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승부처는 군사력 아닌 ‘미래 선도산업’ 경쟁력

[이근의 텔레스코프] ‘관세’ 칼 뽑아든 트럼프, 미·중 패권 전쟁 불붙었다

  •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2025-03-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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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세’ 카드로 판 흔드는 트럼프

    • 시대착오적 패권 해석으로 잘못된 외교

    • 과거 패권=군사력, 현재 패권=경제력

    • 패권 전쟁 개념도 ‘경제력 전쟁’으로

    • 美 vs 中 = 근대 vs 설익은 전근대

    • 中 승리 시 세계 시장경제 불확실성 심화

    • 한반도 매몰 정치·지도자 실종으로 大위기

    2월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중국도 이에 보복관세 방침을 밝히는 등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Gettyimage]

    2월 1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상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중국도 이에 보복관세 방침을 밝히는 등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심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Gettyimage]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국제정치의 판을 흔들고 있다. 2월 1일(현지 시간) 미국의 전체 수입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는 캐나다·멕시코·중국산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천명했다. 우방국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의 관세를, 중국에는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바로 보복관세로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전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의 한 원인이 됐던 미국의 19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과 이에 이은 관세전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2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하기로 하면서 국면이 전환되는 듯했으나, 중국에는 유예 없이 10%의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유지했다.

    흔히 오용되곤 하는 ‘패권’ 개념

    2월 1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 관세 부과 방침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 뉴시스]

    2월 1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 관세 부과 방침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 뉴시스]

    이에 대해 중국은 10~15%의 보복관세, 구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조사, 희귀 자원 수출 통제 등으로 받아쳤는데, 자칫 세계 1위와 2위의 경제대국이 관세전쟁에 돌입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이 관세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세를 낮추면서 구축한 세계 자유무역 질서, 즉 ‘GATT(제네바관세협정·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 등 23개국이 조인한 국제무역협정) 체제’가 깨지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시작된 미·중 간 첨단기술 공급망 디커플링, 그리고 다시 시작된 관세전쟁·무역전쟁을 보면서 많은 전문가와 논객들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도 ‘미·중 패권 경쟁’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정치 용어는 언론과 학계에서 매우 자주 등장했다. 혹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20세기 미국과 소련 간의 경쟁 관계에 비유해 ‘미·중 신(新)냉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패권’이나 ‘신냉전’이라는 개념은 일상적으로 빈번히 사용하는 국제정치 용어이지만, 그 개념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나 전문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이 개념을 시대착오적으로 이해해서 불필요하게 암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패권 개념과 패권 국가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소개해서 작금의 국제정치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 ‘패권(hegemony)’이라는 말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스토리텔링을 하기엔 매우 유용한 개념이지만, 이 개념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미·중 관계를 매우 왜곡된 시각에서 해석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위험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귀결될 수 있다.

    예컨대 실제와 다르게 상대방 국가가 곧 정복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고, 우리가 이에 대한 전쟁 준비를 하게 되면 상대방도 전쟁 준비를 실제로 시작해 일촉즉발의 상태로 갈 수 있다(이를 ‘안보 딜레마’라고 한다). 이런 자기실현적 예언이 현실화하면 안 해도 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잘못된 현실 분석·예측에 기인하는데, 이를 믿는 사람이 많아질 때 현실화한다.

    이제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말에 등장하는 패권이라는 국제정치 용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시각과 이해를 정립하기 위해 이 용어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진화돼 왔는지 역사적·사회과학적으로 고찰해 보자.

