 학자의 본업은 남기고 직장만 떼어내는 계기로 삼았다. 본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전기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학자의 본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여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년은 강제로 직업적 전기를 마련하는 제도다. 직장을 떠나는 것과 같은 직업상의 변동을 자발적으로 저지르기는 어렵다. 그런 변동을 외재적으로 마련해 주는 정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직업적 침체를 털어내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정년에 의해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보다 학자로서의 개인적 지위와 학계 전체의 구성원이라는 지위가 더 부각된다. 이 또한 적지 않은 이점을 지니는 일이다. 교수의 정년이 학자생활의 종결이나 완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의 생애는 정년 전에나 후에나 이은 자국 없이 계속될 것이다.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은 유능함
그러나 정년이 학자의 생애에 하나의 획을 긋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년은 학자생활이라는 길고도 중요한 한 단계가 대과(大過)없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판정하는 행사인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했음인지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직업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을 축하한다. 오랜 봉사의 공로를 칭송하기도 한다. 훈장 수여, 명예교수 추대, 몇 차례의 기념식, 관련학회에서 열어준 기념세미나, 동료교수들과 친지들이 베풀어준 만찬 등은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 또한 교수직은 혜택받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한 일이 없다. 학문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사람들이 제도로 또는 태도와 행동으로 나의 기여와 공로를 평가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여기서 적지않은 위로를 받고 있다. 나로 하여금 감히 나의 교수생활이 사회 공동체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년 이후의 계획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어떤 현저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년 전이나 후나 나의 일상생활에는 변화가 없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주로 집에 있고 서재에서 작업하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강의하고, 집필하고, 책 읽고, 텔레비전 많이 보고, 제자들 만나고 하는 일에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직장의 잡사와 직업상의 대인관계에서 벗어나서 훨씬 자유롭고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수년간은 학문발전의 속도에 맞춰 저서들을 개필하고 수정하는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다. 이 과제가 나를 많이 바쁘게 할 것이다. 정보폭증, 정보과다의 시대에 살면서 급속한 지식변동을 따라가 스스로를 늘 새롭게 하기란 정말 숨가쁜 일이다. 그래도 이 일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행정사도 정리하고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글도 써보고 싶다.
앞으로 ‘무실패의 개념’에 따라 항상 현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일을 도모해 나가려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유능하게 남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더 많은 유능한 동지들을 만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근래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바는 유능함이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도덕성조차 유능함의 뒷받침이 없으면 꽃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당분간 변함없을 학자생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인생은 유한한 것이며,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월에 따라 변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고 능률이 떨어지는 것을 인력으로 막을 길은 없다. 이러한 불가피한 현상을 전혀 외면하고 장기계획을 세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장차 생애 주기의 변동에 따라 단계마다의 연착륙 전략을 구사해 나가려 한다.
학자라는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여타의 책임을 점차 축소해 나가려 한다. 정년퇴직에 의해 직장의 잡노동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그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보고 싶다. 앞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점차 줄여나가려 한다. 그 한 예로 경조사 참석횟수의 축소를 들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조사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친지들에게 이미 알린 바 있다.
나를 위한 정년 기념식장에서 “‘욕쟁이 할아버지’가 퇴장하겠다”는 말도 했다. 제자들을 꾸짖는 일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제자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들의 잘못을 꾸짖는 힘든 일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자유롭고 싶다. 어른의 꾸지람을 소중하게 아는 인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세태변화는 나의 욕쟁이 역할 포기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반성하건대 내가 서슴없이 제자들을 질책하고 훈계해 온 것은 감정이입과 투사(投射)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도 내게 같은 관심과 애착을 가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을 보면 나무랐다. 그러나 이제 그 힘든 일에서 놓여나고 싶다. 선배들이 후진들에 대한 훈계의 고삐를 놓아버리면 학교나 학계가 황량해지겠지만 별수없는 일로 돌리려 한다.
점차 노령화의 길을 걸으면서 내 욕심 때문에 후배들의 진출을 가로막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려 한다. 노욕이니 노탐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후진들이 만나고 싶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그러려면 내 처신이 맑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후진들을 시달리게 하거나 번거롭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후배들이 나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찾는 일은 극도로 절제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앞으로 혹시 새로운 인간관계나 직업관계에 얽힐 수도 있고 인간세상의 혼탁 속에서 일시 외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무리다. 인생사를 모두 확정적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령화할수록 세속과의 얽힘이나 욕심은 줄여 나가려고 한다. 내 스스로 노후라는 생각이 들 때면 사회현상보다는 자연현상과 벗하여 사색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생애 주기의 각 단계마다 희로애락이 있다. 강점과 약점이 있다. 이를 잘못 관리하면 장점은 활용하지 못하고 약점 때문에 좌절만 하게 된다. 정년퇴직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듯이 장차의 생애 단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려 한다. 심사숙고해서 앞으로 살아갈 생애 단계의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줄이거나 극복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려 한다. 이 과제는 나를 흥분시키는 도전이다.
다음에는 학자의 원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혀 나 자신을 경계하고 후배들의 참고에 부치려 한다. 여기서 학자의 원리라고 하는 것은 학자 생활의 명심사항이다. 그것은 학자의 행동규범이며 좌우명이다.
학자 앞에 널린 지뢰밭
학자는 자기의 본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지식을 창출하고 전달하는 임무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을 망각하면 학자라는 직업인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정체성 없는 학자는 사이비일 수밖에 없다. 사이비는 자신의 생애를 낭비하고 이웃에 폐를 끼친다. 학계의 신망을 훼손한다.
본업에 헌신하는 행동규범을 지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현세적인 손실들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고 달콤한 유혹을 뿌리쳐야 할 때도 있다. 학자의 프리미엄과 특권을 향유하려면 그 책임의 이행을 위한 비용지출도 감내해야 한다.
