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첨단 항공기와 우마차가 공존하는 나라. GNP 세계 10위, 외환보유고 7위를 자랑하지만 인구의 13%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나라. 이렇듯 다양한 얼굴을 지닌 브라질이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 위대한 성장이냐, 혼란 속의 몰락이냐. 수수께끼 같은 나라의 운명은 바로 이 브라질판 ‘철의 여인’의 손끝에 달렸다.
지난 10월31일 대통령에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63)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해 결선투표까지 가긴 했지만, 결선에서 야당인 사회민주당(PSDB)의 주제 세하 후보를 12%p 차이로 제치고 압승을 거뒀다.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의 40대 대통령이자 남미에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 번째, 라틴아메리카 전체에서는 일곱 번째로 배출된 여성 대통령이다. 이로써 지구촌은 브라질을 포함해 독일, 핀란드,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등 모두 17개국의 여성 지도자를 갖게 됐다.
호세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11월11일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차 룰라 대통령과 함께 방한, 첫 외교 행보를 시작해 우리에게도 낯이 익다. 당시 브라질은 이처럼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당선자가 정상회의에 동행해 이목을 끌었다. 이는 한편으로 호세프 대통령에게 룰라 대통령의 그림자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브라질 국민은 호세프의 당선을 ‘룰라 대통령 대리인으로서의 당선’이라고 공공연히 말할 만큼 룰라에 대한 지지가 각별하다. 룰라 대통령은 집권 말기에도 레임덕 현상을 겪기는커녕 무려 8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지지율이 한참 치솟던 2010년 2월에는 90%에 달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룰라를 가리켜 ‘지구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정치인’이라고 일컬었다.
‘두 얼굴의 나라’
주(駐)브라질 한국대사관에서 일한 외교관 김건화씨는 저서 ‘신이 내린 땅, 인간이 만든 나라’에서 브라질을 ‘두 얼굴의 나라’라고 정의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브라질은 단순한 개도국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한다. 브라질 상류시민들의 삶은 유럽과 북미 선진국의 삶과 비견되지만 최하층민은 아프리카 난민들을 연상시킨다. 세계 6, 7위권의 자동차 생산국이며 농업기술, 우주항공기술면에서 우리를 저만치 앞서가는 나라이지만 아마존 오지에서는 아직도 석기가 사용되고 1960년대식 자동차가 생산된다.’
한마디로 브라질은 첨단 항공기와 우마차가 공존하는 땅이라는 것이다. 김건화씨의 책에 소개된 브라질은 영토, 인구, 자원, 잠재력 등 여러 면에서 ‘나라’라기보다 ‘대륙’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우선 850만㎢에 달하는 영토는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크며 세계 전체 면적의 5.7%를 차지한다. 남미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며 칠레와 에콰도르를 뺀 모든 남미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의 면적과 비슷하고 우리나라의 85배에 달한다.
땅이 넓으면 버려지는 곳도 많은 법인데, 브라질은 영토 대부분이 개발 가능하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경작이 가능한 토지 중 22%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기후 조건도 좋아 핀란드에서 펄프용 목재를 생산하는 데 대개 50년이 걸리는 것에 비해 브라질에서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7년 만에 자란다고 한다. 풍부한 햇빛 덕분에 북동부지방에서는 1년에 2번이나 포도를 수확할 수 있고, 닭을 기르기 위해 겨울철 난방용 전력을 쓰지 않아도 된다. 사탕수수, 커피, 오렌지주스, 쇠고기, 닭고기 수출 세계 1위 국가이기도 하다.
