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호

한복 입고 영어로 수업하는 민족사관고등학교

  • 곽대중 < 자유기고가 > bitdori21@kebi.com

    입력2004-11-16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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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인적자원부는 9월21일 시·도 교육청이 추천한 5개 고등학교를 자립형 사립고 시범학교로 지정해 시범운영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것은 일종의 ‘독립선언’이다.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된 학교는 학교운영 전반에서 일반 사립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율성을 누리게 된다. 2002년부터 1차적으로 시범운영에 들어가는 학교는 민족사관고등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 3곳이다. 이중 민족사관고는 교과편성, 교육목표가 여느 고등학교와 크게 달라 가장 관심을 끄는 학교다.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횡성까지 2시간 30분. 다시 2시간을 기다려 허름한 ‘시골버스’에 올랐다. 30분 남짓 지났을까.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세운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민족 주체성 교육과 영재교육의 요람”

    학교 입구에 이르자 두 개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왼쪽은 충무공 이순신, 오른쪽은 다산 정약용이다. 정문 뒤편으로 쌍둥이처럼 생긴 ‘청기와집’ 두 동(棟)이 보인다. 교사(校舍)의 이름은 하나가 다산관(茶山館), 다른 하나는 충무관(忠武館)이다.

    다산관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 씌어 있는 글귀가 섬뜩하다.

    “본교는 工夫하려고 하는 학생에게는 天國, 工夫 싫어하는 학생에게는 地獄”



    민족사관고 교복은 한복이다. 교사들은 조선시대 훈장이 썼을 법한 정자관(程子冠)을, 학생들은 사모(紗帽)를 쓰고 있다. 수업할 때, 식사할 때도 전혀 복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외국인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인사 습관도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답다. 아무리 급해도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자왈 부자유친하고…” 하는 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지만 교실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게 된다.

    교실 문에는 이런 푯말이 붙어 있다.

    “이 연구실에서는 영어로 수업이 진행됨은 물론 토론과 강평도 오직 영어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족사관고는 일상생활과 수업전반에 ‘영어상용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심화학습을 진행하거나 학생을 상담할 때, 국어와 국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영어만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어겼을 때는 처벌을 받는다.

    이처럼 영어를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어는 앞서간 문명문화를 한국적으로 구체화해 한국을 최선진국으로 올리기 위한 수단이며 그 자체는 결코 학문적 목적이 아니다.”

    교정 곳곳에 씌여 있는 이 문구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교실, 교무실이 없다

    민족사관고에는 교실이 없다. 선생님들이 모여서 업무를 보는 교무실도 없다. 그렇다면 수업은 어디서 하고, 교사들은 어느 곳에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을 상담할까.

    민족사관고의 학습관인 충무관과 다산관. 나란히 있는 두 건물 중 충무관은 국어 영어 사회 등 인문계열 과목을, 다산관은 수학, 과학 등 자연계열 과목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각 건물에는 여러 개의 방(房)이 있는데 한 방에 한 명씩 교사들의 이름과 담당과목이 적혀 있다. 이 방들이 민족사관고 교사들의 연구실이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시간표는 각자 다르다. 학기초에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해 스스로 시간표를 작성한다. 수업시간은 여느 학교와 똑같은 50분. 쉬는 시간에는 다음 수업 담당교사의 연구실을 찾아가느라 분주하다.

    영어교사 존슨씨의 강의실에 들어가보았다. 하버드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존슨씨는 대학강단에서 강의를 하다 민족사관고에 영어교사로 왔다. 검은 피부에 덩치가 큰 그가 한복을 입고 정자관을 쓴 모습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복을 입고 있는 게 아주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민족사관고에는 존슨씨 이외에도 독일, 뉴질랜드, 영국에서 온 3명의 외국인 교사가 있다.

