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박실장이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은 그 자리에서뿐만은 아니었다. 야당 대변인을 오래 한 까닭인지 기자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그런 민감한 질문이 나올 줄 알면서도 기자들과 자주 자리를 같이했다. 그때마다 박실장이 설파한 것은 ‘후계자 불요론(不要論)’ 더 정확히 말하면 불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후계자를 정하면 오히려 그로부터 화(禍)를 당한다는 논리였다.
당시 박실장의 말은 이랬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후계자를 정해 정권을 물려준 사람들의 말로를 보라. 잘된 사람이 누가 있느냐. 전두환은 천신만고 끝에 노태우에게 권좌를 넘겼지만 노태우에 의해 백담사로 쫓겨갔다. 노태우는 민정계의 거센 반대를 뿌리치고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서도 YS 집권 때 감옥에 가지 않았느냐. YS도 사실상 이회창을 지지했는데, 만일 이회창이 됐으면 그도 화를 당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큰소리 치고 살지 않느냐.”
북한산 모임에서도 박실장은 이런 기조를 유지했다. 다만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의미심장했다. ‘그(노무현)는 믿을 만한 사람’이란 표현이다.
여기서 박실장이 ‘후계자 불요론’을 주창하면서 역대 대통령이 후계자로 점지해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당선시켜줬지만 결국 그 후계자에게 배신당했음을 강조한 부분이 주목대상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배신하지 않을, 믿을 만한 사람을 후계자로 삼아야 퇴임 후가 편안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DJ의 복심에 따라 박실장이 ‘믿을 만한 사람’ 노무현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밀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다.
“박실장과 盧캠프 사이에 핫라인”
이런 해석에 박실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A씨의 증언이 무게를 더 해준다. 다음은 A씨의 최근 증언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을 앞두고 ‘이인제 대세론’이 우세했을 때 박실장은 이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이인제는 기본적으로 (선거과정이나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DJ를 밟고 넘어갈 것이란 게 박실장의 판단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인제는 (여권의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박실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당시 박실장의 최대 관심은 ‘DJ를 밟지 않을 후보’를 찾는 일이었다. 그 메신저 역을 내가 했다. 노무현 캠프에서는 그것을 인정해줬다.”
그렇다면 박실장은 왜 노무현 후보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간주하게 됐을까. 당시 여권에 몸담았던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중요한 계기가 있다. 바로 2001년 국민의 정부와 언론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해 1월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강한 톤으로 ‘언론개혁’을 언급했다. 이어 국세청이 중앙 언론사 모두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주요 타깃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였다. 그러자 이 세 언론과 한나라당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정면대결이었다.
‘전쟁’ 초반에 서슬이 퍼렇던 청와대는 한나라당과 주요 언론사 연합군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자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일부 언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여론이 ‘원군(援軍)’이 못된 것이다.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 B씨에 따르면 청와대는 주목할 만한 상황 판단을 내렸다. 즉, 전세가 역전된 데는 ‘여당 정치인들의 전선 이탈’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 것이다. 대선 출마를 준비중이던 민주당 중진 대다수가 침묵을 지키거나 원론적 입장만을 표명했다. 특히 그때까지 동교동계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고 알게 모르게 힘을 몰아줬던 이인제 최고위원에 대한 청와대의 실망은 컸다. 당시 이인제 최고위원은 청와대가 언론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조세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은 정치쟁점이 될 사안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뒤로 비켜섰다.
IJ, ‘언론세무조사’ 연설로 DJ 눈 밖에 나
이때 이인제 최고위원이 결정적으로 DJ의 눈 밖에 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5월4일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 아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 “그동안의 원론적인 입장에 변화가 있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이인제 최고위원은 측근을 내세워 “연설내용 중 정보기술(IT)과 통일 문제에만 이최고위원의 개인 생각이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당 정책위가 만들어준 연설문을 그대로 읽었다”고 말했다.
언론사 세무조사 부분은 개인의 소신과 상관없이 당론을 따랐을 뿐이란 설명이다. B씨에 따르면 이 보고를 받고 DJ는 이최고위원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 한다.
반면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특히 조선일보를 겨냥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DJ의 언론개혁 발언이 나온 직후인 2001년 2월6일 노무현 장관은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해 3월 개각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을 그만두고 민주당 고문에 취임한 이후에도 그의 ‘조선일보 때리기’는 계속됐다.
그 중에서도 8월1일 민주당 수원 국정홍보대회에서의 조선일보 비판은 공개적인 선전포고였다. 노무현 고문은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를 가리켜 ‘친일 반민족 신문’ ‘민주세력을 탄압한 반민주적 신문’ ‘세무조사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비리특권 신문’이라고 강도 높게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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