땅 위에서 곡식과 가축이 무럭무럭 자란다면 땅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광물자원이 묻혀 있다. 매장량 세계 2위인 철을 비롯해 망간, 알루미늄, 금, 주석 등 70가지 이상의 광물자원을 확보하고 있는데, 아마존 지역에는 뭐가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직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한 브라질은 석유 강국이다. 2007년 현재 126억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근에도 유전이 속속 발견돼 조만간 석유 수출국 반열에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그렇다고 브라질이 그저 1차 산업 국가는 아니다. 오히려 중남미 최대의 산업국가다. 세계 3위의 항공기 제조회사 엠브라에르(Embraer)를 갖고 있고, 2007년 297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 세계 7위의 자동차 제조국이기도 하다. 세계 6위의 에너지 메이저 페트로브라스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 지 오래. 이밖에 우주항공, 생명공학, 건설, 석유화학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전화 보급대수도 1억2100만대로 세계 5위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룰라, 이념을 버리다
브라질은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회복되는 속도도 빨랐다. 브라질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Bovespa) 지수는 신흥시장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외신들이 지적한 대로 브라질에 ‘마법의 시간’이 온 것인지, 2009년 10월2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2016년 제31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했다. 이미 2014년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된 터라 2년 후에 올림픽까지 여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브라질의 달라진 위상을 새삼 실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브라질의 국제적 위상은 실로 눈부시다. 2008년 현재 국내총생산(GNP)은 세계 10위이며 해외투자 유치액은 11위, 외환보유고는 7위다. 금융위기 여파도 다른 개도국에 비해 덜한 것으로 평가되어 현재 브라질 경제는 1960~70년대 황금기에 버금가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내일의 나라’ ‘미래의 땅’ ‘기회의 나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위대해질 수밖에 없는 나라’…이 모두가 브라질의 잠재력을 표현하는 말들이라고 김건화씨는 전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브라질 사회를 짓누르는 장애물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 인구의 13%가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층이다. 극단적인 양극화는 극빈계층과 정치인들 간에 정치적 거래가 이뤄지는 포퓰리즘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거대 정부’를 낳았다. 그 결과 만성적인 재정적자, 과도한 세금과 규제,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다. 불안한 치안도 이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매년 3만5000명가량의 시민이 총격으로 사망해 유엔 기준에 따르면 사실상의 내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브라질의 성장률은 아르헨티나나 칠레만 못했다. 하지만 그런 브라질의 국운을 끌어올린 사람이 있으니 2001년 대통령에 당선된 룰라가 바로 그다. ‘전 은행의 국유화, 외채 지급 동결, 토지 개혁을 통한 부의 재분배, 거대 언론 전면 통제’를 주장하던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해외 자본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주식시장은 곤두박질치고 자체 통화인 헤알 가치는 급락했다.
하지만 취임 직후 그가 “전임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하자 급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그래도 평생 좌파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이 과연 약속대로 부자와 기득권층을 흔들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 것인가 하는 의심은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룰라는 이념을 버린 실용주의적 행보 때문에 그를 변절자로 비판하는 국내 좌파들과 ‘맞짱’을 뜨며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내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변화를 통해 나와 내 당(노동자당)은 더욱 진실하고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좌익 활동을 한다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편견과 흔들기에 맞서다
룰라의 삶은 브라질 서민층을 그대로 대변한다. 23명의 형제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는 19세 때 어렵게 취직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졸고 있던 동료의 실수로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지난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한 지우마 호세프(오른쪽)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 호세프는 당시 대통령당선자 신분으로 서울을 방문하며 첫 외교 행보를 시작했다.
그가 재임기간에 보여준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중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연평균 5%대의 고성장을 기록했으며, 1인당 평균 소득은 무려 23%나 증가했다. 또 ‘볼사 파밀리아’라는 빈민 가정 소득보조 정책을 통해 2900만명의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다. 1999년 35%에 달하던 극빈층 비율은 2007년 25.1%로 내려갔다.
브라질 선거법에 따라 3선 연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룰라는 호세프를 자신의 후계로 지목하고 직접 지원에 나섰다. 에너지 장관을 지낸 기술관료 출신인 호세프는 정파에 휩싸인 적이 없고, 룰라가 취임 초기에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그를 배신하지 않는 충성심을 보여줬다. 선거 기간에 룰라는 호세프를 ‘브라질의 어머니’라 일컬으며 치켜세웠고 이런 ‘룰라 효과’는 선거 내내 이어졌다. 덕분에 선거 초반 10%대에 머물던 호세프의 지지도는 50%대로 치고 올라갔다. 당시 외신들은 “이번 브라질 대선은 호세프가 룰라의 후광을 입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 문화의 색채가 짙은 브라질 사회에서 과연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을지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호세프의 경우 젊은 시절 반정부 게릴라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과격한 여전사 이미지, 두 번의 이혼 경력, 선거를 통해 공직에 당선된 적이 없다는 정치 이력, 얼마 전 림프종 진단을 받고 두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는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그의 발목을 잡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제 젠더와 무역 네트워크(Inter-national Gender and Trade Network, IGTN·젠더와 무역 이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여성주의자 모임)의 국제 코디네이터인 그라시엘라 로드리게스는 최근 서울을 방문해 한 인터뷰에서 “특히 (호세프의) 외모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언론도 많았다. 바지만 입는다거나 남성처럼 건장하다거나 두 번이나 이혼한 사실 등을 부각했다”고 전했다.
