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교과서 왜곡은 ‘大國일본’ 위기의식의 발로

일본현지보고

  • 손학규 < 한나라당 의원 >

    입력2005-04-18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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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변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급격한 우경화 이면에 정계개편 움직임이 일고 있다. 무당파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것도 우리 정치권과 유사하다. 과연 일본은 어디로 갈까? 일본의 변화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필자는 지난 4월1일부터 6일까지 5박6일간 일본을 방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 자민당의 실력자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 일본 언론에서 차세대 총리감 1위로 꼽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禎一) 자민당의원, 방위청장관 출신인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郞) 외무성 부대신(자민당의원), 야당 민주당의 소장파 리더 가운데 한 명인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정조회장 등 일본정계의 유력 인사들과 일본외무성 고위당국자, 일본 주요 언론사 사장, 한반도 문제 전문가 등을 각각 만나 최근 한일 양국간에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국제정세, 일본의 정치개혁, 양국의 미래지향적 발전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폭넓게 교환했다. 또한 한일 차세대 지도자들의 교류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지방 행정개혁과 관련하여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나가노현(長野縣)을 방문,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지사와 면담하고, 주민들과 지사가 현장에서 만나 지역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자리인 ‘구루수와슈가이(車座集會)’에도 참석하여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개혁 실태와 그 현주소를 파악하는 시간도 가졌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일본을 방문한 짧은 기간 동안,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미·중 전투기 충돌사건, 모리 총리의 사임의사 표명과 자민당 총재선출 움직임, 지바현(千葉縣) 지사 선거에서 무당파(無黨派) 여성후보인 도모토 아키코(堂本曉子)씨의 당선 등 현재 일본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는 일본 국내 일부 세력 사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부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전투기 충돌사건은 다행스럽게 해결돼가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존과 이런 양국관계에 무관할 수만은 없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외교적 입지설정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었다.

    리더십 부재의 일본사회



    무당파 여성후보 도모토 아키코의 지사당선은 10여 년이나 지속된 장기 경기침체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 누적, 그리고 자민당 장기집권으로 인한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권 피로현상으로 불거진 모리 총리의 사퇴, 이런 중앙정치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정치개혁에의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들을 목격하면서 ‘리더십 부재 사회’ 일본은 가까운 장래에 무엇인가를 분출할 듯한, 마치 ‘휴화산’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분출된 변화의 흐름이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또한 한반도에는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 것인지 나로서는 사안 하나하나가 적지 않은 관심사였다.

    교과서문제 DJ정권이 마무리해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우익단체가 주동이 되어 무책임하게 써버린 한 권의 역사교과서가 그 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한일 양국의 우호 관계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가.

    필자가 이번 방일 기간에 만난 대다수 사람들의 한결같은 우려였다.

    “현재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문제를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은 단순한 우려 차원을 넘어 국민감정과 결부된 국가간의 중대한 외교 쟁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및 처리 방향이 향후 한일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인만큼, 일본 정부 및 정계 지도층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정·관계, 언론계, 학계에 있는,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지도층이 나서줄 것을 기대한다.”(필자)

    “교과서 문제로 주변 국가나 그 국민들의 오해를 사서는 안 되며, 과거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하시모토 전 총리)

    “역사란 사실이지 창작물이 아니다. 모래 위에 썼다가 지우는 그런 게 아니다.”(노나카 히로무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

    “역사교과서 문제는 ‘레토릭(rhetoric)’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양국 발전을 위해 취한 용단에 역행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외무성 고위 당국자)

    필자가 일본 정계의 실세들, 그리고 일본 외교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서 있는 외교 당국자를 만나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에 곤혹스러움이 배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차세대 주자로 평가받는 다니가키 의원 같은 사람은, 일본사회 내부의 내셔널리즘이 분출되는 이유로 장기간에 걸친 경제 침체를 들었다. 그는 “일본인들의 자신감 상실이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며, “경제 침체로 인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여 초조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편으로 내셔널리즘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일본 경제가 회복되어 일본인들이 다시 자신감을 찾으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쪽 사람들은 교과서 검정제도가 국가에서 관할하는 ‘국정(國定)’이 아니라, 민간 자율의 ‘검정(檢定)’제도임을 들어 정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강조하고, 최초 신청한 내용 가운데 137곳에 대해 수정 지시를 내렸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좀처럼 굽히려 하지 않았다.

