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파나마 운하 ‘탈환’ 시도 = 트럼프發 제국주의 신호탄

[송승종의 글로벌아이]

  • 송승종 대전대 특임교수·국방외교저널 대표

    입력2025-03-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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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맹국·우방국 위협하는 트럼프 ‘힘을 통한 평화’ 전략

    • 건설 당시 파나마 운하, 美 기술·정치력 상징

    • 中 중요한 외교 성과는 파나마와 국교 수립

    • 美 파나마 운하 점령 시도? 어리석고 어려운 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민의 감정에 편승해 운하의 탈환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향수와 연결시켜 보수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민의 감정에 편승해 운하의 탈환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향수와 연결시켜 보수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뉴시스]

    2025년 1월 미국의 47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캐나다와의 무역 전쟁,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 점령, 파나마 운하의 탈환을 공언하며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영토 확장 야욕을 드러내며 동맹국·우방국에 적대감을 표출한 것이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해외 전쟁의 종식과 새로운 전쟁의 방지를 역설했던 트럼프가 수틀리면 동맹국 주권을 침해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첫 임기 때도 외교 관례와 국제조약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적대국과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특유의 예측불가성과 ‘벼랑끝 전술’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국주의적 본능까지 드러내며 과거의 ‘무데뽀식(式)(scattershot)’ 대외정책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다.

    트럼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대변인을 지낸 안나 켈리는 캐나다-그란란드-파나마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중국·러시아 대항’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친트럼프 인사들조차 트럼프의 거친 메시지가 미국과 동맹국·우방국 사이를 악화시키고, 모욕을 당한 국가들이 미국에 대결적 태도를 취할 것으로 우려한다. 이런 상황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협상 전술이라 할지라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미주 프로그램 책임자인 라이언 버그는 트럼프가 중국·러시아가 아닌 서반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영향력이 낮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미국이 국제 안보 사안을 좌우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상서롭지 못한 징조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국-파나마 간 ‘100년의 줄다리기’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지도가 발행된 지 수십 년 후인 153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찰스 5세는 지협(地峽)을 표시한 지도를 살펴보다가 페루에서 금은보화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다. 그는 페루 총독(페드로 아리아스 데 아빌라)에게 운하 건설의 타당성을 평가하라고 명령했다. 회신은 ‘완전 불가능’이었다. 300년 후 이 아이디어가 유럽에서 다시 검토됐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완공되자, 대서양-태평양을 연결하는 방안이 되살아났다. 운하를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수에즈 프로젝트를 이끈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주도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재앙으로 끝났다. 2만2000명의 근로자가 열대성 질병으로 사망했다. 현재 시세로 100억 달러가 소요된 이 프로젝트는 1889년 중단됐다. 곧바로 이 지역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1890년대 후반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에서 하와이까지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영토를 모두 점령했다. 그래서 제국을 하나로 묶는 것이 외교정책의 필수 과제가 됐다.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운하 건설에 나섰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 영토였지만 반란의 소굴이었다. 루스벨트는 은밀히 파나마의 분리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그런 다음 신생 독립국이 된 파나마와 헤이-뷔노-바리야 조약을 맺고 운하 건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20세기 최고의 ‘공학적 승리’로 불리는 운하가 완공됐다. 1913년 10월 10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텔레그래프로 전파 신호를 보내 마지막 제방을 원격으로 폭파하는 세리머니로 운하 건설의 대미를 장식했다.

    1920년대 들어 운하는 파나마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혜택은 미국 기업이 차지했다.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누적된 결과, 1964년 1월 폭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22명의 파나마 학생과 4명의 미 해병이 사망했다.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운하를 파나마에 넘기기 위한 협상이 시작됐다. 1977년 카터 대통령과 파나마의 지도자 오마르 토리호스 사이에 2개의 조약이 체결됐다. 첫째 조약(토리호스-카터 조약)에 따라 미국은 1999년 말까지 운하를 파나마에 넘겨주기로 약속했다. 둘째 조약(중립 조약)은 “전·평시 모든 선박에 운하가 중립적 상태를 유지”하고, 중립성이 위협받을 경우에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명기했다.

