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김대중과 최민수의 카리스마

  • 입력2006-10-19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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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김대중과 배우 최민수, 두 남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상징적 인물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전혀 다른 패턴의 카리스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의학자의 흥미를 끈다. 》
    한국의 영화배우 중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로 평가받는 최민수. 그러나 그런 카리스마보다 더 큰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터프함’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터프함이 지나쳐 유치하고 단순하며 느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의 터프함에는 남성다운 매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최민수 닭’이 있었다. 주인이 일반 닭과 최민수 닭을 잡았다. 털을 뽑으려고 하자 최민수 닭이 말했다.

    “내 털은 내가 뽑는다.”

    결국 스스로 털을 다 뽑은 최민수 닭은 끓는 물에 넣어졌다. 최민수 닭이 물 속에 들어가며 말한다.



    “춥다, 뚜껑 닫아라.”

    얼마 전 그가 출연한 토크쇼에서 MC가 ‘최민수 시리즈’ 중의 하나라며 들려준 말이다.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데, 최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관객을 나무란다.

    “왜 웃으세요. 우리 눈높이 좀 높이자구요. 진짜로 멋있지 않아요?”

    바로 그렇게 말하는 최민수의 부적절한 진지함이 참으로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대통령. 그의 회고록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실 예닐곱 번씩이나 감옥에 드나들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무척 용감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퍽 겁이 많습니다. 그만하면 이력이 날 만 하건만, 감옥에 들어가야 할 때마다 두렵고 마음이 죄입니다. 속으론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섰던 겁니다.”

    그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한다. 자신은 두려움이 많고 소심하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개가 무서워 개 키우는 집에는 심부름도 못 갔노라고 소년시절을 회고하기도 한다.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6번의 감옥생활과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엔 대한민국 대통령에 오른 인물의 고백 치곤 너무 의외다.

    큰 부자가 된 사람이 어린 시절의 빈궁을 당당하게 밝히는 심리와 같은 것일까. 그러나 DJ의 경우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카리스마의 정치인 DJ, 겁쟁이 DJ. 이런 부적절한 조화가 적절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바로 김대중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자 여러분께 개인적인 정치적 취향은 잠시 뒤로 하고 김대중이라는 한 남자를 바라보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느낌에만 주목해주길 부탁드린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보여준 대중적 흡인력의 심리적 배경에 대해, 흔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논리적 화술이나 지적인 태도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의 카리스마는 그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논리적 태도에다 감성이 동반된 형태의 균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이 극대화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논리와 감성의 균형적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김대중과 최민수. 두 남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대단히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카리스마의 내용은 전혀 다른 패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카리스마는 우등하고, 배우가 연기하면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열등하다는 식의 단세포적인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명백히 차원(Dimension)의 문제가 아니라 질(Quality)의 문제인 것이다.

    질이 다른 카리스마의 소유자들

    필자의 직업은 정신과 의사다. 굳이 직업을 밝히는 이유는 정치평론가나 영화평론가가 느끼고 판단하는 김대중, 최민수와는 전혀 시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전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먼저 최민수를 살펴보자.

    “그는 이 드라마(‘사랑의 전설’)에서 자신이 좋은 남자로 보였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이 대목에서 ‘자전거 페달의 목가적 의미’ ‘내 공간의 페이지’ 등 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사용했다. 이는 전형적인 최민수식 어법이다.”

    ‘사랑의 전설’이라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그와 인터뷰를 한 한 기자의 말이다. 그는 기자들이 인터뷰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한다. 그의 말은 현학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아들을 키우는 일조차 애국애족의 측면에서 심각하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 가족과 피자를 먹으러 갔다. 갑자기 옆 테이블이 술렁거려 돌아보니 고등학교 남학생 네댓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한 태도로 인사하고 있었다. 선생님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그러나 그들이 깊이 머리 숙여 인사한 대상은 문 쪽에 나타난 두 명의 선배였다. 선배 둘은 당당하고 거만한 자세로 후배들에게 말하고 있었고 후배들은 다소곳한 자세로 선배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선생님이나 부모의 말을 들을 때도 그렇게 진지하고 겸손하지 않을 것이다.