    존슨씨는 강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시간은 ‘조기소집 특별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수업시간. 민족사관고에 특별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당 중학교 학교장의 동의를 얻어 입학 전까지 이른바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조기소집 특별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국제계열 22명과 자연계열 15명. 이들은 재학생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있으나 다른 것은 아직 사모를 쓰지 않았다는 점. 정식으로 민족사관고의 학생이 되어야 사모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차민석(17)군을 비롯한 3명이 존슨씨의 수업을 듣기 위해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다. 한복 차림이 어색하지 않냐고 묻자 “조금 있으면 익숙해지겠죠” 하며 너스레를 떤다.

    수업이 곧 시작하는데도 연구실에 들어와 있는 학생은 고작 9명. 이번 시간 수강생은 9명이 전부다. 민족사관고는 수업 당 학생수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3명을 넘지 않는다. 연구실에도 15개의 의자가 준비돼 있을 뿐이다. 민족사관학교의 전체정원은 200명이 되지 않는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수는 60명 안팎. 학생과 교사의 비율이 3.5대1 정도다.

    최경종 이사장은 “앞으로도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이 4대1을 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9명이 듣는 존슨씨의 수업은 오히려 학생수가 많은 편이다. 학생 한 명이 혼자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 과목을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적으면 긴장을 하게 됩니다. ‘재미가 없거나 다른 선생님보다 잘 가르치지 못해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수업준비를 더 철저히 할 수밖에 없어요.”

    민족사관고 한 교사의 말이다.

    昏定晨省으로 시작되는 하루

    교사들의 경력도 다채롭다. 일반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옮겨온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대학강사나 연구원 등으로 일하다 온 사람들이다. 전체 교사의 90% 정도가 석박사학위를 갖고 있을 정도. 교사 채용은 서류전형과 시범수업의 두 단계로 이뤄진다. 시범수업 평가과정에는 교장 교감이나 재단 관계자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평가단을 이뤄 시범수업을 참관한 학생과 교사들이 신규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것.

    교사들에 대한 처우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일단 급여가 일선 고교의 두 배 이상이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기숙사인 생활관에 꾸며진 아파트형 숙사에서 생활한다. 생활관 각 층의 1호 방이 교사들의 가정집이다.

    민족사관고의 아침은 ‘혼정신성(昏定晨省)’으로 시작된다. 혼정신성이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저녁(昏)에 부모님의 잠자리를 봐드리고(定) 새벽에(晨) 다시 살펴(省) 문안을 여쭙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말한다. 기상시간은 아침 6시. 매일 아침, 태권도 검도 기공 중 하나를 선택해 운동을 해야 한다. 혼정신성의 하나인 아침 문안인사는 운동을 지도하는 선생님께 큰절을 하는 것이다. 저녁 혼정신성 시간에는 사감선생님께 큰절을 올린다. 혼정신성이 생활화한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여쭙는다.

    생활관은 12층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학습관에서 5∼7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면 등하교의 개념이 모호해지기 쉬운데 생활관과 학습관의 거리가 이렇게 적당히 떨어져 있도록 설계해 ‘집’과 학교의 구별이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 삼아 위 아래를 오르내리는 학생도 눈에 띈다.

    식당은 생활관 12층. 학생들은 이곳을 ‘스카이 라운지’라고 부른다. 식당에서도 물론 영어만 사용해야 하고 의관(衣冠)이 흐트러져선 안된다. 메뉴는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오후에 간식으로 먹을 빵을 굽는 구수한 냄새도 풍긴다.

    현수막에 쓰인 ‘공부하려는 학생에게는 천국’이라는 표현처럼 모든 시설이 최고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얼마전까지 여학생들은 학습관에서 10여 분 정도 떨어진 단독건물에서 생활했다. 남학생들의 생활관보다 거리가 먼 까닭에 수업에 늦지 않으려 뛰다가 넘어져 다치는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겨울에 빙판이 져 학생들이 다칠 것을 염려한 학교측은 기숙사에서 학습관으로 올라가는 길 전체에 아예 열선을 깔아 버렸다. 학생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선입견에 공부만 하는 ‘범생이’들이 모인 곳이라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동아리 수가 40여 개가 넘는다. 사진반, 영화반, 작곡반, 철학반, 만화반, 당구반은 물론이고, 중국요리 만드는 법을 배우는 중국요리반,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야구부도 있다.

