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11일 ‘행정도시 원안사수 충청권 연대회의’ 관계자들이‘세종시 원안 고수’를 촉구하며 집회를 벌였다.
이러한 특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논란을 거듭해온 세종시 건설 문제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기존의 세종시 건설안을 수정하려는 데 반해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 플러스 알파’를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박 전 대표가 ‘원안 플러스 알파’를 고수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복해 표명해왔듯이, 세종시 건설은 정치적 신뢰의 문제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박 전 대표로서는 세종시 건설의 수정이 기본적으로 ‘박근혜식(式) 정치’가 아닌 셈이다.
둘째,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박 전 대표로서는 충청권의 민심을 외면하기 어렵다. 지역주의 투표의 현실적 조건을 고려할 때 충청권의 정치적 풍향은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다름 아닌 ‘DJP 연합’과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었다. 따라서 박 전 대표로서는 세종시 건설 수정을 반대하는 현재의 충청권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대선을 치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 보면, 세종시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을 떠올리게 하는 사안이다.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국정운영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면 일종의 승부수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그것은 대연정으로 나타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에서는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대연정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선택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민주화 시대를 경유하면서 보수 대(對) 진보개혁으로 구조화된 갈등구도 아래 그 어떤 정책도 효율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대연정은 결국 좌절됐다. 무릇 정치란 정치사회 내의 여러 세력 간의 타협, 그리고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간의 복잡다단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가 특정 주체의 의지대로 추진되는 경우가 드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5년 당시의 정치적 조건 아래서는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小聯政)이 더 가능한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대연정을 주목하는 이유는 대연정 논란 이후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지방선거를 맞게 되는데, 이미 그때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를 상당히 철회한 상태였다는 점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이 과연 이명박 정부의 의지대로 될 것인지, 아니면 대연정의 반복이 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여론의 풍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설령 여론 변화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한다고 해도, 세종시 수정은 4대강 사업처럼 야당들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할 것이다. 그 이유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국정철학과 균형발전을 중시하는 국정철학 간의 차이가 세종시 논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세종시 문제는 이명박 정부 리더십의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친서민 중도실용의 성과와 한계
지난 1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전환점을 이룬 것은 ‘친(親)서민 중도실용’ 정책이었다. 2008년 감세를 단행하고 법치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중도실용을 새로운 국정 기조로 내걸고 이를 추진함으로써 2007년 대선 당시 보여준 중도보수적 성향을 강화했다.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이 거둔 성적표는 나름대로 효과적이었다. 여름과 가을을 경유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서서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친서민 중도실용에 대한 국민의 체감도는 여전히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1월8일 헤럴드경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체감도에 대한 질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76.8%였지만, ‘피부에 와 닿는다’라는 응답은 16.7%에 지나지 않았다.