    이 밖에 문제가 되는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교과서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지방교육위원회, 혹은 교사들의 판단에 달린 문제, 즉 민간 자율의 문제라는 주장을 하며 맞대응을 회피하기도 했다.

    이번에 만난 사람들은 일본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당장 코앞에 닥친 자민당 총재선거와 오는 7월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에 온통 마음이 가 있는 정치현실에서 외교 현안의 중대성보다는 표에 약한 정치시스템과 ‘리더십 부재’의 일본 정치가 두드러져 보였다.

    교과서 왜곡문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문제를 대충 짚고 넘어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몇 년 지나면 잊혀질 사안이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 채 차기정권을 맞이하면,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현 김대중 정부가 취한 방식과 같이 한일 관계발전에 있어서 선도적 조치를 내놓으면서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워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으로 그 어느 누구도 대일문제 접근에 있어서 ‘무모한’(?) 용단은 내리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현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해야 하며, 문제 해결에 있어서 평면적 접근보다는 입체적으로 접근해가야 한다. 정부당국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일본 외무성 당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과서 검증과정에 외무성에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결국 실권 없는 외무성과의 대화를 통해서 문제해결을 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우리로서는 교과서 채택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학계 및 교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문제도 검토해볼 일이다.

    또한 일본 사회의 다양성을 시야에 넣고 그들 내부의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세력들과 긴밀히 의사교환을 하면서 이런 왜곡된 생각과 주장이 일본사회에서 설득력을 잃게 하는 노력을 인내를 가지고 펼쳐 나가야 한다. 그들 사회 내부에서 과격하고 ‘위험한’ 주장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소수의견으로 전락할 때, 역사교과서문제는 재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민감정의 문제라고 본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대응해야 하며, 양국간의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 속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다음 정권에서 진정한 미래 동반자 관계를 위해 좀더 진전된 조치가 나오더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미·중 사이에서 (단순)사고로 처리되기를 기대한다. 지켜보자.”

    미국과 중국 전투기 충돌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만난 일본 외무성 고위 당국자는 아주 차분한 어조로 이 문제가 조만간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은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당시 그의 논거는 이러했다. “중국 현 지도부는 ‘경제발전’에 정권의 명운과 위신을 걸고 있다. 그들에게 ‘국방’은 나중 문제다. 그들은 이런 뜻을 몇 차례에 걸쳐 명백하게 밝힌 바 있다. 개혁 개방을 추구하는 중국에게는 그에 걸맞은 우호적인 국제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WTO 가입은 그들이 바라는 바”라며, 충돌사건이 쌍방의 군사적 긴장관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러한 중국, 즉 개혁·개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도, 동북아시아 긴장완화 측면에서 볼 때도,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이야기가 다소 다른 데로 흘렀지만, 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과 중국 간에 새로운 긴장관계가 조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던 차에 발생한 양국간의 전투기 충돌 사건인만큼, 이 문제가 악화될 경우에 우리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은 간단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과의 사이에) 이견이 표출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일 정계 수뇌급 고위 인사)

    “부시는 클린턴과는 달리 북한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또 다른 정계 고위실력자)

    “클린턴 전대통령은 취임 초기에는 전임자인 부시 전대통령의 대 중국정책이 너무 무르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자신이 집권하고 난 얼마 뒤에는 중국을 1주일 동안이나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정작 맹방인 일본은 들르지도 않았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일본을 경시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외무성 고위당국자)

    “좀더 시간을 갖고 미국의 (동아시아 담당) 진용이 짜이는 것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외무성 고위당국자)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문제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간여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는 없었나?”라는 필자의 물음에 위와 같은 답변들이 나왔다. 다시 말해 정권 초기에는 약간의 이견이 생길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정책상 균형을 찾게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과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주문이었다.

