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당내에서 ‘상습적 당론거부자’로 불린다. 그는 당 노선과는 무관한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최근 그는 국가보안법 캐스팅보트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장파의 정풍운동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 김의원은 한나라당의 정풍운동 필요성도 제기했다.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당 소장파의 정풍운동을 ‘아름답다’고 평가하셨습니다.
“미래를 바꿔나가는 내부 진통이고, 바람직한 자성의 목소리이며, 국민이 원하는 곳으로 가려는 몸부림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죠. 민주당 의원들의 용기를 지켜보고 반성도 많이 했어요. 아마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대부분이 같은 생각일 겁니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십니까?
“지도부의 독단이나 정쟁, 부당함 등을 제어하는 쪽으로 갈 겁니다. 그건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죠. 야당도 정치개혁모임(정개모)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크로스보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거든요. 그 동안 진정한 의미의 크로스보팅이 없었잖아요. 이번에 국가보안법을 가지고 한번 해보면 우리 정치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봐요.”
이회창 총재는 실험정치인
―정풍운동은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도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동참은 이미 예견돼 있습니다. 우리도 정풍운동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거든요. 내부 토론에서 지금 행동하자는 측과 계기가 있을 때 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결론은 ‘남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식으로 부화뇌동하지 말고 원론대로 하자. 기회가 왔을 때 훨씬 강하게 나가자’는 쪽으로 나왔습니다.”
―한나라당에도 정풍운동이 필요하다고 보신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입니까?
“민주당과는 달라요. 민주당은 카리스마 정당이지만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그런 카리스마가 없잖아요. 이회창(李會昌) 총재만 해도 지역기반이나 정치자금, 당내 뿌리 같은 게 없어요. 이런 측면에서 이총재는 특이한 실험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정치사에서 실험정치인은 거의 실패했는데, 이총재는 그나마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 실험정치를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저는 한나라당이 민생정치, 대안정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것이 한나라당 정풍운동의 핵심이죠.”
김의원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상대적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두 당의 경계선에 ‘3김정치’라는 표식을 달았다. 따라서 김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민주당의 정풍운동이 3김정치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인 데 반해, 한나라당의 정풍운동은 이회창 총재의 정치실험을 성공시키는 프로그램이 된다. 하지만 김의원은 “상대적으로 볼 때 두 당의 정풍운동이 다르다는 얘기다. 절대 비교를 한다면 한나라당도 민주당 만큼 비판받을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랄까, 성격을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정당이죠. 다양한 이념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오죽하면 ‘개혁적 보수’라고 표현하겠습니까? 그 이상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개혁마인드가 강한 개혁적 보수이고, 한나라당은 보수적 색깔이 짙은 보수적 개혁이고….”
―최근 한나라당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개혁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개모 식구들에게 ‘등산론’을 자주 얘기해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작은 일로 충돌하지 말자는 거죠. 고개 빳빳이 들고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습니다.”
―정상에 오른다는 게 무슨 의미죠.
“지금으로서는 개혁입법을 통과시키고 민생현장으로 돌아가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겁니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나라당 내에서 개혁파의 목소리는 거의 묻혀버린 느낌인데.
“저도 그 점을 뼈아프게 생각해요. 일단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어요. 옳든 그르든 수적으로 밀리면 통과시킬 수 없잖아요. 국가보안법도 만일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정해버리면 국회에 상정조차 못 해요. 그래서 우리는 ‘당론을 정하지 말라. 크로스보팅을 해라. 만약 당론을 정하면 거부할 것’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당에서 개혁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 아닙니까?
“우선은 미래지향적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게 국민이 바라는 일이잖아요. 지금 새집을 지어서 다시 시작하려면 실패율이 너무 높다는 게 개혁파의 공통인식이에요. 저도 과거에 그걸 해봤잖아요. 개혁 신당에 참여해보았는데 잘 안됐어요. 만일 집을 고칠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 저는 결국 새로운 정당이 나올 것이라고 봐요.”
