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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中道’를 선점해야 대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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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델에 대한 도전은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박정희 모델은 박정희 정부가 퇴장하고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한국의 지배 이념으로 유지돼왔다. 박정희 모델이 전면 부정되는 계기는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찾아왔다.

현재 박정희 모델은 국내외에서 정경유착, 불평등 성장, 관치금융 등 현재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 모델의 대안으로서 중도 진보주의적인 ‘제3의 길’을 제시하면서, 박정희 모델을 본격적으로 해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경제 모델의 기본 원리는 정부주도의 민관 협력이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 대상도 자연히 기존 모델을 지탱하는 보수세력, 즉 개발주의적 국가권력과 이에 협조한 재벌이 되었다. 재벌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형평, 경제적 집중논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론, 세계적 기준(global standards) 논리를 동원해서 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벤처산업, 중소기업, 외국인 기업 등 새로운 경제세력의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한편 김대중 정부의 진보적 성격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북 포용정책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면 한국의 새로운 집권이념으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의 ‘제3의 길’에 대한 야당의 대응은 어떤가. DJP 공조의 복원으로 유일한 야당으로 남게 된 한나라당이 이념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상호주의, 인권 차원에서 비판하면서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가 변화하지 않는 북한에게 일방적인 양보와 지원을 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한편, 탈북자와 북한 인권문제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포용정책으로 인한 안보의식의 해이이며, 김대중 정부가 고려중인 국가보안법 개정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경제·사회 분야에서 한나라당의 견해는 이념적으로 김대중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정책을 각론에서는 비판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대라는 명분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보수 일각에서 주장하는 박정희 경제모델의 유용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 한국은 아직 개도국이며 선진국을 추월하려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자국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한국에서는 정통 보수주의의 논리다.

한나라당은 또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견해를 보인다. 서구 보수주의 정당처럼 작은 정부와 개인 자율이라는 논리로 복지의 확대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며,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수혜 대상인 국민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정책집행상의 문제점을 주로 지적해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일관된 논리를 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치적 편의에 따라 원칙없이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한다. 관치금융 청산, 기업자율, 시장개방을 주장하면서 국부유출론을 제기하고, 구조조정의 조기완료, 사회안전망 확대를 지지하면서 재정적자의 확대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박정희 경제모델이라는 정통 보수주의 이념을 거부하면서 시장경제의 구현을 추구하는 서구식 보수 자유주의 이념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도 적어도 경제정책에서는 이념 스펙트럼의 중앙으로 이동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대선과 ‘제3의 길’

2002년 정책대결의 향방은 경제상황에 따라 상당 부분 결정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이며,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비난은 더 거세질 것이다. 이 과정에 야당의 논리가 일관된 이념에 기초하지 않고 비판 위주로 흐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안 제시 차원에서는 여야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제3의 길’을 선택해 이념 스펙트럼의 중앙을 선점한 상태이고, 한나라당도 지금까지 견지해온 중도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의 전략은 시장 원칙에 충실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지만, 진보 영역으로 여겨온 복지와 사회 문제에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리라는 면에서 부시의 선거 전략과 유사할 것이다.

다만 한나라당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이념적 비판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진영의 이탈을 막고 그들을 묶는 수단이 필요한데, 표면적으로 이념 갈등이 심각한 남북관계에서 그것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관건은 양당이 표방하는 중도 노선의 일관된 추진 여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시장원칙과 민주주의에 충실한 개혁 정책, 그리고 강경한 대북정책만으로는 지지 기반인 영남권과 안정추구 세력의 지지를 유지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신의 지지세력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 강구에 고심할 것이다. 2000년 대선에 부시가 중도노선을 선택했으나 공화당의 지지 그룹인 중상층을 위한 조세 감면을 약속했고, 취임 후 이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역시 제3의 길을 추진하면서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서민, 중산층, 노동자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이미 노동계와 농민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2002년 대선은 한국에서 ‘제3의 길’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집권 민주당은 지난 3년 동안 구축해온 ‘제3의 길’ 통치 이념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이념에 대한 국민의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민주당의 통치철학에 대응하는 이념적 메시지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중도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신문 정치 면은 온통 정쟁, 지역감정, 대권 암투, 정계개편 관련 기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3의 길’을 둘러싼 이념 경쟁이 조용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대선을 준비하는 여야의 고민은 미국의 정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동아 200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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