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트럼프의 영토 확장 야욕은 그린란드에서 시작됐다

[송승종의 글로벌아이] 세계를 거래 대상으로 여기는 ‘트럼프쇼’

  • 송승종 대전대 특임교수·국제분쟁 전문가

    입력2025-05-0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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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무역과 미사일 방어 위한 ‘북극 요새’

    • 트럼프, 머스크와 손잡고 ‘효율적 초강대국’ 시도

    • 밴스의 그린란드 방문, 강압적 메시지로 해석돼 ‘역풍’

    • 트럼프 야욕, 19세기 ‘약육강식 세계’ 퇴행 신호탄

    J D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이끄는 대표단이 3월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를 전격 방문했다. 뉴시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이끄는 대표단이 3월 28일(현지시간) 그린란드를 전격 방문했다. 뉴시스

    그린란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별난 관심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점점 일종의 ‘집착’이 돼가고 있다.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레토릭은 갈수록 위협의 수준과 강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1월 취임 직후부터 그린란드·캐나다·가자지구·파나마 운하 등의 ‘합병’을 언급하더니, 3월 4일 연방의회 연설에서는 “국가 안보와 국제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린란드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 어떤 식으로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같은 당위론적 주장을 펼쳤다. 이에 앞서 1월 7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무력 침공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덴마크 주권하에 놓여 있는 북극 영토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호전적 주장이 미국-유럽 간 날카로운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트럼프가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까닭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그 같은 사고를 뒷받침하는 트럼프 세계관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외교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강대국의 영토 점령과 세력 확장 시대로 돌아가는 생각을 좋아한다”며 “1914년에 유행이 끝난 19세기 제국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단지 영토를 원하고 영토를 점령하고 싶어 할 뿐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트럼프가 오랫동안 러시아 푸틴의 영토 점령 스타일을 칭찬해 왔고, 심지어 그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략을 “천재적이고 현명하다”라며 부러워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어째서 그린란드에 그토록 집착할까. 첫째, 그는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가 아니라 지구를 힘센 강대국이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분할하는 영향력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그가 보기에 그린란드는 마음만 먹으면 성조기를 꽂아 차지할 수 있는 지도상의 빈 공간에 불과하다. 둘째, 그린란드는 전략적 요충지다. 지리적으로 북미-유럽-러시아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글로벌 긴장이 고조되는 시대에 ‘북극의 요새’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에 새로운 항로가 열리자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글로벌 무역과 미사일 방어를 위한 미래 거점으로 점찍은 것처럼 보인다. 셋째, 트럼프는 희토류 광물과 에너지 독립에 꽂혀 있다. 전쟁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의 팔을 비틀어 희토류 광물자원을 차지하려는 그의 욕심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실제로 그린란드는 코발트·리튬·구리 등을 비롯한 미개발 희토류의 보물 창고다. 트럼프에게 그린란드의 풍부한 광물자원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압하기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선택한 방식은 외교·투자·협력이 아니라 우격다짐식의 협박이다. 넷째,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지정학적 레거시’로 삼으려 한다. 외교 전문가들은 그린란드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을 가리켜 위대한 국가적 비전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개인적 허영심의 발로라고 지적한다.

    과학적 수단 통한 문명 최적화

    1930년대에 등장한 ‘테크노크라시 운동(Technocracy Movement·기술관료 운동)’은 캐나다, 그린란드, 멕시코, 미국, 그리고 중앙아메리카 일부를 단일 대륙으로 통합하자는 구상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테크네이트(Technate·기술국가)’를 만들려 했다. 테크노크라시를 하나의 철학·운동이라 한다면, 테크네이트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려는 상상의 국가 또는 시스템이다. 요컨대 테크네이트는 지리적 국경과 정치적 분열이 아닌 ‘기술관료적 원칙’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 또는 국가인 셈이다. 



    당시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은 비주류 그룹이었지만, 북미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고 파나마 운하까지 국경을 확장할 것을 주장했다. 그들의 비전은 기술과 과학을 앞세워 낭비와 비효율을 없애고 북미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1929년부터 10년간 지속된 대공황으로 대규모 실업과 경제 문제가 최대의 난제였던 시기에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기술관료제는 1933년 ‘테크노크라시 주식회사(Technocracy Inc)’를 창설한 경제학자 출신의 하워드 스콧과 컬럼비아대의 교수·학자 그룹이 주도했다. 이러한 운동의 이념적 토대는 자본주의·사회주의 같은 전통적 경제 시스템은 비효율적·부패의 온상이므로 ‘과학적 계획경제’를 통해 산업 생산·유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경제적 풍요·안정·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1930년대에는 경제 파탄이 혁명적 사고를 촉진했지만, 오늘날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극심한 정파적 분열과 부채 급증 등 국가재정 위기 등으로 인해 한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구상까지 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조성됐다. 1930년대 테크노크라트들은 시장경제를 과학자·엔지니어 주도의 전문가 시스템으로 대체하려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등장했다. 상기 맥락에서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와 일론 머스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머스크의 외할아버지인 조슈아 N 할드먼은 1930년대 캐나다에서 일어난 초기 테크노크라시 운동의 일원이었다.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 같은 머스크의 기업들은 “과학적 수단을 통한 문명 최적화”라는 기술관료제의 비전을 반영한다. 선출된 정치인들과 기존의 관료들이 무능하므로, DOGE를 통해 연방정부를 혁신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구상은 1930년대의 기술관료 운동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는 머스크와 같은 기술 엘리트들과 손잡고 ‘효율적 초강대국’을 만들려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21세기 트럼프의 영토 확장 야망과 머스크에게 제시하는 기술 최적화 철학의 결합은 1930년대 테크노크라시 운동의 현대적 환생인 셈이다.