    고교 시절 남자들에게 선배란 거의 신과 동격쯤 되는 존재가 아닐까. 특히 더 이상 상급 학년이 존재하지 않는 고3의 권위란 가위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그들의 어깨에는 늘 힘이 들어가 있고, 후배를 대할 때의 목소리는 낮고도 음산하다.

    컴컴한 극장에서 ‘대부’의 말론 브랜도나 ‘보스’의 조양은이 보여주는 절제되고 권위 있는 행동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세대다. 어쩌면 이 시기는 남자들에게 최초의 카리스마가 존재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삼류 코미디 같은 유치함을 동반하기는 하지만 남자다움의 원형, 수컷의 체취나 권위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른바 ‘고3의 카리스마’인 것이다.

    최민수에게는 늘 ‘무한의 카리스마’ ‘고독한 카리스마’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필자는 최민수를 보면 ‘고3의 카리스마’가 연상된다. 양귀자 소설 ‘모순’에는 고3의 카리스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진모(주인공의 남동생)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애당초 주먹질하곤 거리가 먼 허약 체질의 심약한 졸개 몇 명을 놓고 조직, 조직 해대는 엉성한 보스다. ‘모래시계’에 나오는 최민수를 교과서 삼아 혼자 거울을 들여다보며, 좌악 깔리는 말투를 맹렬히 연습한다. 대화 도중에도 불현듯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상대방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런 다음 허공을 향해 헛웃음을 날리는 연습도 한다. 정확하게 최민수를 표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최민수의 카리스마가 또 다른 어떤 것을 표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최민수의 ‘as if 성격’

    정신분석 용어 중에 ‘as if 성격’이라는 것이 있다. As if란 ‘마치 ∼인 것처럼’이란 뜻의 접두사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대상을 흉내내는 데 익숙하다. 행동이나 생활, 가치관도 동일시하는 대상의 것을 모방한다.

    그런데 그들이 흉내를 잘 내는 것은 자신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 바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둡고 냉소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 성격이 영판 달랐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며 불쑥불쑥 던지는 농담이 TV의 대발이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사진촬영 중에도 ‘이렇게 찍으면 이쁘겠다. 나 어때요?’라며 익살을 부리며 벤치를 번쩍번쩍 들어 옮겨놓던 최민수를 보고 있던 기자가 오히려 의아해했다. 그런 그를 보고 친구들이 여자 같다고 놀린다고 한다.”

    최민수가 92년 대단한 인기를 끈 ‘사랑이 뭐길래’란 드라마에 ‘대발이’로 나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의 인터뷰 기사다. 신기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강한 남자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최민수의 8년 전 모습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발이 역을 맡으며 실제 모습까지도 대발이화(化)되었던 것이다.

    그의 성격은 전형적인 ‘as if 성격’ 유형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모래시계’ 이후 2년 간 박태수로 살았다”라고 한 그의 말은 바로 as if식 삶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새로운 인물에 몰입하고 그 인물의 성격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호들갑을 떨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배우에겐 천혜의 자원일 것이다. 문제는 ‘배우 최민수’가 정체성이 취약한 ‘인간 최민수’의 내면을 필요 이상으로 지배하는 불안정한 심리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잠깐 어느 기자가 취재 후기에서 밝힌 최민수에 대한 느낌을 들어보자.

    “고독하다는 이야기를 자꾸 하기에 단도직입적으로 ‘왜 고독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한참을 생각한 뒤 특유의 제스처로 마치 대사를 외우듯 ‘떨어지는 물방울을 비가 아니라 보석으로 보기 때문에 고독하다’고 유장한 어투로 말하더군요. 감상적인 편지에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제가 만나본 어떤 사람보다 ‘배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평상시에도 영화 속에서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사실 최민수씨를 다양한 이유로 폄하하는 사람이 있지만, 적어도 그의 배우성 혹은 스타성은 본능적인 재능에 더 가깝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필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자는 직업 특성상 ‘배우 최민수’를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의학적 견지에서 ‘배우 최민수’가 아닌 ‘인간 최민수’의 내면을 관찰하다 보면 필자는 마치 그가 속이 비어 있는 중국빵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인간은 생후 2∼3세에, 엄마로부터 최초의 심리적인 분리-독립(separation-individuation)을 하면서 자기정체성이 확립된다. 이 시기에 적절한 심리적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나 지나치게 강한 처벌을 경험한 아이들은 정체성 확립에 문제가 생긴다. 그 대신 극도의 공포감과 불안,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이로 인한 공허감, 억압된 분노들을 가슴속에 담게 된다.

