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권석철 사장은 의미 있는 데이터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하우리의 백신 프로그램 ‘바이로봇 엑스퍼트’가 지난 6월초 국내 백신업체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인증인 ‘VB100%’를 받았다. 안연구소는 두 차례 시도했으나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VB100% 인증은 국제컴퓨터보안협회 인증, 영국 백신 인증업체인 웨스트코스트랩의 ‘체크마크’ 인증, 그리고 안티바이러스-테스트 인증과 함께 4대 국제 인증으로 꼽힌다. VB100%는 세계 각지에서 신고된 모든 바이러스 샘플을 단 1개도 놓치지 않고 100% 진단하고 치료해야 받을 수 있다.
이어 6월 말에 하우리는 체크마크에서도 안연구소보다 2단계 높은 등급을 받아냈다. 바이러스 진단 분야에선 안연구소도 체크마크 인증을 받았지만, 하우리는 바이러스의 진단 및 치료와 ‘트로이 목마(해킹 툴로 이용되는 악성 프로그램)’의 진단 치료 등 총 3가지 분야에서 인증을 받았다. 백신업체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증을 받은 것이다. 이 인증은 전세계에서 9개 백신업체만 받은 것이다.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분석가로 알려져 있는 삼성증권 박재석 애널리스트는 “연구인력 규모에서 안연구소보다 열세에 있는 하우리가 이를 극복하고 VB100%와 체크마크 인증을 따낸 것은 기술력에서 앞서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본에 충실’ vs ‘행동이 먼저’
증권시장의 평가에서도 하우리는 안연구소와의 격차를 줄여가고 있다. 하우리의 매출은 안연구소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주식 시가총액은 3분의 1 수준이다. 안연구소의 시가총액이 1594억원(7월4일 기준 1주당 2만1200원)이고, 하우리의 시가총액은 538억원(1주당 3570원)이다.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하우리에 대해 미래 가치의 프리미엄을 조금 더 얹어주고 있는 셈이다.
안사장에 비해 여러 모로 열세인 권사장이 선전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안철수연구소라는 ‘절대 강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도 그가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회사의 인지도를 높여온 방법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권사장은 안사장을 따라가려 하기보다 그와는 다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유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쓴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는 “강함 속에는 약함이 숨어 있다”며 “선도자가 강세를 보여도 2인자가 형세를 역전시킬 기회는 꼭 있는 법”이라고 했다. 씨름선수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권사장은 안사장보다 더 뛰어난 경영자가 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안사장과는 다른 경영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안사장은 기본을 충실하게 갖춘 뒤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권사장은 행동이 앞선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도 두 경영자는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안사장은 IT 기술의 메카인 미국 시장에 곧바로 진출하기보다 우선 일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해외 진출의 1차 목표로 세웠다. 그는 자서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외국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된 업체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내부 역량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외국에 나가봐야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2000년, 회사 설립 후 5년 만에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남들은 늦었다고 했지만, 안사장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안연구소는 지난해 일본에서 1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일본과 중국 시장에서 8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권사장은 회사 설립 3년 뒤부터 해외 시장으로 뛰었다. 그는 안연구소가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린 직후인 2001년부터 싱가포르,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지사를 세우며 맹렬하게 잠재 고객들과 접촉했다. 인지도 부족과 해외 진출 경험 부족으로 지난해 1억5000만원의 해외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40억원의 해외 매출을 기대할 정도로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외국의 유수한 인력을 스카우트해 해외에 연구소를 세울 계획도 갖고 있다.
안사장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라면, 권사장은 돌다리를 놔서라도 건너가려는 스타일인 것이다.
‘교과서대로 살기’ vs ‘재미있게 살기’
안사장이 매사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서 행동하는 것은 그만의 ‘전매특허’다. 그가 50여 권의 바둑 책을 독파한 뒤에야 비로소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개 바둑은 잘 두는 사람의 어깨 너머로 배운다고 하지만, 그는 이론을 먼저 터득하고 실전에 들어갔다.
물론 수십 권의 책을 읽었다고 처음부터 바둑을 잘 두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바둑을 두면서 그는 책에서 배운 지식을 응용할 수 있었고, 결국 남들보다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안사장은 자신의 인생 노하우를 ‘교과서대로 하기’라고 요약한 바 있다. 기본을 충실하게 하자는 것인데, 그는 앞서 소개한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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