김의원은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당시 민주당에는 개혁성향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정작 총선에서는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원내 소수당이라는 한계는 현실 정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결국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김의원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보다 기존 정당을 개혁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김의원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현실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이 신당을 만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김의원은 “지금 상황은 여야 정치권이 개혁신당의 출현을 돕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내년 대통령선거 이전에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것으로 보십니까?
“저는 지방자치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 나올 것으로 봐요. 그것이 새로운 정당이든 정당 형태의 시민운동이든 하여튼 무엇인가는 등장합니다.”
―김의원께서 참여하고 계시는 ‘화해와 전진을 위한 포럼’(화해전진)이나 ‘정개모’를 염두에 둔 말씀인가요?
“‘화해전진’이나 ‘정개모’가 그렇게 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늦었고 또 어려울 겁니다. 아마 그것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거예요. 이미 그런 조짐을 여러 곳에서 읽었고,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만난 그룹도 있어요. 정치권이 이대로 가면 개혁정당의 탄생은 필연이에요.”
―개혁정당이 탄생할 경우 여야의 개혁파 의원들이 참여하는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십니까?
“당장은 쉽지 않을 거예요. 제3세력의 등장과 동시에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지만, 부분적 정계개편은 가능하다고 봐요. 그러고 나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면 그때부터 가속이 붙겠죠.”
―그런 움직임에 가담할 생각이십니까?
“지금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에요. 아직 정리되지 않았거든요.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잘못하면 폭발력이 생길 수도 있고…. 저는 상관이 없지만 공개될 경우 다른 쪽에 피해를 줄 수도 있잖아요.”
김의원은 일단 개혁신당 창당보다 한나라당 내부의 개혁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나라당보다는 이회창 총재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이총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독선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토론을 벌이다 보면 의외로 생각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후보가 이회창 총재로 결정된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엄밀하게 보면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 건 아니죠. 경선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대안부재론 때문에 이회창 총재가 주목받는 겁니다. 그런데 한번 면밀하게 따져보자고요. 과연 누가 대중적 지지도에서 이총재의 대타로 나설 수 있느냐? 한나라당 안에서는 현실적으로 없잖아요. 그러나 이총재도 대안부재론만으로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회창 총재가 좋은 대통령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한나라당이 지금보다 훨씬 개혁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젊은 세대는 개혁적 마인드가 강하고 기성세대는 보수성향이잖아요. 그렇다면 개혁적 마인드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거죠.”
김대중 대통령과 김의원은 인연도 깊고 악연도 많다. 멀게는 김의원이 정치에 입문하기 이전부터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김의원이 현실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에는 한번도 같은 배를 타지 않았다. 김의원은 1991년부터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을 지내다 서경석(徐京錫)씨 등과 개혁신당에 참여했다가 민주당에 합류했다. 바로 이때 김대통령은 이기택(李基澤)씨가 이끌던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회의를 창당했던 것. 결과적으로 김의원은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김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김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기대가 너무 컸어요. 솔직히 정권교체가 아쉽기는 했지만, 정권교체가 되면 세상이 좋아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김대통령이 저한테 같이 정치하자고 여러 번 손을 내밀었잖아요. 고마운 분이죠. KBS사태 때 내가 방송을 그만두게 되자 가장 먼저 위로해준 분이 DJ였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같이 못 한 걸 늘 미안하게 생각해 왔어요.
정권이 교체된 뒤 주변 사람을 통해 김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적이 있어요. 거기에는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한다. 경제 살리기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대통령이 돼야 한다. 만델라 이상의 화해를 보여줘야 한다. 반드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어요. 이걸 얘기하니까 주변에서 모두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당신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였죠.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제가 김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겁니다. 애정이 있으니까 비판하는 거지, 애정이 없으면 뭘 신경 씁니까. 그냥 내버려두지.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실망을 하다 지쳐 비판을 더 하고 싶은 욕망마저 꺾였어요. 슬픈 일이죠.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2월에 김대통령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하는 편지를 쓰셨잖아요. 방금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김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겁니까?