    최민수는 두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얼굴은 거의 보지도 못한 채 할머니와 고모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최초의 분리-독립 과정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도 정상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수염 한번 만져본 적이 없었고 아버지에게 용돈 한번 받지 못했다고 했다. 청소년기에 그는 전국을 돈 없이 떠돌면서 극심한 외로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종일 샌드백을 두드리기도 했고 밑바닥 주먹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고아인 친구와 자취를 하며 굶기를 밥먹듯이 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육성(肉聲)이 아닌 가성(假聲)으로, 어떤 대상을 흉내내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이 청소년기를 넘기면 스스로 부끄러워서라도 용도 폐기하는 ‘고3의 카리스마’를 지금도 움켜잡고 있는 것이다.

    아마 87년의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서울시청 앞에서 최민수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가 권투영화 ‘신의 아들’로 데뷔한 다음해였다.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했는데, 그는 카키색 군복의 깃을 세우고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더블백을 메고 사람들을 헤치며 걷고 있었다. 그의 들개 같은 눈빛과 절제된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수컷의 강렬한 느낌, ‘고3의 카리스마’가 아직 유효하던 시절이었다. 그와 비슷한 연배인 필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오랫동안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설레었는지 모른다.

    ‘최민수 시리즈’용이 아니고 보는 사람의 가슴을 진짜로 설레게 할 속이 꽉 찬 ‘배우 최민수’의 카리스마를 우리는 언제쯤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건 온전히 ‘인간 최민수’의 몫일 것이다.

    “김대중은 지나친 오해와 의심 또는 지나친 존경의 대상이었다.”

    한 기자의 분석대로 그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을 오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추앙도 있었고, 단지 DJ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그는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권위적이고 전투적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로 인식된 채 일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그가 대통령이 된 게 너무나 다행스럽다. 적어도 지독한 편견이나 맹목적 추앙에서 벗어나 비교적 공정하게 ‘인간 김대중’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형성되는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기꺼운 마음으로 ‘인간 김대중’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중매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에 대한 부풀림이나 편견이 작동하지만 일단 결혼을 해서 살기 시작하면 각자의 느낌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필자는 두 인물을 분석하면서 분석의 물리적인 양을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민수를 분석한 분량보다 김대중 대통령을 분석한 분량이 다소 적었을지 모른다. 어떤 모임에서 두 사람을 소개할 때,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생면부지인 경우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자료의 신빙성(?) 문제다. 차고 넘칠 만큼 많은 그에 관한 자료는 정치인답게 정교하고 세련되게 포장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취사선택이나 해석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의 카리스마에 대한 관찰에는 최민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그래서 일정부분은 편파적일 수도 있는) 시각이 많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DJ는 83년에 담배를 끊었다. 그전까지는 하루에 세 갑을 피우다가 아예 파이프 담배로 바꾼 스모커였다. 미국 망명 중 흡연자에 대해 사회적 규제가 심한 것을 보고 ‘마음놓고 피우지 못하면 안 피우겠다’는 생각에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대중은 자신의 금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피워 온 담배를 끊은 용기는 뻔히 감옥에 갈 줄 알면서도 ‘나 잡아가시오’ 하는 식으로 긴급조치를 위반하며 박정희에게 저항하던 용기에 못지않은 것이라며 우쭐해 한다.

    최민수가 아들을 키우는 일에 애국애족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담배 끊은 일을 독재자에 대항한 용기로 환치시켜 놓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남자의 비장함(?)에서는 일종의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대중 앞에서 징징 울 줄 아는 남자

    그가 엄청난 책벌레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의 많은 부분은 책에서 비롯한 것인지 모른다. 토인비나 니체의 사상을 즐겨 읽으면서 동시에 ‘토지’에 등장하는 용이와 월선이의 애절한 사랑에 목이 메어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다. 그는 이발을 할 동안에도 마땅히 읽을 만한 것이 없으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후후 불어가며 여성잡지를 뒤적인다고 한다.