    그린란드 북서부 76도선상에 위치한 피투피크 우주기지. 이 기지에는 약 150명의 미 공군과 우주군 요원이 주둔하고 있다. 뉴시스

    그린란드 북서부 76도선상에 위치한 피투피크 우주기지. 이 기지에는 약 150명의 미 공군과 우주군 요원이 주둔하고 있다. 뉴시스

    냉전 유물, 현대의 전략 자산 되다

    1953년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 미국은 소련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린란드에 툴레 공군기지(오늘날의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우만낙’ 마을 주민 116명은 나흘 만에 고향을 떠나 130km 떨어진 ‘카나악’으로 강제 이주됐다. 이 기지는 ‘프로젝트 아이스웜(Project Iceworm)’의 전초기지가 됐다. 이는 그린란드 빙상 아래에 소련을 겨냥한 이동식 핵미사일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는 극비 계획이었다. 1968년에는 핵무기 4발을 탑재한 미국 B-52 폭격기가 툴레 근처에서 추락하면서 주변 해안의 해빙(海氷) 위에 방사성 잔해가 흩뿌려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미군 역사상 ‘부러진 화살’이라는 은어로 표현하는 ‘핵사고(broken arrow)’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원래 ‘프로젝트 아이스웜’은 빙상 아래에 생활공간, 원자로,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갖춘 핵발전 기지를 만들려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과학연구기지’로 발표됐다. 실제로는 소련의 탐지를 피해 핵미사일을 숨기고 이동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군사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빙상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이러한 프로젝트는 도중에 중단됐다.

    피투피크 우주기지는 오늘날 미국 군대의 최전방 감시초소로서 그 전략적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린란드 북서부 76도선상에 위치한 이 기지에는 약 150명의 공군과 우주군 요원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북극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첨단 조기경보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덴마크 국방전문가 피터 라스무센의 표현처럼 피투피크는 “미국이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고, 궤도를 계산하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활성화(activate·작동)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 시설”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새로운 위협이 등장함에 따라 피투피크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우주 공간으로 비행하지 않는다. 이들은 저공으로 낮게 날고 기동성이 뛰어나, 일단 발사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요격할 수 없다.” 

    피투피크가 특별한 가치를 갖는 이유는 감시·조기경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독특한 지리적 이점에 있다. 피투피크의 심장은 ‘지상 기반 센서’다. 위성은 고위도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북극에서는 레이저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 북극 공기에 얼음 결정체(ice crystals)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작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한다. 레이저 기술은 직선으로 빛을 발사해 목표물에 도달한 다음 반사되는 원리에 의존하는데, 북극의 얼음 결정이 레이저 빔을 여러 방향으로 산란시키기 때문에 레이저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국가 안보와 국제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군사시설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린란드 역풍과 ‘콘도미니엄’ 구상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이끄는 대표단의 3월 28일(현지 시간) 전격적인 그린란드 방문은 외교적으로 역효과를 낳으며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고 있다. 그린란드와 덴마크 처지에서 이들 일행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우선 밴스는 미 공군 우주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덴마크는 자치령인 그린란드와 북극 안보를 위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동맹국 덴마크를 공개적으로 겨냥한 발언은 북극 안보를 빌미로 자의적 개입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자치권을 가진 그린란드의 정치적 현실을 무시한 발언은 현지 정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미국 대표단의 방문을 “공격적”이라고 규정하며 불쾌감을 표명했다. 그린란드는 “우리는 지금도 덴마크 공식 대표단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의 고압적 행보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는 그린란드가 미국과의 관계보다 덴마크 및 유럽연합과의 유대를 더 중시하는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밴스 일행의 억지스러운 방문은 정치적 타이밍 면에서도 최악이었다. 그린란드에서는 최근 총선 이후 신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민감한 시점에 미국 고위급 대표단이 멋대로 방문한 것은 현지 정치 상황과 주민 정서를 무시한 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린란드 정치권 내부에서도 트럼프 지지자와 연계된 인물들이 신정부 구성에 관여하고 있다는 논란이 겹치며 미국과의 연계를 오히려 정치적 부담으로 느끼는 분위기다. 