    군사 강국이 곧 패권국이던 전근대 시대

    자고로 국제정치는 강한 자들의 세계다. ‘강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또 다른 복잡한 논의를 요구한다. 따라서 일단 ‘군사적으로’ 강한 자를 국제정치에서 강한 자라고 규정해 보자. 즉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나 집단을 강한 자라고 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군사적으로 강해야 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를 무협지처럼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말이 매우 상식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덴마크가 소유한 그린란드를 갖고 싶다 해도 군사력으로 강탈할 수 없다. 덴마크와 미국의 군사력 격차가 아무리 커도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굳이 미국이 군사력으로 그린란드를 빼앗지 않아도 미국의 존속에 영향이 없고, 미국 국민이 살아가는 데에도 결정적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 그린란드를 빼앗으려 한다고 해도 군사력 외에 다른 방법도 많이 존재한다. 또 미국이 ‘적국’이 아닌 ‘동맹국’에 대해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순간 미국에 가해지는 피해·손해가 이익보다 훨씬 더 크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나 중세, 전근대 농업경제 시대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시는 다른 나라나 집단과 싸우는 일 못잖게 생존에 중요한 문제가 바로 ‘자연과 싸우는 일’이었다. 국제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이 자주 망각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 자연과 싸우는 일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인간은 기후 온난화, 지진, 산불 등과 같은 자연과 싸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예전엔 자연과 싸우는 일이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장 국가나 집단 전체가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생존’과 관련된 ‘실존적 위협’이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농사나 식량의 획득과 관련된 ‘자연의 변덕’은 매우 심대한 실존적 위협이었다. 이러한 자연과의 싸움에서 극한에 몰리게 되면 비교적 자연조건이 좋은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생존을 추구하는 집단이 생겨나고, 집단과 집단 간 충돌과 폭력이 발생한다. 군사력이 강한 자가 승리하며, 승자는 자연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서 생존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 중세, 전근대엔 자연의 변덕이 심한 곳에서 일상을 영위하던 유목민족에 의한 무력 침입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자연조건이 좋은 곳에 위치한 제국은 이들로부터 좋은 조건의 영토를 보호하거나, 이들을 무력으로 복속하기 위해 강대한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에 더해 당시 가장 귀중한 재산이며 자원인 영토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도 국가들은 강대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근대 이전의 국제정치는 ‘땅따먹기 전쟁’의 시대였고, 이 시대에는 군사력이 강한 자만이 평화·부·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당시의 패권 개념이 나오게 된다. 주변의 침입·위협 세력을 다 군사력으로 제압하고, 이른바 ‘천하’를 건설한 국가가 바로 ‘패권국’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천하, 로마제국의 ‘평화(Pax Romana)’, 몽골의 ‘세계 정복’, 오스만튀르크의 ‘아랍권 제패’ 등은 다 이런 땅따먹기 전쟁에서 승리한 패권을 의미한다. 즉 감히 넘볼 수 없는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전근대 시대의 패권이며, 이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을 패권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시장 제국’이 새 패권국 등극

    시대가 바뀌어 18세기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시장에서 기업·자본가가 비즈니스를 하는 근대로 넘어오면 패권 혹은 패권국의 개념이 바뀐다. 물론 군사력은 현재도 패권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강한 국가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고, 농업생산력이 풍부한 영토 제국에서 산업 생산력과 자본주의 시장이 잘 발달한 산업국가로 성격이 변모한다.

    섬나라에 비교적 영토가 작은 인구의 영국이 세계 최강이 된 비결은 바로 산업혁명, 과학,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시장을 제패할 수 있는 이른바 ‘선도산업(Leading Sectors)’을 계속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것이 주효했다.

    이젠 넓은 영토와 커다란 인구에서 나오는 군사력보다 산업·과학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강력한 에너지가 훨씬 더 강대한 군사력으로 이어진다. 증기기관·대포·총이 있으면 창·칼을 든 수천 수만의 병사를 무찌를 수 있다. 게다가 선도산업을 가진 국가는 시장을 통해 값싸게 식량과 원료를 수입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수출하면서 국부를 매우 빠르게 축적할 수 있다. 또 더 발전된 교통수단으로 영토의 이용률을 높이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선도국가의 부·생산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산업화·근대화에 일찍 성공한 국가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고, 기존의 전근대 패권국들은 산업국가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는다. 중국, 오스만 제국, 인도가 그러했다. 이제 패권국은 과거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영토 제국’이 아니라 산업화·근대화에 성공한 강력한 자본주의 시장국가에 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됐다.

    즉 땅따먹기 시대에 천하를 건설한 국가는 몰락하고, 산업 경쟁력이 강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먼저 섬유, 방직산업, 증기기관, 철강, 철도, 금융 등 선도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영국이 당대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다만 영국은 과거 패권국처럼 주변 세력을 영토적으로 제압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제국 가운데 산업화에 가장 성공한 ‘1등 시장 패권국’이라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가장 많은 선도산업을 가진 ‘산업 제국’ 혹은 ‘시장 제국’이 새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새 패권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비결은 군사력이 아니라 지속적 혁신과 새 선도산업을 만들어서 세계시장을 계속 제패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은 선도산업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미국에 밀리기 시작한다. 미국은 내연기관으로 대표되는 자동차산업, 석유화학산업, 전기전자, 항공 등 새 선도산업을 만들어내고 대량생산이라는 공정(工程) 혁신을 도입해 영국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제패한 새 강자로 등극한다.