“국무총리만 해도 그래요. 그냥 자민련 몫으로 주는 게 아니죠. 이한동 총리보다 경쟁력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장관도 마찬가지예요. 자민련 사람들이 실력을 갖췄다면 말을 안 해요. 만일 지금 김대통령이 인사 탕평책을 쓰면 민심이 완전히 뒤집어질 겁니다. 영남에도 능력있는 사람들 많아요. 그런데 왜 안 써요? 지금 여당이 소수잖아요. 야당을 마냥 적대시하지 말고 야당도 따라올 수밖에 없도록 정치를 하면 돼요. 선진국을 보세요.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니까 소수 정당도 인기를 끌잖아요. 야당에는 우리 같은 개혁파도 있지 않습니까. 여당의 힘이 모자라면 크로스보팅 해주면 되잖아요.”
김의원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도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최근 김의원은 김명예총재에게도 화살을 날렸다. 자민련 내부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JP대망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와 관련, 김의원은 “공은 공, 사는 사”라고 말했다.
―JP의 요즘 행보를 어떻게 보세요.
“사적으로 JP는 가까운 선배입니다. 가끔 만나서 토론하고 술도 마셔요. 저는 JP의 인품도 인정해요. 그릇이 크거든요.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이겁니다. 나는 지금 JP가 깔끔하게 물러나 나라의 큰어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1000만원짜리 골프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 위치를 생각해서 자제했어야죠. 또 부모의 묘를 옮겼다고 하는데, 만일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가 뭐가 되겠어요. 오히려 깨끗이 화장해서 모범을 보여줘야죠. 장조카가 이장했고 자기는 몰랐다는데, 정말 몰랐겠어요? 남들이 옮기자고 해도 자기가 나서서 말렸어야죠.”
―올해 초에 CIA가 작성한 ‘JP파일’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 있나요?
“그 얘기는 도의적 약속 때문에 공개할 수 없어요. 간단히 말하면 5·16 이후 우리 정치상황과 연관된 것들이에요. 공화당 창당과 그 이후, 뭐 그런 내용입니다.”
당론과 소신,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국회의원은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회의원은 작은 입법기관이므로 자유의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김의원은 절대적으로 소신을 존중한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당론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2월15일 국회 대정부 질문이 대표적인 경우. 김의원은 이날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재임중 언론 세무조사 결과를 은폐한 의혹을 거론하면서 YS의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당시 김전대통령에 대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자세를 취하던 한나라당 지도부가 곤혹스러워한 반면, 세무조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다.
―김의원을 두고 한나라당에서는 ‘상습적 당론거부자’라고 합니다. 당론과 다른 얘기를 계속 하다 보면, 당내에서 ‘왕따’를 당할 것도 같은데.
“부분적으로 ‘왕따’를 당하죠. 하지만 저는 무슨 주장을 할 때 철저하게 준비해서 심한 논쟁을 해요. 다른 사람은 그냥 입으로 몇 마디 하고 끝내잖아요. 저는 항상 자료를 준비해가요. 계속 논쟁을 벌이면 나중에 ‘니 맘대로 해’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본회의장에 가서 반대 주장을 펼 수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왕따’였어요. 그런데 계속 싸우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저 인간은 소신이 있다.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묵인해 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당내 주류 인사들이나 간부들하고 사이가 나쁠 게 없어요. 논쟁을 하다가 친해진 사람도 많아요.”
―김홍신 하면 먼저 ‘튄다’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두 차례나 정부를 비판하다가 방송출연을 정지당했고, 15대 국회 개원 때는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이틀만 근무하고 세비를 받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거부했잖아요. 국회에 출입할 때 의원 전용 출입구 대신 일반인 출입구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원칙을 벗어난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튄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세비만 해도 그래요. 그때 임기가 5월30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5월은 이틀 일하고 한 달 월급을 받게 돼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잘못이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48개월 근무하고 49개월치 월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거죠.