    1997년 인수인계 시한이 다가오자 파나마 정부는 미국이 소유하던 운하 구역의 자산 중 일부를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운하의 태평양 쪽에 있는 항구와 대서양에 접한 항구 2곳이 포함됐다. 국제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당연히’ 미국 기업이 낙찰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홍콩에 본사를 둔 ‘허치슨 왐포아’라는 회사가 차순위 입찰자의 2배가 넘는 2200만 달러의 연간 임차료를 써낸 것이다. 이 낙찰은 1997년 7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불과 몇 달 앞두고 이뤄졌다. 파나마가 “중국에 운하를 넘겨줬다”는 비난은 이때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현지 시간) 취임사에서 파나마·중국을 싸잡아 이렇게 비난했다. “운하는 어리석게도 파나마에 양도됐다. 운하 건설에 많은 돈을 지출했고, 3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어리석은 선물로 인해 매우 나쁜 대우를 받았고, 파나마의 약속은 깨졌다. (…) 미국 선박은 ‘바가지’를 쓰고 있으며, 여기에는 미국 해군도 포함된다. 파나마 운하는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운하를 중국이 아니라 파나마에 넘겨줬다. 그래서 파나마에 넘겨준 것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미·중 갈등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을 치르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뉴시스]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을 치르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뉴시스]

    1977년 토리호스-카터 조약이 체결된 이후 운하는 파나마 주권과 경제력의 상징이 됐다. 반면 운하를 넘겨준 이 조약은 미국의 뿌리 깊은 지정학적·경제적·애국적 정서를 건드린 감정적·논쟁적 이슈로 남아 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운하는 미국 기술력·정치력의 상징이었다. 운하는 서반구에 미국의 영향력을 투사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인식됐다.

    1970년대에 미국은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석유 파동 등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 많은 미국인은 운하의 이양을 글로벌 리더십 ‘후퇴’의 또 다른 신호로 여겼다. 특히 공화당원들이 보기에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치르며 건설됐고, 수십 년 동안 성공적으로 관리되던 운하를 넘겨주는 결정은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카터를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한심한 대통령’이라고 비난한다. 트럼프는 이처럼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국민감정에 편승해 운하의 탈환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향수와 연결해 보수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트럼프가 보기에 운하의 이양은 과거 행정부의 ‘협상력 부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는 이러한 결정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과 국력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앞세워 운하를 미국이 나약한 지도자에 의해 통치되던 시대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레토릭은 미국이 전 세계에 패권적 지배력을 발휘하던 ‘위대한 시대’로 복귀하기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그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국가안보에 민감한 지지층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는 이러한 역사적 유산을 활용해 MAGA 메시지를 확산·강화하고, 1977년 조약을 ‘나약한 지도자에 의한 잘못된 결정’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굳히려 한다. 미국이 운하를 파나마에 완전히 이양한 1999년으로부터 25년이 흐른 지난해 12월 29일(현지 시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이 주제가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의 ‘탈환’을 공언하자, 1월 23일 에릭 슈미트 미 상원의원은 파나마 정부에 “중국 관료들을 추방하고 파나마 주요 항구에 대한 중국의 관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결의안의 뼈대는 △1977년 조약에 따라 운하의 ‘영구적 중립’ 약속 재확인 △중국 국영·민간 기업이 발보아항·크리스토발항 등의 전략적 인프라를 관리하도록 허용하는 계약 종료 △파나마의 주권 유지 및 서반구의 안보를 보호하겠다는 약속 재확인 등이다. 한마디로 이 결의안은 파나마가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 기업(허치슨 포트 홀딩스)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라는 것이다.

    슈미트 상원의원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하는 더는 중립적이지 않다. 운하는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의 일부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인프라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국가안보 관점에서 그런 상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슈미트에 의하면 미국은 해군이 운하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파나마 운하를 포기”했다. 또한 “21세기는 미국과 공산주의 중국 간의 강대국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무역과 투자를 대폭 늘렸다.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경제위원회(ECLAC)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라틴아메리카 간의 무역 규모는 2002년 180억 달러에서 2023년 4890억 달러로 무려 20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2023년 중국의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에 대한 해외직접투자(ODI)는 90억 달러로 중국 전체 ODI의 6%에 달한다.

    미국은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앞세워 정치적·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책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4년 11월 시진핑은 페루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찬차이항 개장 행사를 주관했다. 중국 국영 언론은 찬차이 항구가 중국의 무역을 촉진하고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찬차이 항구에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파나마 관계는 2017년 6월 파나마가 대만과 100년에 걸친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12월 파나마는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 훗날 언론은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당시 파나마 대통령이 “파나마-대만 관계 단절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1억4300만 달러의 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무렵부터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 파나마에 중국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코스타리카와 서쪽 국경까지 250마일의 고속철도 건설, 파나마시티에 새로운 지하철 건설, 중국 국영기업이 운하에 4번째 다리 건설(14억 달러 규모)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수에즈 운하 ‘점령’은 가능할까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2월 2일(현지 시간) 파나마 운하 당국 관리자 리쿠아르테 바스케스를 만나고 있다. [뉴시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2월 2일(현지 시간) 파나마 운하 당국 관리자 리쿠아르테 바스케스를 만나고 있다. [뉴시스]

    파나마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8년 초, 파나마를 방문한 중국 관리는 당시 바렐라 대통령에게 “파나마와의 국교 수립은 2017년 중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성과”라고 말했다. 그해 말 시진핑은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파나마를 방문했다. 중국은 또한 중국 문화·언어를 홍보한다는 명목으로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의료용품을 기부하는 등 매력 공세를 펼쳤다.

