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의 게임시장은 조만간 3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다. 스페인 등 유럽의 카지노 기업은 이 돈을 노리고 남미로 달려왔다. 남미 카지노산업의 중심인 아르헨티나에선 정부와 유럽자본이 하나가 되어 카지노 육성을 외친다. 슬롯머신의 기계음이 이미 전국을 집어삼켰다. 관광산업을 넘어 국가의 중요 세원(稅源)으로 성장한 아르헨티나의 카지노산업 현장.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잘해야 관광산업쯤으로 취급받던 카지노산업은 이미 어떤 나라에서는 그 나라를 떠받치는 근간산업이 되고 있다. 이제 살펴볼 아르헨티나도 그런 나라 중 하나다. 세계 최고 카지노 시장인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부터 마추픽추가 있는 안데스 산맥 시골마을까지 카지노산업이 뿌리내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없다. 세계 곳곳의 카지노는 하루빨리 즐거움과 꿈을 자본(資本)화하라고 우리를 유혹한다.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카지노도 다르지 않았다.
먼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남미의 카지노산업을 살펴보자.
남미 카지노산업의 중심
남미에서 카지노산업이 가장 활성화된 국가는 역시 아르헨티나다. 70여 개의 카지노가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25만개가 넘는 슬롯머신이 전국에 균일하게 분포돼 있다. 대부분의 카지노가 외형적으로는 민영화돼 있지만, 정부기관인 ‘아르헨티나 복권위원회’에서 위탁해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70여 개 카지노 중 정부의 지분이 포함된 카지노는 대략 17개 정도다. 세계적인 카지노기업인 스페인의 실사(CILSA) 등도 아르헨티나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르헨티나의 카지노들은 보통 3~4개의 다국적 기업과 로컬 기업이 공동투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세계 5위의 국토면적을 자랑하는 브라질은 카지노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함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브라질 정부는 도박에 따른 폐해를 이유로 카지노 폐지령을 발표한 뒤 전국의 카지노를 폐쇄했다. ‘관광산업의 촉매제 카지노산업 부흥’을 들고 나온 카지노 옹호론자들이 압박했지만 브라질 정부는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부의 뜻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문을 닫은 카지노들은 지하세계로 들어가 다시 문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자 브라질 전체가 불법 카지노의 온상이 됐다. 브라질 정부가 법으로 허가하는 게이밍산업은 현재 복권사업이 유일하지만, 최근 주변 국가들이 속속 카지노시장을 개방하면서 브라질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카지노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브라질에도 카지노가 다시 허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칠레는 브라질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난 2005년 칠레정부는 수십 년 동안 불허했던 카지노산업의 빗장을 풀었다. 카지노 허용을 골자로 하는 카지노법이 통과되자 전국에 카지노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법 통과 초기 7개에 불과했던 카지노 허가건수는 최근에는 24개로 급속히 늘어났다. 카지노산업의 매출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국가 세수 증대를 통해 경제발전을 가속화한다는 명분으로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유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카지노산업과 연계한 관광 상품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칠레의 경우 카지노에 대한 모든 인허가, 통제 및 관리는 정부기구인 카지노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페루는 카지노산업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찾아보기 힘든 국가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서야 안정적인 세수 확보, 경제 및 관광산업 활성화를 이유로 페루 전역에 카지노를 허가하는 쪽으로 정부정책이 정리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일관된 정부정책은 없지만 지금도 페루 전역에는 슬롯머신이 중심이 된 크고 작은 카지노 8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슬롯머신이 총 7만대에 달한다. 이들 카지노 중 상당수는 중국자본으로 개장됐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페루 정부는 카지노를 통한 돈세탁을 막기 위한 국가차원의 기구 신설도 검토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컨설팅 기업 데이터모니터가 2010년 6월 발표한 보고서 ‘Casinos · Gaming in South America’에 따르면 2009년 남미 카지노와 게이밍 산업은 전년 대비 13.9% 증가한 96억달러(약 1조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수익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2014년에는 그 규모가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수익창출액과 상승세가 뚜렷하다. 이 보고서는 또 “국제적으로 카지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으나 남미에서는 투자자, 운영자, 설비 및 기술제공자 등의 사업기회에서 호조를 띠고 있다. 남미에서는 게이밍 산업 중 카지노의 비중이 25.9%에 달하고 복권, 빙고 및 인터넷 게이밍이 74.1% 정도다”라고 분석했다.
관광도시 티그레의 운하(위)와 정부 투자기업인 ‘트리레니움 카지노’.