이에 호세프는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여전사’에서 ‘푸근한 이웃집 아줌마’로 변신하기 위해 코를 높이는 성형수술을 했다는 풍문이 돌 만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바꿨다.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착용했으며, 흐트러진 단발머리를 단정한 커트 스타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스타일보다 호세프를 더 세차게 흔들어댄 것은 낙태 이슈였다. 호세프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가톨릭 국가다. 2006년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 전체 인구의 66%에 달하는 1억2000만명이 가톨릭 신자다. 18%를 차지하는 신교 인구까지 합하면 인구의 85%가 기독교 신자다. 따라서 무신론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호세프 후보자는 선거운동기간 중 1970년 반정부 사범으로 기소됐을 당시 상파울루 경찰청에 보관된 문서에 ‘종교 없음’이라고 기재한 것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잣집 딸의 고뇌
이처럼 종교적 분위기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호세프는 “낙태에 반대하지만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감안할 때 여성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허용돼야 한다”고 낙태 지지 입장을 밝혔다. 보수당인 사회민주당은 그의 종교관에 문제가 있다며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호세프는 1차 투표가 끝나고 결선을 기다리는 동안 종교단체에 항복하고 말았다.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나 강간에 의한 임신일 때만 낙태할 수 있는 현행 법률을 바꾸지 않겠다고 가톨릭교회 문서에 사인한 것이다.
민감한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는 “항암치료로 90% 이상 완치될 수 있는 병”이라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밝혔다. 다리 근육에 생긴 염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등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밝은 표정으로 대중 앞에 섰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서 썼던 가발도 때로는 보란 듯이 벗어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1947년 브라질 중부 벨로리존테라는 곳에서 태어난 호세프는 ‘부잣집 딸’이었다. 아버지 페드로 호세프는 불가리아에서 브라질로 이주한 이민자였다. 이런 인연으로 호세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멀리 대서양 건너 불가리아도 덩달아 신이 났다고 한다.
호세프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 불가리아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지만 정치적 탄압이 심해지자 프랑스 파리를 거쳐 1940년대에 브라질로 건너와 정착했다. 이후 브라질에서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둔다. 아버지의 ‘전향’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지만 좌파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아버지의 삶은 호세프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호세프는 하인을 3명이나 둔 넓은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발레리나를 꿈꿨을 만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중·고교 시절도 중상류층 자녀들이 모여드는 사립학교에서 보낸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 브라질의 빈부격차를 보고 깊은 고뇌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감옥은 또 하나의 학교
피는 속일 수가 없었던지 그 역시 고교생 때부터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는다.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하면서 사립학교를 나와 공립학교로 전학했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학생에 대한 차별과 권위주의에 심한 반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무렵 브라질을 지배하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20세이던 1967년 브라질 사회당의 급진분파인 노동자당(POLOP)에 가입했다가 얼마 후 무장투쟁 노선을 지향하는 ‘전국해방지휘본부’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다섯 살 연상의 동료이자 기자인 클라우디오 갈레노를 만나 결혼에 이른다.
대학 시절 전국해방지휘본부(COLINA) 게릴라 요원으로도 활동한 호세프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하는가 하면 동료 대원들의 무기를 숨겨주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1970년 체포돼 3년 동안 수감됐다. 호세프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테러리스트 활동을 했다”며 트집을 잡는 상대 후보에게 “보다 나은 브라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위해 싸웠다”고 맞받아쳤다.
그에게 감옥은 또 하나의 학교였다. 수감돼 있는 동안 경제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빠져들었고, 이는 급진좌파에서 복잡한 현실을 인정하는 중도좌파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가 된다. 출소 후에는 포르토 알레그레 연방대학 경제학과에 들어가 졸업한다.
석방 후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변호사이자 게릴라 요원이던 카를로스 아라조와 재혼해 딸을 낳았다. 하지만 1994년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잠시 별거에 들어갔다가 2000년 다시 이혼한다.
처음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0년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면서부터. 처음에는 경제자문역을 맡았으나 1985년 포르토 알레그레 시 재무장관에 기용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어 주 정부 에너지 장관에 발탁된다. 당시 전력난에 허덕이던 지역에 “절약하라”고 하는 대신 민간기업을 끌어들여 1000㎞에 달하는 전력선을 깔고 댐과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전력난을 해소했다.
중앙정치 무대로 나간 것은 2001년. 룰라가 창당한 노동자당(PT)에 입당하면서 이듬해 대선 때 룰라 캠프에서 에너지 관련 자문 역할을 맡게 된다. 이후 룰라 정부가 출범하면서 광산 및 에너지부 장관에 기용된 후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성공적인 기업공개로 룰라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2005년에는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처한 룰라를 전면에 나서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의 총리직에 해당하는 수석장관에 임명돼 2010년 3월 노동자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내 인생을 사랑한다”
브라질 언론매체 ‘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insight)’는 지난 10월1일자에 당시 대선후보 신분이던 호세프와 한 인터뷰를 장문의 기사로 실었다. ‘남미로닷컴’은 인터뷰 전문을 번역해 올렸는데, 여성으로서 호세프의 정체성과 정치철학을 짐작게 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다음은 필자가 이 인터뷰를 임의로 요약, 정리한 것이다.