    1학년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골프와 국궁을 배워야 한다. 학교에는 실내골프장과 시위대가 갖춰져 있다. 민족사관고의 체육수업은 한 학기에 여러 종목을 모두 가르치는 일반 학교들과 달리 한 학기 한 종목을 마스터하도록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한 종목을 선택해 숙련될 때까지 반복해 배운다.

    박하식 교감은 “체육활동은 미래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중요한 심신단련 활동”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체육활동 덕택인지 하루에 3~4시간 정도밖에 수면을 취하지 않는 학생들인데도 모두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학습관 오른편으로 ‘99칸 한옥’ 한 채가 보인다.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민족교육관 건물이다. 함영당(涵英堂)에서는 남학생이, 온고당(溫故堂)에서는 여학생들이 전통문화를 배운다. 남학생들은 대금을, 여학생들은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밖에 판소리, 민요, 사물놀이도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다.

    매주 토요일 민족사관고에서는 재판이 열린다. 규정을 위반한 학생들이 ‘학생법정’에 선다. 영어상용 규정을 어긴 학생, 수업에 지각한 학생, 옷차림이 바르지 못한 학생이 피의자(?)가 된다. 재판장은 학생회장이, 자치위원은 검사 노릇을 한다. 피의자는 본인이 원할 경우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 물론 변호인은 친구나 선후배다.

    ‘혐의’가 인정되면 판결과 동시에 회초리를 맞는 것으로 재판이 끝난다. 법정 옆에는 싸리나무 회초리가 가득 담긴 큰 항아리가 있다. 집행하는 ‘형리’는 민족사관고에서 유일하게 체벌이 허락된 체육교사다. 회초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싸리나무가 부러져야 한다. 부러지지 않으면 다시 맞는다. 보통 2∼3대를 맞는데 학생회 임원이 규정을 위반했을 때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형량의 두 배로 회초리를 맞는 것. 학칙상 1년에 65대 이상의 회초리를 맞으면 자동적으로 유급되지만, 아직까지 그런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을 마치면 한 시간의 ‘오수(午睡)시간’이 주어진다. 학생들은 모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청한다. 밤 12시부터 취침시간이 시작되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새벽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오후 수업시간에 조는 것을 막기 위해 오수시간을 두었다. 낮잠 자던 습관 때문에 수능시험날에도 졸음이 올 수 있기 때문에 3학년 학생들은 오수시간이 없다.

    도서관은 대학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국내 서적 1만여 권과 해외 서적 4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한 달에 정기간행물 구입비로 600만원, 도서구입비로 500만원을 지출한다. 미국 대학 입시자료를 모아놓은 책장과 KAIST, 포항공대의 1학년 교재를 꽂아놓은 책장도 눈에 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외국대학의 과거 시험문제와 출제경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KAIST, 포항공대에 조기 입학한 학생들은 입학 전까지 이 교재를 통해 1학년 과정을 예습한다.

    전국 고등학교 중 민족사관고가 유일하게 갖추고 있는 시설이 ‘가정교육관’이다. 정문 옆에 있는 가정교육관은 콘도미니엄과 같은 구실을 한다. 사용대상은 민족사관고 학생의 학부모들.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간다. 방학도 1년에 2주가 전부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공휴일에도 수업이 진행된다. 자식을 강원도 외지에 맡긴 부모들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학교를 찾을 수 있도록 40여 개의 객실을 갖춘 가정교육관을 지은 것이다. 숙박료는 무료로 연중 언제라도 이용이 가능하다. 효(孝)와 충(忠)을 중시하는 민족사관고의 설립이념이 잘 녹아 있는 시설이다

