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호

양이원영 한수원 이사 선임?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 되는 꼴

[노정태의 뷰파인더] 탈원전 주장하던 양이원영 한수원 이사 선임은 ‘친환경판 내로남불’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6-06-06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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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원전 사망사고 0건, 태양광은 40건 넘어

    • 넓은 면적의 설비 필요한 태양광, 원자력보다 더 환경 파괴

    • 원자력 위험하고 환경 파괴한다는 착각 만든 베이비붐 세대

    • 사실과 다른 배타적 도덕주의에 매몰된 기후 변화 담론

    “이러한 인사를 신규 원전 건설과 원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비상임이사로 임명하는 것은 정부가 이미 확정한 신규 원전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사업 추진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습니다.”

    5월 28일,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앞으로 보낸 내용증명의 한 대목이다. 한수원은 현재 신임 비상임이사 2명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며 5배수 후보 명단을 확정했는데, 어떤 인물이 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노조가 매우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인물은 양이원영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다. 그의 이력을 간략히 살펴보자.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국장, 에너지대안포럼 기획운영위원,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원전 축소 및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시민사회 활동을 펼쳐왔다.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후에는 더불어민주당 미래부총장, 후쿠시마원전오염수 해양투기저지 총괄대책위원회 간사 등을 지냈다. 그의 활동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탈원전’인 셈이다.

    양이원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양이원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양이원영은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RE100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환경운동은 에너지 정책과 맞닿아 있다. 원자력에 반대하면서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표되는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옹호해 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습적으로 추진된 탈원전 정책을 적극 옹호하고 앞장서 왔던 것도 물론이다.

    원자력 발전과 기존 에너지 업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양 전 의원이 한수원 비상임이사가 되면, 그는 한수원이 벌어들인 돈으로 직무수당과 회의 참석 수당을 받게 된다. 다소 ‘못된’ 농담을 빌자면,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으로 임명되는 꼴이랄까.



    한수원 노동조합에서 장관에게 내용증명까지 보내 가며 대대적인 반발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6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인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의 묵인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낙하산 보은 인사”라고 주장했는데,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양 전 의원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환경운동가로서, 반핵과 탈원전에 앞장서 온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다면, 양 전 의원은 지금이라도 한수원 비상임이사 공모에서 자진 사퇴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보다 안전한 원자력 발전

    여기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양 전 의원을 비롯한 반핵·탈원전 운동가들은 대체 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고 있을까. 그들은 ‘위험하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핵·탈원전 운동하는 이들뿐 아니라 상당수 국민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상식’이다.

    문제는 그 ‘상식’이 옳지 않다는 데 있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은 그 어떤 발전원과 비교해도 높지 않다. 아니, 숫자를 놓고 보면, 애초에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다. 간단한 퀴즈. 2026년 현재를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누출이나 중대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몇 명일까? 반대로 태양광 발전 관련 사망자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우리의 ‘상식’과 정반대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누출이나 중대 사고로 인해 발생한 일반 시민 및 발전소 직원 사망자는 없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40명이 넘는다.

    물론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한 사망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월성원자력발전소 냉각수 취수부를 청소하던 잠수부가 펌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냉각수가 있어야 하는 어떠한 유형의 발전소 혹은 대형 설비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유형의 사고다. ‘원자력 때문에 인명 사고가 났다’고 주장할 수 없다.

    반대로 태양광은 지난 10년간 4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발전 시설을 공사하고 설치하기 위해 현장 인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노동집약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은 원자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면적에 설치된다. 사다리나 기타 방식으로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설치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5년간 총 28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27명이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 설치된 96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신안군 제공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 설치된 96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신안군 제공

    여기서 우리는 직관과 반대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원자력은 위험하지 않다. 그 안전성으로 따지자면 지금껏 인류가 찾아낸 그 어떤 에너지원보다 안전하다.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 등 소위 ‘신재생에너지’는 몹시 위험하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거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 쉽게 말해 자연환경이 녹록지 않은 곳을 찾아가, 넓은 면적의 설비 공사를 하고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기존의 ‘상식’을 가진 분들은 반발할 듯하다. ‘위험’이라는 개념을 그런 식으로 평가해도 되냐고 항의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위험은 바로 그렇게 평가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비행기와 자동차의 위험성을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의 직관은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위험하다고 말한다. 일단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그것만으로도 위험한 일처럼 느껴진다. 뉴스를 보면 세계 각지의 항공 사고가 보도된다. 반면 자동차는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은 사물이며, 결정적으로 그 운전대를 우리 스스로 잡는다. 아무래도 비행기보다는 덜 위험한 교통수단처럼 느껴진다.

    그 직관은 틀렸다. 비행기는 승용차보다 훨씬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구체적인 통계는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승용차가 비행기보다 안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항공기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자, 비행기 이용이 급감하고 대신 장거리 운전이 늘어났는데, 그 결과 발생하게 된 추가 사망자가 9.11 테러 희생자보다 많았던 역설적 비극이 발생했다.