출입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 의원회관이나 본청은 국민이 지어서 무료로 임대해준 거잖아요. 그러니까 주인은 국민이고 사용자가 국회의원이죠. 주인은 뒷문으로 다니고 사용자는 경례 받고 다닌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말한 겁니다. 내 생각이 뭐 잘못된 건가요? 원칙을 지키자는 거잖아요. 의원들도 처음엔 그냥 ‘튄다’고 하더니, 이젠 동지도 생기고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일종의 자유인 기질인데, 언제부터 그랬어요?
“아무래도 선천성인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유별난 점이 꽤 많았거든요. 저는 보수 정치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김용갑(金容甲) 의원과도 사적으로 무척 친해요. 보혁 갈등이 생기면서 오히려 더 친해졌죠. 저는 토론할 때 항상 ‘우리 주장이 100%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상대 주장이 0%라고 해서도 절대 안 된다’는 전제를 깔거든요.”
협박이요? 우린 프로예요
연말이면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의정활동이 우수한 의원을 선정한다. 김의원은 15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상위권을 유지해왔다. 그는 특히 보건복지 분야에서 맹활약했다. 이 때문에 한때 보건복지부 공무원 사이에서는 “김홍신 의원만 잘 넘어가면 된다”는 말이 유행했다.
―개혁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다 보면 외압이나 협박, 회유 같은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워낙 많이 당해서 이젠 익숙해졌어요. 예전에 ‘인간시장’을 쓸 때는 아이를 유괴하려는 사람까지 나타나서 신고하고 난리가 났었죠. 또 언젠가는 아이를 시골에 데려다 두었는데, 그곳에다 ‘김홍신을 처단하라’고 대자보를 붙이고 아파트 문을 두들겨대서 우리 어머니가 애 끌어안고 거의 혼절한 일도 있었습니다. 아내는 심장병까지 얻고….
저 때문에 우리 가족들은 오랫동안 협박에 시달리고 있어요. 오죽하면 애들과 아내는 물론 보좌진들까지 협박전화 받는 솜씨가 탁월해요. 딸아이가 어떤 남자의 협박전화를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아저씨 낮에 그렇게 할 일 없어요. 일해서 돈 버셔야죠’ 하고 끊더라고요.
한번은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었는데, 아내가 받았대요. 그 남자가 ‘너희 남편 어디 있는지 아느냐? 지금 무슨 호텔 몇 호실에 있으니까 가봐라’ 했대요. 그랬더니 아내가 뭐라고 대꾸했는지 아세요? ‘아 그러십니까. 내 남편이 그렇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으면 됐지 뭘 그래요. 아니 남자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우리 가족들이 이 정도로 프로라니까요.”
소설가에서 방송인으로, 시민운동가에서 국회의원으로. 김의원은 꾸준히 새로운 삶을 개척해왔다.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현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치에 승부를 걸든지, 아니면 글쟁이로 돌아가든지. 마지막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추측해보자.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오셨는데 어떤 직업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제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는 건 역시 글이에요. 저에겐 ‘글로 돌아가야지. 거기가 고향이지’ 하는 잠재의식이 있어요.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잠재적 회귀본능이 있기 때문에 무릎 꿇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오기도 생기나 봐요. 굴복하고 한번 더 하는 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오히려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는 소신을 갖자, 그런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 셈이죠.”
―말을 타면 기수가 되고 싶은 것처럼, 정치를 하면 정치적 목표랄까 그런 것을 세우게 되잖아요. 김의원의 꿈은 무엇입니까?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해요. 나이도 있고 하니까 이제 뭔가 도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얼마 전에는 그 문제를 갖고 토론한 적도 있어요. 그때 저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무엇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거부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