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침표를 찍을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12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이 흡족한 듯 SNS를 통해 “양국이 즉각 협상을 개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둘 다 동의했듯 전쟁에서 수백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싶다”고 알렸다. 그러곤 우크라이나와 곧 종전 협상을 시작할 뜻을 내비쳤다. 북한군까지 참전하며 3년을 이어오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휴전의 터널로 접어들고 있다.
앞서 1월 29일 42일간의 휴전에 합의한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불안한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며 인질 석방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은 예비군 동원을 준비하는 등 중동의 평화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2025 안보 위협 우선순위 조사’에 따르면, 현재 세계 분쟁 지역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1등급 12곳을 포함해 모두 30곳이다. 2025년 들어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두 곳에서 교전국 간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니 올해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 종료극’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1935년
분쟁 종막이 고대된다
온갖 말썽 온갖 추측 일으킨 1935년, 그가 연출한 첫 극은 이탈리아에 분쟁 종막이 고대된다. 세계가 관중이다.독일의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5년이 지난 1933년 총리에 오르며 정권을 장악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35년 3월 독일 정부는 베르사유조약(제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체결된 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다시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군부는 들끓었지만,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여론을 무마시키며 참아야 했다. 이에 자신감이 생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부는 1935년 10월 2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당시는 아비시니아로 통칭)를 침공했고, 유럽 각국은 일제히 이탈리아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사실 ‘제국주의 후발주자’ 이탈리아는 식민지 쟁탈전에서 현저하게 밀렸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승전국이었지만 전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무능한 협상으로 ‘전리품’도 챙기지 못했다.
이러한 정부의 실정을 맹렬히 비판하며 영향력을 키운 무솔리니는 1922년 이탈리아 왕국 총리로 등극해 파시즘을 창시하고 장장 21년을 재임한다. 무솔리니 정부는 강력한 이탈리아 제국 건설에 혈안이 돼 있었고, 차세대 에너지인 원유 확보에 진력했다. 이미 중동의 유전 사업은 강대국들이 차지한 상황. 무솔리니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고, 결국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면서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 집중했다.
앞서 1931년 일본 역시 이탈리아처럼 만주를 침략하면서 국제연맹을 탈퇴했기 때문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탈리아 전쟁을 예의 주시했다. ‘신동아’ 1935년 11월호는 물리고 물린 각국의 이해관계 속에 발발한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우려하며 전쟁 인형극을 연출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하고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검은 셔츠단’을 독려하는 무솔리니를 다룬 1935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
이 법의 주요 골자는 최다수파 당에 의석의 3분의 2를 양도할 수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입법 독재의 길이 열리자 무솔리니는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고 치안판사 등 사법부 일원들이 자유롭게 정권에 합류해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손아귀에 넣었다. 무솔리니의 1인 독재체제가 완성된 것이다.
1935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는 10여 년간 입법·사법·행정 3권(權)을 쥐락펴락하면서도 민생은 외면한 채 에티오피아 전쟁을 준비하는 무솔리니 정부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