    “페리보고서 쉽게 폐기 못할 것”

    외무성 고위 당국자는 “부시는 아래 사람에게 일을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스타일이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 관해서는 국무부의 아미티지, 짐 켈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방성에서는 윌포위츠나 피터 로드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국무차관보 후보로 거론되는 짐 켈리는 균형 감각이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대해 우리의 주장을 ‘빈번하게’ ‘심도 있게’ 전달하면서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할 것 같았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동북아문제에 접근하는데 한·일 양국과 긴밀하게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북한문제에 관해서 앞으로도 미국의 비중이 감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 특히 북한체제 앞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는 사실, 따라서 미사일문제에 대해 북한의 대화 상대방은 미국이라는 점 등이 그들이 갖는 시각이었다.

    앞서의 외무성 관계자는 이 밖에도 북한이 유럽국가들과 수교하고 있으나,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면서, “한반도에서 유럽이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EU측 관계자 말을 소개했다. 그는 ‘페리보고서’는 클린턴 정권의 단독 작품이 아니라, 공화당 측도 참여하여 만든 것임을 언급하고, 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이를 쉽게 폐기하지 못할 것임을 시사했다. 또 나아가 한·미·일 3국의 공동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며 향후 대북문제 접근에 있어서도 이러한 3국 공조의 틀이 유지되기를 기대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NMD에 관해서는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실현성 자체가 불확실하다”고 전망하면서도, “다만 미국 새 행정부가 이를 배치하겠다는 강한 결의를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상황에는 미국이 동맹국인 한 일 양국은 물론, 이해관련국인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대화를 나눠야 할 것임을 미국 측에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정계 고위 인사는, “요즘 한일관계에는 과거 정권처럼 정상간의 깊은 신뢰관계 형성이 아쉽다”고 언급했다. 그의 말 속에는 이번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등 양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상간에 긴밀한 대화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배어 있는 듯했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호형호제’ 하며 각별한 우의를 맺고 있는 우리의 전직 대통령 한 분에 대해서는 ‘홀가분한 입장’에서 미국 일본 등을 방문하면서 외교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중요한 몫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 때문에 잘 안 된다.”(오카다 민주당 정조회장)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정계개편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다니가키 자민당 의원)

    이번 방일기간에 만난 일본의 여야 당 개혁파 리더들은 한결같이 일본 정치의 변화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나름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었다. 수십 년에 걸친 자민당의 독주체제가 이제 ‘정권 피로현상’에 직면해 이합집산을 목전에 두고 있는 듯했다. 자민당 독주체제의 종식은 곧 ‘금권정치’에 기반을 둔 ‘파벌’의 해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파벌 해체의 움직임 속에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총리 사망 이후, 구시대적 개념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파벌 보스의 리더십이 서서히 약화되는 모습이었다.

    파벌 보스에 의한 리더십의 상실과 새로운 리더십의 모색기, 이 과도기적 힘의 공백 상태에서 일본 정국은 표류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 틈새를 비집고 여야를 불문하고 정책과 비전을 통한 새로운 리더십 형성을 위한 힘겨운 몸부림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은 이들의 움직임이 역부족이라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예를 들어 이번 자민련 총재 경선에 나선 모리(森)파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성 장관은 스스로 파벌 이탈을 선언하면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우리 정치에서 여전히 지역할거 정치구조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3김식 정치’의 극복을 위한 노력과 어쩌면 그 본질이 서로 통하는 면이 적지 않음을 그들과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기득권 체제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야심만만한 개혁파 중진의원들의 고뇌어린 집념에, 같은 세대간의 동류의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러한 구체제를 청산 대상으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극복 대상으로 삼을 것이냐 하는 점에서는 각자가 처한 처지에 따라 미묘한 편차를 보이기는 했다.

    일본 정계에서 자민당 독주체제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던 시기인 1993년 일본신당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 발족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정계는 자민당 분열에서 사회당 해체에 이르기까지 정당간의 합종연횡, 신당결성 및 해체 등 정계개편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오카다(岡田) 의원의 정치 이력을 보면 지난 10년간 일본 정계의 변화상을 쉽게 읽을 수 있다. 1990년 자민당으로 중의원의원에 처음 당선돼 소장개혁파로서 정치개혁 기치를 올림, 93년 하타 쓰토무(羽田牧)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등과 함께 자민당을 탈당하여 신생당(新生黨) 결성, 신생당 해체하여 신진당(新進黨)에 참여, 신진당 해산으로 민주당 참여. 10년 동안에 당을 다섯 군데나 선택하게 된 셈이다.

