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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MB 살던 가회동 한옥 불법 숙박업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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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옥 홈스테이 간판 달고 불법 ‘료칸’ 영업
  • ● 히노키탕, 유카타(浴衣) 갖춘 한옥 부티크 호텔
  • ● 1박에 200만 원 훌쩍 넘어…국악 공연도
  • ● 주인 “청와대, 감사원, 국세청 직원도 자주 와요”
  • ● 주민들 “가회동 곳곳 요정·호텔 불법 영업”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취운정 전경(왼쪽). 이명박 대통령이 기거했던 안방은 ‘왕의 기운이 서린 터’로 소개한다. 객실에는 히노키 욕조가 설치됐다.

8월 1일 오후 서울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지만 서울 종로구 가회동은 여느 때처럼 외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헌법재판소 위 돈미약국 골목길에서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70대 할머니의 부채질도 빨라졌다. 기자가 가회동 31번지 일대에 대해 물을 때였다. 폭염보다 가회동의 ‘이상한 변신’에 더 열이 나는 듯했다.

“기자 양반. 밤에 여기 와봐요. 두세 집 중 한 집은 빈집이야. 10년 사이 원주민들은 다 나갔고 지금은 대여섯 가구밖에 없어. 예전엔 동네 사람들이랑 함께 김치도 담그고 꽃구경도 갔었는데 요즘은 그런 재미가 없어. 주민들이 나가고 새로 집을 산 부자들은 밤에 높으신 양반들 접대하느라 동네가 시끄러워. 무슨 잔치를 하는지 음식물 쓰레기나 양주병도 많이 보이고…. 하여튼 동네가 참 이상하게 돼버렸어.”

7월 25일과 8월 6일 저녁 기자가 찾은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적막했다. 골목 안은 캄캄했고, 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열대야였지만 기자가 확인한 40여 채의 집 중 절반가량은 계량기가 멈춰 있었다. 10여 채는 계량기만 돌아갈 뿐 불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낮에는 카메라를 손에 든 ‘출사족(야외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가회동 31번지는 밤이 되면 스산한 ‘유령마을’이 됐다. 불이 켜진 한옥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변질되는 가회동 31번지

기자는 7월 초부터 가회동 31번지 일대를 취재하면서 주민들로부터 한 가지 공통된 증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주민이 떠나고 외지인들이 산 한옥 대부분은 별장으로 쓰이는데, 이 중 몇몇 집은 불법 접객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검은색 세단 3, 4대가 줄지어 골목길을 오르고, 조직폭력배폭처럼 도열해 인사하는 무리도 종종 목격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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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운정과 이 대통령의 관계를 소개하며 손님을 모으는 일본의 여행 사이트.

주거지역인 가회동 31번지 일대에서는 일반음식점업이나 유흥주점을 열 수 없다. 북촌지구단위구역 내에서도 규제가 가장 엄격하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받더라도 그 용도는 한옥어린이도서관이나 마을회관, 한옥서당 등으로 엄격히 규제한다. 2010년 1월부터 북촌지구 내 14개 용도구역을 세분화한 지구단위계획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MB)이 청와대로 이사하기 직전까지 전세로 살았던 가회동 한옥(취운정·현재의 31-53번지)도 이 근처라는 데 관심이 끌려 주변을 탐문했다. 주민들의 목격담도 있었지만 직접 취운정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취운정 직원: “누구세요?”

기자: “‘한옥체험살이’ 간판 보고 왔는데요.”

직원: “지금은 손님이 있어서 둘러볼 수 없어요.”

기자: “그렇군요. 그럼 어떤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나요?”

직원: “체험프로그램요? 없어요. 숙박업만 해요. 전화 예약 후 찾아오세요. 구경시켜 드릴게요.”

며칠 뒤에도 문의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통령이 살던 한옥 출입문 2곳에는 ‘취운정(翠雲亭)’ ‘한옥체험살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한옥체험살이(홈스테이)를 운영하면서도 여느 업소와 달리 ‘예약을 해야 들어올 수 있다’는 직원의 답변에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들었다.

‘한옥체험살이’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해 종로구가 추진하는 홈스테이 사업 브랜드다. 2009년 관광진흥법이 개정되면서 한옥체험업이 신설됐는데, 한옥체험업 운영자 중 신청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한옥체험살이 인증을 내준다. 관광객이 일반 가정에서 숙박을 하면서 한국 생활풍습과 문화를 익히는 게 목적. 따라서 한복 입기, 떡 만들기 같은 한 종류 이상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과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추면 된다. 종로구 관내 한옥체험업소 70곳 중 54곳이 한옥체험살이 간판을 달았다. 숙박업을 한다면서 굳이 전화 예약 후 방문하라는 이유는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대통령 낳은 터서 초고가 王氣 마케팅
취운정 직원의 말대로 며칠 뒤 기자는 전화로 방문 예약을 했다. 매니저라고 밝힌 직원은 “보통 (취운정을 찾는) 손님 중 80%가량은 외국 손님이고 내국인은 대부분 유명인들이 찾는다”며 “‘왕기(王氣)’ ‘황제 기운’을 받으려는 손님이 많다”고 자랑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에서 퇴임할 무렵인 2006년 6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약 20개월간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 언론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동 D한정식 이모 사장이 권유했다”며 “부유한 ‘강남 이미지’를 벗고, 선거 캠프인 안국포럼이 위치한 곳과 가까워 가회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종로구는 이 대통령이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나서 새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주인 이 사장은 안채(연면적 190.66㎡)와 별채(36.36㎡)를 리모델링했다. 리모델링한 집에는 ‘푸른 구름이 머무는 정자’라는 뜻의 취운정 간판을 달고 2011년 9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취운정은 ‘한옥 부티크 호텔’로 여러 매체와 여행정보 사이트에 소개됐는데, 한옥건축가 조정구 씨와 유명 도예가, 정원사가 리모델링에 참여해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당선으로 유명해진 ‘대권 명당’이 ‘한옥 호텔’로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가격과 음식 판매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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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강 기자│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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