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전두환 정권의 탄생 과정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관계의 기본틀이 어떤 얼개로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교본 노릇을 하고 있다.
1980년대 내내 한국의 지식층은 좀체 풀리지 않는 한 가지 질문을 끼고 살았다. ‘한국에게 미국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박정희의 죽음에서 12·12 군부 쿠데타, 광주의 비극,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탄생에 이르는 전 과정을 미국과 연결시켜 해석했고, 이 일련의 사태 전개에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관련돼 있다고 보았다. 미국은 물론 관련설을 부인했다.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이 오랜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은, 미국이 박정희 죽음 이후 한국에 새로 등장한 정치세력을 어떤 시각에서 해석하고 상대했는지를 짚어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의 등장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향후 20년간 한국의 국가 형태와 사회모형을 결정짓는 첫 단추였고, 신군부와 미국이 이 첫 단추를 끼운 양손이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한미 양국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한국에 미국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느냐를 먼저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전두환 정권 탄생과 미국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미국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과거형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미국이 지금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현재형 질문의 답을 얻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맹국 안보가 인권에 우선
주한 미대사 글라이스틴은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전두환 정권이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워싱턴이 아닌 서울 현지에서 지켜봤다. 18년간 버텨온 박정희 정권의 붕괴, 권력의 순간적 공백과 그 공백을 채우려는 정치 세력의 부상, 군부의 하극상과 광주의 참극 등 글라이스틴은 불과 9개월 사이에 전개된 격변의 한국사를 몸소 체험했고 깊숙이 관여했다. 말 그대로 그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글라이스틴이 1999년에 이때 겪은 일을 기록한 책을 펴내면서 붙인 제목은 ‘뒤얽힌 관계, 영향력의 한계(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다. 매사에 신중한 그의 성품을 반영하듯 단어 선택에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이 제목이야말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액면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광주 유혈사태 직후인 1980년 6월16일 글라이스틴이 직접 작성해 미 국무부로 보낸 아래의 전문에서도 ‘뒤얽힌’ 한미 관계와 미국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전문은 당시의 한국 문제와 관련해 글라이스틴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던 국무부 내 3인 앞으로도 발송됐다. 동아태담당 리처드 홀부르크 차관보와 마이클 아마코스트 부차관보, 로버트 리치 한국과장 세 사람이다.
[한국 국민과 이곳의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핵심 사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거나 왜곡되게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우리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점을 국무부도 알아야 한다고 봄.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언론에 대한 심한 검열 탓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여론을 포함해 모든 것을 조작하기로 작정한 전두환 그룹의 집요한 노력 때문임.
카터 대통령의 5월31일 유선방송 인터뷰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이 빠지고 안보 이익의 지속성을 강조한 대목만 강조된 채 한국 국민에게 전달되었으며, 머스키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한국을) 대체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으로 전달되었음.]
게다가 신군부 일부에서는 위컴 장군과 본인을 우리 정부의 정책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물로 비치도록 일을 도모하고 있으며, 한 명 이상의 서울 주재 미 특파원이 이 게임에 관여하고 있음.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카터 대통령의 5월31일 유선방송 인터뷰는 CNN 인터뷰를 말한다. CNN 인터뷰에서 카터는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이 민주정부를 수립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의 우방이 인권 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정권을 전복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민주정부 수립도 중요하지만 안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었고, 때로는 동맹국의 안보가 인권에 우선한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