    미국식 양당제로 갈 수도

    “자민 민주 양당체제로 갈 것.”

    그는 향후 일본 정국 구도에 관해 “앞으로 민주당이 커져 자민당과 양대 정당 구도로 갈 것이며 다른 군소 정당들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가네코 가즈요시(金子一洋) 자민당의원은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정계개편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그 방향에 대해서는 “보수기득권 세력과 이를 타파하려는 구조개혁세력으로 나뉠 것이다. 단순화하면, 자민당 내에서 특정업체와의 유착관계 속에서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세력과 민주당 내에서도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지 않는 세력이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자민당의 잔존세력과 민주당 내에서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는 세력과 공산당 등이 하나의 축을 형성하게 되어 크게 세 개 그룹으로 나뉠 가능성도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자민당의 경우 하시모토파와 가메이파가 하나가 되고, 가토(加藤), 고이즈미(小泉), 야마자키(山崎)그룹과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와 하토야마(鳩山) 그룹이 합쳐지고 나머지는 좌파 쪽으로 정리되는 구도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희망 섞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할 경우, 일본의 경제 및 재정 악화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의식하면 일시적으로 ‘거국일치’의 대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여론조사에서 지사 지지율 90%, 현장정치를 통한 행정개혁.’

    필자가 나가노현(長野縣)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지사를 주목하게 된 것은 신문기사의 헤드타이틀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를 끄는 것은 그에 대해 반발하는 지역 의회, 관료, 그리고 비판적 일부 언론, 그리고 이를 극복해 가는 그의 독특한 리더십이었다.

    일본방문 일정의 마지막에 나가노현 방문을 잡아놓고, 4일 오후 나가노행 신칸센을 타고 1시간 반 거리를 달렸다. 나가노현은 일본 전체 지자체 수준으로 보아서 중간 수준의 지자체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어 5월까지도 스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휴양지였다.

    지사실이라 해서 안내받은 곳은 1층 30평 남짓한 사무실이었다. 누구나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본 특유의 담합 문화, 그 폐쇄성과 정체성을 혁파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시도하려는 그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담합구조는 그 원류가 자민당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지역 토착유지들이 자기 지역 국회의원들을 뽑아 올리고, 뽑힌 국회의원은 지역유지들에게 이권을 제공 혹은 보장해주는 구조가 관행으로 자리잡은 게 이른바 일본의 기득권 구조라 할 수 있다. 물론 나가노현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그저 일반적인 얘기다.

    이 구조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 및 세력만이 ‘개혁행정’을 당당하게 펼쳐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요즘 ‘무당파’ 출신이 일본의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여성후보 도모토(堂本)씨가 기성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당선된 것이 좋은 사례다.

    과정의 투명성을 통해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그 파격성이 다나카 지사의 개혁 요체라고 생각된다. 다만 앞으로의 과제는 어떤 내용을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대중적 인기에 너무 집착하면 나중에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압도적인 지지를 신뢰로 바꾸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주민 실생활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지사와 회담을 마친 뒤 청사 강당에서 열리는 주민·공무원과의 직접대화 현장인 ‘구루수와 슈가이’를 약 2시간 동안 참관할 기회를 가졌다. 이들과 지사의 대화 한 토막.

    ▲기획과 직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유능한 외부인재를 모셔와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시지요”

    ▲다나카 지사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먼저 우리 내부 사람을 찾아서 활용한 뒤에 그 문제를 검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면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비즈니스맨에 불과하다는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관광과 직원 “나가노는 관광지인데 한번 오고는 서비스가 나쁘다고 다시 안 오는 일이 많습니다.”

    ▲다나카 지사 “화장실을 예로 들어봅시다. 우리 나라 국민들처럼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러니까 그 안에서 10분 정도 잠도 잘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는 화장실을 한번 고안해 봅시다.”

    이 글을 마치면서 나는 구시대적 리더십의 붕괴와 새로운 리더십의 형성이라는 과도기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공백이 일본 정국을 표류하게 한 핵심적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리더십 공백이 일본의 경제침체와 그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시기이건 어떤 상황 아래건 리더십의 교체기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다만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그 공백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국가 전체에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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