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는 1890년 독점금지법인 셔먼법(Sherman Act)이 제정되면서부터 법경제학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초기 법경제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기업의 각종 관행에 대한 법적 규제가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후 이들의 관심은 단지 경제를 규제하는 법률을 넘어서 민법, 형법, 소송법 등 전통적인 법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1960년대 이후 법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은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들이었다. 재산권의 해럴드 뎀세츠(Harold Demsetz), 불법행위법의 로널드 코즈(Ronald Coase), 그리고 형법 분야의 게리 베커(Gary Becker) 등이 그들이다. 또한 법경제학자로 현직 미국 연방법원 판사인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도 시카고대 교수를 지냈다.
법경제학은 법에 대한 법조인의 생각을 바꾸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세부적인 법률 분야에는 다양한 법리들이 있다. 법경제학은 이처럼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법리들이 많은 부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포스너에 따르면 모든 법리의 근저에는 부(富)의 극대화라는 논리가 자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법리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 실현과 富의 극대화
법을 경제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법의 이념을 편협하게 해석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법이 갖는 도덕적 측면이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개념과 부의 극대화는 모순되지 않는다. 자원이 희소한 사회에서 자원의 낭비는 정의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의의 실현에도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사회가 경제적 가치를 중히 여기지 않더라도 이를 따져보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든 이를 달성하는 데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제 법경제학은 미국의 법조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법경제학의 연구 성과가 판례에서 인용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우리의 법 체계는 영미법과 달리 대륙법 체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 성과를 우리 사회에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법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는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법치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법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법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법경제학이 법이나 규칙 등을 이해하는 방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다면 교통사고가 늘어날까?]
그렇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신호등 때문에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설치된 신호등이나 차량 통행이 뜸한 새벽에 작동하는 신호등은 교통사고를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차량 운전자라고 하자. 그리고 차량의 통행이 뜸한 새벽에 신호등이 작동하는 교차로에 접근한다고 하자. 신호등은 녹색 신호로 진행이 가능하다. 이 경우 여러분은 교차로를 바로 지나가겠는가.
이는 다른 사람들이 새벽에 신호등을 잘 지키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편하더라도 여전히 교통신호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낮에 비해서는 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신호를 지키지 않더라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보다는 적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늘 것을 안다면 여러분은 신호등만 믿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녹색 신호등이 켜져도 많은 이들은 주변을 주의깊게 살피며 교차로를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