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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조선로동당 서울지도부 vs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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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로동당 대남공작 부서의 조직과 인원 예산은 얼마나 될까. 한국을 드나드는 북한 공작원의 수는 얼마나 되고,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에 맞선 한국의 대공수사기관이 펼치는 역공작은…?
  • 6·25전쟁 후 조선로동당은, 남조선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진 남로당의 유업을 이어받기 위해 끊임없이 지하당을 구축해왔다. 지하당 구축의 달인인 정경희와 이선실, 그리고 북한 공작원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검열 나온 검열간첩 김동식 등등….
김대중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지난해 6월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통령을 비롯한 이 시대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이 회담을 남북 통일을 향한 초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남북 교류를 통일 물꼬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 것인가.

통일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한군 사이에 군사력 감축(軍縮)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은 병영국가이기 때문에 군축에 매우 소극적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고 실질적인 군축을 이뤄낸다면, 한국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 된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을 군축 협상에 끌어내 군축 합의문에 서명케 하는 것이 북한을 굴복시켜 역사적인 남북통일로 가게 하는 첩경이 될 것인가?

북한에서는 군사력 감축을 ‘축감(縮減)’이라고 표현한다. 북한에서 실력자로 있다가 귀순한 엘리트 탈북자는 “한국인들이여 꿈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다. 그는 “정상회담 후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인민들에게 2004년까지 통일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통일 시기를 정해 놓은 것은 통일방안을 마련해 놓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은 열심히 축감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축감은 오히려 북한이 잘할 것이다. 축감 협상 주도권은 북한이 쥘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6·15 공동선언 제1항에는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가자’는 문구가 있다(自主 조항). 한국 사회에서는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북한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잘 이행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왜 북한은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그들 주도 통일의 초석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군사력 축감을 위한 예비 회담을 가지면, 북한은 6·15 선언의 자주 조항에 따라 미국을 배제하고 본회담을 갖자고 주장할 것이다. 한국 역시 민족주의가 강한 만큼 이를 받아들여, 남북한은 단독으로 군사력 축감을 위한 본회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은, 병영국가 북한이 군사력을 축감하는데 부정적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축감을 피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 주한미군을 줄이는 만큼 인민군을 줄이겠다’고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다. 물론 협상 초기에는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다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한국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주한미군 주둔에 동의해 주면 한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역공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 역공이다.



여기서 북한은 단물(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짜낸 뒤, ‘주한미군은 상징적으로만 축감하라’고 제의해, 한국의 동의를 받아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은 국군과 주한미군을 합쳐 15만을 축감하고 북조선 인민군도 15만 명을 축감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을 상징적으로만 철수했을 뿐 실제적으로는 축소하지 않아, 한국은 군축회담을 성공리에 마무리지었다고 자축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가 된다.”

“북한은 군축에 적극적이다”

북한은 왜 주한미군 철수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 이 소식통의 분석은 예리하게 이어진다.

“한국군에서 제대한 15만 병사는 뿔뿔이 집으로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생업에 들어가면서 동원예비군이 되겠지만, 동원예비군은 과거의 전우가 아닌 생소한 사람들과 편성되는 것이므로 이들의 전투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제대 병력을 뿔뿔이 흩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북한이 병영국가로 불리는 것은 기업소와 관공소 등이 모두 군대 체제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소의 총사장은 사단장이고, 반장은 소대장이다.

따라서 군복을 작업복으로 갈아입히고총대신 망치를 잡게 해, ‘고향 앞으로’가 아니라 ‘기업소 앞으로 헤쳐 모여’를 명령하는 것이다. 광산이나 기업소에는 한국의 동원예비군에 비교되는 교도대 조직이 있다. 이들은 사단 편제 그대로 여기에 편입된다.

이러한 교도대는 하루아침에 현역 사단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1개 군단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의 축감은 실질적인 군사력 저하지만, 북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축감에 적극적일 수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칭 관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철수를 고집해 2004년 통일이라는 목표를 놓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통일을 이루는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의 축감 회담에 응해야 한다.

두 번째로 한국은, 인민군 축감이 실제적인 축감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즉 광산이나 기업소의 교도대로 전환된 인원이 다시 현역화할 수 없도록, 이들이 쓰던 무기를 폐기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병력뿐만 아니라 무기 축감도 주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비밀 협정을 맺어, 축감 회담이 진행되는 도중 축감될 병력이 사용하던 무기를 두 나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노력하는 것은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가 시작되면 미국은 이를 눈치채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한국은 미국이나 UN을 동원해 북한의 무기 빼돌리기를 감시케 하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6·15 공동 선언 제1항의 자주를 거론하며 ‘외세는 개입하지 말라’고 맞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라’ ‘2004년에 통일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군축과 연계한 대남공작

소식통은 북한은 한국민을 상대로 자주 조항을 더 강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민을 자극해, ‘김정일=민족주의자’라는 등식을 심어줘, ‘김정일=공산주의자’라는 인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암암리에 한국 흔들기에 들어간다. 지하당을 이용한 대남 공작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협상 과정을 보면, 조선로동당 대남비서 김용순(金容淳)이 계속 전면에 나서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김용순은 조선로동당에서 대남 업무에 참여하는 통일전선부·작전부·사회문화부·대외정보조사부를 책임진 ‘비서’이자, 북한의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통일전선부의 부장이다. 그러한 김용순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유력시되는 제주도를 사전답사하고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대남공작 최고책임자가 남북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남북협상과 대남공작을 한 묶음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조선로동당 4개 대남 부서에 대항하는 한국의 4대 기관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경찰청 보안국·국군기무사령부 방첩처 그리고 국군정보사령부이다. 앞의 3개 기관은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을 잡는 대공수사기관이고, 국군정보사는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이다. 기무사 방첩처는 주로 군대에 침투한 간첩이나 좌익 사범을 추적하고, 경찰 보안국과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일반 사회에서의 간첩사건을 추적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4개 기관은 간첩 사건이 발생하면 즉각 ‘합신조(합동신문조)’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

기자는 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을 알기 위해 앞의 3개 기관 공보실에 취재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경찰청 공보실은 보안국 요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데까지는 도와주었으나, 보안국 요원들은 하나같이 “시절이 시절인만큼 취재에 응할 수 없다. 양해해 달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국정원과 기무사에서는 아예 연락조차 없었다. 그러나 4년여 전부터 기자는 탈북자나 귀순자를 만나 차근차근 북한의 공작 조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왔다.

귀순자들은 대개 국정원이나 경찰 관계자와 함께 기자를 만났다. 귀순자들은 이들을 의식해,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려 했다. 그러나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수집해 가자 서서히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의 실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취재를 통해 기자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광복 전후 남한 땅에서 벌어졌던 남로당과 경찰 간의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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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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