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갈등 첨예… 통상임금 소송·사상 첫 파업
올해 첫 금융사고, 240억 원 규모 배임 공시
2270억 원 규모 임금 소송 패소 가능성 높아져
지난해 순익 2.8조 원 ‘역대급’이지만 내실 강화는 과제
김성태 행장, 임기 1년 남기고 ‘시험대’

총파업·금융사고·임금 소송 ‘겹악재’

이에 노조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27일 총파업을 강행했다. 앞서 같은 달 12일에 열린 쟁의 찬반 투표에서는 88%의 조합원이 참여해 95%(6241명)가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는 기업은행이 시중은행 직원보다 30% 적은 임금을 주고 있으며, 시중은행 대비 임금인상률 폭이 좁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기업은행 직원 평균 연봉(8500만 원)은 KB국민은행(1억2000만 원), 하나은행(1억1900만 원) 등 시중은행은 물론 BNK부산은행(1억1200만 원)보다 3000만 원가량 적다.
또 노조는 기업은행이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총액 인건비 제한을 이유로 1인당 600만 원 정도의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23년엔 기업은행이 당기순이익 2조6752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직원들에게 특별성과급을 따로 지급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이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이 기본급(또는 통상임금)의 200~28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과 상반된다. 노조는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추가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번 노사 갈등에 정치권이 가세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업은행 노동조합 총파업 사태를 두고 공공기관의 총액인건비제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는 1월 20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 정문 앞에서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은행권 현장간담회’ 참석차 방문한 이 대표와 강준현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간사, 강훈식·전현희·김현정 정무위 위원들과 만나 노사 갈등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은행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은행 노동조합 문제 관련, 이 대표가 (기업은행장에게) 질문을 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챙겨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월 20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입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류장희 기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ad/a6/fd/67ada6fd0760d2738276.jpg)
1월 20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입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류장희 기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이번 금융사고는 2022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강동구 소재 한 지점에서 발생했다. 부동산 담보 가격을 부풀려 담보보다 더 많은 대출을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기업은행에서 퇴직한 부동산 분양업자인 차주(대출을 받는 사람)가 해당 지점 임직원에게 골프 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1월 3일 검사 인력을 파견해 현장 검사 중이다.
김 행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그 역시 이번 금융사고에 대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 행장은 신년사에서 “금융사기 예방 등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빠르게 안착시킴으로써 고객 신뢰를 유지·확보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금융권에선 사고 발생 시점이 지난해라는 점에서 기업은행이 ‘책무구조도’ 첫 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올해부터 책무구조도가 시행되면서 최고경영인(CEO)에게도 금융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만 기업은행을 둘러싼 2270억 원 규모의 법적 리스크도 악재다. 전·현직 직원과 벌이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노조와 전·현직 직원 1만1202명은 11년 전인 2014년 6월 기본급의 600%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측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1월 9일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노조 측의 승소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점쳐진다. 승소가 확정되면 소송액 775억 원에 이자까지 합쳐 약 2270억 원의 임금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출 확대 양면성… 건전성·非이자이익 개선 관건

특히 지난해 3분기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증가 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연결 당기순이익은 8014억 원, 누적 순이익은 2조1977억 원으로 3분기 누적, 개별 기준으로 모두 창립 이래 역대 최대치를 써냈다.
시장금리 하락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확대를 통한 대출자산 성장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행의 3분기 말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43조6000억 원으로 2023년 말 대비 9조8000억 원(4.2%) 증가했다.
하지만 김 행장에겐 대출 건전성 및 비(非)이자이익 개선, 글로벌 이익 확대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경영 어려움이 지속하면서 건전성 관리 등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고정이하여신비율(연체 3개월 이상 기준)은 1.31%로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원리금 기준) 역시 0.22%포인트 오른 0.86%를 기록했다. 특히 기업 부문 연체율이 0.64%에서 0.86%로 0.22%포인트 올랐다.
비이자이익도 더 줄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비이자이익은 3722억 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 대비 18.7% 감소했다. 수수료 손익도 3486억 원으로 7.5%, 유가증권 관련 손익 역시 6699억 원으로 7.6% 감소했다.
기업은행은 비이자이익 개선을 위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벤처캐피털 자회사인 IBK벤처투자를 출범했다. 벤처투자 특성상 수익을 보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김 행장은 올해에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강화에 방점을 둘 계획이다. 그는 신년사를 통해 “기업은행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위기 극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중소기업 기술력 강화를 지원해 국가 미래성장동력 확충에 힘을 보태고 기업 생애주기별 성장 사다리 역할을 강화해 국가 경제 활력 제고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비용 절감 노력을 병행하면서도 디지털 혁신을 통한 새 수익원도 확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철저한 건전성 관리하에 대손 비용 및 조달원가 절감 노력을 병행하는 등 비용을 낮추고 디지털 혁신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도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 가지 난관에 직면한 기업은행
노사 갈등, 금융사고, 소송 리스크라는 세 가지 난관에 직면한 김 행장이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3년 취임한 김 행장은 당시 ‘내부 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내부통제 강화와 노사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기업은행장은 국책은행 특성상 금융 관료 출신이 맡아왔지만 김 행장은 이를 깨고 내부 승진으로 은행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1989년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한 그는 2010년부터 기업은행 비서실장과 미래기획실장, 종합기획부장 등을 거쳐 2017년에는 경영전략그룹장을 지냈다. 2019년에는 IBK캐피탈 대표이사, 2020년부터 기업은행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노사 TF를 구성해 우리사주 은행출연 등 처우 개선에 노력했으나 노사 협상 장기화에 금융사고까지 겹치면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노사 갈등과 맞물려 있는 임금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기업은행의 예산은 금융위원회를 거쳐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 지침’을 준용해 확정되는 구조인 만큼 사측이 독자적으로 임금인상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사측이 “기재부와 금융위원회의 승인 없이는 결정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독립적 재정 운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임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과 은행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며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김 행장은 내부 출신으로 은행장에 오른 상징적 인물이어서 문제 해결에 대한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