    최이사장은 “이러한 가정교육관은 전국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지생활을 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생활관 지하에는 대형 세탁실이 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대형 세탁기 옆으로 형형색색의 가방이 줄지어 놓여 있다. 학생들이 세탁물을 담아 내놓은 가방이다. 세탁가방에 빨랫감을 담아 방 앞에 두면 세탁실 담당자가 수거해 반듯하게 다림질까지 해서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전교생이 장학생

    민족사관고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 그동안 자립형 사립고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였다는 점도 수업료를 받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평준화한 일반고에서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따로 선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모집지역도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시, 군 또는 도단위로 제한돼 있다. 그래서 내놓은 방법이 전교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는 것. 장학 혜택을 받는 학생을 뽑는 데는 평가방식과 지역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지금까지 민족사관고는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생을 뽑는 형식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다.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편법이었던 셈이다. 자립형 사립고가 돼 앞으로는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수한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집할 수 있게 됐다. 민족사관고는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한 뒤에도 ‘무(無)수업료’ 원칙을 고수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무료는 아니다. 생활관비와 교복구입비, 수학여행비, 국궁, 가야금, 골프, 스키 등 예체능 활동에 드는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생활관비는 월 65만원. 동·하절기 교복비로 약 200만원 정도가 든다. 또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기 때문에 미국 기준으로 약 200만원이 소요된다. 이런저런 비용을 모두 합치면 1학년 한 해에 드는 비용이 약 1400만∼1500만원 정도다. 모든 장비와 교재를 구입하고 수학여행까지 다녀온 2학년 때부터는 생활관비만 내면 된다. 수업료를 내지는 않지만 학교를 다니는데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고등학교로는 국내 최대의 면적이라는 38만3000평의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최이사장은 “민족사관고를 운영하는데 월 5억~6억, 연간 6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부족한 재원은 모두 파스퇴르유업에서 부담한다.

    “사업으로 번 돈은 모두 교육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파스퇴르유업 최명재 회장의 고집에 가까운 신념 때문이다. 실제 파스퇴르유업의 모든 제품엔 “본 제품의 이익금 전부는 우리 민족을 다같이 잘살게 해줄 영재양성을 위한 민족사관고등학교의 교육비로 쓰입니다”라고 쓴 문구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아예 ‘민족고’를 상표로 내건 유제품도 발매했다.

    파스퇴르유업의 한 관계자는 “한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학교 사정도 함께 어려웠으나 소비자들이 파스퇴르유업을 살리자는 의미보다는 민족사관고를 살리자는 뜻에서 제품을 애용해 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민족사관고에 이익금 전액을 투자하면서 파스퇴르유업의 기업이미지가 한층 좋아졌다고 한다.

    1996년 민족사관고가 문을 열었을 때 입학한 학생은 30명이다. 그중 2학년으로 진학한 학생은 11명. 나머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처음 개교할 때는 우리 학교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지원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막연히 입시위주의 교육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학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막상 학교에 들어오니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중도탈락자가 많았습니다.”

    ‘싹수’있는 사람을 키워낸다

    박교감의 말처럼 민족사관고는 ‘쓸데 없는 짓’을 하는 학교로 보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하는 혼정신성, 애국조회에서부터 입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아리 활동까지.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박교감은 “우리 민족사관고는 명문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보냈냐가 자랑거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소개한 일화다. 민족사관고로 조카를 보낸 한 대학교수가 박교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싹수’있는 녀석으로 키워 달라”는 것. 박교감은 “상스러운 말이지만 이처럼 싹수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민족사관고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민족사관고 교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학교의 비전을 나타내는 ‘노벨상 좌대(座臺)’가 세워져 있다. 모두 15개의 이 좌대 위에는 현재 육면체의 썰렁한 비석 외에는 어떠한 것도 올려져 있지 않다. 민족사관고는 학교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이 좌대 위에 흉상을 세울 계획이다. 열다섯 개의 좌대가 다 채워져 학교를 내려다볼 날, 좌대가 부족해 더 많은 좌대가 필요할 날은 언제쯤 올까.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학습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성웅 충무공과 실학자 다산선생이 버티고 선 민족사관고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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