그렇다면 남미 최대 카지노 시장인 아르헨티나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현재 10여 개의 카지노가 성업 중이다. 인구 400만명도 안 되는 도시치고는 그 숫자가 많다. 카지노의 규모도 작지 않아 국립경마장 지하에 마련된 카지노에는 슬롯머신만 8000대 정도가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에 있는 슬롯머신이 1000대가 채 안 된다는 걸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카지노산업을 이해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카지노 두 곳, 정부투자 카지노인 ‘트리레니움 카지노(Trilenium Casino)’와 선상카지노인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Casino Puerto Madero)’를 찾아갔다.
트리레니움 카지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플라타강 어귀에 들어서 있는 관광도시 티그레(Tigre)에 위치해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휴양지인 이곳은 과거 스페인의 이사벨 공주와 찰스 황태자가 피서를 보낸 곳이기도 하고,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마르셀로 알베아르와 도밍고 사르미엔토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지금도 대통령 별장이 이곳에 있다. 한 달 평균 100만명가량이 관광·휴양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우루과이, 파라과이를 거치며 300㎞ 이상 이어지는 라플라타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끼고 조성된 이 휴양도시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운하도 있다. 운하를 따라 들어선 크고 작은 휴양시설과 고급빌라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람선이 다니는 운하에는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이 티그레의 끝자락에 반(半) 타원 형태의 하얀색 카지노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99년 11월30일에 개장했으니 역사가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카지노로 유명하다. 슬롯머신 860대, 테이블게임 76대를 갖춘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부자들과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여행의 피로를 풀러오는 단골코스 중 하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카지노에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흔히 카지노 하면 블랙잭, 바카라, 룰렛 같은 테이블게임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남미 대부분 국가의 카지노에선 슬롯머신이 주류를 이룬다. 수천 대의 슬롯머신을 가진 카지노에 테이블게임은 많아야 100여 대일 정도다. 겨우 구색을 맞췄다고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국영기업이나 다름없는 트리레니움 카지노도 비슷하다. 슬롯머신 숫자는 강원랜드와 비슷하지만 테이블게임 숫자는 절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밌다. 바로 정부의 카지노정책 때문이다.
동화 속 카지노
아르헨티나에 있는 정부투자 카지노의 경우 테이블게임 수익은 모두 국가가 가져간다. 카지노 쪽에서 보면 테이블게임은 돈이 안 되는 것이다. 반면 슬롯머신의 수익금은 카지노와 정부가 나눠 갖기 때문에 한 대라도 더 설치하는 게 카지노에 이익이 된다. 테이블게임의 경우 베팅 상·하한선이 높다는 점도 일반 고객에게는 부담이 된다. 아르헨티나 카지노의 주요 고객은 10~20달러 정도를 들고 카지노를 찾는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테이블게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세계 대부분의 카지노가 그렇듯 트리레니움 카지노에도 여러 개의 레스토랑과 바가 갖춰져 있다. 특히 게임장 한복판에 설치된 쇼룸과 전시공간이 특이했다. 쇼룸에선 매일 밤 아르헨티나 최고 인기 가수, 배우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호텔을 끼고 운영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은 아니지만, 카지노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편의시설들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리레니움 카지노는 정부와 민간기업인 ‘트리레니움그룹’이 공동 출자해 만들었다. ‘트리레니움그룹’에는 여러 아르헨티나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카지노 규모는 강원랜드보다 다소 작은 편이지만 연간 방문객은 370만명에 달한다. 트리레니움 카지노의 마케팅 책임자인 모리나 자발리아씨는 “소액 베팅자들이 주된 고객이다. 한번에 수만달러 이상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하이롤러)은 채 1%가 안 된다. 휴양관광도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된 수요를 확보하고 있다. 테이블게임과 슬롯머신의 매출 비중이 대략 3대 7이다. 아무래도 관광지 카지노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머신게임의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아르헨티나 정부는 트리레니움 카지노처럼 정부가 지분을 투자한 카지노를 전국에 17개 운영하고 있다. 이들 카지노의 테이블게임 수익은 설명한 대로 모두 정부에 독점 귀속된다. 머신게임에서 창출되는 수익은 민간기업과 정부가 나눠서 가져간다. 비율로 보면 기업은 통상 슬롯머신 수익의 47% 정도를 가져가는데, 트리레니움 카지노의 경우 연간 1200만~1500만페소(한화 400억원 가량)의 수익을 슬롯머신에서 올리고 있다. 규모에 비해 수익이 매우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에 카지노산업이 갖는 의미는 카지노에서 발생하는 세금의 규모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만 봐도 카지노는 부동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세금을 걷어들이는 세원(稅源)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카지노 사업장에서 원활하게 세금을 걷기 위해 모든 슬롯머신을 정부의 컴퓨터 서버와 연결해 실시간으로 매출을 확인, 관리하고 있으며 모든 카지노 영업장에 국세청 직원을 상주시켜 카지노 매출규모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배 위의 카지노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위치한 선상 카지노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 1400대의 슬롯머신과 150대의 테이블게임을 갖춘 대형 카지노다.