학자라는 직업은 혜택받은 직업이다. 개인적으로 보람이 큰 직업이며 청중과 독자가 보장되는 직업이다. 지적 작업을 위해 높은 자율성을 누리는 직업이다. 학자의 권위적 판단은 많은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도 있다. 학자에 대한 사회적 신망은 높은 편이다. 학자의 잘못된 처신은 이 모든 특권들을 오히려 해독으로 만들 수 있다. 학자들을 온당치 못한 목적에 이용하거나 쉽게 쓰고 폐기하려는 세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학자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그러한 지뢰밭을 피해나가야 한다.
학자들이 학습하고 창출한 지식의 주된 공급처는 학계와 학생이라야 한다. 학계와 학생이 원칙적인 고객이어야 하며, 그 밖의 고객에 대한 지식 공급은 부수적인 것이라야 한다. 아무리 고객중심주의의 시대, 산학협동의 시대라고 하지만 산학협동에서는 절제와 선별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학자의 대외적 활동은 적정해야 한다. 정도가 지나치면 파탄이 따른다.
‘우리의’ 정부에 학자들은 협력할 수 있다. 자문도 하고 연구용역도 수행할 수 있다. 학자로서 일가를 이룬 연후에 정치 행정적 공직을 맡아 국가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설익은 지식행상으로 국가시책의 실패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관변에 맴돌면서 지식행상으로 전락해 학자로서의 품격을 잃어서도 안된다. 용역사업의 돈벌이에 너무 깊이 빠져 본업을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그릇된 정치적 의도와 유착해 곡학아세의 첨병이 되어서도 안된다.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투쟁에 끼어들어 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흥분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학자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학문에는 뜻이 없고 오직 엽관운동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은 골칫거리다. 대학을 발진기지 또는 예비적 생계수단으로 삼아 관직과 대학을 들락거리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교수들은 사회정의에 대해 발언하고 사회개혁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외활동이 지나치면 학자의 길이든 사회개혁가의 길이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된다. 사회개혁운동, 도덕화운동에 너무 깊이 개입해 학자의 직업윤리를 어기는 자가당착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보기 민망하다.
대중매체를 통한 노출도 적정해야 한다. 이른바 출세에 도움되는 허명을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대중매체를 타고 심지어는 곡필도 서슴지 않는다면 ‘매스컴 교수’라는 비아냥을 자초하게 된다.
학자는 마음이 한가로워야 한다. 학자의 직업은 ‘유한(有閑)’의 직업이다. 학자가 탐욕적이면 안된다. 학문 이외의 온갖 일에 욕심을 부리고 허다한 잡사에 코를 들이밀어 스스로 영일(寧日)이 없는 사람은 학자의 적성이 없는 사람이다.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경황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딱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학자는 타락한 사람이다. 차작(借作)과 표절을 일삼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추하고 황폐하게 하는 사람이다.
異論과 異說을 경청하라
학문하는 일은 많은 선행 연구인들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다. 선행 연구인들의 업적에 기초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상례다. 여기서 다른 연구인들의 글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나 빌리는 데는 지켜야 할 범절이 있다.
남의 글을 인용했으면 인용표시를 해야 한다. 그런 표시를 하지 않으면 훔치는 것이 된다. 인용표시를 하더라도 마구 베끼는 수준의 차용은 안된다. 조교나 학생을 시켜 자기 글을 대필하게 하는 것을 예사롭게 아는 일부 풍조는 염려스럽다. 감사의 인용표시 없는 차용이나 남이 자기 글을 쓰게 하는 차작은 부도덕하며 염치없는 일이다. 바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른다고 말하는 게 공허하고 위험한 변명이다.
항상 바빠서 한가로움을 찾을 길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사색의 깊은 침잠을 필요로 하는 학문의 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학문에 전념해 달리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은 바쁜 게 아니라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학자와 교수의 전문적 권위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개인적 성취에 권위가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행정적 권위와 구별된다. 조직 내의 행정적 권위는 계서적 지위에서 나온다. 쉽게 말해서 감투에서 나온다.
학자적 권위와 행정적 권위를 혼동하거나 행정적 권위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학자들도 있다. 교수생활을 하면서 늘 어떤 감투를 달고 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문적 성취보다 감투를 더 숭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을 그런 길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감투 쓴 교수라야 높은, 또는 훌륭한 학자며 학계의 대표라고 보는 무식하고 저속한 평가가 문제다. 행정적 권위를 중시하는 생애도 성공적일 수 있다. 그러나 행정적 권위의 추구가 일생의 소망이라면 학자인지 행정가인지를 선택하고 자기의 색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학자의 직업은 자기실현의 장이라야 한다. 학자는 자기실현의 보람을 설교하는 인간주의의 체현자라야 한다. 학자는 학문하는 일과 교수하는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 그 일에서 성취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한다. 스스로 그렇게 되어야 후진들의 자기실현적 생애설계도 권유하고 유도할 수 있다.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헛된 명성 때문에, 또는 출세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교수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인간사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을 잘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이론(異論)과 이설(異說)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학문하는 일은 치열한 집중을 요구하지만 또한 열린 마음을 요구한다. 외곬의 폐쇄적 사고틀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학자는 그의 청중과 독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필요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애착을 가져야 한다. 청중과 독자들은 최상위의 궁극적인 평가자라는 사실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위에서 내가 중요시해 온 학자의 원리를 소개했다. 내가 그러한 원리에 충실한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언명은 결코 아니다. 나는 그러한 원리가 옳다고 믿고 그런 쪽으로 노력해 왔다는 말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후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