    트럼프, 시장 패권 놓고 중국에 전면전 선포

    이와 같이 세계는 ‘땅따먹기 패권’의 시대에서 ‘시장·선진 산업국가 패권’의 시대로 확실히 전환됐다. 인간의 생존 공간이 땅이 아니라 시장으로 넘어갔고, 이 시장에서 이긴 강자가 국제정치의 강자가 되는 것이다. 이에 전쟁 없이도 시장에서 평화적으로 패권 교체가 일어났고, 패권국은 남이 가진 땅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더 탐내게 됐다. 하지만 마치 무협지를 보듯 국제정치를 읽는 많은 사람은 이 사실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일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매우 특이한 강대국이다. 왕정과 봉건제와 같은 전근대를 경험하지 않은 신생 자본주의 근대국가고, 그렇기에 이 나라의 국익에서 자본주의 시장과 시장에서 창출되는 부는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하나로 연결된 세계자본주의 시장을 구축·유지했다. 여기서 미국이 쏟아 부은 막대한 자원이 이른바 ‘다자주의 제도’ ‘국제동맹체제’와 같은 인류 역사 최초의 ‘국제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다.

    이 공공재로 구축된 안정된 세계시장이 미국의 국익과 연결됐고, 동시에 다른 자본주의 산업국가의 국익으로도 연결됐다. 미국은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내연기관, 석유화학, 전기전자, 항공에 이어서 컴퓨터, 네트워크 통신, IT 등 선도산업을 계속 창출하면서 패권국 지위를 21세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하강·정체하면서, 유럽·일본과 같은 산업국가가 미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에 무임승차하며 미국의 부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생겨났다. 이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게다가 이 와중에 중국이 미래의 새로운 선도산업인 인공지능과 IoT(사물인터넷),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녹색산업 등에서 치고 나오고 있다. 이에 미국은 시장 패권을 놓고 중국에 전면전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은 군사력이 아니라 시장에서 선도산업을 놓고 벌이는 패권 경쟁이다. 여기서 이기면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생겨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지면 영국처럼 몰락한 패권국의 길을 가게 된다.

    또 이 전쟁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도전이 의미하는 바가 과거 패권 도전국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작금의 선도산업은 ‘IT 플랫폼’이라는 네트워크가 기반이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사흘 앞둔 2021년 6월 28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공연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이 당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AP 뉴시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사흘 앞둔 2021년 6월 28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공연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이 당에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AP 뉴시스]

    中 패권국 된다면 세계 질서 위기 초래

    이 네트워크는 시장에서 독점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에 중국의 기업들이 선도산업에서 승자가 되면 중국 기업의 독점이 생겨나고, 다른 국가의 경제가 이 중국 플랫폼 기업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 자칫 중국 경제권에 속하는 국가들이 과거와 같은 ‘조공 체제’에 들어갈 수도 있다.

    또 중국은 미국과 달리 오랜 왕조 체제의 전근대 제국 역사를 가진 국가다. 현재 공산당의 국가 운영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은 전근대를 완전히 극복한 국가가 아니다. 중국 지도자들에게선 과거와 같은 전근대 제국과 영토 패권을 복원하려는 세계관이 보인다. 근대국가로 시작한 미국과 달리 전근대의 오랜 전통이 있는 중국이 패권국이 된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중심인 현재 세계질서에 상당한 불확실성·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근대를 전근대와 같이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현재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군사력 경쟁이 아니라 미래 선도산업에 관한 경쟁이며, 이는 ‘근대’와 ‘설익은 전근대’의 충돌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이한 정치지도자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지도자다. 전쟁보다는 기발한 협상 전략으로 미국의 시장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중국에 대한 첨단산업 디커플링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부터 시작한 것만 봐도 그는 중국의 도전이 주는 의미를 정확히 읽고 있다.

    그가 성공할지의 여부는 결국 세계시장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현재 걱정스러운 것은 이렇듯 미·중이 패권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우리는 좁은 한반도 안에서 남북 관계와 전근대적 국내 정치에 매몰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시장과 국제질서에서 주인공이 될 비전을 그리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큰일이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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