    파나마 운하는 연간 약 2700억 달러 상당의 화물을 운송하며, 이는 글로벌 해상무역의 5%에 해당한다. 주요 사용자는 미국-중국-일본-한국 순이며,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 가운데 70%의 출발지 또는 목적지가 미국이다. 운하는 중요한 무역로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 미 해군이 대서양-태평양 사이를 신속히 이동하는 데 필수적인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운하에 중국군이 단 1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운하 양쪽의 입구에 위치한 2개 항구에 대한 통제권은 홍콩 기업(허치슨)이 갖고 있다. 중국은 최근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민간 기업이 중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도록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따라서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유사시 미 해군 작전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대서양-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가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트럼프는 카터 대통령이 운하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포기하는 2개 조약에 서명한 것을 “역사적 과오”라고 비난하며 미국이 운하의 “정당한 소유자”라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동일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국무장관으로서 1월 31일부터 첫 해외 순방에 나선 마코 루비오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파나마, 도미니카 등을 대상국으로 골랐다. 그는 순방 직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올린 기고문에서 미국이 너무 오랫동안 서반구를 소홀히 했음을 지적하며, 국경안보·이민통제·경제협력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 대응’을 순방 목적으로 적시했다.

    한편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루비오가 출국하기 직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국민의 소유”라며 운하와 관련된 사안은 협상 의제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를 탈환하기 위해 무력 사용 가능성까지 암시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최고연합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브리디스는 1월 24일 블룸버그에 “(미국의) 파나마 운하 점령은 어리석고 어려운 일”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렸다. 그는 3가지 이유로 군대를 동원해 운하를 ‘탈환’하려는 시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첫째,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에 정치적·외교적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미국은 미주기구에서의 영향력은 물론 마약, 불법 이민, 영유권 분쟁(베네수엘라·가이아나 간) 등 다른 시급한 사안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지원을 즉시 잃게 될 것이다. 둘째, 운하의 무력 점령은 미국의 적대국들에 엄청나게 유리한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면서 인접한 약소국을 공격하는 위선을 정확히 지적할 것이다. 또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야망과 남중국해 전체를 노리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드라마틱하게 강화해 줄 것이다. 셋째, 군사적으로는 파나마가 어느 정도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이 지역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파나마는 미국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많은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테러 전문가인 애리조나주립대의 피터 버겐 교수에 따르면 파나마 영토는 500평방마일이 넘고 인구는 450만 명에 달하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점령에 저항할 것이다. 미 육군의 판단을 기준으로 하면 “효과적인 대반란 작전을 위해서 주민 1000명당 최소 2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운하를 봉쇄하면 예멘의 후티 반군이 수에즈 운하를 사실상 폐쇄한 것처럼 카리브해 전역의 상선에 대한 보복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를 가리켜 “100년 만에 화성을 포함해 미국 영토 확장을 노리는 최초의 대통령”이라 부르며, “새로운 미국 제국주의”의 등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트럼프는 25대 미국 대통령인 윌리엄 매킨리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1897년 취임한 매킨리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조치(‘운하위원회’ 승인 등)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영토를 대폭 확장시킨 마지막 대통령이 매킨리다. 쿠바와 하와이를 점령한 다음, 스페인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으로 필리핀을 차지했다.

    매킨리의 세계관이 트럼프에게 전수된 것일까. 트럼프는 관세를 “내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부른다. 매킨리는 딩글리법(Dingley Act)을 만들어 관세를 50% 이상으로 높였다. 매킨리와 트럼프 모두 관세를 “국내에서의 세금 인상 없이 정부 수입을 늘리는 묘수”로 생각했다. 하지만 “묘수를 3번 두면 바둑에서 진다”는 속담이 있다. 묘수를 스무트-홀리 관세법까지 반복한 결과 1930년 대공황이 벌어졌다.

    매킨리는 1901년 무정부주의자(리언 촐고츠)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암살됐다. 1896년 대선 캠페인에서 매킨리는 JP 모건과 스탠더드 오일 같은 재벌들로부터 현재 가치로 각각 10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같은 테크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 금액을 기부받았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황금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하지만 고율 관세, 영토 확장, 파나마 점령 등은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다. 정작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트럼프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Trump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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