    덴마크의 정치 분석가 라스 트리에르 모겐센은 “이런 공격적 접근은 미국이 원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린란드는 이제 덴마크 왕국과 그 동맹국들 안에서 현상 유지를 통해 안전을 도모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밴스의 방문은 외교적 설득이 아니라 강압적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는 그린란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는커녕 현지의 민심과 유럽 내 동맹국의 신뢰를 동시에 잃는 외교적 자책골을 기록했다. 이 방문은 그린란드와 미국 간의 심리적 거리만 더 벌려놓은 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3월 5일자 기고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린란드에 대한 외교적 타협책으로 국제법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콘도미니엄(condominium)’ 개념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국제법에서 ‘콘도미니엄’은 복수의 주권국이 동등한 영역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권리를 행사하기로 합의한 영토(지역 또는 국가)를 말한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례가 드물다. 일례로 폰세카만(Gulf of Fonseca) 일부와 그 주변 영해에 대해 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는 ‘3자 공동관할권(a tripartite condominium)’을 행사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WSJ는 덴마크의 민족주의와 역사적 민감성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강압적 영토 획득보다는 덴마크-미국 간의 ‘공동주권(콘도미니엄) 협정’을 제안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두 국가는 그린란드에 대해 동등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기존의 관계를 소멸하거나 완전한 합병을 유발하지 않고도 공동의 거버넌스가 가능하다. 

    WSJ는 이러한 방안이 외교적 예양(禮讓)의 차원에서 덴마크에서 시작돼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단지 중립적 협정이 아니다.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정교한 수단인 동시에 합법적 파트너십으로 위장한 지정학적 책략이다. 노골적 야욕을 우아한 타협책으로 포장해 제국의 약탈적 본능을 국제주의적 협력으로 보이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는 ‘이빨을 드러낸 외교(diplomacy with teeth)’이며 미국 권력의 위협적 투사를 은폐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에게 ‘거래’의 외관과 명분을 제공하면서 합병에 따른 논란이나 완전한 소유권에 대한 반발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북극에 장기적인 전략적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

    3월 29일(현지 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르만스크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3월 29일(현지 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르만스크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푸틴 묶어주는 지정학적 연결고리

    그린란드는 트럼프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결해 주는 지정학적 연결고리로 등장했다. 덴마크와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인수’ 추진에 반대하지만, 놀랍게도 푸틴의 공개적 지지를 받았다. 3월 29일 무르만스크 연설에서 푸틴은 트럼프의 야망이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고 ‘진지하다’고 옹호하며, 우크라이나를 강탈하려는 러시아의 ‘합법적’ 주장과 나란히 병치시켰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3월 27일자 칼럼에서 푸틴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를 교묘하게 조종하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연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어로 “누군가를 바이올린처럼 연주하다(play someone like a violin)”는 표현은 상대의 허영·자만심을 이용해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조종·통제함을 의미한다. 마치 바이올린 같은 악기가 연주자의 손길에 완벽히 반응하듯 ‘연주되는’ 사람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놀아나는’ 것이다. 그것도 악기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니! 러시아의 지속적·노골적 침략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푸틴의 ‘생산적’ 논의를 칭찬하고, 크렘린의 허위 정보(우크라이나 군대가 포위되었다는 가짜 뉴스 등)를 반복하며, 푸틴의 악행을 ‘영리한 거래’로 합리화해 준다. 

    WP 칼럼은 러시아가 선호하는 트럼프의 특사 위트코프가 유달리 순박하고, 푸틴에 대한 존경심(“그를 좋아한다” “나쁜 사람 아니다”)을 드러내고, 점령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치러진 가짜 국민투표의 결과를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의 거짓말에 순순히 놀아난다고 지적했다. 칼럼에 따르면 위트코프는 트럼프 못지않게 교묘한 아첨에 쉽게 넘어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요컨대 맥스 부트는 트럼프·위트코프가 “크렘린의 허위 정보에 사로잡혀” 푸틴이 선의로 협상하지 않고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려는 욕심을 품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트럼프-푸틴의 ‘사실상’ 동맹관계는 글로벌 분쟁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례로 ‘규칙 기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질 운명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즉각적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트럼프의 영토 야망에 대한 푸틴의 지지는 대가성 합의로 보인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약화시키면서 푸틴의 ‘생산적’ 협상을 칭찬한다. 이는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푸틴의 서반구 확장을 지지하는 대가로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만이 다음의 잠재적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트럼프-푸틴이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에 대한 강대국의 고유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중국은 미국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대만을 접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뛰는 법”이다. 북한이 이러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호기로 인식한다면 한반도에 대격변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역외균형자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토적 야심이 없는 강대국”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의 영토적 야욕은 전통적 동맹보다 부동산 확장에 더 관심이 많음을 암시한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은 단순한 외교안보 전략이나 부동산 욕심이 아니다. 세계를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는 탐욕적 리얼리즘이자, 국제질서 붕괴의 시발점을 알리는 징후다. 트럼프의 영토적 욕심과 푸틴의 지정학적 속임수가 결합한 ‘야합’은 전후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패권주의와 21세기 신제국주의의 서막이며, 규칙 기반 세계질서가 “힘센 자가 최고(Might is Right)”라는 19세기 ‘약육강식 세계’로 퇴행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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