▼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여자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예상되는 변화는.
“브라질에서는 여권(女權)의 역사가 거의 없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00년도 채 안 되는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심각한 성(性)불평등이 존재한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여성은 남성 임금의 3분의 2를 받는다. 가정폭력도 여전하다.”
▼ 정치에 여성적인 방식이 존재하나.
“여성은 누군가를 보살피고, 음식을 제공하고, 격려해준다. 이것을 공적인 생활에 적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여성은 인구의 52%다. 나머지 48%는 여성들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여자 대통령이 나온다면 가정을 돌보는 일을 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정반대가 아니다.”
▼ 예전에 당신은 페미니스트였다.
“초기(젊은 시절)에는 그랬다. 어떤 사실을 주장하게 되면 강한 영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깨닫게 하려면 이런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어떤 여성 정책도 남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역설적이게도 당신에 대한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이 낮다.
“정치학자 마르쿠스 코임브라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여성이 남성만큼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여성이 아직 나를 모른다. 나를 아는 여성 그룹과 모르는 그룹을 따로 나눠 지지율을 조사해보면 다른 후보보다 앞설 것이다.”
▼ 룰라 정부의 특징은 포용정책이었다. 호세프 정부의 특징은.
“이전과 같이 포용정책이 핵심이다. 브라질은 아직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신흥개발국이다. 따라서 GDP 성장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 목표는 가난을 뿌리 뽑아 극빈층을 더 많이 중산층으로 이끄는 것이다. 또 교육이 중요하다. 우선 교육의 중심에 있는 교사가 최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게 문제다. 높은 수준의 교육이 없다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기술자, 과학자, 수학자 등 인재를 키우지 않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없다.”
(실제로 브라질의 교육 문제는 난제다.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OECD의 2006년 국가별 학력평가보고서(PISA)에 따르면 브라질 학생들은 전체 57개국 중 과학 52등, 수학 53등으로 거의 꼴찌다. 브라질 사람들의 평균 교육기간은 6.2년(한국은 11년)에 불과하고 초중등학생의 30%가 유급을 당하며 학생들이 실제 참여하는 평균 수업시간은 하루 3시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15세 학생의 60%가 문맹이며 중학교 졸업자의 60%가 기본적인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한다. 교사들의 봉급 수준은 2007년 기준 다른 직업의 평균 61%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교사의 20%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으며 교사들의 결근율도 높아 북부지방의 경우 교원의 40% 정도가 평균 일주일에 한 번은 결근한다고 한다).
▼ 가난을 뿌리 뽑겠다고 했는데, 응용경제연구소(IPEA)에 따르면 브라질의 극빈층 근절은 2016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극빈층은 소득이 최저임금의 4분의 1이 못 되는 사람들이며, 빈곤층은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2003년에 빈곤층은 7780만명이었으며, 룰라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5300만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에 극빈자 역시 3740만명에서 1960만명으로 줄었다. 이들 극빈층을 없애야 한다. 물론 빈곤층 2400만명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꼭 내 재임기간 안에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며 2014년까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긴장감이 없다. 빈곤 퇴치는 룰라 정부에 이은 지속적인 정책 의제다.”
▼ 당신은 현존하는 여성 리더인 미첼 바첼레트(전 칠레 대통령)와 마거릿 대처(전 영국 총리) 중 누구에 가까울까.
“두말할 나위 없이 바첼레트다. 내겐 대처와 같은 보수주의적 성향이 없다.”
▼ 하지만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처럼 보인다.
“그건 고정관념이다. 모든 여자가 철의 여인이지 않나? 나는 한번도 ‘철의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은 혹시 보았나?”
▼ 당신은 삶의 고난 때문에 갑옷을 입게 된 여성처럼 보인다.
“역시 터무니없는 고정관념이다. 껍데기 없이 살아남은 곤충이 있다면 내게 보여달라. 우리는 모두 근본적으로 무척 비슷하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거나 분리하고 또 그들에게 마음을 열기도 한다. 수석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감동에 북받쳐 울었지만 하루 종일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운다. 나는 지금 아주 멋지게 살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자식도 있다. 전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난 내 인생을 사랑한다.”
● 일요신문 2010년 11월8일자 ‘호세프의 삶’(김미영 해외작가)
● 남미로닷컴
●‘신이 내린 땅, 인간이 만든 나라’(김건화 지음)
● 브라질 역사 정치 문화(이성형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