    다시 원자력 발전의 안전이라는 문제로 돌아와 보자. 그 어떤 수치를 놓고 보더라도 결과는 명백하다. 원자력은 현존하는 모든 발전 양식 중 가장 안전하다. 심지어 연료의 장기 보관, 즉 에너지 안보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우월하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설비를 지속해서 유지 보수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부품은 많은 경우 수입산, 특히 중국산이 많다. 햇빛과 바람은 국산이지만 그것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는 수입산이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결국 ‘수입산 에너지’인 셈이다.

    원자력의 상황은 정반대다. 물론 우라늄은 국내에서 채굴되지 않는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국내에는 2.5년 치의 발전용 농축우라늄 재고가 확보되어 있다. 추가로 3년 치 물량이 더 계약되어 있기에, 세계대전급의 이변이 없는 한 원자력 발전소는 6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소재, 부품, 시설의 국산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은 자유 진영의 유일한 원전 생태계 보유국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자력과 태양광의 결정적 차이다. 태양광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거나 시설 노후화로 교체해야 할 때 수입산 부품과 자재를 쓸 수밖에 없지만, 원전은 우라늄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을 우리나라가 스스로 만들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원자력이야말로 진정한 ‘국산 에너지’이며, 그렇기에 에너지 안보라는 측면에서도 태양광이나 풍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전성을 지니고 있다.

    원자력 악마화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원자력은 인명 사고의 측면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측면에서도 다른 그 어떤 발전원보다 안전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원자력은 위험하다’라는 상식 아닌 상식을 갖고 살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핵무기에 대한 공포와 도덕적 반발이 원자력 발전을 향해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마이클 쉘렌버거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시피 원래 환경운동은 원자력 발전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 단체인 ‘시에라 클럽’을 이끌었던 윌 시리는 캘리포니아에 원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숲과 해양 생태계를 지키려면, 아주 적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자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1960년대 중반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으로 당시 청년이던 베이비붐 세대가 기성세대의 가치와 세계관에 대해 무조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청년들은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입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꼈고, 그것은 핵무기를 넘어서 원자력 일반에 대한 반감으로 퍼져나갔다.

    68혁명은 원자력을 악마화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생각하는 대신 구호를 외쳤다. 원자력이 무기로 쓰이고 있는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원자력=악’이라는 단순한 비난의 공식을 만든 후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러댔다.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고 방송국에서 TV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며 원자력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원자력에 대해 갖게 된 일방적인 편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원자력을 ‘나쁜 에너지’로 몰아가는 흐름은 태양광과 풍력에도 부당한 도덕적 관점을 부여했다. 그저 전기 생산 방식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착한 에너지’인 양 포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광을 깔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깎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환경 파괴가 된다는 현실적인 반박은 도덕적 함성 앞에 간단히 기각되었다. 풍력 발전 터빈이 친환경적으로 보여도 수많은 새와 박쥐, 곤충의 목숨을 실제로 앗아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상을 선악으로 나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너무도 뿌리 깊은 인간적 경향성 때문이다.

    경북 영양군에 있는 영양풍력발전소. 풍력 발전의 터빈은 새, 박쥐 등 비행 동물의 죽음을 초래하는 등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경북 영양군에 있는 영양풍력발전소. 풍력 발전의 터빈은 새, 박쥐 등 비행 동물의 죽음을 초래하는 등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경향성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진정한 ‘도덕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특정 에너지나 입장을 도덕적 선으로 취급하고, 다른 에너지원과 입장을 도덕적 악으로 치부하는 식으로는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 나름의 도덕적 관점이 있고, 나름의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저서 ‘바른 마음’에서 역설한 내용이다.

    필자는 지난 5월 20일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ALC)의 “기후 논쟁의 빈자리: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 세션에 패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필자가 강조한 내용도 이와 같다.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은 도덕에 얽매여 있다. 모두를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배타적 도덕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에너지 문제, 폐기물 처리와 관리 문제, 그 외 가치중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수많은 환경 담론이 도덕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환경 담론 둘러싼 도덕주의적 관점, 재검토할 때

    양 전 의원이 한수원 비상임이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도덕주의가 낳는 혼란 중 하나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반핵·탈원전 전도사가 어떻게 한수원 이사직을 노릴 수 있는 걸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도덕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흔한 패턴에 대입해 보도록 하자. 아마 그는 원자력은 ‘나쁜 에너지’고 신재생은 ‘착한 에너지’라는 생각을 여전히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쁜 놈들의 돈’을 받아서 ‘좋은 일’에 쓰겠다는 식으로 본인의 이중적 선택을 정당화하고 있을 수 있다. 도덕화된 환경주의는 ‘친환경 내로남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특정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차원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직관적 판단, 그로부터 비롯한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 담론을 둘러싼 도덕주의적 관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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