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서 병원에 온 사람은 대부분 의사의 말을 잘 따른다. 또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써준다. 환자가 장관이든 재벌이든 국회의원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의사의 직업적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권위’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하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권위’는 일정한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말하며, ‘권위주의’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려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면 당연한 말인데도 그 무게와 감동이 다르고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법어(法語)를 들으면 모든 산천이 다시 보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홍신은 특정한 권위를 부여받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권위를 사용하는 방법은 콩쥐와 팥쥐의 차이만큼이나 전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성당의 신부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
먼저 박홍 신부에 관해서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박홍 신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부와 짝지워 연상되는 성당에서의 강론 모습은 어쩐지 박홍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교구를 맡지 않는 예수회 소속 신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박홍을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종교인이자 교육가이며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서강대 총장을 8년이나 역임한 사회적 경력, 정열적이고 활발한 사회활동, 독특한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대 사회적 발언은 박홍의 그런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지난 1997년 한보사건 등으로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던 문민정부 말기, 박홍은 한 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나라가 이 상태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눈치만 살피며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성질 급한’ 내가 또 이렇게 나섰다”고 말한다. 꼭 그가 나서야 했던 문제였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사람들은 사제 신분으로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흥분하면 고함을 치며 무슨 말이든 가리지 않고 해대는 박홍의 모습을 별로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홍이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 건 1989년 서강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부터다. ‘신부 총장’이라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건 ‘주사파 발언’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 격렬한 사상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 사회를 사상논쟁의 ‘회오리 바람’ 속으로 몰아넣은 한 신부의 모습, 그 ‘권위’가 길을 잃어 ‘권위주의’에 빠졌을 때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오해를 막기 위해 사적인 얘기 하나를 덧붙인다. 필자는 이회창 총재에 관한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하는 두 집단 중 하나는 법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이 짐작하는 대로 그 나머지 한 집단은 ‘신부’다.
물론 필자는 아직 명동성당에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종교적인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제를 신뢰한다는 말이다. 비록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신부에 대한 필자의 전폭적 신뢰는 일반의 보편적 정서에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권위가 있어서 믿음을 주는’ 사람들 중에서 신부만큼 강력한 집단이 또 있는가. 그러니까 ‘인간 박홍’에 관한 얘기를 종교적인 문제와 연관시켜 행여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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