    ‘뜨거운 얼음’처럼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둘의 통합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 그게 김대중이란 인물이다. 그러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의 카리스마가 정치개혁 등 그의 직무수행에는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이전의 정치 패러다임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한 비교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말솜씨를 보여주는 무대를 만든 게 고작이었다. 그 특유의 자화자찬 병은 여전했고 모든 게 구태의연했다.”

    최근 시국에 대한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진단에 99% 동의한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다만 변화가 있을 때에 변화하지 않고 구태의연을 고집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물론 그건 바로 인간 김대중의 한계이며, 이건 비판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강교수의 말에 이의를 달아야겠다. ‘정치인 김대중’의 한계라고 했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인간 김대중’의 한계라는 대목은 수긍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 중에 김대중만큼 유연한 인물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이나 감성적인 측면이 지적 능력이나 냉철한 의사결정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대통령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지나칠 만큼 충분히 지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감성적 카리스마’는 무한의 파괴력을 가진다.

    필자는 DJ가 평생의 민주화 동지인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아들 문성근씨의 손을 잡고 우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 94년 1월19일자 신문에 게재된 사진인데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스크랩해놓은 것이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의 우는 모습이었다. 늘 취재진과 카메라가 뒤따르는 사람이었음에도 남의 눈이나 체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성인남자가 자기 안방이 아닌 곳에서 그처럼 ‘징징’거리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일거수 일투족이 어쩔 수 없이 국민에 노출되는 보스 중의 보스가 울다니. 울고 싶어도 어금니 한번 꽉 깨물고는 참아야지. 그럼에도 그는 문 목사의 죽음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징징’ 울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출가한 딸들이 다 모였다. 딸 중에 가장 섧게 우는 이는 제일 고생스럽게 사는 딸일 가능성이 많다. 초상집에서는 자기 설움에 우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94년 1월이라면 김대중 당시 총재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 지 1년이 된 시점이다. 일생의 꿈을 접고 야인으로 살던 그에게 평생 동지의 죽음은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설움에 울었을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렇다손치더라도 여전히 그의 울음은 아름답다. 자기 부모가 돌아가셔도 남 앞에서는 목놓아 울지 않는 남자들의 겉치레적인 남자다움에 견주어보면 그 유연함은 더 빛난다.

    진화된 감성에서 나오는 유머

    솔직하게 말하면 그 이전까지 필자에게 ‘김 총재’는 권위적이고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가였을 뿐이다. 그의 눈물을 본 후에 필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재미난 경험을 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가 아니라 남자로서는 흔치않은 감성의 소유자다. 대통령이 된 후에야 알게 된 뛰어난 유머감각도 바로 그의 진화된 감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97년 대선 때 TV토론 덕을 가장 많이 보았다는 김대중 대통령. 그의 지적 사고능력과 당차원의 전략적 치밀함이 밑거름이 되었겠지만 필자는 그의 진화된 감성이 조미료와 같은 핵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논리적인 정견 발표와 같은 언어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말하는 이의 얼굴표정, 눈빛,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90% 이상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은 논리가 아닌 감성이라는 말도 된다. 그의 논리에 가미된 감성적 힘은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꼼짝없이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게 했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는 사진이 대통령 재임중의 모습이었더라도 신문에 공개되었을까. 대통령의 권위에 먹칠을 한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등의 국가차원(?)의 전략적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참모가 있다면, 그는 김대통령의 진짜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느낌이 없는 남자를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남자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의 카리스마란 근본적으로 느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고3의 카리스마’를 진화시켜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는 배우 최민수를 볼 수는 없을까. 9시 뉴스를 통해서 부드럽게 웃을 수 있는 ‘감성적 카리스마’가 내면화된 매력적인 대통령을 가질 수는 없을까.

    대통령 김대중의 카리스마는 우리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배우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정서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유로 대통령과 스타배우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동시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두 사람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요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정신과 의사의 또 다른 사회적 소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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