카지노는 카지노 선박에 진입하기 위한 접근시설 공간과 선상카지노 공간의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돔구장을 닮은 카지노 건물에는 안내센터, 쇼핑센터, 식음료 코너 등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이곳을 지나 선상으로 들어가면 4층으로 나뉜 공간에 슬롯머신과 테이블게임이 빼곡히 들어선 카지노를 만날 수 있다. 선박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공간은 상당히 폐쇄적이고 협소한 느낌을 준다. 배의 곳곳에 슬롯머신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선상 카지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접근성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항구지역에 위치해 있어 게이머들을 쉽게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주변 대중교통도 비교적 잘 발달해 있고 시내 중심에선 도보로도 이동이 가능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0㎞가량 떨어져 있는 티그레의 카지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이러한 접근성은 놀이와 게임을 좋
아하는 아르헨티나 국민성과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는 다국적 합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카지노 관련 최대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기업 실사(SIRSA)와 아르헨티나 최대의 로컬 카지노기업인 카지노그룹(Casino Group), 압사 3개 기업이 공동 출자해 설립됐다. 이들 기업은 현재 아르헨티나 내에만 30여 개의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의 마케팅 책임자인 라우라 리오스씨는 “카지노를 찾는 주된 고객은 40대 중반 이상이다. 주말에 1만여 명 이상이 방문하는데,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전체 방문객 중 5%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이다. 주변에 국제상업지역 및 특급호텔이 위치해 있어 외국인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는 전세계 대부분의 카지노가 그렇듯이 점차 테이블게임에서 슬롯머신으로 고객의 선호도와 매출이 이동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리오스씨는 “게임의 용이성, 소액 베팅이 가능하다는 점, 배당률이 높다는 점, 고객들이 대부분 고령인구라는 점 등이 그 이유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999년 선상 카지노를 허가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정기적으로 해상운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지노를 허가하고 싶지만, 사회주의 영향으로 자국 영토 안에서는 절대 카지노를 허가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아르헨티나 정부가 내놓은 묘안이었다. 미국 미시시피주의 선상 카지노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튼 이런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는 지난 10년간 정기적으로 엔진에 시동을 걸고 단 30㎝라도 해상에 나갔다 들어와야 했다. 이를 위해 카지노는 300명이 넘는 아르헨티나 해군을 고용해 선상에 상주시켰다. 아르헨티나에는 ‘모든 배는 반드시 해군의 지휘를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9년 가을경 카지노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엔진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어졌다.
‘운행 중인 배에서만 카지노 영업을 허가한다’는 법 조항이 ‘수면(水面) 위에서의 카지노 운영을 허가한다’로 바뀌면서 굳이 배에 시동을 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아르헨티나에 존재하던 카지노 관련 각종 규제는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정부투자 카지노와 마찬가지로 이 선상 카지노에도 국세청 직원이 상주하면서 매출을 관리하고 있다. 리오스씨는 “앞으로 5~6년 내에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테이블게임을 갖춘 카지노 중 3개 정도가 민영화될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에서 보다 많은 세금을 받고 싶은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에 따라 민간기업의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르헨티나 카지노산업 규모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진다”라고 말했다.
순수 민간 기업인 카지노 푸에르토 마데로는 현재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은 채 방송이나 옥외 광고를 통해 카지노를 홍보하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홍보물을 접할 수 있었다. 모자, 티셔츠 같은 캐릭터 상품도 카지노와 도심 곳곳에서 팔고 있다. 카지노 측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윈(Wynn)카지노가 목표이자 성장모델”이라고 밝혔다.
전세계 카지노 전문가들은 남미의 카지노 시장을 이머징마켓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투자가치가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히 카지노 관련 외자유치에 적극적이고 용이한 아르헨티나 시장을 투자적격 지역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소개한 데이터모니터의 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카지노와 외국자본에 호의적인 아르헨티나의 국민성도 좋은 투자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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